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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목적어가 없네

소한마리-화절령- 2018. 7. 20. 08:53
이번에는 목적어가 없네
강 명 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오늘은 자유한국당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그런데 정치 이야기는 아니니 안심하시기 바란다. 괜히 정치 이야기를 꺼냈다가 나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분들의 나무람이 있을까 봐 미리 해 두는 이야기다. 이건 자유한국당 이야기지만, 분명히, 결코, 절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어 문법에 관한 사소한 이야기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하나의 문장은 주어와 서술어로 구성된다. 주어만의 문장, 서술어만의 문장은 있을 수 없다. 물론 실제 말을 할 때 주어 또는 서술어가 없는 문장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경우는 주어 또는 서술어가 생략된 것이다. 대학에서 처음 한문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문법을 가르치면서 늘 강조하는 것이 생략이다. “주어가 보이지 않는다 해서 주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생략된 것이니, 생략된 주어를 찾아야 한다.” 술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술어가 타동사라면 목적어를 갖는다. 타동사를 사용했는데 목적어가 보이지 않는다면, 역시 생략된 것이다.

   이것이 상식인데도 아주 드물게 주어나 목적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보았다(생략된 경우가 결코 아니다!). 예컨대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과거 한나라당의 아무 정치인은 어떤 특정한 문장에 ‘주어가 없다’고 말하여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바 있다. 이것은 다 아는 사실이기에 더 말하지 않겠다. 그 뒤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촛불혁명 이후에는 자유한국당으로 또 한 번 개명을 하였다. 당명을 바꾼다 해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말이다.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참패하였다. 이틀 뒤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난데없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걸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나는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는 문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겨우 하루 밤낮을 지내고 일대 회오(悔悟)를 일으켰다는 것도 놀랍거니와, 이 문장 자체도 말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전에는 주어 없는 문장이라고 강변하더니, 이번에는 아예 목적어가 없는 문장을 태연히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못하다’는 말은 타동사다. 국어사전을 보면, ‘수술을 잘못하다’ ‘셈을 잘못하다’ 등의 예문이 나와 있다. 그러니 이 문장에도 당연히 목적어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사과해 본들, 정작 국민은 그들이 무엇을 사과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잘못했다며 용서를 바라고 있지만,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밝히지 않고 있으니, 용서를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주어와 목적어 같은 문장의 필수 성분을 밝히는 일이 이처럼 중요한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래서 자유한국당의 사과 퍼포먼스는 정치 문제가 아니라, 한국어 문법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주어와 목적어를 분명히 해야

   자유한국당은 정당이고 사과를 한 사람들은 모두 국회의원이다. 따라서 그들이 잘못한 일은 정치적 일이거나 국회의원으로서의 일이다. 곧 무능한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만든다든가, 그를 옹호한다거나, 비리를 저지르거나, 국민들을 위한 법을 만들지 않거나, 국민들을 위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일일 것이다. 아주 기본적인 것만 떠올려 보아도 이렇다. 그러니 ‘잘못했다’는 사과문을 담은 플래카드에 다 쓸 수가 없다면, 어떤 일들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적어서 적어도 A4용지로 열 장쯤 적어서 따로 발표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란 목적어가 없는 문장을 온전한 문장으로 만드는 길이다.

   정치인들은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다. 국민들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당연히 품위 있고 정확한 한국어를 사용해야 한다. 아무리 주어 없는 문장(주어가 생략된 문장이 아니다!)을 내뱉고 싶다고, 목적어를 말하기 싫다고 하더라도 그래서는 안 된다. 배우는 학생들이 본받을까 걱정된다. 자유한국당은 곧 비상대책위원장을 뽑을 것이라 한다. 나는 누가 비상대책위원장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다만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시는 분은 무엇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기본적인 한국어 문법부터 가르치셨으면 한다. 아울러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란 문장의 목적어부터 소상히 밝혀주셨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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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강 명 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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