鼈岩家禮
[序]
“제사는 돌아가신 부모를 추모하며 효를 계속하기 위하여 행하는 것으로, 제사를 통하여 옛날 일과 선조의 일을 돌이켜
봄으로써 자신들이 존재하게 된 근원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 禮記
우리 집안의 가례는 조상에 대한 도의와 가족 윤리를 지키기 위해 정성을 다해 온 조상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그 모습이 다소 달라지긴 했으나 조상에 대한 차례와 제사가 끊임없이 이어져 온 것은 우리 집안
사람들이 자기의 뿌리를 잊지 않고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마음때문이었다.
사회가 발전하고 세대가 바뀌면서 전통 문화의 양상도 불가피하게 변하는 법이지만, 그
근본적인 정신과 법도는 세대와 세대를 넘어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의 전통과 문화의 연장선에서 우리의 가례를 지키고 계승하는
것은 우리 집안 모든 사람들의 기본적인 의무라고 할 것이다.
우리가 지켜 나가고 있는 조상을 섬기는 이 아름다운 전통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 행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훌륭한 관습이라고 자부한다.
우리의 <별암가례>는 효를 실천하는 행위로서 한국인이 전통적으로 중요시했던
삶의 가치를 기초로 하고 있다. 명절과 제사를 계기로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경건한 자세로 조상을 생각하며 가족의 일체감을 확인하는 일은,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갈 힘을 얻는 동시에 우리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가다듬는 계기가 될 것이다.
[1장]
별암절
이런 생각으로 성인들도 “제사라는 것은 너무 자주 할 일이 못된다. 정성을 다해 성의껏 해야 한다. 너무 자주 하게 되면
번잡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그 뜻을 잃게 된다”고 하였다. 우리 집안에서도 바쁜 일상 생활을 핑계로 기제사가 소홀히 취급되고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점차 퇴색되는 문제가 나타났다. 이런 현실을 바로잡고 자손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며 집안 구성원으로서 일체감을 도모하고자, 우리 집안에서는 설 명절
및 추석 명절과는 별도로 매년 5월 어버이날에 가까운 토요일을 집안의 명절 ‘별암절(鼈岩節)’로 정하여 지키기로 하였다. 일년의 기제사를 합동으로 모시게 되는
‘별암절’에는 온 집안 사람들이 예외 없이 모여 부모님과 조상의 은덕을 생각하며 정성껏 제사를 올리고 함께 화목한 시간을 보낸다. ‘별암절’은 장수(長水) 황가의 23세손이신 아버지 황중연(黃重淵)의 아호(雅號)를 따라 만든 이름이다.
[2장] 차례
차례는 차(茶)를 올리면서 드리는 예(禮)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제수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차를 꼽았으나, 차 대신 술과 숭늉을 쓰는 풍속으로 바뀌었다. 차례는 조상에게 달과 계절, 해가 바뀌고 찾아옴을
알리고, 새로 나는 음식을 먼저 올리는 의례이다.
설 차례는 해가 바뀌는 새해에 처음으로 음식을 올리는 의례이고,
추석차례는 농사를 지어 새로 나는 음식을 올리면서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의례이다.
그리고 기제사와는 달리 설과 추석 차례는 4대 조상을 함께
모신다. 사당이 따로 있다면 사당에서 위패를 모시고 차례를 올리는 것이 마땅하나 우리 집안에서는 거실이나 안방에서 병풍을 치고 지방을 써서
차례를 지내왔다. 차례의 절차는 지방과 가문에 따라 약간씩 차이를 보이나 축문 없이 한 잔만 올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지내는 것이
보편적이다.
1. 설
우리 집안은 전통적으로 음력설에 차례를 올린다. 설날이 되면
아침 일찍 일어나 설빔으로 갈아입고 집안의 웃어른에게 세배를 드리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차례가 끝나면 온 가족이 세찬(歲饌)을 먹는데
이는 음복(飮福), 곧 복이 담긴 음식을 먹는 것이다. 세찬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가래떡을 썰어 넣고 끓인 떡국이다. 떡국을 먹어야만 비로소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생각해 왔다. 차례를 지낼 때는 조상을 위하여 전통적으로 붉은 색 재료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밖에 인절미 빈대떡
강정류 식혜 수정과 등도 세찬으로 장만한다. 술은 청주를 쓰고 차례를 지낸 후 가족들이 함께 마신다. 차례를 지내고 난 뒤 친척 및 가까운
이웃어른들에게도 세배하러 간다. 세배를 할 때 덕담이 오가는데 아랫사람은 나이 드신 분에게 만수무강을 빌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그에 적절한
덕담을 한다.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주기도 한다.
1) 상차림
새해에는 떡국으로 차례상을 차린다. 우리가 집에서 떡국을 먹을 때에는 밥과 국 등은 함께 먹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반찬도 최소한으로만 내놓는다. 설날 차례상을 차리는 것도 우리가 먹는 밥상을 준비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 따라서 새해에 떡국을
올리는 차례상은 술 ∙ 떡국 ∙ 포 ∙ 적 ∙ 전 ∙ 물김치 ∙ 과일로 간단히 차린다. 떡국 대신에 밥(메)을 올리는 경우는 국(갱) ∙ 탕 ∙ 국수 등을 함께 차리기도 한다. 물론 떡국과 함께 탕도 준비하고, 적도 여러 가지로 많이 마련할 수도 있다. 과일도 대추, 밤,
배, 감 등 네 가지만 할 수도 있지만, 얼마든지 많이 할 수 있으며, 과일의 수를 간략히 하고 유과류를 많이 할 수도
있다.
시접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담은 그릇인데, 왼쪽 끝에 놓는다. 숟가락과 젓가락은 한 분의 제사를 모시면 한 벌, 두 분의
제사를 모시면 두 벌 등 모시는 조상의 수에 맞추면 된다. 술과 떡국의 수도 모시는 조상의 수에 맞추면
된다.
포는
북어 ∙ 상어포 ∙ 대구포 ∙ 문어포 ∙ 오징어포 ∙ 육포 등 말린 생선이나 고기를 사용한다. 제물을 많이
준비하고자 한다면 대구포(북어, 상어포) 위에 오징어포 ∙ 문어포 ∙ 육포 등을 얹기도
한다.
적은
어육(魚肉)이나 채소 따위를 양념하여 대꼬챙이에 꿰어 굽거나 지진 것이고, 전은 재료를 얇게 썰어 밀가루와 달걀을
묻혀 기름에 지진 음식의 총칭이다. 적과 전은 함께 담아서 사용하기도 하고, 각각 담아내기도 한다. 우(羽) ∙ 모(毛) ∙ 린(鱗)이라 하여
제일 위에 닭고기(계적), 가운데 육류(육적), 맨 아래 어물(어적)을 놓는다. 가장 중요한 제수이므로 적전중앙(炙奠中央)이라 하여 제상의 한
가운데에 놓고 그 좌우에 어육을 차린다. 어육은 어류와 육류를 재료로 하여 전을 붙이기도 하고 회를 놓기도 한다. 전으로는 부추전, 파전,
고구마전 등을 사용한다.
간장을
올리는 것은 음식을 먹을 때, 간이 맞지 않으면 알아서 간을 해서 드시라는 의미이다. 간장 외에 초장 ∙ 소금 ∙
생강초 등을 올릴 수도 있다. 간장은 보통 생략하기도 한다.
김치는
고춧가루나 마늘 등의 양념을 넣지 않은 물김치를 사용한다.
과일
열에는 과일과 유과류를 올린다. 늘 쓰던 과일이지만 그 해의 작황이 좋지 않다면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다른 과일로
대체할 수 있다.
2) 절차
① 진설
진설은 제사상을 차린다는 말이다. 그러고 나면 지방을 붙이고 함께 도열해
선다.
② 강신 ∙ 참신
먼저 제주가 향안 앞에 꿇어앉아 분향(焚香)하고 술을 따른다.
고위(考位,
돌아가신 아버지와 그 이상의 각 대 할아버지의 위)의 잔을 내려 술병을 들고 잔에 술을 따른다.
술을 모사(茅沙,)에 붓고 일어나
재배한다. 모사란 제사를 지낼 때, 그릇에 담은 모래와 거기에 꽂는 띠의 묶음을 말한다. 강신(降神)할 때, 띠의 묶음 위에 술을 따르게 되나
그냥 사발을 사용할 수도 있다. 제관 일동은 두 번 절한다.
③ 헌작
고위의 잔을 내려 술병을 들어 술을 따르고 지방 앞에 놓는다.
떡국의 뚜껑을 열고, 시접 위에 놓여 있는
숟가락을 들어 떡국 그릇 위에 걸쳐 놓는다.
다음에 같은 방법으로 비위(妣位, 돌아가신 어머니와 그 이상의 각대 할머니의 위)에 잔을
올린다.
축문 낭독 없이 단헌(單獻)으로 헌작 의례가
끝난다.
④ 유식
참석자는 모두 함께 부복(俯伏), 즉 고개를 숙이고
엎드린다.
⑤ 사신
수저를 내리고 떡국 그릇의 뚜껑을 덮고 제자리에 선다.
참석자 일동은 재배함으로써 예를 마친다.
잔을
내려 술을 비우고 철상하는데, 제수를 소반에 옮겨 담아 음복한다.
2. 추석
추석차례는 설차례와 마찬가지로 밥(메) ∙ 탕 ∙ 생선 ∙ 고기 ∙ 포 ∙ 떡 ∙ 삼색 과일 등을 제물로 차리는데, 햇곡으로 이를 장만한다. 특히 추석에는 송편을 빚어 올린다. 아침에 차례를 마치고 나면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식사를 마치고 성묘를 간다. 벌초는 추석보다 이른 시기인 7월 혹은 8월에 마치는데 형편에 따라 차례 후에 성묘를 가서
벌초를 하기도 한다. 아예 산소에 가서 차례를 지낼 수도 있다. 추석날은 온가족이 흥겨운 놀이로 신명나게 논다.
1) 상차림
추석차례는 가을에 곡식이 무르익고, 과일이 맛있게 익을 무렵에 조상께 햇곡을 선보이는 제사다.
여기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햇곡으로 만든 송편이다. 우리가 떡을 먹을 때 밥, 국 등을 함께 먹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듯이 추석
차례상을 차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형편에 따라서 송편과 함께 술 ∙ 밥 ∙ 국 ∙ 포 ∙ 적 ∙ 전 ∙ 과일 등을 차릴 수도 있고, 밥 ∙ 국 등을 생략하고 술 ∙ 송편 ∙ 포 ∙ 적 ∙ 전 ∙ 과일 등만 간단히 준비할 수도 있다.
밥은
집에서 먹는 방식대로 지으면 되는데, 추석차례에는 햅쌀에 햇콩이나 햇밤 등을 넣기도
한다.
송편은
대체로 팥 ∙ 콩 ∙ 대추 ∙ 밤 등을 넣고
빚는다.
국으로는
미역국∙ 콩나물국∙ 무국 등을 사용하기도 하고, 탕을 끓인 다음에 국물만 취해서 국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꿀을
놓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꿀을 ‘편청’이라고 한다. 우리가 떡을 먹을 때 가끔씩 꿀에 찍어먹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이해하면 쉽다. 이 또한 간장처럼 생략할 수 있다.
2) 절차
① 진설
진설은 제사상을 차린다는 말이다. 그러고 나면 지방을 붙이고 함께 도열해
선다.
② 강신 ∙ 참신
먼저 제주가 향안 앞에 꿇어앉아 분향(焚香)하고 술을 따른다.
고위(考位,
돌아가신 아버지와 그 이상의 각 대 할아버지의 위)의 잔을 내려 술병을 들고 잔에 술을 따른다.
술을 모사(茅沙,)에 붓고 일어나
재배한다. 모사란 제사를 지낼 때, 그릇에 담은 모래와 거기에 꽂는 띠의 묶음을 말한다. 강신(降神)할 때, 띠의 묶음 위에 술을 따르게 되나
그냥 사발을 사용할 수도 있다. 참석자 일동은 두 번 절한다.
③ 헌작
고위의 잔을 내려 술병을 들어 술을 따르고 지방 앞에 놓는다.
떡국의 뚜껑을 열고, 시접 위에 놓여 있는
숟가락을 들어 떡국 그릇 위에 걸쳐 놓는다.
다음에 같은 방법으로 비위(妣位, 돌아가신 어머니와 그 이상의 각대 할머니의 위)에 잔을
올린다.
축문 낭독 없이 단헌(單獻)으로 헌작 의례가
끝난다.
④ 유식
참석자는 모두 함께 부복(俯伏), 즉 고개를 숙이고
엎드린다.
⑤ 사신
수저를 내리고 떡국 그릇의 뚜껑을 덮고 제자리에 선다.
참석자 일동은 재배함으로써 예를 마친다.
잔을
내려 술을 비우고 철상하는데, 제수를 소반에 옮겨 담아 음복한다.
[3장] 제사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께 음식을 장만하여 추모하는 의식이다.
대표적인 제사가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기제사인데 역사적으로 많은 변천을 겪으면서 내려왔다. 고려 때는 3품 이상은 증조부까지 3대, 6품 이상은
조부모까지 2대, 7품관 이하 서민들은 부모까지만 제사지내라고 하였다. 조선조 경국대전에서는 3품관 이상은 고조부까지 4대 봉사, 6품관 이상은
증조부까지 3대 봉사, 7품관 이하 선비들은 조부모까지 2대 봉사를 하고, 기타 서민들은 부모만 제사지내라고 했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
신분제도가 붕괴되면서 모두가 고조부모까지 4대 봉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 집안은 전통적으로 4대 봉사를 한다.
제사 시간은 자시(子時: 밤 11~1시 사이)에 지내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그러나 상황이 허락하지 않으면 초저녁 제사도 가능하다. 초저녁 제사는 시간과 잠자리의 불편 등 편의에 의한 것이다. 제사는 정성과
공경을 담은 것이라야 한다.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모르되 지내려면 정성을 다해야 함은 우리가 손님을 모셔 놓고 성의를 다해 대접해야 함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조상숭배는 자기 존재에 대한 보은이기 때문에 종교에 구애되지도 않으며, 미신도 아니다. 그리고 제사는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담은 것이라야 한다.
1. 기일
할아버지(黃義植) – 음력 4월 6일
할머니(羅州羅氏) – 음력 1월 14일
증조할아버지(黃基龍) – 음력 2월 5일
증조할머니(寧越嚴氏) – 음력 8월 23일
고조할아버지(黃官周) – 음력 2월 25일
고조할머니(仁東張氏) – 음력 5월 23일
2.
상차림
상차림의
기본은 밥, 국, 술, 떡, 국수, 탕, 적(육적, 어적, 계적으로 우羽, 모毛, 린鱗의 순), 전, 포,
나물(채소), 김치, 과일이다. 우암 송시열 선생은 “고인이 평소에 즐겼던 음식이면 예에 어긋나지 않는 한 어떤 음식이든 정성을 들여 올리면 무방하다”고 했다. 제사음식은 가짓수나 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제사를 지내는 이의 정성이 앞서야 한다.
제수에는 마늘, 고춧가루, 파 등은 사용하지 않는다.
조상의 제사를 모실 때 돌아가신 한 분 만을 모시면 단설이라 하고 그 배우자와 함께 모시면 합설이라 한다. 예서에서도 주자의『가례』에는 단설로, 정자의『제례』에는 합설로 나와 있어 그 이론적 근거를 달리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지방과 가문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여 많은 논란이 되어 왔다. 기제사는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이므로 이론상으로는 기일에 해당하는 한 분만 모시는
것이 올바른 예로 되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예의 근본은 인정에 있다 하여 두 분을 함께 모시는 합설로 지내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합설을
할 때는 밥∙국∙술은 내외분 것을 각각 마련하고 나머지는 함께 차린다. 우리 집안은 전통적으로 합설로 지내왔다.
술은 밥과 국의 사이에 두기도 하고, 밥 옆이나 국 옆에 진설하기도 한다.
국수는 진설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조상 중에 생전에 국수를 좋아하신 분이 계실 때에는 특별히 국수를 올리는 것이
좋다.
적으로는 조기를 찜하거나 구이를 해서 쓴다.
탕은 무∙두부∙쇠고기∙닭고기∙생선∙조개 등을 한꺼번에 끓여서 따로 담아서 쓰기도 하고, 모두 한 그릇에 담아서 사용하기도 한다.
단설이냐 합설이냐에 따라서도 탕의 수가 달라진다.
나물로는 도라지 ∙ 고사리 ∙ 콩나물 ∙ 무나물 등을 사용하며, 이 밖에 산나물 ∙ 호박고지 ∙ 박고지 등 계절에 맞는 재료를 사용할 수도 있다. 나물은 각각의 그릇에 따로 담을 수도
있고, 혹은 나물 전체를 그릇하나에 조금씩 담아내기도 한다.
진설하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반서갱동
밥은 서쪽, 국은 동쪽에 놓는다. 지방을 기준으로 볼 때 밥은
오른쪽, 국은 왼쪽이 되어서 산 사람과 반대의 위치이다. 음양의 원리에 따라 사후세계는 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어동육서
생선은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
놓는다.
두동미서
생선의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으로 위치하게 한다.
적전중앙
적은 술을 드릴 때마다 올리는 특식으로 제상의 가장 중심이 되는 자리에 올린다.
좌포우혜
포는 왼쪽, 생선이나 젓갈류는 오른쪽에
차린다.
홍동백서
과일의 종류로는 대추 ∙ 밤 ∙ 배 ∙ 감 네 가지를 기본으로 하여 계절에 따라 시과를 적절히 더한다. 과일을 놓는 순서는 지방과 가문에 따라 이견이 있으나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조율이시
대추 ∙ 밤 ∙ 배 ∙ 감의 순으로 놓는다.
3. 절차
① 강신(降神)
제주가 분향하고 모사에 술을 부은 다음 제관 일동 두 번
절한다.
② 초헌(初獻)
고인에게 첫 번째 잔을 올리는 절차. 이 때의 제관은 집안의 종손이나 장남이다.
술잔을 채워
향불 위를 거쳐 신위 앞에 술잔을 올린 후, 두 번 절한다.
③ 독축(讀祝)
초헌이 끝나면 제관 일동 부복한 후 축관이 축문을
읽는다.
④ 아헌(亞獻)
아헌은 초헌과 같은 절차로 잔을 올린 후 두 번 절한다.
아헌관은 제사 전에 정해진 사람이나
제사를 지내면서 제주(祭主)가 지정하는 사람이 올린다.
⑤ 종헌(終獻)
아헌과 동일하다.
⑥ 삽시(揷匙)
제수를 드시라는 의미에서 숟가락을 밥에 꽂고 제관 일동 부복한다.
⑦ 헌다(獻茶)
숭늉
혹은 냉수를 국과 바꾸어 놓고 숟가락으로 밥을 조금씩 세 번 떠서 물그릇에 만 다음, 젓가락을 고기 위로 옮긴다.
물그릇 위에 가지런히
놓고, 잠시 부복하고 있다가 일어선다.
⑧ 사신(辭神)
제사가 마쳤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제관 일동 일제히 신위 앞에 두 번
절한다.
⑨ 철상(撤床)
지방을 거두어 축문과 함께 불사르고 제사상을 물린다.
⑩ 음복(飮福)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끼리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음복은 조상님들의 내려주는 복을 받는다는 의미가
있다.
[4장] 지방과 축문
1. 지방
지방은 신주(神主)를 모시고 있지 않는 집안에서 차례나 기제사 때에 종이에 써서 모시는 신위를 말한다. 우리 집안에서는 보통
지방(紙榜)을 써서 설위한다.
합설인 경우 고위(考位)를 좌측에, 비위(妣位)를 우측에 쓴다.
지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顯 |
顯 |
고위(考位)를 쓸 때, 관직이 있으면 ‘學生’대신에 해당
관직명을 쓰지만, ‘顯考學生府君神位’라고 적어도 무방하다.
비위(妣位)는 ‘안동 김씨’처럼 본관과 성씨를
기입한다.
2. 축문
축문은 신위께 제사를 올리게 된 사유를 고하는 내용으로 제사의 핵심이며 정점부분이다. 축문은 다음과 같이 쓴다.
사례1
년 월
일 아버님(또는 어머님, 할아버님, 할머님) 신위 전에 삼가 고합니다. 아버님(또는 어머님,
할아버님, 할머님)께서 돌아가신 날이 돌아오니 사모의 정을 금할 수 가 없습니다. 이에 간소한 제수를 드리오니 강림하시어
흠향하소서. |
사례2
아무 해 아무 날, 누구(종자 또는 종손의 이름)의 아버님(또는 어머님) 기일입니다.
저희 자손들은 늘 은덕을 생각하고, 이 날을 맞아 추모의 정을 잊을 수가 없어 이에 정성을 담은 음식을 마련해 올립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는 참석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이는 딸을 두었습니다(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좋은 일도 있고 궂은 일도
있으나 아버님의 혼령께서 저희 자손을 늘 음우(陰佑)하여 주시고 이끌어주시옵소서. 마음을 푹 놓으시고 저희 자손들을 굽어보시며
흠향하소서. |
사례3
維歲次 丙戊 八月 癸巳朔 初三日 辛巳
孝子 重淵
敢昭告于 顯考學生府君 顯妣孺人羅州羅氏 歲序遷易 顯考學生府君 諱日復臨 追遠感時 昊天罔極 謹以淸酌庶羞 恭伸奠獻 尙饗 |
▶ 내용은 아버지의 기일을 맞이하여 하늘과 같이 끝없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조촐한 음식을 차려 드리오니 흠향하시라는
뜻이다.
▶ 조부모의 제사일 경우에는‘孝子’⇒‘孝孫’, ‘顯考’⇒‘顯祖考’,
‘顯妣’⇒‘顯祖妣’‘昊天罔極’⇒‘不勝永慕’로 바뀐다.
[5장] 용어집
- 갱羹 : 국
- 계독啓櫝 : 신주 독을 여는 것
- 계문啓門 : 문을 연다.
- 계반개啓飯蓋 : 밥뚜껑을 연다.
- 과果 : 대추, 밤, 배, 감, 사과 및 약과 다식 등
- 관우모상灌于茅上 : 띠 위에 부음
- 납주納主 : 신주를 사당 원 위치에 모심
- 독축讀祝 : 축을 읽음
- 메飯 : 밥
- 면麪 : 국수
- 면기麪器 : 국수 담는 그릇
- 모사기茅沙器 : 모래를 담고 띠 한 줌을 잘라서 묶어세운 그릇
- 미米 : 편, 미식
- 반갱기飯羹器 : 밥그릇과 국그릇으로 덮개가 있어야 함
- 병풍屛風 : 바람을 막거나 무엇을 가리거나 또는 장식용으로 방 안에 치는 물건으로 제사상에 둘러 세운다. 신주가
없다면 지방을 붙일 수 있는 벽면이나 책 등도 괜찮다.
- 분축문焚祝文 : 축문을 불사름
- 분향焚香 : 향을 사름
- 불철주不撤酒 : 술을 제상에서 내리지 않음
- 사신辭神 : 신을 보냄(재배하고 지방과 축을 불사른다)
- 삼제三祭 : 세 번 붓는다
- 소경少傾 : 조금 기울여 쏟음
- 삽시정저揷匙正箸 : 숟가락을 메 한가운데 꽂고 젓가락을 적틀 위에
얹음.
- 숙채熟菜 : 익힌 나물(도라지 고사리 콩나물 무나물 박고지 산나물
등)
- 시저匙箸 : 숟가락과 젓가락
- 시접匙楪 : 수저를 담는 그릇
- 신주神主 : 죽은 이의 위패位牌 (신주가 없으면 지방으로
대체한다.)
- 신주함神主函 : 죽은 이의 위패를 모시는 함
- 유식侑食 : 신에게 제사상의 음식을 드시도록 함 (제주가 종헌이 드린 잔에 술을 채우고 숟가락을 메 위에 꽂고
젓가락을 국그릇 위에 올려놓은 다음, 제관들이 밖에 나가 잠시 부복하고 기다림)
- 잔반盞盤 : 받침대에 받친 술잔
- 재배再拜 : 두 번 절함
- 적炙 : 어육魚肉이나 채소 따위를 양념하여 대꼬챙이에 꿰어 굽거나 지진 것.
- 전煎 : 재료를 얇게 썰어 밀가루와 달걀을 묻혀 기름에 지진
음식
- 전작奠爵 : 잔을 드림
- 제상祭床 : 제사상(제사음식을 차리는 상)
- 제수祭需 : 조리된 제사음식
- 제주祭酒 : 제사에 쓰는 맑은 술(소주는 쓰지 않음)
- 제지모상祭之茅上 : 띠 위에 세 번 조금씩 부음
- 주인이하재배主人以下再拜 : 주인(제주) 이하 모두 두 번 절함
- 주전자酒煎子 : 술병을 사용할 경우에는 필요하지 않다.
- 지방紙榜 : 종잇조각에 지방문을 써서 만든 신주神主
- 진다進茶 : 숭늉을 올림
- 진설陳設 : 제사음식을 제상에 차림
- 진적간進炙肝 : 적과 간을 올림
- 진적육進炙肉 : 적과 고기를 올림
- 진찬進饌 : 찬을 올림
- 집사執事 : 술을 올릴 때 돕는 사람
- 참신參神 : 신주에 절함
- 철撤 : 제사상을 거두어 치움
- 철주撤酒 및 철간撤肝 : 술과 간을 상에서 내림
- 철주撤酒 및 철육撤肉 : 술과 고기를 상에서 내림
- 첨작添酌 : 종헌이 드린 잔에 제주가 다시 술을 가득 채움
- 청장淸醬 : 간장(초장 소금 생강초 등을 올리는 경우도 있음)
- 축판祝板 : 축문을 붙이거나 올려놓고 읽는 작은 판자
- 출주出主 : 신주를 모셔냄
- 출주고사出主告辭 : 신주를 모셔낼 때 고하는 글
- 침주斟酒 : 술을 따르다.
- 침채沈菜 : 김치(물김치, 주로 나박김치)
- 탕湯 : 육탕肉湯 어탕魚湯 계탕鷄湯의 3탕이 기본이나 1탕으로 올려도
된다.
- 탕기湯器 : 탕을 담는 그릇
- 퇴주기退酒器 : 제사를 지낼 때 초헌관, 아헌관이 올린 술을 물려 붓는
그릇
- 편틀 : 떡을 괴어 올릴 때 쓰는, 굽이 높은 나무 그릇
- 포脯 : 어육을 말린 것으로 북어포, 대구포, 건문어포, 건상어포, 육포 등을
쓴다.
- 하시저합반개下匕箸合飯蓋 : 숟가락과 젓가락을 내리고 밥뚜껑을
덮음
- 합독合櫝 : 신주 독을 닫음
- 합문闔門 : 문을 닫음
- 해醢 : 생선젓
- 향로香爐 : 향을 태우는 그릇으로 모래를 담는다.
- 향안香案 : 제사 때에 향로나 향합香盒을 올려놓는 상
- 향합香盒 : 제사 때 쓰는 향을 담는 합(그릇)
- 혜醯 : 식혜
증자(曾子)는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데는 세 가지 등급이 있다고
했다. 가장 큰 효도는 어버이를 존중하고 공경하는 일이며, 그 다음은 어버이나 조상에 대해 욕되게 하지 않는 일이고 가장 아래가 의식으로
어버이를 봉양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조상을 예로서 섬기는 일은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다. 공경의 극치에 이르게 되면 형식이나 틀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아들딸들이 <별암가례>에 나타난 형식이 아니라 그 정신을 올바로 보고, 자기의 뿌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족 안에서 따뜻한 정을 나누면서 대대로 화목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06년 정월 대보름에
長水 黃氏 24세손
仁澤
仁五
仁淑
仁玉
仁奕
仁郁
[부록]
黃氏世系
황씨(黃氏)의 원시조(原始祖)는 중국의 삼황오제 중의 하나인 전욱고양씨(顚頊高陽氏)의 증손자(曾孫子) ‘육종(陸終)’이시다.
황(黃)씨의 시원(始原)은 중국의 삼황오제(三黃五帝)에서 비롯된다. 삼황(三黃)은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또는 복희(伏羲) ·신농(神農) ·수인(燧人)을 가리키며, 오제(五帝)란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 전욱고양씨(顚頊高陽氏),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 제요(帝堯 , 요임금), 제순(帝舜 , 순임금)을 일컫는 말이다. 오제(五帝) 중에서 가장 훌륭한 성군(聖君)으로
칭송받는 전욱고양씨의 증손자(曾孫子) ‘육종(陸終)’께서 황읍(黃邑)이라고 하는 땅에서 봉작(封爵)을 받고 있을 때 그 지명(地名)을 따라
‘황(黃)’이라는 姓을 만들었다. 이로써 육종(陸終)께서는 오늘날 강하(江夏) 황씨 (黃氏)의 원시조(原始祖)가 되셨다. 강하(江夏)는 오늘날의
중국 호남성 무창현 여남 땅이다. 육종(陸終)은 슬하에 해(海), 낙(洛), 호(湖)라는 세 아들을 두었다.
우리 황씨의 도시조(都始祖)는 학사공(學士公) 휘(諱) 락(洛)
할아버지이시다.
육종의 셋째 아들 황락(黃洛)은 후한(後漢)의 학사(學士)로서
나라의 사신(使臣)이 되어 서기(西紀) 28년인 신라 유리왕 5년, 후한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4년에 구대림(丘大林) 장군과 함께
교지국(交趾國)을 향하여 뱃길을 떠났다. 교지국은 오늘날 베트남 북부 통킹 하노이 지방에 있던 나라였다. 그 사절단(使節團)은 항해 중에 심한
풍랑을 만나서, 우리나라의 동해 앞바다에까지 표류하였으며, 결국 일행은 지금의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平海) 월송(月松) 지방에
표착(漂着)하였다. 이것이 우리 나라 황씨의 시원(始源)이다. 현재에도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越松) 지역에는 황장군의 묘가 전해지며,
구(丘)장군이 살았다는 곳을 구미진(丘尾津)이라 부른다. 이로서 황락 할아버지께서는 韓國 黃氏의 都始祖로서 만세(萬世)의 위종(爲宗)으로
기록되었으며, 中國 만세보(萬世譜)의 黃氏 고사편(古史編)도 ‘洛’께서 ‘東國 黃氏의 始祖’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국(東國)이란 옛날에
중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일컫던 이름이다. 황락 할아버지는 세 아들을 두었는데 맏아들 갑고(甲古)는 기성군(箕城君), 둘째 아들 을고(乙古)는
장수군(長水君), 셋째 아들 병고(丙古)는 창원백(昌原伯)에 봉해져 훗날 평해 장수 창원 등 3관(貫)이 생겨났다.
우리의
본관(本貫)은 장수(長水)이다.
장수 황씨의 시조 어른은 신라 경순왕의 부마(駙馬), 즉 사위로 시중(侍中)을 지낸 황경(黃瓊) 할아버지이시다. 그러나 후에 세계(世係)가
실전되어 고려 명종 때 전중감(殿中監)을 지낸 황공유(黃公有)께서 9세 손, 태학생으로서 《동국명현록(東國名賢錄)》에 기록된 일재(逸齋)
황감평(黃鑑平)께서 15세 손이었음이 확인될 뿐 계대가 불가능하므로, 황경의 18세 손으로서 이조참의를 지낸 황석부(黃石富)를 중시조 1세조로
하고 선대의 요람지인 장수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 있다. 장수황씨는 조선조익성공(翼成公) 황희(黃喜) 정승 때에 이르러 가문이
번성하였다. 방촌(厖村) 황희는 고려조말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양대 왕조에 5대 임금을 보필하고 90세로 순직한 명제상이시다. 그는
정승의 자리에 24년, 영의정에만 18년 동안 있으면서 많은 치적과 일화를 남겼으며 소신이 굳으면서도 청렴하여 청백리에도 녹선되었다. 방촌은
세종의 묘정에 배향, 파주의 방촌영당, 상주의 옥동서원, 장수의 창계서원에 제향되었다. 방촌 할아버지의 네 아들 치신致身(호안공파),
보신保身(소윤공파), 수신守身(열성공파), 직신直身(사직공파) 4형제도 모두 벼슬에 등용되어 가문을 빛냈다.
우리는
방촌 황희의 차남 보신保身(1401~1456)을 뿌리로 한 소윤공파(少尹公派)의 사정공계(司正公系)에
속한다.
사정공계의 종가는 조선 세조시 부사정을 지낸 7세손 황정(黃珽) 어른이시다. 23세손이신 아버지 별암(鱉岩) 황중연(黃重淵)까지 이어지는 우리
집안의 세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석부(1) ▷ 균비(2) ▷ 군서(3) ▷ 희(4) ▷ 보신(5) ▷ 경형(6) ▷ 정(7) ▷ 사웅(8)
▷ 백륜(9) ▷ 빈(10) ▷ 시간(11) ▷ 생(12) ▷ 상중(13) ▷ 여익(14) ▷ 수담(15) ▷ 형경(16) ▷ 준(17) ▷
세창(18) ▷ 우묵(19) ▷ 기룡(20) ▷ 관주(21) ▷ 의식(22) ▷ 중연(23)
世系圖
(少尹公派)
1世 |
2世 |
3世 |
4世 |
5世 |
6世 |
7世 |
8世 |
9世 |
석부石富 |
균비均庇 |
군서君瑞 |
희喜 |
보신保身 |
경형敬兄 |
정珽 |
사웅士雄 |
백륜伯倫 |
10世 |
11世 |
12世 |
13世 |
14世 |
15世 |
16世 |
17世 |
18世 |
빈彬 |
시간時幹 |
생 |
상중 |
여익 |
수담 |
형경 |
준 |
세창 |
19世 |
20世 |
21世 |
22世 |
23世 |
24世 |
25世 |
26世 |
27世 |
돈묵敦默 |
기호基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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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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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묵友默 |
기룡基龍 |
관주官周 |
의식義植 |
중연重淵 |
인택仁澤 |
지현智顯 성현盛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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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오仁五 |
두하斗廈 |
|
| |||||
인숙仁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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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옥仁玉 |
|
|
| |||||
인혁仁奕 |
윤하允廈 상하尙廈 |
|
| |||||
인욱仁郁 |
단하丹廈 청하晴廈 린하隣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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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수義守 |
종연鍾淵 원연元淵 영연永淵 오연五淵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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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길義吉 |
세연世淵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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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又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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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항렬표
21世 |
22世 |
23世 |
24世 |
25世 |
26世 |
27世 |
○周 |
義○ |
○淵 |
仁○ |
○夏 |
圭○ |
○商 |
28世 |
29世 |
30世 |
31世 |
32世 |
33世 |
34世 |
永○ |
○震 |
箕○ |
○重 |
鎬○ |
○淳 |
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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