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인 신분의식 |
박 찬 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 |
어느 시대든지 세상이 급변하면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1927년 8월 『중외일보』에는 “가련한 양반녀 자살, 상년에게 욕당하였다고 그것이 분하여서 죽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의하면, 충북 청주의 한 양반집 여자가 같은 동네의 평민 모녀에게 모욕을 당했다 하여 집에 돌아와 간수를 먹고 자살을 하였다고 한다. 양반·상놈 따지던 일, 농지개혁과 이농으로 사라져 1930년 9월 『동아일보』를 보면, “상놈 버릇 가르친다고 양반 작당폭행, 버릇 가르치다 버릇 배워, 군위에 생긴 시대착오극”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기사에 의하면, 경상북도 군위군의 한 마을에서 마을 행사 때 김씨 청년이 진모씨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고, 이때 양반인 진모씨 문중의 42명이 김씨의 태도가 불손하다 하여 ‘상놈’의 버릇을 가르친다고 작당해서 폭행하였다고 한다. 당시 일부 양반들은 자위단이나 양반계라고 하는 조직을 만들어 양반에게 대드는 평민들을 붙잡아다 린치를 가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런 일들은 양반 세력이 강했던 경상도와 충청도에서 많았다. 대한민국에 새로운 신분이 탄생하는가? 전쟁 때의 이러한 경험은 양반들로 하여금 이제는 신분의식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또 1950년대의 농지개혁을 계기로 양반층은 지주의 지위에서 내려왔고, 평민층은 소작인에서 자작농으로 계층 상승을 하였다. 양반층이 평민층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물적인 토대가 사라졌고, 평민층이 더 이상 양반층에 굽실거릴 이유가 없어졌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함께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농현상은 한국 사회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많은 사람들이 ‘신분이 드러나는 농촌’에서 ‘신분을 확인하기 어려운 도시’로 옮겨갔다. 도시로 온 이들은 더 이상 양반이니 평민이니 하는 것을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는 거꾸로 농촌에 영향을 미쳐 농촌사회에서도 점점 양반이니 평민이니 하는 것을 논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도시 거주율은 80%를 넘는다. 그 결과 오늘 한국사회에서 양반이니 평민이니 하는 것을 따지는 이는 거의 없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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