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로시니 '윌리엄 텔(Guillaume Tell)'..역사의 매 순간 등장하는 '사과(apple)'
매경이코노미 입력 2015.07.06. 09:19 수정 2015.07.06. 09:22 사과라. 그러고 보니 참 많은 이야기와 역사가 이 작은 한 알의 사과에 담겨 있지 싶다. 사과 때문에 뉴턴은 만유인력을 떠올렸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새겨진 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건넴으로써 라이벌이던 헤라와 아테네의 미움을 사 추락하게 된다. 튜링의 죽음에 일조한 독이 든 사과는 계모가 백설공주에게 건네줘 잠에 빠지게 한 사과기도 하고.
음악에서는 어떤가? 이탈리아의 작곡가 로시니(Gioacchino Rossini)가 이 사과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 오스트리아의 압제에 맞섰던 스위스의 영웅 윌리엄 텔의 사과다. 중세 스위스인들이 오스트리아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한다는 실러의 원작에 매료된 로시니는 그의 마지막 오페라로 ‘윌리엄 텔’을 선택했다.
오스트리아의 스위스 통치 백 주년을 기념하는 날, 자기 모자에 절을 하라는 명령에 윌리엄 텔이 거절하자 통치자 게슬러는 위험한(?) 제안을 한다. 텔에게 아들 예미의 머리 위에 사과를 얹어놓고 멀리서 활을 쏴 맞히라는 것. 까딱 잘못하면 아들이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텔 자신이 죽어야 하는 상황이다. 텔은 두 대의 화살을 뽑아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에 첫 번째 화살을 명중시키고, 두 번째 화살을 게슬러의 가슴에 꽂는다.
오리지널은 5막이었으나 나중에 3막을 삭제하고 4막과 5막을 합해 3막이 된 장대한 규모의 이 작품에는 제2의 고향이 된 파리에 완전한 프랑스 오페라를 선사하고자 한 로시니의 바람이 담겨 있다. 실러의 원작을 프랑스어로 바꿔 대본작업을 한 것도 그래서다. 그랜드오페라(화려하고 대규모적인 오페라)를 즐기는 프랑스인 취향에 맞춰 유독 풍부한 볼거리, 대규모 합창단과의 앙상블, 발레, 열정적인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대거 포진시켰다.
특히 서곡은 무려 4부로 돼 있는데 ‘새벽’ ‘폭풍’ ‘목가(牧歌)’ ‘스위스 독립군의 행진’ 순으로 정경 묘사가 이어진다. 이 과정이 또 만만찮다. 그래서인가. 오늘날은 오페라 전체보다 이 서곡만 연주되는 일이 더 잦다.
윌리엄 텔 덕분에 스위스인에게 사과는 앞서 살펴본 사과들과는 또 다른 깊은 의미일 것 같다. 한 알의 사과에도 이렇듯 많은 사연과 역사, 의미가 담겨 있는데 삶의 매 순간은 대체 얼마나 헤아릴 수 없는 씨줄과 날줄들이 촘촘히 얽힐 것인가. 진심으로 겸손해지는 순간이다.
감상을 원한다면…
·CD
파바로티, 프레니, 샤이 지휘, 내셔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ecca
카바예, 게다, 가르델리 지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MI Classics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14호 (2015.07.01~07.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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