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의 바다' 은빛 군무.. 은백색 옷으로 갈아입은 정선 민둥산국민일보정선입력2014.10.09 02:15
↑ 우리나라 5대 억새 군락지 중 하나인 강원도 정선 민둥산이 갓 피어나기 시작한 은빛 억새와 울긋불긋한 차림의 등산객들로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 오후의 역광에 황금색으로 물든 민둥산 억새(위). 민둥산 정상 옆에 위치한 깔때기 모양의 돌리네(아래).
강원도 첩첩산골 정선에는 하늘과 맞닿은 은빛 바다가 있다. 소슬한 가을바람에 서로 몸을 부대끼며 은빛으로 일렁이는 민둥산 억새밭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쪽빛 가을하늘을 무대삼아 눈부신 나신을 드러낸 채 산상 무도회장으로 변신한 억새밭을 감상하려는 등산객들로 한적하던 산골마을은 요즘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거린다.
해발 1119m 높이의 민둥산 정상을 은빛으로 채색한 억새밭의 넓이는 무려 20만평. 몇 차례에 걸친 산불과 건조한 기후, 그리고 고지대의 열악한 환경으로 나무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사이에 억새를 비롯한 야생화들이 민둥산 정상을 점령한 것이다. 물가에서 자라는 갈대보다 키가 작은 억새는 산이나 들에 뿌리를 내린 볏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고복수 노래에 나오는 '으악새'는 억새의 경기도 사투리.
억새마을로 불리는 능전마을에서 해발 800m 지점에 있는 발구덕마을까지는 약 1.7㎞. 단풍이 들기 시작해 경치는 아름답지만 시멘트 포장도로라 다소 지루한 느낌이다. 그러나 발구덕마을에 발을 디디는 순간 깔때기 모양으로 움푹 팬 거대한 웅덩이가 마치 다른 행성에 온 것처럼 생경하면서도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돌리네(doline)로 불리는 발구덕마을의 웅덩이는 석회암이 빗물에 녹아 지반이 둥글게 내려앉은 싱크홀로 카르스트 지형에서 발견된다. 이 같은 싱크홀이 8개 있다고 해서 팔구뎅이로 불리다 발구덕으로 굳어졌다. 이곳의 싱크홀은 길이 40m, 너비 15m, 깊이 20m다. 주민들은 이 발구덕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고 농사도 짓는다.
화전민이 살던 발구덕마을에서 민둥산 정상 아래에 위치한 제3쉼터까지는 고즈넉한 숲길의 연속이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높이 자란 낙엽송이 짙은 그늘로 따가운 가을햇살을 막아줘 걷기에 편하다. 피톤치드 그윽한 숲길을 한참 걷다 보면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민둥산이 앞을 막아선다. 숨을 헐떡일 정도로 꽤 가파른 길이 이어지지만 등산로 주변을 수놓은 온갖 가을 야생화에 눈길을 주다 보면 금세 정상에 서게 된다.
'세상에서 얻은 이름이라는 게 헛묘 한 채인 줄/ 진즉에 알아챈 강원도 민둥산에 들어/ 윗도리를 벗어 올렸다 참 바람 맑아서/ 민둥한 산 정상에 수직은 없고/ 구릉으로 구릉으로만 번져 있는 억새밭/ 육탈한 혼처럼 천지사방 나부껴오는 바람 속에/ 오래도록 알몸의 유목을 꿈꾸던 빗장뼈가 열렸다'.(김선우 시인의 '민둥산' 중에서)
함백산, 가리왕산, 백운산, 태백산이 한눈에 보이는 민둥산 정상은 김선우 시인이 묘사한 것처럼 구릉과 구릉으로 이어져 있다. 주변 환경과의 조화는 무시한 채 홀로 우뚝 솟은 거대한 표석을 제외하면 눈에 거슬리는 게 하나도 없다. 억새가 군락을 이룬 곳은 정상 남쪽으로 억새밭 사이 길은 울긋불긋한 차림의 등산객 행렬이 단풍처럼 화려한 수를 놓고 있다.
민둥산은 정상 북동쪽에 있는 거대한 돌리네 때문에 더욱 인상적이다. 제주도 용눈이오름의 분화구처럼 돌리네는 민둥산의 드센 바람조차 비켜가는 아늑한 공간이다. 보랏빛 꽃향유, 하얀 구절초, 그리고 민둥산의 주인인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청명한 가을햇살과 흘러가는 구름의 그림자조차 잠시 쉬어가는 돌리네는 시간마저 멈춰버린 사색의 공간이라고나 할까.
억새밭은 해가 기우는 늦은 오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다시 태어난다. 금발의 여인이 긴 머리칼을 흩날리며 말을 달리듯 강렬한 역광에 황금색으로 물든 억새꽃이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처럼 출렁인다. 그러나 태양이 보랏빛 능선과 입을 맞추는 순간 금발은 은발로 변한다. 이어 민둥산 억새는 마지막으로 실루엣의 장관을 연출하며 어둠 속으로 침잠한다.
관객들이 모두 떠난 쓸쓸한 가을밤에 홀로 남은 억새는 얼마나 외로울까? 정일근 시인은 '가을억새'에서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라고 노래한다. 은빛으로 출렁이는 억새의 바다를 작은 가슴에 안고 돌아서는 하산길이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처럼 서러워 돌아보고 또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새하얀 손짓으로 이별을 서러워하는 가을여인, 그녀의 이름은 민둥산 억새다.
정선=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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