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풍경

"안철수, 링 주변만 빙빙 돌면..."

소한마리-화절령- 2012. 5. 26. 18:37

“안철수, 링 주변만 뱅뱅 돌면…”

경향신문 | 입력 2012.05.26 10:40 | 수정 2012.05.26 16:42

 

 
'최고의 선거전략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분명 난세다. 나라 밖은 어지럽고 나라 안은 시끄럽다. 세계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국가를 경륜할 새로운 권력질서를 만드는 일, 즉 18대 대통령 선거 이야기를 하기 위해 던진 화두다. 중요한 시기에 우리 앞에 던져진 중요한 선택의 대장정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최고의 선거 전략가라면 '범보수의 제갈량' '대한민국의 장자방'으로 불리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맨 먼저 떠오른다. 본인은 '과장된 것이다' '말도 안 된다'며 거부반응을 보이지만 정치권과 언론은 그런 수식어를 붙이기를 좋하한다. 2000년 김윤환·이기택씨 등 거물을 퇴장시킨 한나라당 물갈이 공천 기획에서 지난해 안철수 서울대 교수를 전격적으로 정치무대에 등장시킨 최초의 발설에 이르기까지 정치사의 중대 고비마다 그가 한 역할을 알기 때문이다.

윤 전 장관의 말의 무게는 정치적 심미안과 지략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 개혁성, 비판의식, 정치적 무욕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 등이 그의 활동공간을 넓혀주고 있다. 아마 정치부 기자 8년, 행정부 21년(그 가운데 청와대 9년), 입법부 4년의 폭넓고 깊은 경험 덕이 아닐까 싶다.

지난 5월 23일 '경향시민대학' 제2강 국가론 가운데 '국가와 공공성'을 주제로 한 그의 강의를 들었다. 그는 "국가란 공공성이 제도로 응결된 것"이라며 역대 대통령과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의원과 안철수 서울대 교수 등의 '스테이트크래프트'(통치능력)를 언급했다. 다음날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그를 따로 만났다.

-경향시민대학 강의에서 "역대 대통령 중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많이 공공성을 훼손했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됐다고 봅니까.

"공공성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제일 많이 '파괴'한 셈이죠. 파괴하려고 해서 했다기보다 모르니까 그런 거예요."

5월 24일 서울 시내의 한 식당에서 만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김석구 기자윤 전 장관은 전날 강의에서 이 대통령의 공공성 파괴 사례로 4대강 사업, 민간인 불법사찰, 정실인사, 측근비리, 기업프렌들리 정책 등을 들었다. 국가의 핵심 가치인 공공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 낳은 결과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공공성 파괴가 제도의 문제입니까, 리더십의 문제입니까.

"사람의 문제죠. 국가라는 게 뭔지 모르니까 공공성이라는 개념을 가질 수 없죠. 스스로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CEO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CEO라는 건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사람입니다. 이윤을 극대화하려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하잖습니까. 공공성은 생산성과 효율성으로 살릴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국가라는 게 뭔지 모르니까 공공성이 뭔지 알 수가 없고, 공공성이 뭔지 모르니까 기업과 국가가 같은 것으로 보고 CEO처럼 국가를 운영한 거죠."

-그걸 막을 방법이 없었으니 제도 자체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도는 다 있습니다. 국회와 언론이 있고, 헌법적으로 삼권분립이 돼 있잖아요. 그게 작동이 안 되는 건 사람의 탓인 거죠. 여당에게는 두 개의 상충된 임무가 있어요. 집권당으로서 대통령이 국정을 원활하게 수행하도록 돕는 책임정치의 측면이 하나 있죠. 나머지는 국회 다수당으로서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거예요.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 아닙니까. 그건 생각하지 않고 여당이라고 해서 늘 대통령을 추종하잖아요. 그러니까 국민이 볼 때 집권당이라는 건 허수아비인 거죠."

-이명박 정부의 국무총리라든가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장 등 인사 때마다 후보로 거론됐는데, 정부·여당에 참여하지 않은 까닭이 무엇입니까.

"주요한 인사가 있을 때 대상자가 될 만한 조건이 대개 뻔하고, 그런 조건을 갖춘 사람이 흔치 않거든요. 거기에 포함되다 보니까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저를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리 만무하고, 저도 처음부터 이명박 정부에는 털끝만큼도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없던 사람이었으니까…."

-처음부터라면 2007년 대선 전부터입니까.

"물론이죠. 선거 기간 중에 이명박 대통령을 몇 번 만난 일이 있어요. 좀 보자 해서 갔더니 선거 얘기만 물어봐서 적당히 하고 온 일이 있어요. 몇 번 만나서 얘기하면 사람에 대해서 알잖아요. 성격, 지적인 수준, 이런 걸 대개 보게 되죠. 그걸 보고 제 나름대로 판단한 일이 있어요."

-새누리당 공심위원장 후보로 거론된 건 이 대통령과 상관없지 않습니까.

"김종인 전 의원과 이상돈 교수가 기자들한테 제가 제일 적임자라는 말을 했다는 거예요. 기자들한테서 전화가 오기에 그런 일은 안 일어난다고 그랬죠. 내가 박근혜 전 대표 생각을 대강 읽고 있는데 절대로 나 같은 사람 쓸 리 없다고요. 또 하나는 내가 16대 공천 때 피를 묻혀갖고 그 때문에 대가를 톡톡히 치른 사람인데,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또 그 짓을 하느냐, 절대 안 한다,(웃음) 그런 말을 한 일 있어요. 그 이상 얘기는 없는 거예요."

-주간경향 창간 20주년 기념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의원과 안철수 교수가 양자대결을 벌일 경우 53.1대 43.2로 박 의원이 이기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박 의원의 상승세와 안 교수의 하락세를 어떻게 봅니까.

"안 교수의 지지도가 내려간 것은 사람들을 실망시켜서죠. 본인으로서는 상당히 신중을 기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 국가지도자의 모습은 아니거든요. 나라가 태평성대도 아니고 심각한 위기에 들어가 있고 앞으로 국내외 정세가 심상치 않게 닥쳐올 텐데, 이런 걸 뚫고 나가려면 지도자가 담대하기도 하고 결연하기도 하고 전략적이기도 해야 하잖아요. 지금까지 그런 모습을 보여준 일은 없고 계속해서 유명한 운동선수가 링 주변을 뱅뱅 돌면서 안 올라가는 모습이잖아요. 이게 길어지면 실망하는 사람이 앞으로 더 많이 나오겠죠."

-안 교수를 포함한 야권의 대선구도를 어떻게 봅니까.

"안 교수든 문재인 고문이든 김두관 지사든 독자적인 힘으로는 박근혜 의원을 이길 수 없다고 봐요. 지금 민주당에서 거론되고 있는 후보들과 안 교수가 다 힘을 합쳐야 박 의원을 이길 수 있을 겁니다. 박 의원의 지지세가 만만하게 볼 거는 아니거든요. 확장성은 높지 않아도 강고한 편이에요."

-여권은 어떻습니까.

"이미 다 끝나 있는 거죠. 경선에서 박 의원을 꺾을 사람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비박 후보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박 의원의) 반의 반도 안 된다는 것 아니에요. 다 합치면 시너지가 생겨서 좀 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럴 정도로 잠재력이나 폭발성이 있는 사람이 거기 없잖아요."

-비박 후보들이 주장하는 오픈프라이머리가 이루어진다면 상황이 반전될 소지는 없습니까.

"당 대의원 갖고 하든, 오픈프라이머리를 하든 박 의원을 꺾을 사람이 현 상태에서 없을 것 같은데…(웃음) 아마도 지난번 경선에서 박 의원이 이명박 후보한테 졌던 것이 4년간 악몽처럼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가능성의 싹까지 완전히 자르려고 지난번 공천할 때 그렇게 어금니를 물고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150명 당선자 중에 130명이 친박이라는 것 아닙니까."

-대통령이 되는 능력과 잘 하는 능력은 다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대통령의 자격 > 이라는 저서를 통해 대통령직 수행능력, 즉 스테이트크래프트를 중시했는데, 유력 주자들의 그것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정말 미지수죠. 저도 그 부분이 궁금한데요. 박근혜 의원도 지금까지 그걸 보여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말도 한 일 없고 보여준 일도 없어요. 문재인 고문도 노무현 대통령 시절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했지만 자기가 국정을 맡았던 사람이 아니니까 알 길이 없고요. 안철수 교수는 의사를 하다가 벤처기업, 교수를 한 사람이니까 더군다나 알 수 없죠. 그게 한편 불안하고 한편으로 궁금하고 한편으로 기대가 되기도 하죠."

윤 전 장관은 특히 행정경험이 전무한 박 의원과 안 교수의 스테이트크래프트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박 의원의 정치력은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보증한다. 말과 행동과 감정은 매우 절제돼 있다. 다만 당 지도부를 1인지배체제로 구성한 것은 비민주적,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준다. 소통 측면에서는 '궁정정치' '대왕대비'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꽉 막혀 있다. 공공성은 걱정된다. 박 의원이 말하는 '선공후사'의 공은 국가주의적 공공성의 개념처럼 보인다.

안 교수는 컴퓨터 백신 공개와 재산 기부 등을 통해 사인으로서 놀라운 공적 헌신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대선 출마와 관련해 계속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공인으로서 자세가 아니다. 자칫 검증 과정을 피하려는 꼼수로 비칠 수 있다. CEO로서 성공한 것은 스테이트크래프트와 전혀 다르다. 추구하는 가치도, 그것을 실현하는 방식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상은 두 사람에 대한 윤 전 장관의 진단이다.

-국민이 이미지나 인기가 아니라 스테이트크래프트로 후보를 판별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자질보다 인기에 쏠리는 현상을 저는 '충동구매'라고 표현하는데, 지금까지는 충동구매 경향이 강했거든요. 이쪽이 미우니까 그 대척점에 있는 사람한테 쏠리는 그런 심정은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언론이 그런 걸 짚어줘야 하는데, 같이 확 쏠려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지금까지로 보면 언론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안철수 교수와는 요즘 연락을 합니까.

"지난 9월 초에 전화 통화한 게 마지막이에요. 피차 연락할 일이 없죠.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하는 관계도 아니고, 일 때문에 전화할 것도 없으니까요."

-그래도 과거에 안 교수의 멘토였잖아요.(웃음)

"멘토가 300명 된다는 것 아닙니까. 제가 300번째쯤 되려나 모르겠는데… 저는 평소에 누구 멘토라는 말 입밖에 내지 않죠. 멘토라는 말 자체를 안 좋아해요. 우리말 '스승'이 딱 좋아요. 남의 스승이 되려면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이어야 하잖아요. 제가 저를 잘 아는데, 저는 남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못 됩니다. 그런데 청춘콘서트에서 안철수 원장과 박경철 원장이 '이 분은 저희 두 사람의 멘토가 되시는 분입니다'라고 소개를 몇 번 한 일이 있어요. 제가 그 자리에서 '난 당신의 멘토가 아니다'라고 할 건 아니지 않습니까.(웃음) 가만히 있었지만 제 스스로 그 사람들의 멘토라고 생각해본 일은 없고, 제가 입밖에 낸 일은 더더군다나 없습니다. 그랬는데 어느날 '그 사람이 뭐 내 멘토냐'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고요. "

-안 교수가 대선에 뛰어들면 도와줄 생각이 있습니까.

"지금 뭐라고 말씀드리기 우스운 게, 저는 안 교수가 설사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정치전선에 뛰어든다고 하더라도 절 보고 도와달라는 소리를 할 것 같지 않고요, 그 생각도 안 하는 사람을 향해서 제가 도와줄 의사가 있다고 할 수 없잖아요.(웃음)"

-그러면 이번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할 생각입니까. 이를테면 아까 말씀하신 국민이 대통령의 자질을 판별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이라든가….

"예, 그런 걸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관훈클럽이라든지 방송기자클럽, 다른 토론 프로그램에서 하는 걸 볼 때마다 그 정도로 제대로 검증이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요즘 맨날 토론하면서 그 얘기를 해요. 사회적으로 좀 공신력이 있는 기관이나 단체에서 제대로 된 검증을 해야 한다고요. 사람 몇을 정해서 예정된 질문을 하고 대답 끝나면 그 다음 질문하는 방식 말고 대답 듣고 그 대답 갖고 또 질문하고 대답 듣고 또 질문하면서 파고 들어가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그 사람이 가진 게 다 나오죠. 그런 식으로 검증을 하려면 지식도 상당히 있어야 하고 정부의 일도 해본 경험이 많은 사람이 있어야 하죠. 그런 걸 해보자고 제안까지 한 일 있어요."

윤 전 장관은 현재 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 합천평화의집 원장 등의 직을 맡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이밖에도 방송 출연, 강연, 기고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 '대한민국의 장자방'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아이고 말도 안 돼요'라고 말을 끊음) 이번 대선과 관계없이 장기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까.


"일단 우리나라가 당면한 현실이 국가를 구조적으로 바꿔야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어디 몇 군데 수리해서 될 일이 아니에요. 그런 인식이 투철하고 그런 변화를 이끌어갈 만한 식견이 있는 사람이 등장해야 되는 거예요. 제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은 그런 사람이 등장할 수 있도록, 유권자들이 그런 생각으로 누가 좋은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아까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쪽의 운동을 좀 했으면 싶은 생각이 들어요."

-국가를 구조적으로 바꾸려면 국정에 직접 참여하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아이고, 제 나이가 있잖아요. 저보다 젊은 분 중에 공부도 많이 하고 경험도 많이 쌓은 분이 많이 있잖습니까. 저는 그런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공직에 있던 사람으로서 시민사회에서 할 일이 많습니다. 시민사회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면 되는 거죠."

< 신동호 기자 hudy@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