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풍경

시대착오적인 신분의식

소한마리-화절령- 2015. 2. 27. 09:59

시대착오적인 신분의식
박 찬 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

어느 시대든지 세상이 급변하면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1927년 8월 『중외일보』에는 “가련한 양반녀 자살, 상년에게 욕당하였다고 그것이 분하여서 죽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의하면, 충북 청주의 한 양반집 여자가 같은 동네의 평민 모녀에게 모욕을 당했다 하여 집에 돌아와 간수를 먹고 자살을 하였다고 한다.

같은 해 7월 『중외일보』에는 “소년이 양반 자세(藉勢)하고 70노파를 난타, 피해자는 경찰에 고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청주군 가덕면의 한 마을에서 평민 신분의 신모라는 70노파의 손자와 양반 신분의 최모라는 20대 청년의 조카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신씨의 언행이 불미했다 하여 최모 청년이 “상민의 계집이 양반에게 무슨 버릇이냐” 하면서 신씨 노파를 발로 차는 등 구타를 하였다는 내용이다.

양반·상놈 따지던 일, 농지개혁과 이농으로 사라져

1930년 9월 『동아일보』를 보면, “상놈 버릇 가르친다고 양반 작당폭행, 버릇 가르치다 버릇 배워, 군위에 생긴 시대착오극”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기사에 의하면, 경상북도 군위군의 한 마을에서 마을 행사 때 김씨 청년이 진모씨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고, 이때 양반인 진모씨 문중의 42명이 김씨의 태도가 불손하다 하여 ‘상놈’의 버릇을 가르친다고 작당해서 폭행하였다고 한다. 당시 일부 양반들은 자위단이나 양반계라고 하는 조직을 만들어 양반에게 대드는 평민들을 붙잡아다 린치를 가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런 일들은 양반 세력이 강했던 경상도와 충청도에서 많았다.

1925년 가을에는 도산서원의 재임(齋任)이 도산서원 소유 농지의 소작인 몇 사람이 소작료를 더디 낸다는 이유로 붙잡아다 형틀에 묶어놓고 매를 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안동의 풍산소작인회는 도산서원측이 소작인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전국 각지의 농민단체, 청년단체들이 도산서원에 경고문을 보냈다. 이에 도산서원의 원장과 재임이 인책 사임하였는데, 이들은 사임하면서 “양반이 농노에게 태형(笞刑)을 가함은 예사인데, 신성한 묘당(廟堂)에 소위 경고문이 내도하였음은 언어도단의 괴이한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도산서원에 대한 비판은 더 거세게 일어나 ‘도산서원 철폐운동’으로까지 확대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 당시 신분제가 제도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의식상으로는 1920년대까지도 많이 남아 있었다. 양반들 가운데에는 여전히 신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았고, 이로 인해 평민들과 갈등을 빚거나 충돌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앞의 신문기사의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시대착오적’인 일이었다.

1930년대 이후 평민층 가운데에서도 학교 교육을 받는 이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양반층과 평민층이 충돌하는 일은 더 늘어났고, 갈등은 더욱 커졌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농촌 사회에서 빚어진 여러 비극적인 학살사건 가운데에는 같은 마을 내에서 양반층과 평민층 간의 갈등이 폭발한 경우나, 이웃한 양반 마을과 평민 마을 주민들 간의 갈등이 폭발한 경우가 많았다.

대한민국에 새로운 신분이 탄생하는가?

전쟁 때의 이러한 경험은 양반들로 하여금 이제는 신분의식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또 1950년대의 농지개혁을 계기로 양반층은 지주의 지위에서 내려왔고, 평민층은 소작인에서 자작농으로 계층 상승을 하였다. 양반층이 평민층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물적인 토대가 사라졌고, 평민층이 더 이상 양반층에 굽실거릴 이유가 없어졌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함께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농현상은 한국 사회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많은 사람들이 ‘신분이 드러나는 농촌’에서 ‘신분을 확인하기 어려운 도시’로 옮겨갔다. 도시로 온 이들은 더 이상 양반이니 평민이니 하는 것을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는 거꾸로 농촌에 영향을 미쳐 농촌사회에서도 점점 양반이니 평민이니 하는 것을 논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도시 거주율은 80%를 넘는다. 그 결과 오늘 한국사회에서 양반이니 평민이니 하는 것을 따지는 이는 거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와 시대착오적인 신분의식이 되살아나는 듯한 조짐이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부를 세습하는 ‘재벌가’라는 최상층 계급이 형성되면서, 이들은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재벌가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특별한 신분의 사람들이라는 의식을 갖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작년 연말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왕조가 창건된 뒤 50년쯤 지난 뒤 ‘양반’이라는 새로운 신분이 탄생했던 것처럼,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선 지 70년 만에 새로운 신분이 탄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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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찬승

· 한양대 사학과 교수
· 현 한국구술사학회 회장

· 저서
〈한국독립운동사〉 (역사비평사)
〈마을로 간 한국전쟁〉 (돌베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1조 성립의 역사〉 (돌베개)
〈민족·민족주의〉 (소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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