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괴물' IS..'피의 전진' 막을 자 누구
한겨레 입력 2015.06.14. 20:00
[한겨레][국제 초점] IS, 칼리프 국가 선포 1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국가(IS)는 어느 때보다 강해 보인다. 그들의 '피의 전진'을 저지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가 '칼리프 국가' 건국을 선포한 지 이달로 1년이 된다. 지난 8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슬람국가 1주년을 다룬 기사의 첫머리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라크 알카에다 지부로 출발한 '이슬람국가'는 2012년까지만 해도 조직이 크게 약화됐지만, 시리아 내전의 틈새에서 급격히 힘을 키웠다. 2013년 락까 등 시리아 동북부에서 기반을 다진 뒤 지난해 6월5일 이라크 사마라를 공격해 점령하면서 대공세를 시작했다. 10일에는 이라크 제2도시 모술을 점령했다. 그 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향해 파죽지세로 진군하며 영역을 확장한 이들은 6월29일 최고지도자 아부바크르 바그다디를 칼리프(이슬람 공동체의 최고통치자)로 하는 '이슬람국가' 건국을 선포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지난해 9월부터 대대적인 공습과 무기 지원, 군사훈련 제공 등으로 이라크군을 도우며 이슬람국가 격퇴작전에 나섰지만, 이슬람국가의 기세는 꺾일 기미가 없다.
이제 이슬람국가는 시리아 국토의 절반과 이라크 국토의 3분의 1을 지배하며 1년 전보다 '영토'를 크게 넓혔다. 시리아와 이라크군은 요충지에서 패퇴를 거듭하면서 수도가 위협받는 지경에 내몰렸다. 이슬람국가는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지의 12개국에 지부를 두고 미국까지도 위협하는 존재로 급성장했다. 오는 18일 라마단(이슬람 금식월)과 29일 국가 선포 1주년을 맞아 바그다드 함락을 시도하는 대공세를 펼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미 대대적 공습에도 '파죽지세'
29일 이슬람국가 선포 1돌 맞아
바그다드 대공세 전망까지 나와
수니파 동조로 세력 키운 IS
국가모양새 갖추고 '통치' 시도
"도로·전선 고치고 음식도 줘"
공포정치 속 민심 얻기 면모도
미 기존 공습전략만으론 한계
종파분쟁 극복 '민심' 장악이 열쇠
■ 수니파 지지 업고 무능 정부군에 연전연승
이슬람국가는 지난달 두 개의 큰 승리를 거뒀다. 바그다드에서 차량으로 한시간 거리에 있는 안바르주의 주도 라마디를 장악했고 시리아의 고대 도시 팔미라를 확보했다. 미국 전쟁연구소의 연구 책임자인 제시카 루이스 맥페이트는 "이슬람국가가 여전히 성공하고 있는 이유를 물어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에 말했다. 이슬람국가가 지난달 이라크와 시리아의 주요 도시들을 장악하자 분석가들은 지난해 9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가진 미국이 그들을 섬멸하겠다고 밝힌 뒤 8개월 만에 이 무장세력이 다시 큰 승리를 거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그러나 라마디 주민들의 눈에 분명하게 보인 것은 이라크 정부군의 무능이었다. 라마디에서 이슬람국가는 지난해 6월 모술을 장악할 때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전략을 썼다. 미리 잠입한 스파이를 통해 심리전을 펼쳐 민심을 흔든 뒤 일거에 강력한 화력을 투입해 도시를 장악하는 식이다. 라마디 주민 아부 압바스는 "라마디 주민들은 모두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고, 우리는 여러 달 동안 정부군에 경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시민들에게 '이슬람국가가 배교자로부터 당신을 구하기 위해 오고 있다'는 메시지를 퍼뜨린 뒤 폭풍처럼 몰려왔다"고 회고했다. 이슬람국가의 자살폭탄 차량들이 라마디 시내로 돌진해 폭발하자 정부군들은 도망치느라 바빴다.
라마디 전투는 1년 전 사마라와 모술 함락의 '데자뷔'로 보였다. 모술을 함락시킬 당시 이슬람국가의 병력은 많아야 2000~3000명으로 추정됐다. 수만명의 이라크군이 지키고 있던 주요 도시들이 맥없이 넘어간 것은 이라크군의 자멸적 붕괴 때문이었다. 지난해 모술 전투에 참여했던 한 이라크 병사는 "우리를 버리고 달아나던 사령관의 모습이 한장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아 잊히지 않는다"고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에 말했다.
사담 후세인 시절의 수니파 군경 세력을 대거 흡수한 이슬람국가는 시아파가 주도하는 이라크 정부에 대한 수니파 부족들의 반감을 활용해 전선을 수니파와 시아파, 이슬람과 미국의 전쟁으로 몰고 갔다. 시아파인 누리 말리키 전 총리의 편향적 정치에 불만을 품은 이라크 북부의 수니파 세력이 동조하면서 이슬람국가는 급격히 세력을 확장했다. 일부 수니파 민병대들은 이슬람국가를 도왔다. 이라크 정부군의 부실은 심각했다. 모술 함락 전 이라크 정부는 140대의 공격헬기를 구입했지만, 지난해 티크리트 전투에 실제 동원된 헬기는 단 한대였다. 지난해 이라크 정부의 조사 결과 5만명의 이라크군이 장부상에만 존재하는 '유령군대'였다. 최근 라마디에서도 군경의 결근율과 유령병사 문제가 논란이 됐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대립과 갈등은 사태를 더욱 꼬이게 했다. 라마디를 둘러싼 안바르주는 이라크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수니파가 모여 사는 지역이다. 정부군도 주류는 시아파지만 수니파도 상당수 있어 통합이 쉽지 않다. 지난 3월 티크리트 탈환전의 주력은 시아파 국가인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민병대였는데, 이슬람국가는 이에 대한 반감을 이용해 수니파 부족들을 자기편으로 계속 끌어들이고 있다.
시리아도 마찬가지다. 시리아 인구의 60% 이상은 수니파다. 그러나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은 시아파 계통의 알라위파다. 시아파가 군부를 잡고 40년 이상 독재를 해온 것이 시리아 내전의 근본 원인이었다. 이란과 헤즈볼라 등이 아사드를 지원한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터키 등 수니파 아랍 국가들은 시리아와 이라크의 시아파 정부가 이란과 손잡고 득세할 가능성을 우려해 이슬람국가 격퇴에 나서는 데 소극적이다.
■ 진화하는 '칼리프 국가'
이슬람국가가 기세를 떨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점령지역에서 '통치 능력'을 발휘하며 나름대로 국가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시리아 동부의 한 지역에서 미군 특수부대는 이슬람국가의 석유와 천연가스 운영을 책임져온 온 아부 사야프를 사살했다. 하지만 미군의 목적은 이슬람국가 조직의 운영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그를 생포해 심문하는 것이었다고 <비비시> 방송은 전했다. 아부 사야프를 습격하면서 입수한 노트북과 앞서 입수한 기타 자료들이 종합되면서 이슬람국가의 조직 운영 형태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슬람국가의 목적은 한명의 지도자 아래 전 무슬림 세계를 이슬람율법(샤리아)으로 통치하는 칼리프 국가로 만드는 것이다. 이전의 이슬람 무장세력들과 다른 점은 이들이 점령지역에서 통치를 시도한다는 점이다. 일종의 관료제도도 갖췄다. 이슬람국가의 지도자 바그다디는 종교위원회와 자문위원회, 군사위원회와 안전위원회 등 4개의 위원회를 두고 있다. 지방에도 이와 유사한 위원회와 행정 기구들이 있다. 이 위원회와 행정기구는 안보, 재무, 언론, 의료, 법률 분쟁 등 모든 사무를 처리한다.
이슬람국가의 설계자로 불리는 하지 바크르(2014년 사망)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공군 정보책임자였던 경험을 토대로 점령지 통치 전략을 상세하게 만들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인 중동포럼의 아이먼 타미미 연구원은 120건에 이르는 이슬람국가 조직 문건을 분석했다. 아동 백신접종의 금지와 처벌, 어업권, 화물차 기사들이 이슬람국가 전사들을 태워야 한다는 명령에 이르기까지 이슬람국가의 상세한 정책과 규정을 담고 있는 이 문건들은 시리아와 이라크, 리비아 동부의 이슬람국가 지부들까지 광범위하게 배포된다. 타미미는 "칼리프 국가 선포 후 이슬람국가의 전 조직기구는 더 공식적이 되고 더 중앙집권화됐다"고 말했다. 그중 한 사례가 언론매체 운영이다.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이 이슬람국가에 충성을 맹세한 뒤 곧바로 다른 지역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이슬람국가를 지지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등장했고, 최근에는 많은 동영상들이 이슬람국가의 병원 및 의료시설을 선전하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최근 이슬람국가의 성장 비결로 '신앙과 전략을 결합한 공포 통치'를 꼽았다. <비비시>는 최근 이슬람국가가 장악한 지 1년이 된 이라크 모술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했는데, 이슬람국가가 고문과 처형을 일삼는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담겨 있다. 학교는 텅 비었고, 쓰레기가 거리에 널려 있고, 건설공사가 중단되는 등 일상이 붕괴됐다. 지난해 비밀리에 촬영된 영상에는 검은 천으로 얼굴과 몸을 가리고 장을 보던 한 여성이 손에 장갑을 끼지 않았다는 이유로 꾸짖는 이슬람국가 대원의 모습이 담겼다.
그러나 서방 언론과 달리 중동 언론인 <알모니터>는 지난해 이슬람국가의 주요 거점인 시리아 알레포 동부의 알밥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 인터뷰를 통해 이슬람국가의 또다른 측면을 전했다. 알밥의 한 주민은 "(다른) 반군들이 한 것이라고는 서로 훔치고 싸우는 것뿐이었지만, 이슬람국가는 도로와 전선을 고쳤고 궁핍한 이들에 음식을 줬으며, 교통경찰도 두고 학비를 받지 않고 학교도 운영한다"고 말했다. 점령지에서 민심을 얻기 위해 주민들의 일상을 돌보는 면모도 보이고 있는 것이다.
■ 민심을 누가 장악하는가
지난 1년 동안 이슬람국가의 약진은 미국 주도의 연합군에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미국이 전략전술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 관리들은 작전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붕괴한 이라크군에 대한 훈련이 계속되고 있고, 공습으로 이슬람국가가 바그다드나 쿠르드자치정부의 수도 아르빌로 진격하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첩보능력의 향상으로 공습 정확도도 높아져 올해 초 이슬람국가 지도자 바그다디에게 부상을 입히고 지도부에 타격을 주었다고도 주장한다. 미국은 지난 10일 안바르주를 탈환하기 위해 이곳에 새 군사훈련소를 설치하고 미군 450명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이들 미군은 안바르주 동부 타까둠 군사기지에 들어설 새 훈련소에서 이라크 정부군과 친정부 수니파 부족들에 대한 군사훈련과 함께 자문 및 지원 업무를 하게 된다. 미국은 현재 이라크 정부군에 대한 훈련과 더불어 친정부 수니파 부대를 육성함으로써 '반이슬람국가 동맹군'의 전력을 대폭 보강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국가가 탈취한 군사장비와 세계 각지에서 새로 모집한 신병은 전장에서의 손실보다 많다. 미국 국방부는 지금까지 미국 주도의 공습작전으로 이슬람국가의 탱크 77대와 장갑차 288대를 파괴하고 최소 6000명의 이슬람국가 무장대원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기간 약 2만2000명의 외국인 대원이 이슬람국가의 대열에 새로 합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슬람국가가 점령한 지역에서 살고 있는 많은 주민들은 "이슬람국가는 전투를 벌이기 전에 이미 절반의 승리를 거둔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무기나 병력 우위에 기초한 기존의 전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국 종파분쟁을 극복하고 어떻게 이라크와 시리아인들의 민심을 장악하느냐가 핵심적인 전선인 셈이다.
박영률 기자ylpak@hani.co.kr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국가(IS)는 어느 때보다 강해 보인다. 그들의 '피의 전진'을 저지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가 '칼리프 국가' 건국을 선포한 지 이달로 1년이 된다. 지난 8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슬람국가 1주년을 다룬 기사의 첫머리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라크 알카에다 지부로 출발한 '이슬람국가'는 2012년까지만 해도 조직이 크게 약화됐지만, 시리아 내전의 틈새에서 급격히 힘을 키웠다. 2013년 락까 등 시리아 동북부에서 기반을 다진 뒤 지난해 6월5일 이라크 사마라를 공격해 점령하면서 대공세를 시작했다. 10일에는 이라크 제2도시 모술을 점령했다. 그 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향해 파죽지세로 진군하며 영역을 확장한 이들은 6월29일 최고지도자 아부바크르 바그다디를 칼리프(이슬람 공동체의 최고통치자)로 하는 '이슬람국가' 건국을 선포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지난해 9월부터 대대적인 공습과 무기 지원, 군사훈련 제공 등으로 이라크군을 도우며 이슬람국가 격퇴작전에 나섰지만, 이슬람국가의 기세는 꺾일 기미가 없다.
미 대대적 공습에도 '파죽지세'
29일 이슬람국가 선포 1돌 맞아
바그다드 대공세 전망까지 나와
수니파 동조로 세력 키운 IS
국가모양새 갖추고 '통치' 시도
"도로·전선 고치고 음식도 줘"
공포정치 속 민심 얻기 면모도
미 기존 공습전략만으론 한계
종파분쟁 극복 '민심' 장악이 열쇠
■ 수니파 지지 업고 무능 정부군에 연전연승
이슬람국가는 지난달 두 개의 큰 승리를 거뒀다. 바그다드에서 차량으로 한시간 거리에 있는 안바르주의 주도 라마디를 장악했고 시리아의 고대 도시 팔미라를 확보했다. 미국 전쟁연구소의 연구 책임자인 제시카 루이스 맥페이트는 "이슬람국가가 여전히 성공하고 있는 이유를 물어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에 말했다. 이슬람국가가 지난달 이라크와 시리아의 주요 도시들을 장악하자 분석가들은 지난해 9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가진 미국이 그들을 섬멸하겠다고 밝힌 뒤 8개월 만에 이 무장세력이 다시 큰 승리를 거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그러나 라마디 주민들의 눈에 분명하게 보인 것은 이라크 정부군의 무능이었다. 라마디에서 이슬람국가는 지난해 6월 모술을 장악할 때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전략을 썼다. 미리 잠입한 스파이를 통해 심리전을 펼쳐 민심을 흔든 뒤 일거에 강력한 화력을 투입해 도시를 장악하는 식이다. 라마디 주민 아부 압바스는 "라마디 주민들은 모두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고, 우리는 여러 달 동안 정부군에 경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시민들에게 '이슬람국가가 배교자로부터 당신을 구하기 위해 오고 있다'는 메시지를 퍼뜨린 뒤 폭풍처럼 몰려왔다"고 회고했다. 이슬람국가의 자살폭탄 차량들이 라마디 시내로 돌진해 폭발하자 정부군들은 도망치느라 바빴다.
라마디 전투는 1년 전 사마라와 모술 함락의 '데자뷔'로 보였다. 모술을 함락시킬 당시 이슬람국가의 병력은 많아야 2000~3000명으로 추정됐다. 수만명의 이라크군이 지키고 있던 주요 도시들이 맥없이 넘어간 것은 이라크군의 자멸적 붕괴 때문이었다. 지난해 모술 전투에 참여했던 한 이라크 병사는 "우리를 버리고 달아나던 사령관의 모습이 한장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아 잊히지 않는다"고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에 말했다.
사담 후세인 시절의 수니파 군경 세력을 대거 흡수한 이슬람국가는 시아파가 주도하는 이라크 정부에 대한 수니파 부족들의 반감을 활용해 전선을 수니파와 시아파, 이슬람과 미국의 전쟁으로 몰고 갔다. 시아파인 누리 말리키 전 총리의 편향적 정치에 불만을 품은 이라크 북부의 수니파 세력이 동조하면서 이슬람국가는 급격히 세력을 확장했다. 일부 수니파 민병대들은 이슬람국가를 도왔다. 이라크 정부군의 부실은 심각했다. 모술 함락 전 이라크 정부는 140대의 공격헬기를 구입했지만, 지난해 티크리트 전투에 실제 동원된 헬기는 단 한대였다. 지난해 이라크 정부의 조사 결과 5만명의 이라크군이 장부상에만 존재하는 '유령군대'였다. 최근 라마디에서도 군경의 결근율과 유령병사 문제가 논란이 됐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대립과 갈등은 사태를 더욱 꼬이게 했다. 라마디를 둘러싼 안바르주는 이라크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수니파가 모여 사는 지역이다. 정부군도 주류는 시아파지만 수니파도 상당수 있어 통합이 쉽지 않다. 지난 3월 티크리트 탈환전의 주력은 시아파 국가인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민병대였는데, 이슬람국가는 이에 대한 반감을 이용해 수니파 부족들을 자기편으로 계속 끌어들이고 있다.
시리아도 마찬가지다. 시리아 인구의 60% 이상은 수니파다. 그러나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은 시아파 계통의 알라위파다. 시아파가 군부를 잡고 40년 이상 독재를 해온 것이 시리아 내전의 근본 원인이었다. 이란과 헤즈볼라 등이 아사드를 지원한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터키 등 수니파 아랍 국가들은 시리아와 이라크의 시아파 정부가 이란과 손잡고 득세할 가능성을 우려해 이슬람국가 격퇴에 나서는 데 소극적이다.
■ 진화하는 '칼리프 국가'
이슬람국가가 기세를 떨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점령지역에서 '통치 능력'을 발휘하며 나름대로 국가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시리아 동부의 한 지역에서 미군 특수부대는 이슬람국가의 석유와 천연가스 운영을 책임져온 온 아부 사야프를 사살했다. 하지만 미군의 목적은 이슬람국가 조직의 운영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그를 생포해 심문하는 것이었다고 <비비시> 방송은 전했다. 아부 사야프를 습격하면서 입수한 노트북과 앞서 입수한 기타 자료들이 종합되면서 이슬람국가의 조직 운영 형태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슬람국가의 목적은 한명의 지도자 아래 전 무슬림 세계를 이슬람율법(샤리아)으로 통치하는 칼리프 국가로 만드는 것이다. 이전의 이슬람 무장세력들과 다른 점은 이들이 점령지역에서 통치를 시도한다는 점이다. 일종의 관료제도도 갖췄다. 이슬람국가의 지도자 바그다디는 종교위원회와 자문위원회, 군사위원회와 안전위원회 등 4개의 위원회를 두고 있다. 지방에도 이와 유사한 위원회와 행정 기구들이 있다. 이 위원회와 행정기구는 안보, 재무, 언론, 의료, 법률 분쟁 등 모든 사무를 처리한다.
이슬람국가의 설계자로 불리는 하지 바크르(2014년 사망)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공군 정보책임자였던 경험을 토대로 점령지 통치 전략을 상세하게 만들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인 중동포럼의 아이먼 타미미 연구원은 120건에 이르는 이슬람국가 조직 문건을 분석했다. 아동 백신접종의 금지와 처벌, 어업권, 화물차 기사들이 이슬람국가 전사들을 태워야 한다는 명령에 이르기까지 이슬람국가의 상세한 정책과 규정을 담고 있는 이 문건들은 시리아와 이라크, 리비아 동부의 이슬람국가 지부들까지 광범위하게 배포된다. 타미미는 "칼리프 국가 선포 후 이슬람국가의 전 조직기구는 더 공식적이 되고 더 중앙집권화됐다"고 말했다. 그중 한 사례가 언론매체 운영이다.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이 이슬람국가에 충성을 맹세한 뒤 곧바로 다른 지역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이슬람국가를 지지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등장했고, 최근에는 많은 동영상들이 이슬람국가의 병원 및 의료시설을 선전하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최근 이슬람국가의 성장 비결로 '신앙과 전략을 결합한 공포 통치'를 꼽았다. <비비시>는 최근 이슬람국가가 장악한 지 1년이 된 이라크 모술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했는데, 이슬람국가가 고문과 처형을 일삼는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담겨 있다. 학교는 텅 비었고, 쓰레기가 거리에 널려 있고, 건설공사가 중단되는 등 일상이 붕괴됐다. 지난해 비밀리에 촬영된 영상에는 검은 천으로 얼굴과 몸을 가리고 장을 보던 한 여성이 손에 장갑을 끼지 않았다는 이유로 꾸짖는 이슬람국가 대원의 모습이 담겼다.
그러나 서방 언론과 달리 중동 언론인 <알모니터>는 지난해 이슬람국가의 주요 거점인 시리아 알레포 동부의 알밥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 인터뷰를 통해 이슬람국가의 또다른 측면을 전했다. 알밥의 한 주민은 "(다른) 반군들이 한 것이라고는 서로 훔치고 싸우는 것뿐이었지만, 이슬람국가는 도로와 전선을 고쳤고 궁핍한 이들에 음식을 줬으며, 교통경찰도 두고 학비를 받지 않고 학교도 운영한다"고 말했다. 점령지에서 민심을 얻기 위해 주민들의 일상을 돌보는 면모도 보이고 있는 것이다.
■ 민심을 누가 장악하는가
지난 1년 동안 이슬람국가의 약진은 미국 주도의 연합군에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미국이 전략전술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 관리들은 작전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붕괴한 이라크군에 대한 훈련이 계속되고 있고, 공습으로 이슬람국가가 바그다드나 쿠르드자치정부의 수도 아르빌로 진격하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첩보능력의 향상으로 공습 정확도도 높아져 올해 초 이슬람국가 지도자 바그다디에게 부상을 입히고 지도부에 타격을 주었다고도 주장한다. 미국은 지난 10일 안바르주를 탈환하기 위해 이곳에 새 군사훈련소를 설치하고 미군 450명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이들 미군은 안바르주 동부 타까둠 군사기지에 들어설 새 훈련소에서 이라크 정부군과 친정부 수니파 부족들에 대한 군사훈련과 함께 자문 및 지원 업무를 하게 된다. 미국은 현재 이라크 정부군에 대한 훈련과 더불어 친정부 수니파 부대를 육성함으로써 '반이슬람국가 동맹군'의 전력을 대폭 보강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국가가 탈취한 군사장비와 세계 각지에서 새로 모집한 신병은 전장에서의 손실보다 많다. 미국 국방부는 지금까지 미국 주도의 공습작전으로 이슬람국가의 탱크 77대와 장갑차 288대를 파괴하고 최소 6000명의 이슬람국가 무장대원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기간 약 2만2000명의 외국인 대원이 이슬람국가의 대열에 새로 합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슬람국가가 점령한 지역에서 살고 있는 많은 주민들은 "이슬람국가는 전투를 벌이기 전에 이미 절반의 승리를 거둔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무기나 병력 우위에 기초한 기존의 전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국 종파분쟁을 극복하고 어떻게 이라크와 시리아인들의 민심을 장악하느냐가 핵심적인 전선인 셈이다.
박영률 기자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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