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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제도, 한국에 적용하려면

소한마리-화절령- 2016. 10. 4. 18:29
기본소득제도, 한국에 적용하려면
조 영 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기본소득은 자산규모, 소득 수준, 근로 활동 여부와 상관없이 국가가 모든 시민에게 정기적으로 일정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를 말한다. 미국 알래스카 주에서는 이미 실행하고 있고 네덜란드, 핀란드에서도 특정 집단 대상의 정책실험이 진행되고 있으며 스위스에서는 국민투표에 부쳐져 부결되기도 했다. 김종인 전 대표는 올해 6월 27일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기본소득 논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후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기본소득제 논의가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기본소득이 실행되려면 재원 문제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실행한다면 예산이 얼마나 들까? 기본소득은 시민권을 전제로 개인에게 지급하는 개념이다.

월 25만 원 기본소득 지급하려면 109조 원 소요

   만일 20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한 달에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고 0세에서 19세 아동, 청소년에게는 그 절반인 25만 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단순화해서 계산하면(20세 이상 인구 3,676만 명×1년 소요예산 600만 원+19세 이하 인구 1,007만 명×1년 소요 예산 300만 원=251조 원), 1년에 약 251조 원의 재원을 필요로 한다. 기초연금과 영유아 보육료로 나가는 국비와 지방비를 합하면 2015년 약 16조 원이다. 기본소득 지급으로 기초연금과 보육료 예산 16조 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기본소득을 실시하기 위해 1년에 235조 원이 필요하다. 235조 원은 노동 관련 예산까지 포함한 2016년 중앙정부 사회복지예산 123조 원의 1.9배이고 2016년 중앙정부 총지출 예산 386조 원의 61%에 달하는 것으로 정책으로 실행하기에는 비현실적 액수다.

   기본소득을 50만 원에서 절반으로 줄여서 20세 이상 국민에게 한 달에 25만 원을, 20세 미만은 12만 5,000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소요 예산을 계산하면 125조원이 들고 기초연금과 보육료 16조 원을 빼면 109조 원이다. 109조 원은 중앙정부 사회복지예산 123조 원의 89%에 달하는 규모다.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대신 다른 사회복지 예산을 줄이면 실행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 달 25만 원의 기본소득 지급으로 건강보험과 실업급여, 국민연금 등의 사회복지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 같은 사회보험은 미래에 발생할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사회복지제도이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보장한다고 해서 쉽게 없애거나 줄일 수 있는게 아니다. 지금도 건강보험 보장률이 미덥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한 달에 수십만 원의 보험료를 민간 생명보험사에 내고 있다. 중위소득 이상을 벌던 실업자라면 실업급여 상한선 130만 원으로 인해 실업급여를 받아도 생활 안정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기본소득 제도로 다른 사회복지를 대체함으로써 복지예산을 절감하는 효과는 핀란드나 네덜란드 같은 고부담 고복지 국가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지, 한국같이 저부담 저복지 국가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얘기다. 월 25만 원 정도의 기본소득으로 한국에서 대체 가능한 사회복지는 기초연금과 보육료 지원 정도에 불과하다.

본디 저부담 저복지 국가인지라 기대효과 한계

   한국 현실에서 실행 가능한 기본소득제는 기초연금이나 청년수당, 아동수당처럼 특정 연령 계층에 한정해서 지급하는 방식이다.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는 며칠 전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한국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압착” 플랜 중 하나로 아동(0~5살), 청년(19~24살), 노인(65살 이상) 기본소득제를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기본소득을 얼마로 할 것인지를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동(0~5살), 청년(19~24살)과 노인(65살 이상)에게 월 25만 원을 지급한다고 가정하고 계산하면 40조 원이 필요하고, 기초연금과 보육료 예산 16조 원을 빼면 24조 원이 든다. 25만 원이 아니라 50만 원으로 올리면 소요 재원은 64조 원이 드는 것으로 나온다.

   현재의 조세부담률 수준 18%를 부자 감세 이전 수준(2007년 19.6%)으로 1.6%p 올리면 연간 약 25조 원의 추가 세입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24조원 정도 드는 기본소득제라면 국민적 합의와 증세 같은 재원조달 방안만 마련되면 한국에서도 실행 가능하다.

   물론 이 정도의 기본소득 지급으로 심 대표가 기대하듯이 저출산 문제 해결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의문이지만, “가난한 청년들에게 귀중한 시간과 기회를 제공할 것이고” “내수와 중산층을 살려서 장기침체에 빠진 한국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또한 아동수당 같은 단순한 정책이 전업주부, 맞벌이 부부, 어린이집, 유치원 등 이해 상충이 얽힌 영유아 보육료 지원사업보다 더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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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영철

·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 전 국회예산정책처 사업평가국장

· 저서
〈금융세계화와 한국경제의 진로〉, 후마니타스
〈미국식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적 대안〉,당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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