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 발등의 불, 방산비리①]방산비리의 결정체 '통영함'
뉴시스김훈기입력2014.11.02 05:03
2억 장비 20배 튕겨 41억원에 구입하고도 진상 파악 못해
박 대통령 방산비리 척결하겠다지만 매년 같은 문제 반복
"청장 교체, 수사해도 또 재발…구조적 문제 도려내야" 지적
【서울=뉴시스】김훈기 기자 = 방산비리가 국가 안보문제의 가장 시급한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최근 잇따라 불거진 '방산비리'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산·군납 비리를 이적행위로 규정하고 강력히 척결하겠다고 밝힌 이후 방위사업청은 벌집 쑤셔놓은 듯 어수선하다. 대대적인 인사태풍까지 예고되면서 바짝 몸을 낮추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방산비리 문제가 대두된 만큼 앞으로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개조도 예상된다. 특히 세월호 참사 당시 문제가 됐던 해군 구조함인 통영함의 납품 비리 등이 속속 드러난 만큼 이제 검찰의 칼 끝은 방위사업 전반으로 향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뉴시스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1월1일 탄생한 방위사업청이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왜 방산비리가 끊이지 않는지 등을 집중 점검하고, 그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한 기획을 마련했다.[편집자 주]
◇대통령까지 방산비리 척결 지시…방사청 존립 흔들
지난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당시 국내 최초의 해군 구조함인 통영함을 구조 해역에 투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해군은 끝내 통영함을 투입하지 못했다. 구조함의 핵심 장비인 선체고정 음파탐지기(HM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사고 이틀 후인 18일 통영함을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해군은 현재 대우조선해양에서 시운전 중인 통영함을 현 시점에서는 구조현장에 투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이유는 통영함에 탑재된 음파탐지 장비나 수중로봇 장비가 정상적으로 성능을 낼 수 있는지 해군이 확인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투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린 생명들이 수장되는 상황을 뻔히 쳐다만 보면서도 수천억원을 들인 최첨단 구조함은 아예 띄워 보지도 못하는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결국 '통영함' 사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방산비리가 어떤 결과로 다가오는지 분명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문제는 감사원 감사와 검찰 조사로 전모가 드러난데 이어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여야 국회의원들의 집중 질타를 받았다. 수중음파탐지기 납품에 비리가 있었음이 드러났고 결국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지난 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5년 예산안 시정연설과 여야 지도부 회동을 통해 방산·군납비리의 척결을 거듭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최근 잇따라 제기된 방산·군납 비리와 같은 예산집행과정의 불법행위는 안보의 누수를 가져오는 이적행위로 규정하고 일벌백계 차원에서 강력히 척결해 그 뿌리를 뽑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 후 여야 지도부 회동에서도 방위산업 비리에 대한 강력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여당 내에서는 차제에 방사청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야당은 문민화해야 한다고 법석을 떨고 있다. 여야 모두 방법론에서 시각차가 있지만 손을 봐야 한다는 데는 큰 이견은 없는 셈이다.
이 같은 여야의 한목소리는 그동안 뜨문뜨문 불거졌던 방산비리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자정 작업이 시작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군사 무기의 모든 것을 구매하고 개발을 도맡는 방위사업청은 박 대통령의 언급 이후 발등에 불이 떨어져 어수선한 상황에 빠졌다.
결국 이용걸 방사청장은 팀장급 이상 직원을 소집해 2일 비리척결 대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방산비리로 드러난 직원들의 기강 해이를 바로잡고 종합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방산비리 척결을 직접 언급한데 이어 야당이 이용걸 청장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방위사업청은 개청 8년 만에 존립기반이 흔들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차기 방사청장 하마평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이 모든 사태들이 방산비리를 제대로 막지 못한 방위사업청의 '자업자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통영함 사태로 본 방산비리
'방산비리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통영함(3500t급) 사태는 방사청이 그동안 납품과 관련해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통영함 문제로 지금까지 구속된 사람만 모두 5명이다.
황기철 해군참모총장마저 이 일로 감사원으로부터 지난 9월5일 4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조사를 받기도 했다. 황 총장은 2009년 1월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통영함의 음파탐지기 기종 선정을 담당했다.
검찰은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난 통영함과 소해함 탑재 장비의 성능 기준을 임의로 변경하는 등 관련 문서를 조작한 혐의로 지난 달 19일 방위사업청 오모(57) 전 대령과 최모(47) 전 중령을 구속기소했다.
같은 달 29일에는 음파탐지기 납품 회사인 H사 대표 강모씨를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했다. 선박부품업체 W사 대표 김모씨와 군수물품 중개업체 N사 이사 김모씨는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비리 내용을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졌음이 확인된다. 검찰은 통영함 선체고정 음파탐지기(HMS)를 납품한 미국 H사의 국내 협력업체 사무실과 관련자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사청도 압수수색해 오 대령 등이 결재한 서류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발주 내역 문건 등을 확보했다.
그 결과 이들이 입찰 서류를 조작한 것도 확인됐다. 입찰 제안서 중에서 음파탐지기 사양 부분을 도려낸 뒤 다른 내용을 붙여 복사하는 수법으로 서류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게 조작된 가짜 문서를 근거로 사들인 음파탐지 장비를 통영함에 장착한 것이다.
통영함은 2012년 진수 당시 '국내 기술로 제작된 최첨단 수상 구조함'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군 안팎의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핵심 장비인 선체고정 음파탐지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해군이 인수를 거부해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현장에 투입하지 못했다.
지난 5월부터 통영함 음파탐지기 선정 업무 등에 대해 고강도 감사를 벌인 감사원에 따르면 비리의 시작은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이 방사청 함정사업부장으로 근무하던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감사원 감사 결과 핵심 장비인 음파탐지기의 성능이 1970년대 기술 수준인데다 원가도 방사청이 지급한 41억원에 훨씬 못 미치는 2억원대로 드러난 것. 심지어 통영함의 음파탐지기는 1970년대에 건조된 평택함과 동일한 사양이었다.
성능 개선을 거쳤다는 방사청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해도 2억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 1970년대 장비를 20배가 넘는 41억원이나 주고 샀다는 점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 때문에 황기철 참모총장이 감사원의 고강도 조사를 받은 것이다. 이후 감사원 고발을 접수한 검찰은 당시 음파탐지기 선정 업무를 담당했던 영관급 예비역 두 명을 구속했다. 하지만 황 총장은 현역 군인 신분이라 수사 대상에서 제외돼 '꼬리 자르기 수사'가 아니냐는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방산비리 상징' 통영함은 어떤 구조함인가?
통영함은 국내 기술로 건조한 해군 최초의 최첨단 수상 구조함이다. 해군은 수상함 구조와 예인 임무를 수행하던 구형 구조함이 퇴역함에 따라 1996년 미국 해군이 사용하던 구조함 2척을 300억원에 사들였다. 평택함과 광양함이 그것이다.
문제는 이 두 구조함이 1970년대에 건조돼 매우 낡았다는 점이다. 결국 2010년 3월26일 천안함 사태 때 구조작전에 투입됐지만 항해 속도가 느리고 수중탐지장비가 없어 효과적으로 구조 활동을 벌이지 못했다.
이 같은 일을 겪자 이후 해군은 차세대 구조함을 건조하기로 결정했다. 바로 문제의 통영함이다. 2010년 10월 건조를 시작해 2년 뒤인 2012년 9월 진수식을 가졌다. 통영함은 건조에만 무려 1590억원이 투입됐다. 전체적으로는 2600억원 가량이 소요됐다.
당초 통영함은 지난해 10월 해군에 인도돼 실전 배치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해군이 1년여 동안 시험 평가를 한 결과 수중 무인 탐사기와 선체고정 음파탐지기 등 구조에 필요한 핵심 장비가 군 요구성능(ROC)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인수가 거부됐다.
그럼에도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달 31일 최윤희 합참의장 주관으로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합동참모회의를 열어 통영함의 조기 인도 방안을 안건으로 상정하려 했다. 통영함 진수식 당시 해군참모총장이 바로 최윤희 합참의장이다.
그러나 거듭되는 비난에 합참은 28일 이를 급하게 취소했다. 군 관계자는 "해군에 먼저 인도한 다음 성능을 보완하는 것이 최선인지, 다른 방안이 있는지 종합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군 인도 방안은 방사청이 내놓은 것이다. 인도 뒤 통영함에 정상적인 장비를 장착하도록 기한을 1년 또는 2년 이상 연기해 달라고 합참에 요청한 것이다.
문제가 있는 구조함을 인수한 뒤 손봐 사용하라는 요청인 것인데,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사용도 못할 장비를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합참이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해군이 운영 중인 구조함 2척 중 1척이 연말께 퇴역할 예정이어서 당장 전력 공백이 우려된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운용은 못하더라도 통영함을 인도해 '숫자'만이라도 맞추려는 미봉책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년째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에 장기간 정박하면서 쌓인 부두사용료도 선인도 방안의 이유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 역시 현재로선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어쨌든 통영함은 향후 해군에 인도되더라도 많게는 2년 동안 문제 해결을 위해 또 다시 정박해 있어야 한다. 한번 벌어진 방산비리가 얼마나 큰 군사적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하는지 목도하게 되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시정 연설 때도 방산 비리를 척결하겠다고 언급했지만 통영함 사태로 허언이 돼 버렸다. 게다가 이번 시정 연설에서 방위 산업을 창조 경제의 핵심으로 키우겠다고 언급한 점은 외려 방산비리 척결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만 남기게 됐다. 말의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후 약방문'식의 정부 조치가 얼마나 효과를 낼지 모를 일이다. 많게는 수십조원의 국민 세금을 쏟아 부었음에도, 복사기로 서류를 조작하는 일에 과연 영관급 장교 두 명만이 연루됐다고 보는 게 맞는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매번 꼬리만 자르다 보면 몸 덩이는 더욱 비대해 지기 마련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수장을 바꾸고 대대적인 비리 수사를 벌인다 해도 방사청이 지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통영함과 같은 일은 또 다시 발생할 것"이라며 "해체 뒤 재조직화하거나 무기 구매 등을 민간에 이양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bom@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박 대통령 방산비리 척결하겠다지만 매년 같은 문제 반복
"청장 교체, 수사해도 또 재발…구조적 문제 도려내야" 지적
【서울=뉴시스】김훈기 기자 = 방산비리가 국가 안보문제의 가장 시급한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최근 잇따라 불거진 '방산비리'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산·군납 비리를 이적행위로 규정하고 강력히 척결하겠다고 밝힌 이후 방위사업청은 벌집 쑤셔놓은 듯 어수선하다. 대대적인 인사태풍까지 예고되면서 바짝 몸을 낮추고 있다.
↑ 【거제=뉴시스】최운용 기자 = 4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에서 대한민국 해군 최초의 수상 구조함인 3500t급 '통영함'이 진수식을 갖고 있다. (사진=대우조선해양 제공) photo@newsis.com
↑ 【계룡=뉴시스】함형서 기자 = 15일 오전 충남 계룡시 계룡대에서 열린 해군본부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김성찬 의원이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2014.10.15. foodwork23@newsis.com
뉴시스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1월1일 탄생한 방위사업청이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왜 방산비리가 끊이지 않는지 등을 집중 점검하고, 그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한 기획을 마련했다.[편집자 주]
◇대통령까지 방산비리 척결 지시…방사청 존립 흔들
지난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당시 국내 최초의 해군 구조함인 통영함을 구조 해역에 투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해군은 끝내 통영함을 투입하지 못했다. 구조함의 핵심 장비인 선체고정 음파탐지기(HM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사고 이틀 후인 18일 통영함을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해군은 현재 대우조선해양에서 시운전 중인 통영함을 현 시점에서는 구조현장에 투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이유는 통영함에 탑재된 음파탐지 장비나 수중로봇 장비가 정상적으로 성능을 낼 수 있는지 해군이 확인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투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린 생명들이 수장되는 상황을 뻔히 쳐다만 보면서도 수천억원을 들인 최첨단 구조함은 아예 띄워 보지도 못하는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결국 '통영함' 사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방산비리가 어떤 결과로 다가오는지 분명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문제는 감사원 감사와 검찰 조사로 전모가 드러난데 이어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여야 국회의원들의 집중 질타를 받았다. 수중음파탐지기 납품에 비리가 있었음이 드러났고 결국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지난 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5년 예산안 시정연설과 여야 지도부 회동을 통해 방산·군납비리의 척결을 거듭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최근 잇따라 제기된 방산·군납 비리와 같은 예산집행과정의 불법행위는 안보의 누수를 가져오는 이적행위로 규정하고 일벌백계 차원에서 강력히 척결해 그 뿌리를 뽑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 후 여야 지도부 회동에서도 방위산업 비리에 대한 강력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여당 내에서는 차제에 방사청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야당은 문민화해야 한다고 법석을 떨고 있다. 여야 모두 방법론에서 시각차가 있지만 손을 봐야 한다는 데는 큰 이견은 없는 셈이다.
이 같은 여야의 한목소리는 그동안 뜨문뜨문 불거졌던 방산비리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자정 작업이 시작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군사 무기의 모든 것을 구매하고 개발을 도맡는 방위사업청은 박 대통령의 언급 이후 발등에 불이 떨어져 어수선한 상황에 빠졌다.
결국 이용걸 방사청장은 팀장급 이상 직원을 소집해 2일 비리척결 대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방산비리로 드러난 직원들의 기강 해이를 바로잡고 종합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방산비리 척결을 직접 언급한데 이어 야당이 이용걸 청장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방위사업청은 개청 8년 만에 존립기반이 흔들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차기 방사청장 하마평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이 모든 사태들이 방산비리를 제대로 막지 못한 방위사업청의 '자업자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통영함 사태로 본 방산비리
'방산비리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통영함(3500t급) 사태는 방사청이 그동안 납품과 관련해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통영함 문제로 지금까지 구속된 사람만 모두 5명이다.
황기철 해군참모총장마저 이 일로 감사원으로부터 지난 9월5일 4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조사를 받기도 했다. 황 총장은 2009년 1월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통영함의 음파탐지기 기종 선정을 담당했다.
검찰은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난 통영함과 소해함 탑재 장비의 성능 기준을 임의로 변경하는 등 관련 문서를 조작한 혐의로 지난 달 19일 방위사업청 오모(57) 전 대령과 최모(47) 전 중령을 구속기소했다.
같은 달 29일에는 음파탐지기 납품 회사인 H사 대표 강모씨를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했다. 선박부품업체 W사 대표 김모씨와 군수물품 중개업체 N사 이사 김모씨는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비리 내용을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졌음이 확인된다. 검찰은 통영함 선체고정 음파탐지기(HMS)를 납품한 미국 H사의 국내 협력업체 사무실과 관련자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사청도 압수수색해 오 대령 등이 결재한 서류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발주 내역 문건 등을 확보했다.
그 결과 이들이 입찰 서류를 조작한 것도 확인됐다. 입찰 제안서 중에서 음파탐지기 사양 부분을 도려낸 뒤 다른 내용을 붙여 복사하는 수법으로 서류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게 조작된 가짜 문서를 근거로 사들인 음파탐지 장비를 통영함에 장착한 것이다.
통영함은 2012년 진수 당시 '국내 기술로 제작된 최첨단 수상 구조함'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군 안팎의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핵심 장비인 선체고정 음파탐지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해군이 인수를 거부해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현장에 투입하지 못했다.
지난 5월부터 통영함 음파탐지기 선정 업무 등에 대해 고강도 감사를 벌인 감사원에 따르면 비리의 시작은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이 방사청 함정사업부장으로 근무하던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감사원 감사 결과 핵심 장비인 음파탐지기의 성능이 1970년대 기술 수준인데다 원가도 방사청이 지급한 41억원에 훨씬 못 미치는 2억원대로 드러난 것. 심지어 통영함의 음파탐지기는 1970년대에 건조된 평택함과 동일한 사양이었다.
성능 개선을 거쳤다는 방사청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해도 2억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 1970년대 장비를 20배가 넘는 41억원이나 주고 샀다는 점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 때문에 황기철 참모총장이 감사원의 고강도 조사를 받은 것이다. 이후 감사원 고발을 접수한 검찰은 당시 음파탐지기 선정 업무를 담당했던 영관급 예비역 두 명을 구속했다. 하지만 황 총장은 현역 군인 신분이라 수사 대상에서 제외돼 '꼬리 자르기 수사'가 아니냐는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방산비리 상징' 통영함은 어떤 구조함인가?
통영함은 국내 기술로 건조한 해군 최초의 최첨단 수상 구조함이다. 해군은 수상함 구조와 예인 임무를 수행하던 구형 구조함이 퇴역함에 따라 1996년 미국 해군이 사용하던 구조함 2척을 300억원에 사들였다. 평택함과 광양함이 그것이다.
문제는 이 두 구조함이 1970년대에 건조돼 매우 낡았다는 점이다. 결국 2010년 3월26일 천안함 사태 때 구조작전에 투입됐지만 항해 속도가 느리고 수중탐지장비가 없어 효과적으로 구조 활동을 벌이지 못했다.
이 같은 일을 겪자 이후 해군은 차세대 구조함을 건조하기로 결정했다. 바로 문제의 통영함이다. 2010년 10월 건조를 시작해 2년 뒤인 2012년 9월 진수식을 가졌다. 통영함은 건조에만 무려 1590억원이 투입됐다. 전체적으로는 2600억원 가량이 소요됐다.
당초 통영함은 지난해 10월 해군에 인도돼 실전 배치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해군이 1년여 동안 시험 평가를 한 결과 수중 무인 탐사기와 선체고정 음파탐지기 등 구조에 필요한 핵심 장비가 군 요구성능(ROC)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인수가 거부됐다.
그럼에도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달 31일 최윤희 합참의장 주관으로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합동참모회의를 열어 통영함의 조기 인도 방안을 안건으로 상정하려 했다. 통영함 진수식 당시 해군참모총장이 바로 최윤희 합참의장이다.
그러나 거듭되는 비난에 합참은 28일 이를 급하게 취소했다. 군 관계자는 "해군에 먼저 인도한 다음 성능을 보완하는 것이 최선인지, 다른 방안이 있는지 종합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군 인도 방안은 방사청이 내놓은 것이다. 인도 뒤 통영함에 정상적인 장비를 장착하도록 기한을 1년 또는 2년 이상 연기해 달라고 합참에 요청한 것이다.
문제가 있는 구조함을 인수한 뒤 손봐 사용하라는 요청인 것인데,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사용도 못할 장비를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합참이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해군이 운영 중인 구조함 2척 중 1척이 연말께 퇴역할 예정이어서 당장 전력 공백이 우려된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운용은 못하더라도 통영함을 인도해 '숫자'만이라도 맞추려는 미봉책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년째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에 장기간 정박하면서 쌓인 부두사용료도 선인도 방안의 이유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 역시 현재로선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어쨌든 통영함은 향후 해군에 인도되더라도 많게는 2년 동안 문제 해결을 위해 또 다시 정박해 있어야 한다. 한번 벌어진 방산비리가 얼마나 큰 군사적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하는지 목도하게 되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시정 연설 때도 방산 비리를 척결하겠다고 언급했지만 통영함 사태로 허언이 돼 버렸다. 게다가 이번 시정 연설에서 방위 산업을 창조 경제의 핵심으로 키우겠다고 언급한 점은 외려 방산비리 척결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만 남기게 됐다. 말의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후 약방문'식의 정부 조치가 얼마나 효과를 낼지 모를 일이다. 많게는 수십조원의 국민 세금을 쏟아 부었음에도, 복사기로 서류를 조작하는 일에 과연 영관급 장교 두 명만이 연루됐다고 보는 게 맞는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매번 꼬리만 자르다 보면 몸 덩이는 더욱 비대해 지기 마련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수장을 바꾸고 대대적인 비리 수사를 벌인다 해도 방사청이 지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통영함과 같은 일은 또 다시 발생할 것"이라며 "해체 뒤 재조직화하거나 무기 구매 등을 민간에 이양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bom@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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