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풍경

조선일보, '라면 박스 2개 청와대 문건 통째로 샜다"

소한마리-화절령- 2014. 11. 30. 16:17

 


조선일보, '라면 박스 2개 청와대 문건 통째로 샜다"
문건 작성자 지목된 A경정 "문건 통째 유출은 사실무근"
입력시간 : 2014/11/30 15:56:14
  • JTBC뉴스화면 캡처
[데일리한국 김종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59)씨가 청와대 핵심 비서관 등과 정기적으로 만나며 국정에 개입했다는 내용의 청와대 문건이 세계일보 보도를 통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 문건의 유출 경위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라면 박스 2개 분량의 청와대 문건이 통째로 외부로 반출됐다'는 일부 언론 보도를 놓고 진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29일 1면 톱 기사를 통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파견 근무를 했던 A 경정이 청와대에서 나오기 직전인 올해 2월 자신의 짐과 함께 문건을 라면박스 2개에 담아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관리부 정보분실에 가져다 놓자 다른 경찰관들이 이 상자에 있던 문건을 복사하고 돌려봤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정보 유출자로 지목된 A(48) 경정은 이날 언론과의 전화 통화에서 "내가 청와대 문건들을 통째로 유출했다는 보도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청와대는 이 문건이 이른바 '찌라시'에 나오는 근거 없는 풍문을 모아놓은 수준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면서도 청와대에서 만들어진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누군가가 청와대에서 만들어진 문서를 외부로 들고 나왔고, 이것이 언론사까지 흘러갔을 것이라는 데에는 이론이 없다.

현재로선 문건을 유출한 장본인은 이를 작성한 A 경정일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A 경정이 이 문건을 작성해 상부에 보고했지만 무시당하고 오히려 청와대에 파견 간 지 1년도 안 돼 좌천성 인사로 밀려나오게 되자 언론을 통해 폭로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4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 파견됐다가 올해 3월 서울의 한 경찰서 과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평소 저돌적이고 승부욕이 강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그가 문건에서 정윤회씨와 회합한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들을 중국 후한 말에 나라를 망하게 한 10명의 환관을 일컫는 '십상시'로 비유하는 거친 표현을 쓴 것은 그의 성격의 일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그만큼 이 사안을 중대한 문제로 판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조선일보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근무하다가 올해 2월 경찰로 원대 복귀한 박모 경정이 자신의 짐과 함께 문건을 라면박스 2개에 담아 청와대 밖으로 무단 반출했으며, 일부 정보 경찰들이 이를 복사·유통하는 과정에서 일부 언론사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A 경정이 문건을 청와대 외부로 가져나온 것은 맞는데, 다른 경찰관들이 빼내 돌려보다가 세계일보에까지 흘러갔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언론과 접촉을 꺼리던 A 경정은 침묵을 깨고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었다. A 경정은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내가 청와대에서 라면 박스 두 개 분량의 문건을 가지고 나왔다는 것은 완전히 엉터리"라고 말했다. A 경정은 청와대 문서를 유출했는지, 의심이 가는 문건 유출자가 있는지 등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그것은 대답할 수 없다"며 "다른 것은 묻지 말아 달라"고 말을 아꼈다. 그는 그러면서도 '논란이 일어 고생이 많았겠다'는 말에는 웃으며 "업보다"라고 대답하면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A 경정은 세계일보 보도가 나기 하루 전인 27일부터 28일까지 휴가를 냈다. 정기적인 겨울 휴가의 일환으로 2주 전에 계획했으며, 휴가계는 지난 25일 제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세계일보 보도가 나온 28일에는 기자들의 통화를 거부하면서 경찰 상부에는 "보도가 나온 경위는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서울청에 짐을 가져다 놓은 것은 사실이다. 그곳으로 발령날 줄 알고 짐을 옮겨놓았지만 서울 시내 경찰서로 배치되자 1주일 만에 도로 가져갔다고 한다. 경찰도 조선일보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당시 A 경정이 쇼핑백과 박스 한 개를 가져다 놓고 1주일 뒤 도로 가져갔다"며 "부하 직원들은 박스에 슬리퍼나 옷가지 등이 담겨 있는 줄 알았고, 부하 직원으로서 상사의 짐을 함부로 열어볼 수 없어서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정윤회씨 국정 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내부 문건 보도가 문건 유출 책임론과 심지어 '권력실세 암투설'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청와대는 일단 사태의 확산을 막는 일에 주력했다. 검찰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야권이 제기하는 `비선 실세 국정농단' 공세를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검찰 수사를 의뢰했으니 모든 내용이 그쪽에서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검찰 수사를 강조하는 것은 박 대통령 핵심 측근들이 의혹의 당사자로 대거 등장한 상황에서 야권의 공세와 각종 의혹 제기를 정면으로 받아칠 경우 청와대가 정쟁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는 부담을 고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건 작성 주체, 문건 등장 인물, 문건 유출 경위 등을 놓고 항간에서 이른바 `그림자 실세 간 권력암투설'까지 회자되는 상황이어서 청와대는 서둘러 검찰 수사 요청으로 대응 기조의 가닥을 잡았다.

실세 간 권력암투설은 문제의 문건이 작성됐을 시점에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이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과 가까운 사람으로 분류됐다는 점에 추측의 근거를 두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1994년 마약류 투약혐의로 박 회장이 기소됐을 때 수사검사였고, 이후 박 회장과 조 전 비서관은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조 전 비서관 시절 작성된 `VIP 측근(정윤회) 동향' 문건이 정윤회 씨를 겨냥한 '작품'이었을 것이라는 의심은 이런 배경에서 제기된다. 이와 함께 청와대는 문건 유출을 범죄행위로 규정하면서 차제에 문건 유출 경위도 밝혀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청와대가 문건 작성의 당사자로 알려진 A 경정을 수사의뢰한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입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박 대통령이 1일 주재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윤회 국정 개입' 문건 유출과 언론 보도 파문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밝힐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