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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공동체, 기본소득

소한마리-화절령- 2010. 2. 25. 21:17

지구, 공동체, 기본소득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 ④
김성일 기자  메일보내기

△ 서강대 다산관에서 열린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
ⓒ 프로메테우스 양희석


1월 27일부터 29일까지 서강대 다산관에서 열린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에서는, 철학, 경제, 사회복지 등 기본소득의 수많은 측면이 논의되었다. 이날 오간 이야기 중에는 “기본소득”이라는 기본적인 제안 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이들을 더 난감하게 만드는 제안이 있었는데, “지구적 기본소득”이라는 제안이다. 지구적 기본소득은 좁은 의미에서 일국적 기본소득의 확장, 지구사회에서의 연대적 기본소득을 의미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지구사회를 근거로 한 초국가적 기본소득을 의미한다. 지구적 기본소득 논의는 국제사회주의 경향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로날드 도어는 “트로츠키가 한 국가만의 사회주의를 상상할 수 없었듯이 나는 한 국가만의 기본소득을 상상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지구화 시대 새로운 재분배의 가능성

 

△ 28일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중인 판 빠레이스
ⓒ 프로메테우스 양희석
지구적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주로 판 빠레이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데, 이번 학술대회에서 그가 발표한 내용 역시 지구적 기본소득에 대한 것이 주가 되었다. 판 빠레이스는 “기본소득, 지구화와 이주”라는 발표문을 통해 “기본소득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지구화의 두가지 양상을 들었다.

첫째로 그는 지구화가 자본의 자유로운 초국가적 이동을 의미한다고 볼 때 지구화 경제 안에서 이익발생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과세가 어려워지며, 인적자본의 이동에 따라 높은 임금에 대한 재분배 역시 어려워진다고 주장했다.

기존에 제기되었던 기본소득에 대한 여러 가지 반론 중 하나가 (기본소득의 도입에 따른 수세적인)자본 도피 등으로 인한 지속불가능성 문제인데, 판 빠레이스의 경우 일시적 자본도피가 아닌 이미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시적인 초국가적 이동성을 지적한 셈이다.

둘째로 든 위협은 현시대의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한 경향으로, 이주 사회에서 나타나는 종족적 이질성이 가져오는 정치적 지점이다. 판 빠레이스는 종족적 이질성이 이전까지의 급여 체제(기여형 사회복지에 따른 고정적이지 않은 급여)에서 자신을 순기여자로 인식한 이들이, 새로운 체제의 실수혜자와 어느만큼의 동질감을 느끼가에 따라 정치적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이들(순기여자로 스스로를 인식한 이들, 특정적으로는 해당사회에서 기존 민족국가의 전통적 성원으로 분류되었던 부류가 여기에 속한다.)이 특정한 종족집단들에 대해 “비례적인 것 이상으로 더 많은 이득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될 경우, 이들에게서 위협적인 분노가 발생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분노의 양상은 빠레이스의 예견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데, 보편적 분배가 아닌 ‘노동소득’에 대해서조차 이주노동자에 대한 분노와 혐오가 대중적으로(인정하기 싫건 좋건) 광범위하게 발생해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판 빠레이스는 이러한 위협들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로, “만약 지구화된 시장으로 인해 국가가 재분배 기능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다면, 재분배를 지구화하는 선택이 있다”면서, “지구화된 재분배의 모습이 복잡하고 미묘하게 조직된 복지국가의 형태를 취한다고는 예상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지구적 공유재와 기본소득

 

△ 곽노완 시립대 교수
ⓒ 프로메테우스 양희석
지구적 기본소득이 논의되는 배경에는 ‘기본소득’을 공유재로 보는 관점도 존재한다. 곽노완 교수의 언급에 따르면 지구/국민국가/지방은 겹쳐진 공유공간이며, 기본소득을 화폐로 한정하지 않고 공동이 향유하는 모든 것으로 간주할 때(빠레이스, 곽노완 등은 깨끗한 공기, 물 등까지 기본소득으로 포함하는 입장을 가진다.) 일국차원에서 관리되지 않는 지구적 공유재에 대한 일국적 기본소득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곽노완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기본소득이 지구적 공간범위로 확장될수록 그 필요에 따라 현물보다는 현금의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위한 생태재의 경우는 현금이라는 우회경로를 거치는 것이 오히려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생산활동과 소비활동의 역사를 통해 파괴된 생태계가 사회경제적으로 재생산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금소득으로 우회하지 않은 생태재를 필수적인 공유재로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노완 교수는 발표문을 통해 지구/국민국가/지방공동체 차원의 기본소득 형태에 대한 대략적인 기준을 제시했는데, 이중 지구공동체의 재원기준으로 제시된 것은 통화주조차익/탄소세/(영어 등 지배언어에 대한)언어차익세/전쟁도발배상금 등이다. 이중 탄소세에 대한 논의는 지구적 기본소득 논의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이야기되는 논의이기도 한데, 이날 판 빠레이스 역시 탄소세에 대해 언급했다. 판 빠레이스에 따르면 탄소를 흡수하는 대기는 “모든 인간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천연자원”이므로, 이를 이용할 평등한 권리를 가진 모든 인류에게 그로 인한 수입이 분배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탄소의 배출 자체에 한계점(대기를 기본소득으로 보는 입장에 따라)이 필요하며, 또 한정된 탄소배출권의 경매를 통해 얻은 막대한 수입은 현금 기본소득으로 분배되어야 한다.

지구적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실체적인 공유공간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상에 대한 공감이 실체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지구적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걸음마 단계에도 진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생태주의적 입장에서의 기본소득 연구와, 이주, 지구화 시대 분배의 재구성, 더 나아가 지구적 평등에 대한 추구를 “버리지 않는다면”, 더 깊고 광범위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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