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공성이 OECD 국가 중 꼴찌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새삼스럽지도 놀랍지도 않다.
이 사회는 윗사람의 범죄에 눈을 감거나 그런 상관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고, 조직의 진정한 명예를 위해 바른말을 하는 사람을 몰아내고
있다. 공직자들은 공익의 대변자가 아니라 정권의 하수인이 되었다.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사건을 수사 지휘한 검찰총장이 찍혀서
쫓겨나고, 과거 국가범죄의 피해자에게 무죄를 구형한 검사가 오히려 명령 불복종으로 징계를 당하고, 경찰의 불법 대선 개입을 고발한 경찰간부가
사표를 쓰고, 군의 내부 부정과 비리를 고발한 엘리트 장교가 진급에서 탈락하고, 총리실 불법사찰을 고발한 양심적 공무원이 파면되고, 황우석의
거짓을 폭로하여 나라의 체면을 세웠던 소신 있는 방송사 PD들이 해고, 좌천을 당했다. 자기 직업 세계에서 동료들에게 존경받고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조직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밀려나 수난을 당하고 있다.
소인정치, 공조직 사유화와 패거리 집단의 행태
그래서 나는 이명박 정권 후 지금까지 한국을 보면 삼권분립, 법의 지배, 정당정치,
대의제를 기초로 한 어떤 서구 근대정치학 이론보다 유교문화권의 인성정치 이론이 우리 현실에 더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해 본다. 즉 사법부가
대통령과 힘 있는 집단의 이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입법부나 정당정치가 거의 무기력화하고 청와대와 공안기관이 모든 국내정치에 개입하는 현상을 그냥
민주주의 후퇴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교수신문에서 그해의 정치를 집약한 단어로 당동벌이(黨同伐異)를
선정한 적이 있는데, 그것보다 오늘의 정치와 사회를 더 잘 설명해주는 말이 없는 것 같다. 청와대와 집권여당, 국정원, 관료, 검찰, 언론 등
우리 사회의 가장 힘 있는 조직은 바로 패거리를 지어 적을 토벌하는 것을 제일의 행동 원리로 삼는다는 것이다. 즉 권력집단이 공조직을 사유화하여
공조직이 더 이상 공공성의 논리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고, 자신을 위협하는 개인과 집단을 무슨 꼬리를 잡아서라도 몰아내고, 설사 범죄자라도
자기편이면 무조건 봐주고 아무리 휼륭한 품성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반기를 들면 감시 탄압하는 패거리 집단의 행태를 보인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것을 ‘소인정치’라 부르고 싶다.
논어에는 ‘소인’의 특징을 논하는 수많은 구절이 있다. “군자는 두루 사랑하고 치우치지 않으며, 소인은 치우치고 두루 사랑하지 않는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소인들은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꾸며서 합리화한다.(小人之過也, 必文)”, “군자는 평탄하여 여유가 있고, 소인은 늘
걱정스러워 한다.(子曰 ‘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 등이다. 즉 소인들은 언제나 자기 이익이 행동의 동기이기 때문에 이익이
침해되고 권력을 잃을까 언제나 초조 불안해하고,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거나 편법을 저질러 왔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나
조직을 원수처럼 미워하고, 자신에게 아부하고 충성하는 사람만 편애하고, 자신의 허물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기괴한 논리로 자신을 합리화한다.
소인정치는 반드시 나라를 무너뜨린다
물론 인간 세상은 대체로 소인들이 성공하고, 그런 무리들에 의해 주로 움직여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 문제다. 상을 받거나 발탁되어야 할 사람이 처벌당하고, 처벌당해야 할 사람들이 거꾸로 출세하면 사회와 국가는
지탱될 수 없다. 윗사람의 행동은 본이 되는 법이므로, 최상위의 소인정치 행태는 그 아래 모든 조직에 그대로 적용된다.
소인정치가 오래 지속되면 바로 19세기 조선의 문인 이응신(李應辰)이 그 시대를 묘사했던 ‘유속(流俗)’ 현상, 요즘말로 하면
관료들이 공익을 버린 세상, 세상 사람들이 처세와 출세, 즉 ‘먹고사니즘’에 따라 행동하는 세상이 된다. 이런 세상에서는 전쟁이 나면 병사들이
총을 버리고 도망하거나 오히려 자기 상관을 향해 총을 쏘고, 경제위기가 오면 기업의 임원이나 직원들은 회사 비밀을 적대 기업에 팔아넘기고 이익을
챙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일강제병합, 한국전쟁, IMF 위기 직후와 같은 국가의 큰 난리 통에 어떻게 소인정치의 주역들이 백성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유속’에 길들여진 백성들이 자신을 버린 나라를 차갑게 배신함으로써 그들에게 복수하는지 지켜보았다. 장차 국가대란이 또
닥치면 이러한 일은 거의 그대로 반복될 것이다. 아니 세월호 구조과정에서 우리는 그것을 이미 보았다.
소인정치에는 진정한
외교·국방·민생의 철학이나 정책도 없다. ‘안보’와 ‘경제’가 하나의 ‘기호’처럼 아무런 감동 없이 떠다닐 뿐이다. 주변 강대국들은 이제 한국의
집권세력을 어린아이 취급하고 있다. 소인정치는 반드시 나라를 무너뜨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