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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배제한 ‘진짜 마르크스·엥겔스’ 복원”

소한마리-화절령- 2010. 6. 30. 22:56

“정치 배제한 ‘진짜 마르크스·엥겔스’ 복원”

한겨레 | 입력 2010.06.30 19:10

 




[한겨레] 롤프 헤커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과학아카데미 교수

카를 마르크스와 같이 인류사에 큰 영향을 끼친 대사상가일수록 그 사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먼저 1차자료를 철저히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마르크스의 저작을 '금서'로 취급하고 억압했던 우리 사회에서는 애초에 그러한 시도가 이뤄지기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집대성하려는 국제적인 편찬 작업이 국내에 소개됐다. 지난 2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국내 대표적인 마르크스 연구자 가운에 한 사람이자 마르크스의 주저 < 자본 > 번역자인 강신준(아래 사진 왼쪽) 동아대 교수(경제학)가 롤프 헤커(사진) 독일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과학아카데미 교수를 만나 대담을 나눴다. 헤커 교수는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 , 이하 '메가') 편찬에 간여하고 있는 학자로, 메가를 소개하기 위해 방한했다.

기존 저작집엔 소련과 동독 입김
사상의 궤적 등 풍부한 주해 담아
마르크스 재해석에 시사점 제공


강신준(이하 강)

한국은 분단이라는 정치적 상황의 영향 등으로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에서 아직 초보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메가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

롤프 헤커(이하 헤커)

메가 편찬은 1911년 처음 발의된 뒤 오늘까지 한 세기를 이어오고 있는 작업이다. 다른 마르크스·엥겔스의 전집이나 단행본과 다르게, 메가는 그들이 남긴 모든 지적 유산을 남김 없이 출판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들이 남긴 완성된 원고와 완성과정에서 여러 차례 수정을 한 원고, 단상 형태로만 남아 있는 극히 초보적인 원고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3자와 주고받은 편지, 독서과정에서 남긴 발췌노트 등도 포함된다. 또 이들 문헌들을 어떻게 편집했는지를 밝힌 주해서를 함께 출판해, 마르크스·엥겔스의 사상을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작업이다. 전집을 복원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소련의 스탈린주의, 동유럽 붕괴 등 여러 가지 역사적인 굴절을 겪으며 이젠 한 세기를 넘기는 작업이 됐다.



메가는 어떤 점에서 기존 전집들과 다른가? 또 많은 학자들이 메가에 이토록 오랜 시간을 들이는 이유는 뭔가?

헤커

기존의 전집과 저작집들은 대부분 1957년에서 1968년 사이 소련과 동독이 중심이 되어 발간한 전집(MEW)을 기초로 한다. 그러나 이 전집은 마르크스·엥겔스의 문헌적 자료를 모두 발간하는 것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발간하는 것이었고, 이런 선별 과정에는 정치적인 고려가 크게 작용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마르크스의 중요한 초기 저작인 < 경제학 철학 초고 > (1844년)를 당시 소련과 동독의 정치적 입장과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뺀 것이다. 또 원본의 설명을 보충하는 주석도 적고 부실해 문헌 해석 자체가 불완전했다. 메가는 '역사적-비판적' 연구로서 마르크스·엥겔스 사상의 흐름을 가감 없이 집대성하기 때문에, 이들의 지적 유산이 정치이념의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을 차단하고 사상의 온전한 전모를 밝힐 수 있다.



그렇다면 메가 작업을 통해 마르크스·엥겔스 사상의 새로운 면모도 밝혀질 수 있는가?

헤커

그동안 문헌 연구가 없어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둘러싼 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메가에 의한 문헌 연구가 이뤄지면 모든 글과 글의 정확한 저자, 글 사이의 관계 등이 더욱 정확하게 확인된다. 특히 독서를 하며 쓴 발췌노트 등은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켜나간 궤적을 보여준다. 마르크스·엥겔스의 지적 유산을 더욱 풍부하고 정확히 계승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사례를 하나 들자면, 최근 발견된 발췌노트에서는 마르크스가 지질학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층의 형성에 특히 관심을 보였는데, 이는 지질의 형성과 사회의 형성 사이에 어떤 연관성을 찾으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암시를 준다.



메가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며 어느 정도 성과를 냈는가?

헤커

연구의 중심은 독일 베를린에 있지만, 네덜란드·프랑스·러시아·미국 등이 참여해 국제적인 협업이 이뤄지고 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일본은 랴자노프가 메가를 구상할 때부터 이미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고, 그동안 상당한 연구 인력을 갖춰 국제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또 지금까지 발간된 메가 출판분 가운데 이미 800질을 구매하는 등 가장 큰 시장이기도 하고 메가 작업에 재정적 지원도 한다. 현재 메가는 전체 목표 114권(전체 4부) 가운데 58권을 출판한 상태다. 한 해 2~3권 정도 출판하는 속도다.



2008년 경제위기 뒤로 마르크스의 르네상스가 도래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헤커

경제위기 뒤 전세계적으로 < 자본 > 에 대한 번역 출판이 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리투아니아·타이·이란·중국·일본·러시아 등에서 메가를 원전으로 한 마르크스의 번역서들이 나왔다. 독일에서는 최근 결성된 좌파당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재해석을 당 강령에 반영하려는 논의를 진행중이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기존에 마르크스와 결별했던 사민당의 지지율이 좌파당으로 이동한 결과는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 본다. 메가 작업 자체는 순수 학술적인 차원의 '복원' 작업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정치 지형의 변화와 큰 영향을 주고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메가를 활용한 출판·번역이 활발해지면 앞으로 마르크스의 재해석에 대해 많은 논의 주제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한국 학자들에게도 메가 작업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정리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메가 작업이란?

온전한 텍스트 찾기 1세기 걸친 국제협업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남긴 각종 문서 등 지적 유산은 독일 사민당-아키브 또는 마르크스의 가족 등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이에 대한 문헌학적 정리를 처음 시도한 사람은 랴자노프였다. 그는 레닌의 도움으로 192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를 설립하고 자료 수집 및 메가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레닌 사후 스탈린에게 숙청을 당하며 당시 메가 작업은 11권 출간에 그쳤다.

2차대전 종결 뒤 소련과 동독 정권은 모스크바와 베를린에 각각 있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IML)를 통해 마르크스·엥겔스를 좀더 대중적으로 읽히게 하기 위한 일종의 선별 저작집인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MEW)을 냈고, 메가 작업도 다시 추진했다. 1975년부터 1992년까지 40여권을 출간했으나, 베를린 장벽과 동유럽이 붕괴하며 작업은 또다시 중단됐다.

그 뒤 서유럽 학계가 나섰다. 마르크스·엥겔스의 유고를 보유하고 있던 네덜란드의 국제사회사연구소(IISG)와 독일 사민당-아키브를 물려받은 서독 에베르트재단 소속 카를 마르크스 하우스는 동독 및 옛소련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와 함께 새로운 메가 작업을 시작하기로 하고, 1990년 지금 메가 작업을 책임지고 있는 국제마르크스엥겔스재단(IMES)을 설립했다.

새로운 메가 작업의 모토는 국제화·학술화였다. 현실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학술적인 목표를 가장 중시하고, 다른 나라 연구팀들과의 협업을 통해 국제적인 외연을 넓힌 것이다. 필요한 재원은 독일 연방정부와 메가 작업팀이 있는 지방정부·국가로부터 조달했다. 전체 114권 123책으로 계획되어 있으며, 1부에는 저작·논설·초안 등, 2부에는 < 자본 > 과 그 준비 노작, 3부에는 왕복서간, 4부에는 발췌·메모·난외방주 등이 실린다.

이번엔 롤프 헤커를 비롯해, 베아트릭스 부비에 독일 '카를 마르크스 하우스' 교수, 오무라 이즈미 일본 도호쿠대 교수 등 3명의 메가 전문가가 방한했다. 30일 중앙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열린 '메가 작업의 새로운 접근과 마르크스의 재해석' 학술회의에 참가하는 등 마르크스 문헌학의 토대가 없는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메가 작업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국내에서 마르크스 문헌학에 깊은 관심을 보여 온 정문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우리는 제대로 된 텍스트 없이 마르크스를 공부해왔다"며 "메가 작업이 우리나라 학자들의 연구생활에 큰 변화를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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