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4일, 음력 칠월 초하루, 남동구 장수동 만의골 은행나무 당제고사가 열렸다. 전날 천둥번개가 요란했지만, 당제를 지내는 날엔 더없이 맑았다. 마을 사람들을 비롯해 당제 소식을 듣고 온 200여명이 함께했다. 800살이 넘은 만의골 은행나무는 인천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12호다.
오전 11시 30분, 미리 와있던 풍물패가 흥을 돋우기 시작한다. 소래산으로, 인천대공원으로, 부천 쪽으로 지나던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늘 한자리에서 사람들을 보듬는 은행나무 주변은 금세 북적거렸다.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르자, 제주가 축문을 읽어내려갔다.
“유세차 서기 2015년 8월 14일, 음력 칠월 초하루에 인천 남동구 장수동 만의골 은행나무에서 천지신명께 고하나이다. ... 지난 한 해 동안 모두가 건강하고 온 가정이 화목하며 평온할 수 있도록 항상 보살펴 주신 천지신명 은덕에 감사드리며... 조촐한 주과포(酒果脯)를 정성을 다하여 진설하오니 부디 강림하시어 이 한 잔 술을 흠향하시옵소서. 상~ 향~ 음력 7월 초하루, 만의골 주민일동”
장수, 서창, 운연동협의회 회장인 신윤철씨는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평생에 걸쳐 당제를 본 사람이다. 그는 만의골 당제는 만의골 사람들에게 아주 특별하다고 전했다. “예전에는 무척 큰 행사였다. 십이지신기와 만장기를 들고서 거의 2박 3일 동안 마을잔치를 벌였다. 지금은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신 데다, 미신적인 개념이 있다고 해서 많이 간소해졌다. 우리 마을 은행나무는 조상들이 문화적으로 보전시켜왔다. 은행나무는 마을에서 수호신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오백년을 이어왔듯이 앞으로도 쭉 계승될 것이다.”
그는 이어 “은행나무는 자신의 씨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 같다. 가뭄이나 태풍이 와도 제자리를 지킨다. 봐라, 얼마나 웅장한가. 옛날에 이곳에는 사람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만의골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보면, 이 동네에 만호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만호 만호 하다가 만의가 됐다고 한다. 지금도 주말이면 인천대공원과 소래산 이용객이 5,000명에서 1만명 된다. 은행나무 자체가 위풍당당해서 사람들을 오게끔 하는 매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만의골은 기자가 찾기 시작한 15년 전에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음식점은 딱 두 군데뿐이었고,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밭에서 거둔 채소를 은행나무 아래 모여 다듬고 있었다. 어쩌다 나무 옆에는 누렁소도 묶여 있곤 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다. 마을 전체가 거의 음식점으로 바뀌었고, 마을길에는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지나다닌다.
신윤철씨는 변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0년 전에는 농경문화 중심이어서 자급자족하는 마을이었다. 하지만 소래산이 명산이다 보니, 주말이면 일출 관광명소가 됐다. 인천대공원도 사람이 많이 찾는다. 오히려 상업화해서 마을을 알리는 데 좋지 않나 싶다. 조용했던 마을이 많이 달라져서 힘든 점도 많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당제고사나 시산제를 지내면서 전통문화를 계승해야 한다.”
장수동에서 살고 있어서 자부심을 느낀다는 최영숙씨는 “무엇보다 800살 된 은행나무가 있는 마을에서 살고 있어 좋다. 인천대공원을 끼고 있어서 공기도 좋다. 은행나무는 영험해서 사람들의 소원이나 기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입시를 앞둔 학부모들이 나무 몇 바퀴를 돌기도 한다. 나무도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아는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유정란씨는 은행나무를 쳐다보면 마음이 숙연해진다며 나뭇가지를 올려다 보았다. “만의골 은행나무를 보러 서울에서도 많이 온다. 이게 다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애써 가꿔오고 지킨 덕분이다. 소래산과 인천대공원 사이에 있어서 오가는 발길이 많다. 당제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유씨를 따라온 경예린 양(11)은 “할머니가 가자고 해서 억지로 따라왔다. 하지만 와 보니 참 신기하다. 이렇게 큰 나무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임시공휴일인 8월 14일, 만의골 당제는 묵념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동네 어르신들이 먼저 은행나무에게 잔을 올리고, 이어 마을 사람들이 잔을 올렸다. 여러 정치인과 인근 군부대에 있는 사람들, 지나는 사람들이 품 넓은 은행나무 아래 함께했다. 만의골 은행나무 아래 모인 사람들은 소머리로 끓인 떡국을 먹으며 은행나무 이야기를 오랫동안 했다.
술잔에 술을 따르고, 절을 올리고, 술을 나무밑동에 붓고… 향내와 막걸리 냄새가 800살 된 나무 아래로 퍼진다. 술을 따르고 절을 올리는 사람들이 바뀌는 동안, 간간이 나뭇가지가 출렁인다. 후텁지근한 날씨이건만 아무도 덥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저 땀을 닦아내면서 당제를 지켜볼 뿐이다.
마을 어른들이 먼저 절을 올린다. 그다음부터는 참석한 사람이 대여섯명씩 절을 올린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하루를 꼬박 우려낸 사골국물로 끓인 떡국을 먹기 시작한다. 갓 담은 김치, 시루떡, 과일, 도라지오이무침, 잘라놓은 피망과 된장, 막걸리가 푸짐하다. “더 드세요”라며 음식을 나르는 마을 사람들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당제를 준비한 통장 신윤철씨는 “어제처럼 비가 많이 왔으면 제를 지내지 못했을 것이다. 덥지만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다. 더운 날씨에 우리 마을 대단한 잔치에 와주셔서 고맙다. 모두 맛있게 드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