동아시아, 공존과 번영

3월의 한일관계: 그 후 일년

소한마리-화절령- 2006. 3. 27. 21:08
3월의 한일관계: 그 후 일년
저 자 손열
출 처 미래전략연구원
발간일 2006/03/27
출간형태 보고서
종 류
    
목 차
1. 머릿말

2. 대일 강경대응의 득과 실

3. 역사의 국제정치: 장의 속성

4. 두가지 선택지

5. 어떻게 풀 것인가?
요 약
작년 3월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날을 제정하는 조례안 상정과, 주한일본대사의 독도발언으로 한국정부는 대일강경대응의 움직임을 보여줬고, 양국간 관계에 있어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였다.
한일간의 역사문제는 본질적으로 일본인의, 일본의 지도자의 마음을 움직여야 비로소 해결될 사안이지 역사인식의 변경을 외압이란 강경대응으로 “뿌리를 뽑을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한편으로는 소수이지만 일본에 일정한 흐름을 갖고 있는 복고적, 폐쇄적 내셔널리즘 세력(교과서왜곡 세력)을 봉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이 갖고 있는 힘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우리의 21세기적 역량을 키워감으로써 장기적으로 일본이 우리를 아쉬워하고 원하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일이 될 것이다.
본문내용
1. 머릿말

해마다 3월은 한일간에 미묘한 긴장이 흐르는 시기이다. 3.1절 때문이다. 한일 우정의 해로 출발한 작년의 3월은 예외일 법했지만 오히려 긴장을 넘어 뜨거운 공방의 한 달이 되었다. 일본의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는 조례안을 상정하면서 촉발되어 주한일본대사의 독도발언을 거쳐 한국정부의 강한 반발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래 양국간 관계에 있어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였다. 3월 17일 NSC 상임위는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제2의 한반도 침탈행위,” “대한민국 해방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으로 규정하였고, 3월 23일 대통령은 대국민서신에서 일본과의 “각박한 외교전쟁”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전례 없는 강경대응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정상간 셔틀외교를 중단하였고 작년 가을 APEC에서는 형식적인 정상회담에서 가시 돋친 설전으로 일관하였으며, 한중일 삼국 정상회담도 무산되었다. 한국은 유엔상임위 개편문제를 놓고 명시적으로 일본에 반대하였고 대북정책조정에서도 이견을 연출하였다.

그러나 경색될 대로 경색된 한일관계는 정부간의 차원에서의 그것이었다. 민간차원에서 양자간 관계는 더없이 좋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경제적 상호의존은 한일FTA란 공식적 제도 없이도 날로 심화되고 있다. 항공편의 증편, 비자면제 등으로 이제 양국은 일일생활권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바탕위에서 한류(韓流)는 이제 시대적 흐름이다. 일본은 한류의 거대시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예컨대, 한국의 영화수출의 약 80%가 일본시장이며, 현재 한국이 제작하는 영화의 20%정도가 일본원작이고, 빠른 속도로 일본의 한국영화 자본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일관계의 관ㆍ민간 이중구조는 결코 이례적이지 않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한일관계는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국가 및 엘리트 수준에서의 긴밀한 협력관계와 민간 대중 수준에서의 반일감정이 이중적으로 전개되는 특징을 보여 왔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의 “한일 신 파트너쉽 선언”이후 한일관계는 비로소 경제협력을 넘어 정치, 사회, 문화 전 분야에서 개방과 교류가 진전되는 즉, 국가/엘리트 수준과 민간 수준의 교류가 중층적으로 전개되어 이중구조를 넘어서려는 흐름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지난 3월 이후 이중구조가 재현되었고 그 양상은 과거와는 반대의 즉, 민간 수준에서의 난류(暖流)와 정부 수준에서의 한류(寒流)가 공존하는 현실이었다.

“아직도 일본이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또다시 패권의 길로 나아갈지 모른다”는 올 3.1절 경축사의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정부는 대일 강경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과연 이대로 좋은 것인가? 양국간 이중구조는 지속될 수 있는가? 정치적 냉각에도 불구하고 경제, 문화차원에서의 교류는 지속, 심화될 것인가? 이 속에서 우리의 국익은 제대로 추구될 수 있는가? 우리는 지난 1년간 대일강경대응을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이고 잃은 것이 무엇인가를 냉정히 평가한 후, 이를 바탕으로 향후 대일 전략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리고 이 작업에는 동북아 국제정치가 전개되는 장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이해, 일본의 위상에 대한 미래지향적 평가, 우리의 국가이익 실현을 위한 일본의 전략적 중요성을 평가/재평가하는 일 들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2. 대일 강경대응의 득과 실

지난 일년간 대일강경대응과 관계악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 먼저, 영토 및 역사문제에 대한 정부의 접근법은 “인류보편적인 가치와 상식” 혹은 “인류 양심과 도리”란 맥락에서 풀어 갈 것이며 이를 “국제사회에 당당히 밝히고자 한다”는 것으로 이러한 언어전략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다시 말해서 한일관계를 양자간의 차원에서 푸는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견지에서 국제적 관심의 환기와 국제적 압력을 동원하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한국이 대외적으로 소프트파워를 갖고 있을 때 즉, 국제적 정보발신능력을 갖고 국제여론을 환기시킬 수 있을 때 유효한 전략이다.

역사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의 환기는 “역사/기억의 국제정치”로 전개될 수 있었다. 동북아지역의 안정/불안정 문제에는 국가간 세력분포나 상호의존의 정도를 넘어서 역사와 기억이란 요인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작년 3월 이래 미국과 일본, 여타 아시아국가들은 본격적으로 이를 인식하게 된다. 일본 내에서는 역사문제가 아시아외교의 원점임을 인식하면서 정책적 논쟁이 촉발되었고, 미국 역시 과거사문제로 인한 동북아 긴장상황(특히 중일갈등)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며 일본의 전향적 대응을 기대하는 마음을 일본에 전달하고 있다. 본래 미국은 지역의 안정자(stabilizer)로서 역사문제를 놓고 어느 한 쪽의 편을 들고자 하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의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대일압박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무대응과 중립을 유지해 왔으나 지난 1년간 상황의 악화, 특히 중일간 갈등이 역내 불안정 요인으로 부각되면서 중재자의 역할로 돌아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작년 가을 부시대통령의 동북아 순방 때 역사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한 점, 그리고 국무부의 로버트 졸릭, 마이클 그린 등이 역사문제의 해법에 고심하고 있음을 일본에 전달한 점 등이 그 예일 것이다.

끝으로 한일간 갈등의 와중에서 한국이 “독도 입도”를 확보한 것은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의 강화란 측면에서 적지 않은 수확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그다지 변하지 않고 있다. 고이즈미는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있으며 차기 총리주자로 꼽히는 아베 관방장관, 아소 외무상도 결코 덜 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시 말해서 향후 수년간 야스쿠니 문제의 전향적 해결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볼 수 있다. 일본 내부를 들여다보면 한국정부의 강력한 언어 표현을 수반한 일련의 강경대응은 “반일 내셔널리즘”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강경자세는 국익에 근거한 이성적 대응이라기보다는 반일정서(즉, 일본의 모든 것에 대한 반대)의 표출로 비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강경대응이 특히 중국과 연계되어 한ㆍ중 반일내셔널리즘이 일본을 포위, 압박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특기할 사안이다. 이로 인해 일본의 동아시아 지역구상의 중점이 한ㆍ중ㆍ일이란 동북아에서 아세안과 인도, 호주 등 남쪽으로 이전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반일”은 일본 내 우익세력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측면도 있다. 이시하라 신타로 같은 이들은 역내 경쟁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겨냥하면서 반일 캠페인이 공산당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국내적 불안정 요인과 국민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한 전략이며 한국 역시 국내정치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반일감정을 활용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주류정치가에게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년 NSC의 성명, 대통령의 대국민 서신에 대해 “국내용”이라 일축한 일본정부 일각의 반응은 이러한 정서를 반영한다.

일본이 한국의 압력을 정서의 과잉, 비이성적 행태로 평가하고 거리두기(distancing)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면한 북핵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구상 및 동북아 평화번영질서의 구축 등 한국정부가 추진해 오던 동북아전략에 부정적 효과를 미치는 것은 아닌가? 대일강경노선의 득과 실의 경중을 어떻게 달아 보고 향후 대응을 짜나갈 것인가?


3. 역사의 국제정치: 장의 속성

역사에 대한 판단 즉, 과거의 기억은 현재적 입장에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 조직화된 집단간, 국가간에 동일한 역사적 사실을 놓고 서로 다른 해석과 대립을 보이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며 그 우열성패를 가리는 방식은 지극히 정치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다만 이 정치적 경쟁에는 규범의 요소가 강하게 깔리게 된다. 고도의 지적노력에 의해 인류보편적 원칙에 근거한 역사의 판단이 찾아지고 전달될 수 있으며 이를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시킬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범은 역사의 국제정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국제정치는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며, 규범적 근거가 압도적인 보편성을 띠지 못할 때 -- 즉, 규범을 힘으로 전화하는 소프트파워가 충분히 따라주지 못할 때 -- 물리력의 배분상태(국가간 세력분포)는 여전히 실질적 의미를 갖게 된다. 강자의 현실론이 약자의 규범론을 누르고, 강자의 규범론이 약자의 규범론을 밀어내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역사인식을 둘러싼 동북아의 국제정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난 1년 이것이 특히 부각되었던 이유는 한국의 문제제기와 강공드라이브 때문이 아니라, 바로 부상하는 중국 때문이었다. 과거사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의 환기는 중국이 한국과 함께 일본압박에 나서면서부터이었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타겟으로 강력한 외교전을 벌인 중국의 덕분으로 “역사/기억의 국제정치”는 동북아 국제정치의 주요 의제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떠오르는 힘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규범론이 일정하게 먹히고 있는 것이 오늘의 지역적 현실이다.

중국의 대일역사외교는 전통적으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현재 중국과 한국이 주장하는 동북아 화해의 걸림들은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강행이다. 그런데 이를 잘 들여다보면 우리로서는 역사이슈의 전환을 감지할 수 있다. 본래 한국이 대일강경노선을 채택한 이유는 독도발언, 후소샤교과서 검정문제이었다. 정부는 독도문제를 영토문제가 아닌 역사문제(즉, 제국주의 침탈의 시발)로 규정하고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는 후소샤교과서 검정과 동일한 수준에서 일본을 압박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독도문제가 진정되고 후소샤교과서의 채택율이 0.5%에도 미달되면서 식민지 지배 미화라는 역사논쟁 역시 가라앉았던 반면 중일간 긴장관계의 원천인 야스쿠니신사문제가 역사공방의 중심으로 부상하였다. 대일전선(戰線)은 한국의 역사외압의 주 의제인 식민지지배를 둘러싼 망언과 교과서 왜곡으로부터 태평양전쟁 혹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책임을 묻는 이들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 참배라는 중국의 의제로 대체, 형성되어 온 것이다.(주1) 이제 한국은 중국의 의제를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흐름에 대한 미국의 반응 역시 시사적이다. 미국무부 부장관 로버트 졸릭은 작년 12월 역사문제로 인해 “일본의 중국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미ㆍ중ㆍ일 삼국 민간연구자로 구성되는 공동역사 검증”을 제안한 바 있는데 여기에는 유감스럽게도 한국이 빠져있다. 한국으로부터 촉발된 동북아 역사갈등이 미국에게는 일본과 중국간의 그것으로 비추어지고 있는 것이며 여기에는 지역 강대국으로서 중국의 무게가 담겨져 있다. 요컨대, 일본과 미국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물리적 힘을 가진 국가의 규범론이고 먼저 문제제기한 한국은 결과적으로 강국(중국)에 편승한 모양새가 되었다.

역사의 국제정치 역시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장임을 인식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독자적으로 일본의 변화를 가져올 만한 힘을 -- 외압을 효과적으로 행사할 능력(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을 -- 갖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면, 중국과의 연대가 일차적으로 상당한 압박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편승의 내용을 가질 때 즉, 중국을 좇는 모양새가 될 때 과연 우리의 국익 도모에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가? 한국은 중국과 함께 외교적 긴장을 계속 감수할 것인가?


4. 두가지 선택지

현재 정부에게 놓여있는 한일관계의 선택지는 연계전략과 이중전략일 것이다. 전자는 지난 1년간 해왔던 것처럼 역사문제 해결을 여타 사안에 우선하여 일본이 이를 풀지 않는 이상 여타사안과 연계하여 공식적 협조를 억제하는 전략이라면, 후자는 역사문제와 여타 문제를 분리하여 대응하자는 전략이다. 이 두 전략을 추진할 때의 시나리오를 예상해 보면 각각 다음과 같을 수 있다.

먼저, 연계전략을 지속하는 경우를 상정해 보면, 역사문제는 한국이 일본에게 상수(upper hand)로 대응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외교사안이다. 규범적 우위 때문이며 이는 중국과의 연대에 의한 힘의 증대로 뒷받침되어질 수 있다. 국내정치적 고려의 차원에서도 안정적 선택이 된다. 그러나 이 경우 대일 외교경색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첫째로 현 고이즈미정권은 물론 차기총리로 유력한 아베신조 역시 야스쿠니 문제에 전향적으로 나올 전망은 밝지 않으며, 둘째 중국이 유연한 자세로 전환할 가능성 역시 낮고, 끝으로 미국의 적극적 중재자 역할을 기대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으로서는 외교경색의 장기화에 따른 부담을 계산해 보아야 한다.

이 부담은 21세기 한국의 국익추구에 주는 부담으로 파악되어야 할 것인데, 우리의 국가목표가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의 지속적 발전, 북한의 평화적 개혁개방, 남북한 평화체제 구축, 동북아 평화번영질서 구축 등으로 요약된다면 일본의 전략적 활용가치는 상당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한반도평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개혁개방이 진전되어야 하며 이런 점에서 2002년 9.17, 북일 평양선언에 합의된 바와 같은 양국 국교정상화 이후 무상자금 협력, 저리장기차관 제공 등의 경협 약속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런 점에서 북일간 합의사항이 북한의 평화적 개혁개방에 기여하도록 북일간 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외교안보전략의 한축이 되어야 하며 여기에는 일본과의 긴밀한 공조가 필수적이다.
나아가 동북아 평화번영질서 구축을 위해서 한국이 원하는 균형자, 신뢰구축의 촉진자, 통합의 촉매자, 어느 역할이든 이를 전략적으로 추진하려 한다면 주변국과의 우호관계 구축은 기본이다. 한일관계의 경색 속에서 중-일간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없고 한-중-일 통합의 촉매 역할을 할 수는 없다.

관계경색에 다른 외교적 부담을 더 크게 고려할 때 취할 수 있는 옵션은 이중전략 혹은 분리전략이다. 역사문제는 그대로 끈질기게 문제제기를 하고 대응해 나가되 외교적 경색상황을 푸는 방안이다. 이 경우 한국이 대승적 자세로 문제를 푼다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지만 역으로 일본에 굴복한다는 즉, 일본의 무시/거리두기전략에 굴복하는 것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이는 국내정치적 부담으로 연결될 수 있으며 밖으로는 중국과의 관계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중국은 역사문제에 있어서 한국과의 연대를 활용해 왔으며 특히 최근 “공동압박”을 언급하며 한국과의 공조를 강조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한국의 이탈을 우려하는 분위기 즉, 한국이 역사압박전선에서 이탈하게 되면 중국의 대일압박이 역사문제의 해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역내 패권경쟁의 차원에서 일본고립을 추구하는 행동으로 비추어질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깔려있다고 보겠다. 이런 속에서 한국이 유화로 나왔을 경우 중국으로부터 오는 외교적 부담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외교구상과 전략을 고려할 때 한일관계의 경색을 푸는 일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다. 압박과 버티기, 거리두기로 가기에는 일본이 한국을 원하는 것보다 한국이 일본을 원하는 정도가 크기 때문이다. 가령, 중장기적 전망에서 향후 15-20년의 동북아 전략지도를 그려보고 그 속에서 일본의 전략적 의미를 따져보고자 할 때, 그 예상지도는 (1) 미국 패권(hegemony), (2) 미ㆍ중 신냉전, (3) 미ㆍ중 이중패권(bigemony), (4) 지역통합이란 네 가지 경우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네 가지 경우의 수 중 어느 경우에도 일본과의 우호관계는 상수로 잡힌다.

구체적으로 미국패권이 지속되는 경우, 그 역내 중심축은 미일동맹이 될 것이며 따라서 ‘한-미-일’ 삼각구도가 지역구도의 중심이 될 것이다. 둘째,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봉쇄(containment)에 따른 신냉전 상황에 돌입할 경우이다. 양 진영 사이에서 중립의 균형자가 되지 못하는 한 한국은 양자택일이란 최악의 상황에 봉착할 것이며, 그럴 경우 미-일의 축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미국과 중국이 상호 관여(engaging)에 의해 역내 패권적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경우(bigemony), 중일관계는 일정하게 향상될 것이며 미국의 일정한 관여 하에 지역통합의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즉, ‘한-중-일’ 협력의 길이 되는 것이다. 끝으로 지역통합의 선택지는 ‘한-중-일’의 협력이 기반한 속에서 성립되는 것이다.

이상의 네 가지 경우의 수에서 한국에 주어지는 지역구도는 ‘한-미-일’과 ‘한-중-일’이 될 것이고 어느 쪽이든 긴밀한 한일관계를 요구한다. 또한 한국이 두 지역을 중층적으로 활용하려 할 경우 역시 한일관계는 상수로 작용한다. 요컨대, 한국이 미래전략을 구상하는 속에서 일본의 전략적 위상은 이러한 만큼 대일관계는 보다 긴밀한 결합(binding)의 방향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5. 어떻게 풀 것인가?

이중전략과 분리대응으로 가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라면, 한국은 한편으로 교과서왜곡 및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거부의사를 분명히 전달하는 대일 역사외압(外壓)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역사외압이 반일정서의 표출로 비추어져 일본 내 대중적 반발을 사거나 우익의 입지를 강화시키지 않도록 세련된 방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대일강경자세는 반일정서의 표출이 아닌 국익차원의 결정임을 분명히 보여야 한다. 예컨대, 한국은 동북아 질서 및 한반도 평화구축노력에 있어서 일본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평가하며 이런 점에서 일본이 역내 리더쉽을 행사하려면 역사문제 해결이 필수적임을 강조할 수 있다.(주2)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는 정부간 수준을 넘어 보다 세련된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를 통해 전달되어야 한다.

둘째, 역사문제에 관한 다자간 대화 및 연구채널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역사문제가 한일간 현안만이 아닌 동북아 공동의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속에서 미국 측이 2005년 12월 제안한 “미ㆍ중ㆍ일 삼국 민간연구자로 구성되는 공동역사 검증”방안을 발전시켜, 한국을 포함한 “한ㆍ미ㆍ중ㆍ일 4개국 역사 공동연구”를 제안하여 미국의 참여를 확보하고 이를 일본이 받게 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주3) 일단 공동연구계획이 가시화되면 정부로서는 대일강경노선의 완화에 적절한 명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한일FTA의 재가동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일FTA 협상은 2004년 11월 이후 중단되어왔고 현재 양국의 통상당국에게 한일FTA는 전체 FTA추진 우선순위에서 밀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FTA는 일본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사안이다. 일본은 1990년대 말 통상정책의 핵심으로 FTA정책을 설정하면서 한국과의 FTA를 전략적 1순위에 놓고 정력적으로 추진해 온 바 있다. 일본에게 한국은 동아시아 유일한 OECD국가로서 고수준의 FTA 대상이 되며 지정학적 조건(아시아대륙의 교두보)이 갖는 전략적 의미 역시 큰 이상적인 파트너이므로 협상재개는 일본측에 한국이 결단을 내리는 일종의 선물로 비춰질 수 있다.

한일FTA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일단 협상 재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를 통해 여타사안에서 일본 측의 협조를 이끌어 낼 여지가 크다고 본다.(주4) 예컨대, 북일수교교섭에서 일본의 적극성을 이끌어내는 수단, 역사문제 관련하여 일정한 양보(야스쿠니 분사안 등)를 얻어내는 수단, UN외교에서 지지를 얻는 수단 등으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현재 한중FTA에 미온적인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볼 때 한국이 한일FTA 협상을 재개해 적극적으로 임한다면 중국 역시 한중FTA에 적극성을 띨 것으로 전망해 볼 수 있다. 한미FTA와 한일FTA 진전의 분위기 하에서 중국과의 FTA 협상이 가동된다면 한국은 역내FTA경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일간의 역사문제는 본질적으로 일본인의, 일본의 지도자의 마음을 움직여야 비로소 해결될 사안이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바꾸는 일 즉, 역사인식의 변경은 가치관과 국가진로에 대한 본원적 고민이 수반되는 심각한 과제이며 따라서 외압이란 강경대응으로 “뿌리를 뽑을 일”은 아니다. 정확히 1년 전 본 연구원의 “이슈와 대안”에서 지적하였던 것처럼 역사의 국제정치란 장에서 우리가 행사해야 할 힘은 물리적 압박이 아닌, 상대방의 마음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능력 즉, 소프트파워이다. 그리고 이 힘은 장기적으로 키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문제의 해법은 지극히 교과서적일 수 밖에 없다. 일차적으로는 일본 스스로 마음을 바꾸기를 기대하는 것이나 이것이 난망할 때, 우리의 대응은 한편으로는 소수이지만 일본에 일정한 흐름을 갖고 있는 복고적, 폐쇄적 내셔널리즘 세력(교과서왜곡 세력)을 봉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이 갖고 있는 힘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우리의 21세기적 역량을 키워감으로써 장기적으로 일본이 우리를 아쉬워하고 원하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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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사실, 야스쿠니 신사에 총리, 관방장관, 외무상의 참배는 불가하다는 중국측의 오랜 압력은 야스쿠니에 합사(合祀)된 전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동경재판에서 처단된 A급 전범은 다수 역사가들이 비판하듯이 미국의 시각에서 규정된 전쟁관에 입각해 가려진 즉, 대미개전(對美開戰)을 주도한 정치가와 군인들이었을 뿐, 1941년(진주만) 혹은 1937년(중일전쟁) 이전의 식민지 지배의 만행을 주도한 이들이 제외된 제한된 의미의 전범이었다. 이렇게 볼 때 야스쿠니는 한국의 일차적 관심(식민지 통치와 관련된 왜곡과 망언)의 대상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한국의 불만은 더 많은 A급전범(식민통치 만행 주도자)이 야스쿠니에 합사되었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2) 여기서, 한국이 일본의 리더쉽을 거론하는 것은 현재 일본의 전체적 변화가 복고적ㆍ과거지향적 내셔널리즘으로의 회귀 혹은 군국주의로의 회귀가 아닌 보통국가화로의 변화라고 전향적으로 판단하는 것임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일본의 우경화와 보통국가화에 대해서는 별도의 칼럼을 준비하고 있음).

(주3) 작년 12월 로버트 졸릭의 “미ㆍ중ㆍ일 삼국 민간연구자로 구성되는 공동역사 검증” 제안에 대해 중국측은 “동아시아 역사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한ㆍ중ㆍ일 삼국이 공동으로 고려할 사안”이라며 이를 사실상 거부하였다. 그러나 한ㆍ중ㆍ일 공동연구안의 경우 한ㆍ중이 (반일)공동보조를 취할 것이라 전망하는 일본이 난색을 표할 가능성이 높으며 또 실효성 있는 연구(즉, 일본에 대한 실효)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미ㆍ중ㆍ일 공동연구안은 미ㆍ일이 공동보조를 취할 것이란 중국의 의구심으로 성사가 어렵다고 보면 “한ㆍ중ㆍ일ㆍ미 4개국 공동연구”가 오히려 실현가능성이 있는 제안일 수 있다.

(주4) 사실, 한국으로서는 한일FTA가 갖는 파급력(경제적, 정치적 무게)으로 인해 지난 협상 자체가 상당한 부담이었음을 상기해 보면 협상재개와 함께 궁극적으로는 저수준의 FTA를 추구하여 경제적 효과보다는 전략적 효과(경제동맹 효과)를 기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