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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5만원 올린 ‘참 저렴한’ 로비

소한마리-화절령- 2010. 11. 11. 22:52

월급 5만원 올린 ‘참 저렴한’ 로비

국민일보 | 입력 2010.11.11 17:44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전라

 




"저희는 청원경찰이 아닙니다."

9일 낮 12시50분, 서울시내 한 정부기관 출입구 데스크에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의 요원 2명이 앉아 있었다. "오후 1시에 교대하는 사람들이 청원경찰"이라고 했다. 10분이 지나자 점퍼 차림의 두 명이 사무실에서 나왔다. "저들은 방호원이고, 우리가 청원경찰"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선 청원경찰과 방호원이 함께 출입구 데스크를 지키며 1시간~1시간30분마다 근무 교대가 이뤄진다. 방호원 2명이 근무를 서다 청원경찰 2명이 다시 같은 일을 하는 식이다. 같은 업무를 하는데 이름이 왜 다른걸까. '청원경찰들이 로비스트가 된 이유'는 이 질문의 답에 숨어 있었다.

어정쩡한 청원경찰

청원경찰은 '청원(請願)' 경찰이다. 국가기관과 공공단체, 그리고 은행 언론사 학교 병원 등 행정안전부가 중요하다고 지정한 민간시설은 경비 병력이 필요할 때 지방경찰청장에게 "비용은 우리가 부담할 테니 경찰을 배치해 달라"고 청원할 수 있다. 그래서 지방경찰청장이 승인하면 허락된 수만큼 해당 기관이 직접 경찰을 채용한다. 이 사람들이 청원경찰이다.

이런 기관이 청원경찰을 두는 이유는 일반 경비원보다 권한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해진 경비구역 안에서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일한다. 그 구역에선 경찰인 셈이다. 채용되면 경찰교육기관에서 2주간 사격·체포술·불심검문 요령과 형사법·경찰관직무집행법을 배우고, 관할 경찰서장에게 무기를 대여 받아 휴대할 수 있다.

관할 경찰서장은 청원경찰에 대한 포괄적 감독권을 갖는다. 서울의 한 지방검찰청 청원경찰 조모(40)씨는 "예전엔 관할 경찰서에서 청원경찰들 트집 잡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최근엔 거의 없어졌다. 더군다나 우리는 검찰청에 있어서 간섭이 덜하다"고 했다.

청원경찰 관련 규정을 보면 왠지 공무원 같다. 채용 단계부터 국가공무원법의 결격 사유를 따져 뽑는다. 업무와 관련해 처벌받거나 손해배상 책임이 생기면 공무원으로 간주해 절차를 밟는다. 복무에 관해선 국가공무원법과 경찰공무원법을 따르며 업무의 공공성을 이유로 집단행위 등 노동 3권도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의 신분은 근무기관 책임자와 고용계약을 맺은 민간인일 뿐이다. 청원경찰법 시행령 18조는 "벌칙을 적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들을) 공무원으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3월 "청원경찰은 일정 부분 공무원과 유사한 대우를 받는 등 복합적 성질을 갖고 있지만, 임면 주체는 국가가 아닌 청원주(해당 기관)"라며 사적 계약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조씨와 같은 검찰청에서 근무하는 16년차 청원경찰 권모(44)씨는 "공무원연금도 내고 각종 수당도 공무원과 똑같이 나온다. 하지만 공무원 신분이 아니어서 손해 보는 게 많다"고 했다.

청원경찰 신분이 이렇게 어정쩡한 건 1973년 법이 바뀌면서다. 62년 청원경찰 제도가 생길 때 이들은 공무원이었다. 경제 개발이 막 시작되면서 전국 각지에 중요 시설이 건설됐지만 경찰이 부족해 경찰관 직무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다 73년 국가기관뿐 아니라 민간시설에도 경비 수요가 늘었다는 이유로 일반 기업도 청원경찰을 둘 수 있게 법이 바뀌었다. "민간시설을 경비하는데 어떻게 공무원이냐"며 이들에게 주어졌던 공무원 신분이 사라졌다.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회원인 한 청원경찰은 "예전 선배들은 최소 6급 팀장까지 승진이 가능한 공무원 신분이었는데 73년 법이 바뀌면서 국가공무원 신분이 박탈됐다. 직급도 '순경'으로 통일돼 매년 호봉만 올라간다. 올해 청원경찰법이 바뀌기 전까진 30년 일해도 우린 순경이었다"고 했다.

우리의 소원은 '공무원 신분'

'이렇게 의원 섭외가 흐지부지된다면 우리의 소원인 신분 보장은 물 건너가지 않을까요?'(2009년 5월 10일, 청목회장이 청목회 인터넷 카페에 올린 글)

비슷한 업무를 하는 방호원과 비교하면 이들이 신분 보장을 '우리의 소원'이라 외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른 결격 사유가 없는 자, 서류 전형과 면접시험 거쳐 선발, 무술 유단자, 워드프로세서 2급 이상 소지자'(2005년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기능직공무원 방호 특별채용 공고)

'국가공무원법에 따른 결격 사유가 없는 자, 체력검사, 서류 전형과 면접시험 거쳐 선발, 무술 유단자·관련 학과 전공자 우대'(2009년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청원경찰 채용 공고)

똑같은 직종 종사자를 뽑는 것처럼 보일 만큼 방호원과 청원경찰의 채용 절차는 비슷하다. 방호원은 국가기관 및 주요 시설 출입 통제가 주 업무로, 청원경찰 업무와 거의 같다. 하지만 기능직 공무원인 방호원은 10급부터 시작해 7급까지 승진할 수 있어서 민간인 신분인 청원경찰보다 훨씬 많은 퇴직금을 받게 된다.

청목회 관계자는 "같은 기관에서 청원경찰과 방호원이 26년 일할 경우 퇴직금이 1000만원 이상 차이 난다. 재직 기간이 31년을 넘으면 방호원은 직급 승진에 따라 31호봉 이상 올라가지만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청원경찰은 순경 31호봉이 마지막이다. 이 때문에 근무 기간 31년이 넘을 경우 퇴직금 차이는 더 커진다"고 말했다.

또 청원경찰은 국가기관·지자체에 근무하는 청원경찰과 공기업 및 민간기업의 청원경찰로 나뉜다. 청목회는 국가기관·지자체 청원경찰들의 조직이다. 국가기관·지자체 청원경찰은 민간기업 청원경찰에게도 박탈감을 느낀다.

민간기업 청원경찰은 노사 합의에 따라 정규직 신분을 갖고 직급체계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청목회원들은 공무원과 비슷하긴 한데 정규직이 아니고 환경미화원, 도로보수원과 같은 비정규직 상근 인력으로 분류돼 있다.

봉급 수준도 민간기업 청원경찰들이 높은 경우가 많다. 청목회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청원경찰들이 경력을 쌓은 뒤 민간기업 청원경찰로 옮겨갈 정도다. 우리와 민간기업 청원경찰을 구분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전체 청원경찰에 대해 공무원 신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해 왔다.

법무법인 청담의 주두수 변호사는 "제도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국가가 담당해야 할 부분을 맡기고 있는데 신분은 민간 계약직처럼 돼 있다. 차라리 민간으로 풀어주면 단체행동권을 활용해 임금 교섭이라도 할 수 있다. 그것도 못 하게 해놓고 공무원 신분도 주지 않는 건 이중 규제다."

"실패한 로비"

어정쩡한 신분을 바꿔보려는 이들의 노력은 오래됐다. 시작이 언제였는지는 뚜렷하지 않다. 청목회원들은 하나같이 "지역 친목단체일 뿐이다. 함께 등산하고 만나서 고충도 털어놓는 모임일 뿐이다. 전국적으로 세를 규합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국 단위의 모양새를 갖춘 건 2003년쯤으로 추정된다. 회칙도 2003년 5월 처음 만들어졌다. 법안 개정을 위한 첫 단체행동은 2004년. 그해 12월 당시 이원옥 청목회 전국회장은 청원경찰 4510명의 이름으로 '청원경찰의 공무원 신분 보장에 관한 청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도와준 의원은 민주당 강창일 의원이었다.

청원의 주 내용은 '국가기관·지자체 청원경찰은 공무원으로 본다'는 내용을 추가해 달라는 것이었다. 강 의원은 2005년 3월 이런 내용을 담은 청원경찰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공무원 신분을 보장받는 데는 실패했다. 휴직 및 명예퇴직 조항을 삽입한 게 유일한 성과였다.

계속된 실패로 낙담해 있던 이들은 2006년 12월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전국 회원들의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해 정년 연장과 직급 승진제가 포함된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들이 과연 치밀한 계획에 따라 움직였는지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카페에 관련 글을 남겨둔 게 의아하다. 죄가 되는지 알았다면 은밀히 움직였을 텐데, 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이들이 카페에 남긴 글은 결정적 증거로 남아 이들을 옥죄고 있다. 구체적 활동 상황은 인터넷 카페가 없었다면 검찰이 입증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한 청목회원은 "우리가 돈으로 뭘 하려 했다면 조용히 했지 카페에 증거 남겨가면서 했겠느냐. 16대, 17대 국회 때도 다 한 일인데 왜 이번만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로비를 위해 전국적으로 걷었다는 '특별회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특별회비 얘기가 계속 나오는데 처음 듣는 얘기예요. 우리 지역 청목회는 2008∼2009년 법안 개정 시기에 회비를 내지 않았어요. 월 회비로 1000원, 2000원씩 냈고 2006년에 특별회비 명목으로 2만원 낸 게 전부예요. '청목회' 명의 통장도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청주 지역 청원경찰)

"특별회비란 말은 못 들어봤어요. 청목회 카페에 가입해 글을 보려면 정회원이 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한 달에 1000원을 내야 했거든요. 그게 전부였어요."(서울 지역 모 관공서 청원경찰)

그마저도 성공한 로비인지, 청원경찰들 사이에선 의견이 갈렸다. 가장 중요한 '공무원 신분 보장'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법 개정으로 달라진 거 전혀 없어요. 15년차가 되면 경장 직급으로 바뀌니까 더 받게 될 거라고는 하는데 먼 나라 얘기죠."(4년차 서울지역 청원경찰)

"혜택을 본 것처럼 떠들썩한데 월급 5만원 오른 게 전부예요. 명예를 생각해서 직급을 순경에서 경장으로 올려준 거죠. 우리가 진짜 원한 건(공무원 신분) 안 됐어요."(서울의 한 지방검찰청 청원경찰)

얘기를 종합해보면 이렇다. 청목회원들, 그러니까 국가기관·지자체 청원경찰들은 방호원과 민간기업 청원경찰 사이에서 어정쩡한 신분이었다. 그들의 소원은 공무원 신분을 보장받는 거였다. 2004년부터 법을 바꿔 달라고 국회 문을 두드렸는데 잘 안 돼서 로비를 해보려 했다. 그 로비의 결과인지 법이 바뀌어 월급은 몇 만원 올랐는데 정작 '우리의 소원'이던 신분 보장은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로비 수법이 어설퍼 온갖 증거를 다 남겼고, 검찰은 이를 이용해 국회의원 11명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일선 청원경찰들은 지금 돌아가는 일이 어리둥절하다는 투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