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이 말라카에서 서양인을 만났다면? |
노 관 범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부교수) |
해방 후 김성칠이 지은 역사책 『조선역사』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재미있는 문화사이다. 『내 인생의 책들』에는 이 책에 얽힌 시인 신경림의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퇴근한 아버지가 들고 온 이 책을 밤새 읽었던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은 마저 다 읽으려고 이 책을 학교에까지 갖고 갔고, 교장 선생님 도덕 수업 시간에 몰래 읽다가 그만 적발되어 창피를 당했는데, 그 후 책 잘 읽는 아이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사실 이 책에는 지은이의 번뜩이는 상상력이 펄럭이는 곳이 적지 않은데 이를테면 신라 장보고의 청해진 이야기가 그렇다. 장보고의 죽음과 청해진의 혁파에서 이야기를 끝내는 대신 그는 청해진의 남은 무리가 멀리 동남아로 흘러가 그 후손들이 뱃사람으로 살아갔을 장면을 상상한다. 신라인의 후예들이 오랫동안 뱃사람으로 살다가 말라카에서 영국 매카트니 사절단과 만나는 장면도 상상해 본다. 실제 서양인이 동남아에서 코레아 사람들을 만났을까? 대항해시대 포르투갈 사람들은 곧잘 남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고레스를 만났다는 기록들을 남겼다 한다. 그들은 고레스가 중국인, 일본인, 류큐인과 다르다고 인식했는데 고레스가 코레아 사람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서양 사람들, 임진왜란 전후 코레아에 관심 서양 사람들은 적어도 1540년대 이후에는 코레아를 명확히 알았을 것으로 보인다. 예수회 신부 자비에르는 1547년 말라카에서 일본인 아지로를 만나 코레아 이야기를 들었고, 이듬해 코스메 데 토레스는 일본이 코레아와 무역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스파 빌렐라는 1566년 조선에 천주교를 선교하기 위해 일본에서 출발하려 했으나 길이 차단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빌렐라는 조선 사람들이 사자와 호랑이 사냥을 즐기는 수렵 민족이라고 생각했고 조선에서 시작해 타타르를 지나면 독일의 고지대에 도착한다는 환상적인 생각을 품었다. 도밍고 몬테이로는 1578년 마카오-나가사키 항해 도중 태풍을 만나 조선의 남해안 가까이 표류한 적이 있었다. 이 때 동행한 신부 안토니오 프레네스티노는 코레아는 야만적이고 적대적인 사람들이며 이전에 포르투갈 배가 해안에 정박하려 하자 배와 뱃짐을 모두 빼앗아 버렸다고 편지에 적었다. 네덜란드 상인, 병자호란 이후 조선 정세를 보고 병자호란 직후 일본 무역관의 네덜란드 상인은 조선 정세를 분석한 본격적인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조선이 외국인을 배척하고 있고 일본 사쯔마 영주의 방해 공작 때문에 조선 왕국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무역 협정 체결은 쉽지 않다고 보았다. 또, 임진왜란에 대해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7년 동안 끔찍한 살육과 방화를 일삼았으며 인간으로서 상상도 못 할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고 기록했다. 병자호란에 대해 타타르족도 조선 왕국과 경계를 이루는 바다가 얼어붙는 겨울철에 쳐들어와 사람, 가축, 그리고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마구 약탈했다고 기록했다. 조선의 열악한 상황을 배경으로 서양인 최초의 본격적인 정세 분석 보고서가 제출된 것은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하멜 사건을 배경으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조선에 대한 통상을 추진, 코레아 호를 건조해 자바섬의 바타비야로 보냈으나 조선과의 무역을 권장하기 어렵고 중국과 일본에서의 불리한 여론이 우려된다는 현지의 반대에 부딪혀 코레아 호의 코레아 출항은 1671년 결국 무산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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