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풍경

문재인 "안철수는 동지적 관계"....설인사 풍경

소한마리-화절령- 2012. 1. 23. 22:31

 

문재인 "안철수는 동지적 관계"…설인사 풍경
뉴시스|
 
【부산=뉴시스】손대선 기자 = 22일 오전 10시께 부산 사상구 괘법동의 한 빌딩 6층에 마련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4·11 총선캠프. 문 이사장의 성에서 첫음절을 따온 '문이열린캠프'가 이 캠프의 이름이다.

20여평 남짓한 캠프의 세간은 단출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이 칠해진 탁자 10여개가 중심에 놓인 공간은 설핏 작은 교실 같았다.

◇'청와대 비서실장' 그리고 '특전사 폭파 최우수 대원'

얇은 유리로 하나로 나눠진 회의실 벽면에는 지지자들이 문 이사장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노란색 메모지 100여 장이 붙어있었다.

현 정부에 대한 성토와 인간 문재인에 대한 호감, 그리고 잠재적 대권주자로 손꼽히는 그의 정치적 가능성을 기대하는 메시지들이 태반이었다.

한 지지자는 어디서 찾았는지 문 이사장이 1976년 7월16일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발급받은 인명구조수료증 복사본을 메모지에 붙여놓아 눈길을 끌었다.

문 이사장도 선거를 앞둔 대개의 정치인처럼 자신의 이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회의실 창가에 그가 역임한 직책들을 써 놓은 황토색 명패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명패들은 '청와대 비서실장' 옆에 '특전사령부 폭파 최우수 대원'이, '청와대 민정수석' 옆에 '노동자를 위한 연대 대표'가 있는 식이다. 그것들이 모여 문 이사장의 생을 증거하고 있었다.

◇규칙을 지키고, 하나에 몰두하는 사람

30~50대에 걸친 자원봉사자 4명이 이날 오후 예정된 문 이사장과 귀성객간의 대화의 시간을 위해 이리저리 탁자를 재배치하고 있었다.

그들은 문 이사장에 대해 말을 아꼈다. 언론에 대한 경계심 탓인지, 아니면 평소 성품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질문을 하면 홍당무처럼 얼굴이 붉어지면서 손사래를 쳤다.

간신히 말문을 연 이는 캠프 후원회 회계책임을 맡고 있다는 박찬호(33)씨였다.

하지만 박씨는 선거캠프에 참여하기 전까지만 해도 문 이사장과 일면식도 없었단다. "부산지역에서 문화활동가로 일하다 아는 분 추천으로 문 이사장을 돕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문 이사장의 높아진 정치적 위상 덕에 밀려드는 후원금을 관리하느라 바쁘겠다는 질문에 그는 "후원회 계좌는 아직 일반에 공개 안했다"고 말했다.

"구정때 돈 많이 들일이 많은데 나중에 구정 끝나면 공개하자"는 게 문 이사장의 뜻이라고 그는 전했다.

문 이사장을 찾는 이들은 대개 트위터를 통해 사무실 위치를 알아낸 이들이라고 한다. 박씨는 생면부지의 그들을 매일매일 접대하면서 난생처음 선거운동을 하고 있단다.

아직은 지역 주민들이 발걸음이 상대적으로 적다면 적은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라고.

이달부터 문 이사장의 캠프에 합류한 박씨는 문 이사장이 "언론에 비춰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며 "규칙을 어기는 것을 싫어하고, 하나를 해야 한다면 그것에 몰두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더 이상은 자신도 알아봐야겠다고 했다.

◇'3金식 세배정치'와의 단절

문 이사장은 통상 10시30분께 사무실로 출근해 자원봉사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단다.

문 이사장을 꼭 필요로 하는 자리가 많아 사무실을 자주 비워야 하지만 적어도 오후에는 1시30분부터 1시간 정도는 사무실에 머물며 손님들을 만나고 있다고 한다.

시장상인들에게만 설날이 대목은 아니다. 정치인에게도 귀성객들이 들끓는 설은 대목이다. 모든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귀성객을 통해 멀리 구전되길 원한다.

문 이사장은 이번 설을 앞두고 이른바 '3金식 세배정치'와 단절을 선언했다. 설날연휴인 23~24일은 무조건 집에서 쉬겠다고 공언했다. 유력 정치인의 집이나 사무실로 지지자들이 우르르 몰려가 시끌벅적한 설날행사를 벌이는 옛 풍경이 그로서는 탐탁지 않았나 보다.

이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설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마련된 귀성객과의 만남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서만 제한적으로 알렸다.

오후 1시께부터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문 이사장이 최근 출연한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를 보고 반해 찾아왔다는 대학생부터 아이를 업고 온 직장여성, '문 이사장의 얼굴이 덕이 많아 보인다'며 무작정 오게 됐다는 70대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연령대와 직업이 다양했다.

미리 준비된 50여개의 의자가 동이 나고, 20여명은 서서 문 이사장을 기다렸다.

오후 2시께 문 이사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박수나 환호는 없었다. 문 이사장은 미끄러지듯 들어와 사람들과 조용히 악수를 나눴다.

트위터를 타고 온 사람들의 질문은 두서가 없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을 묻는가 하면 멘토가 되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잠재적 대권주자로 손꼽히는 만큼 대선에 도전해볼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도 빠지지 않았다.

◇'사람 사는 세상' 만들기 위해 몸 던질 터

문 이사장은 참여정부 당시 겪었던 아쉬움과 현 정부의 실정이 자신을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사실 기대했다. (이 대통령이)실용주의자고, 압도적으로 당선돼 훨씬 포용력 있게 정치할 줄 알았다. 그러면 지지가 더 단단해지는 것 아닌가. 하지만 과거 정치세력에 대해서 공존을 용납 안 하겠다는 행태를 했고, 결국 부메랑을 맞고 있다. 국민통합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망쳤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참여정부 5년을 경험했는데, 5년 동안 굉장히 많은 개혁과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민심을 얻지 못하고, 평가는 참담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정권계승에 실패하고 그 이후에 들어선 이명박 정부와 (참여정부를)비교하면서 이명박 정권 4년 동안 우리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무엇이 절실한 것인지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 이사장은 "우리가 지향하는 그런 세상은 노무현 대통령 말씀처럼 '사람 사는 세상'이라"며 "자본주의 사회가 무한경쟁을 하면서 격차가 생기고, 낙오자와 처지는 사람 생기는데 이 낙오되고 처지는 사람을 함께 배려하고 격차를 줄이고 통합하는 세상을 지향하는 세력이 있다"고 자신이 주도해 만든 민주통합당의 정체성을 설명했다.

그는 "과거에는 자본주의 내에서도 건전한 제도가 작동했지만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에는 자본주의는 무작정 앞으로만 치달아 극단적인 격차가 존재하게 됐다"며 "이제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사회가 존립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세력이 다음 정부를 맡아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총선에서 이겨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산·경남에서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전과 달리 좋은 사람들이 나서면 지역주의의 벽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벽을 넘기 위해서는 몸을 내던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몸을 던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출마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진보진영도 이제는 껍질 깨야

문 이사장은 "한나라당을 지지해온 것을 왜곡된 지역주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야권 정당들이 한나라당을 대신할 수 있는 믿음을 못 줘 왔다"며 "충분히 대안 세력이 될 수 있다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진보정당에 대해서는 "저쪽을 말하기 전에 우리도 문제다. 진보진영 사람들이 좋은 사회적 목소리를 내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왜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에 생각이 다른 쪽을 인정 안하는 적대감이 문제다. 이것이 진보진영의 품을 넓히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름 열정이 넘치고, 세상이 갑갑해서 그러리라 생각하지만 그런 주장이 너무 강하다"며 "진보쪽이 우리사회의 주류적 가치가 되려면 자신들의 생각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을 답답하다고만 하지 말고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걱정스런 조언을 했다.

그러면서 이번 총선과 대선을 맞는 민주통합당의 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좋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과거 노 대통령이 경선에 나섰을 때는 처음에는 국회의원들이 한명도 같이 안 했다. 후보 되고서도 흔들지 않았는가. 일부는 다른 곳으로 가기도 했다. 그만큼 함께 뜻을 하는 사람이 적었다. 하지만 이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편이 되고 있느냐"고 말했다.

문 이사장은 부산·경남에서 민주통합당이 10석 안팎의 의석을 건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허황되게 들리는 만은 않는 게 6·2 지방 선거 때 김정길 부산시장 후보가 45%를 득표했고, 18대 총선 때도 이와 유사한 득표율이 나온 지역이 더 있다. 한 5% 정도 남아있는 마의 벽을 넘어서면 한꺼번에 넘어설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흔히 민주통합당 승리의 키워드로 불리는 '문성길'(문재인·문성근·김정길) '낙동강 벨트'에 대해서는 "제가 잘되면 문성근 후보가 도움 받고 문 후보가 잘되면 제가 도움받는, 그런 자세로 모두 나섰다. 과거보다는 훨씬 좋은 진용으로 임하기 때문에 반드시 좋을 결과 나올 것이다. 제가 보여 드리겠다"고 말했다.

◇'난쏘공', '전환시대의 논리'와 청년의 정치참여

문 이사장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 책을 소개해달라는 질문에 소설 쪽에서는 황석영의 '객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사회과학 쪽에서는 이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꼽았다.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정치지도자를 꼽아달라는 질문에는 "제가 현실정치를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고, 그냥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생각 했는데, 그 점에서는 꼽자면 다산 정약용, 이영희 선생 같은 분들을 지식인의 표상으로 여겨왔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제 삶을 그분들처럼 지식인으로서 끝까지 가고 싶었는데, 결국 여기까지 왔다. 정치인 쪽은 아직까지 쉽게 답을 못하겠지만 어쨌든 미국 쪽에서는 루즈벨트 대통령 정도가 되겠다. 그런 분들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 사회통합적인 사회를 만드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다.

'20대가 왜 정치에 참여해야하는지'를 설명해달라는 질문에는 "20대가 처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현실정치에 대해)달리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기성세대들은 엄혹했던 독재 시대에 태어나 민주주의가 억압되어도 당연시 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적어도 요즘 20대는 자유롭게 자랐기 때문에 오히려 권위주의라든지, 민주주의나 인권 억압 하는 것에 대해 더 잘 분노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젊은이들이 정치를 바꾸면 당장 삶이 바뀐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20대가 능력 면에서는 단군 이래 최고다. 자유분방함, 창의성 이런 것이 대단하다. 한류열풍 있지 않은가. 우리 때는 문을 열면 문화식민지가 된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우리 것으로 세계를 제압한다. 능력은 갖고 있으니 의식만 바뀌면 된다"고 청년들의 정치참여를 독려했다.

◇'힐링캠프'와 함께해야할 사람 안철수

문 이사장은 힐링캠프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그는 "타이밍이 좋았나 보다. 지역구에서 인사를 나누고 할 때 '당신 누구냐?'하고 아는 척 안 하면 갑갑한 노릇인데, 힐링캠프 얘기를 하면 수월하다. 좌중에 힐링캠프를 아는 한 두분만 있어도 분위기가 바뀐다"고 말했다.

이어 "(기왓장 격파는)짜고 하는 줄 알았다. 바로 (기왓장이)깨지는 줄 알았는데….(웃음) 손가락 끝마디 인대가 좀 늘어났다. 그것 잡아주는 것을 한 달 정도 해야 한단다"며 깁스를 한 오른 검지를 겸연쩍게 내보였다.

안양에서 왔다는 한 청년이 대권의지가 있는지를 물으면서 안철수 등 또 다른 야권의 잠재적 주자에 대한 전망을 묻는 질문에는 "저는 부산 사상구에서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출마했다"며 "그 신분을 넘어서는 답변은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안철수 원장이 정치를 안 하고 있지만 정권교체가 절실하다는 점과 정권교체 후 차기 정부가 가야될 방향, 꼭 같지는 않겠지만 거의 생각이 같아서 동지적 관계라고 생각한다"며 "지난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처럼 반드시 힘을 함께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당시 수사권조정 등을 통해 검찰 권력을 제한하려 했지만 진보사회에서조차 이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한 그는 검찰개혁에 대한 명료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국민들이 검찰권이 남용되는 것 보고서 '이대로 놔두면 큰일 나겠다'고 하고 있다"며 "이제는 검찰 개혁에 관해서는 좋은 환경이 됐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도 본인 스스로가 (검찰수사 때문에)힘들었고. 재판중인데도 임종석 사무총장을 임명하는 것을 보면 결기가 보이지 않는가"라고 말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문 이사장과의 대화를 마친 시민들은 믿음과 소신을 느꼈다고 했다.

어머니와 함께 문 이사장을 보러온 최재영(30)씨는 "겉과 속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며 "검찰개혁 등을 소신 있게 해낼 것 같다"고 말했다.

4살 난 아들 예후와 경북 구미에서 왔다는 김경록(31)씨는 "'나꼼수' 방송을 통해 문 이사장을 처음 알게 됐고, 그의 자서전 '운명'을 통해 소신과 원칙을 지켜가는 법을 배웠다"며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에서의 보낸 5년 동안 단 한 번도 잡음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언행일치의 삶에 신뢰를 보냈다.

문 이사장은 2시간여 동안 진행된 만남의 시간 동안 내내 진지했다. '나꼼수'같은 기발한 유머도 없고, 웃음이라고 해봤자 힐링캠프 얘기가 나올 때면 겸역쩍게 미소 짓는게 고작이다. 진지함이 지나치면 무료하기 마련이다.

대학강단 같으면 재미없는 강연자라고 눈총을 받을지도 모를 판이었지만 이날 하루만큼은 단 한 사람들도 중간에 자리를 뜨지 않고 진지하게 문 이사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sds1105@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