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교수 “선진화의 성장전략은 박정희 개발모델 연장” | |||||||
입력: 2008년 01월 01일 02:25:32 | |||||||
권력 이동이 시작되었다. 민주화 이후 20년간 지속되었던 1987년 체제의 종언이라고도 하고, 민주화 세력 집권 10년 만의 보수세력 복권이라고도 한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한국인의 삶을 얼마나 바꾸어 놓을 것인가. 정권교체는 단순히 기득권의 교체인가, 주류적 가치의 교체인가, 아니면 과거로의 회귀인가. 한국 정치·사회의 모순과 한계를 날카롭게 분석해온 정치학자이자 사회적 발언을 통해 민주화 이후 20년간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지식인의 한 명인 최장집 고려대 교수를 만나 최근 변화의 의미를 들어보았다. 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담당 에디터가 지난 12월24일 고려대 정경관 최교수 연구실에서 2시간가량 그와 대담을 했다. 대담 : 이대근 정치·국제 에디터 ▲ 선진화는 평등·다원화의 민주주의와 배치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이후 선진화 담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선거가 끝난 지 1주일도 되지 않은 사이에 국가적 아젠다가 된 것이지요. 이 당선자도 산업화, 민주화를 이루었으니 이제는 선진화해야 한다고 합니다. 신발전체제로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장론을 바탕으로 하는 선진화가 과연 한국사회가 달성해야 할 최대의 목표가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이명박 정부의 성격, 이념, 노선을 평가해주시지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미국은 물론 전세계로 확산된 상황입니다. 한국에서 그러한 가치를 공공연하게 표방하는 정부가 이제야 나타났다는 것이 오히려 좀 늦은 감이 있을 정도입니다. 선진화나 신발전체제는 기본적으로 국가발전의 목표를 정부 리더가 설정하고, 국민을 위로부터 동원하는 구조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박정희 개발 모델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또한 역사를 건국, 산업화, 민주화로 단계론적으로 접근하는 관점도 문제가 있습니다. 민주화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민주화를 위한 당면 과제가 아직 많지요. 그런데 이제 민주화는 다 됐으니 선진화로 나가자는 논리는 수용할 수 없습니다. 선진화의 내용으로 환경·복지를 언급하기도 합니다만, 결국 또 다른 성장주의 목표를 달성하는, 위로부터의 국가 중심 발전주의로 이해됩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과정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는 분배 정의나 사회정의, 노동의 가치, 법의 지배 등을 제대로 포괄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이 법 앞의 평등인데, 최근 선거를 전후해 부자나 강자에게는 법이 평등하게 적용되지 못하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장이 법의 지배보다 상위 가치로 설정되고, 잘 살자는 가치 때문에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나 경제적 성과물을 사회적으로 나누는 가치가 배제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진화 담론은 기본적으로 평등성과 다원화, 권력 분산을 지향하는 민주주의 가치와 상응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 박정희식 개발주의 못 벗어나 -신자유주의라는 점에서 이명박 당선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곧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보수 블록 내의 정권교체라는 논리도 가능합니다. 한국 사회에는 왜 이렇게 시장주의, 성장주의, 개발주의 이데올로기가 질긴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고 보십니까. “직접적인 원인은 강한 신자유주의 헤게모니를 갖게 된 경제정책 노선에 대한 실현가능한 대안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그걸 대표할 수 있는 정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좀 거슬러 올라가서 87년 이후의 민주화를 통해 정당체제가 재편될 때 이런 정당 체제가 만들어졌다면 기존의 국가중심적이고 성장중심적인, 즉 재벌이 주도하고 노동이 소외되는 체제에 대한 대안이 조직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화는 87년 이후, 경제 정책 측면에서는 60~70년대 박정희식 개발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발전경로를 택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민주화라고 하는 정치적인 격변에도 불구, 경제정책의 측면에서는 국가주도의 성장지상주의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고, 이것이 외환위기를 초래하고, 신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70~80년대 성장 신화에 힘입어 잘 살아보자는 가치가 거의 유일 가치가 됐고, 민주주의나 분배 등 다른 가치가 자리잡을 수 없는 구조가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됐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정당이나 후보도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상당 정도 시장주의, 성장·개발 이데올로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 민주주의 규범 어긴 노정권 징벌 -이명박 후보 당선으로 10년 만의 정권교체가 됐습니다. 선거 사상 2위와의 가장 큰 격차, 민주화 이후 가장 높은 득표율, 보수표 65%선, 서울의 배반, 20대의 보수화 등 몇가지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번 선거를 평가해 주시죠. ▲ 신자유주의 세계화 차이 없어 -이명박 대통령의 등장은 민주화 동력에 의해 이 사회를 이끌어왔던 87년 체제의 종언을 고하는 것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20년 만에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형의 대전환이 올 것으로 보십니까. 민주화 세력이 집권했을 때의 한국과 이명박 당선자의 한국이 얼마나 다르리라고 보십니까. “87년을 기점으로 1단계 민주화의 한 사이클은 끝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길게 보면 과거 권위주의 세력의 정치기반을 갖고 있었던 보수세력이 재집권했다는 점에서 두번째 사이클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정치·경제·사회적 지형의 대변화가 올 것인가? 별로 그럴 것 같지 않군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이번 대선을 계기로 새삼스럽게 다가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90년대 말 외환위기 때부터 급속하고 격렬하게 전개됐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고 해서 그걸 주도하는 경제적 독트린이나 이념이 크게 달라지리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상당한 연속성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노무현 정부 하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취했다 하더라도, 그것의 공식적인 레토릭이나 담론은 개혁적인 것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보수세력과 언론이 노무현 정부를 자꾸 좌파정권이라고 몰아부침으로써 스스로 규정하는 정책 성격과 실제의 정책 내용이 다른 ‘인지적 불일치’가 나타났었지요. 그러나 지금부터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시장가치, 경쟁의 논리가 더욱 공공연히 사회의 전일적 가치로 강조될 것으로 보입니다. 경부대운하 기획처럼 정부나 국가가 중심이 된 메가 프로젝트들이 노무현 정부 하의 행정수도 이전·신도시 개발보다 더 대규모화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일부 시민사회 원로들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무리할 정도로 범여권 단일화를 요구했지만, 전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일대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여권 대통합, 후보 단일화의 정당성은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전제에서 성립합니다. 그러나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 정치적으로는 그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이제 민주화의 프리미엄, 즉 ‘민주화세력=개혁세력’ ‘민주화=도덕성’으로 보는 등식은 존립할 수 없다는 게 명백해졌습니다. 10년의 민주 정권을 통해 과거 운동세력은 상당 정도로 기득권화했으며 오히려 현상유지에 기여하게 된 것을 정부의 경험적 기록들이 잘 말해줍니다.” ▲ 발전, 퇴보는 관점 따라 달라 -민주화 세력의 몰락,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한국정치, 한국사회의 발전입니까, 퇴보입니까. “발전했느냐, 퇴보했느냐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죠. 민주주의적 제도가 작동했다는 측면에서는 발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잘하면 집권하고, 잘못하면 패배한다는 민주주의 핵심 원리가 실현됐기 때문이지요. 같은 논리에 의해 이명박 정부도 잘못하면 교체될 것이라는 선례를 남겼다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한국 정치의 발전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한국 민주주의 정치가 발전한 것이냐, 퇴보한 것이냐란 물음에는 유보적입니다. 민주화 세력들이 정당제도 하에서 성공하고, 유능하고 효과적인 개혁을 통해 기존 권위주의 시대의 구체제를 개혁하는 방향이었다면 더 좋았겠죠. 그러나 그런 것까지 기대하기엔 무리가 아니었나 합니다.” -비정규직 문제, 양극화 심화, 서민생계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노무현 정부를 심판하는 선거였다면, 진보세력이 많은 지지를 받았어야 했는데, 그 반대로 신자유주의·성장주의를 추구하는 이명박 당선자가 압도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시민들의 선택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그건 아니죠. 국민들이 신당이나 진보파는 시민을 원망하고, 시민의 판단을 수용하지 못하는 쪽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사회·경제정책의 기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독트린 기반 위에 추진한 성장 정책으로 요약됩니다. 비정규직, 양극화, 노동소외, 고용문제, 청년실업 등이 모두 그것과 연결된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들이 보수주의 정권 하에서가 아니라 진보 또는 개혁을 표방한 정부에서 나타났습니다. 이번 선거는 다양한 대안적 경제정책을 놓고 선택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토대 위에서, 적어도 그 기준에서는 이명박 당선자가 더 유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갖고 한 투표였습니다. 이는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도널드 레이건이 당선될 때와 비슷합니다. 카터 민주당 정부 동안 실업과 스태그플레이션에 맞서 레이건이 신자유주의적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했을 때 민주당의 확실한 지지기반이었던 동북부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레이건 공화당 정부 지지로 바꿨습니다. 투표자들이 장기적으로는 자기에게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정권에 투표하는 셈이 된 거죠.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렇게 기존 정부가 못한 것에 대한 안티 테제로, 확실히 바꿀 수 있고 그래도 뭔가 희망을 주는 것 같은 후보에 투표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비슷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 제한된 선택 강요한 보수독점체제 -정당의 보수독점 체제는 왜 깨지지 않을까요. 시민의 보수성 때문일까요. “보수 양당 체제가 깨지지 않는 것이 시민의 보수성 때문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보수 양당체제가 깨지지 않는 요인은 외부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의 이념과 가치가 세계적으로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특히 더 강하게 영향을 받았죠. 내부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실제로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한 정치적 메커니즘은 정당인데, 민주화 이후 현실적으로 대안을 가진 정당을 건설하지 못한 결과가 이렇게 기존의 정당체제가 지속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요. 선거에서의 투표자와 시장에서의 소비자는 성격이 다릅니다. 투표를 통한 시민들의 선택이라는 것은 주어진 메뉴 가운데 고르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고 싶지 않으면 다른 시장으로 가든지 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정치적 선택에서는 주어진 선택 리스트에서 선택하는 것이 강요되는 체제입니다. 따라서 이런 선택의 체제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시민들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당과 정치인들이 얼마나 좋은 정책 대안을 가지고 투표자들에게 다가서느냐가 중요하지, 그런 기회도 없는 선거에서 유권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그러면 시민들은 정당 구조에 항상 종속됩니까. 시민들은 기성 정당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되풀이되는 결과를 낳는 투표를 반복해야 할 운명이라는 뜻입니까. “예외적인 시기에는 대규모 운동이나 유권자들의 강렬한 열망이 기존 정당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정당이 유권자의 선택에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로서는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정당정치의 제도화와 함께 유권자들에게 더 나은 선택의 메뉴를 제시할 수 있는 정당간 경쟁의 활성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요컨대 좋은 정당 체제를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 요건이라는 말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범여권의 몰락, 정당정치의 붕괴를 목격했습니다. “패배한 당은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표를 선출해 정부를 만드는 것과 이대표로 하여금 책임을 지도록 하는 메커니즘입니다. 책임은 외부로부터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감시·감독을 할 때 가능합니다.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면 다음 선거에서 또 기회가 옵니다. 어느 면에서는 패배한 정당이 더 좋은 정당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 패배했느냐를 돌아보면서 기존 정책보다 더 좋은 정책을 개발하고, 시민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면 그게 가능합니다.” ▲ 민노당, 체제 전환 없으면 존립 어려워 -진보세력의 유일한 정치조직인 민주노동당도 대패했습니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원외정당으로서, 사표방지 심리가 극심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선전했던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 낮은 성적입니다. 그로 인해 다수파인 자주파에 대한 비판이 거셉니다. 분당으로 자주파와 결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진보정치 세력이 왜 이렇게 몰락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민노당 패배의 원인은 현상적으로는 후보 선출의 실패가 가장 크지만 그것만이 아닙니다. 민주화 이전의 제도 정치권에서 완전히 소외된 세력들을 잘 대변할 수 있는 호기였는데, 민노당이 보여준 모습은 너무나 무기력한 또 하나의 제도권 정당에 불과했습니다. 민노당은 목전의 다수표를 획득하는 데 급급하기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당을 건설해야 했습니다. 10명 의석을 획득한 것은 기대 이상의 성과였지만, 이게 너무 쉽게 얻은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민노당 주류파의 이념은 굉장히 이념지향적인데, 현실정치에서는 무력하고 문제의식 없는 기성정당의 모습으로 표출되니까 실망이 배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민노당의 이념적 특성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지지계층의 요구에 부응하기보다 활동가들의 나르시시즘적 선언으로 보였습니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민노당이 발전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공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한나라당과 신당은 중첩되는 공간에 있습니다. 이들이 대표할 수 없는 넒은 공간이 방치된 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정당이 무슨 역할을 해야 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 노동자들의 실제 삶을 다루고자 하는 문제의식이 더 강해져야 합니다. 민노당이 분당되는 것이 더 좋은지는 좀더 생각해봐야 합니다. 당위적으로는 해체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게 더 낫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체제를 확실히 바꾸지 않으면 존립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 BBK 문제로 정치의 사법화 초래 -이명박 당선자에 대해 정책 검증은 물론 인물 검증도 충분히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문제가 차기 정부 국정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이번 선거는 정당 없는 경쟁으로 비정상적 선거가 됐습니다. 그것과 병행해 나타난 현상이 RIP라고 부르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입니다. 미국 정치학자들이 특별검사 수사를 받았던 클린턴 정부를 설명할 때 나온 개념인데, 정치를 폭로(Revelation), 수사(Investigation), 기소(Prosecution)라고 하는 사법적 기능에 호소한다는 뜻입니다. 정치의 사법화죠. 이것은 행정부가 중심이 되면서 정치가 퇴화한 결과입니다. 정치권력이 행사되는 방법에 문제가 있으면 언론이 폭로하고, 검찰이 수사하고, 사법부 판단으로 넘기는 과정에 정치 이슈가 전부 매몰돼 버립니다. 이번 대선은 노무현 정부에 대해 심판해야 한다는 판단이 먼저 서고, 이러한 투표자들의 심리를 대체할 수 있는 어떤 것도 효용이 없는 상황에서 그런 사법적 논쟁이 촉발되면서 정책 경쟁은 온데간데 없어져 버린 이상한 선거가 돼 버렸습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다음 총선까지도 정당간 차이나 인물 검증을 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BBK 사건은 심각한 도덕적 문제, 법의 지배와 직결된 문제로서 이제는 법에 맡기고, 정당은 정치적인 사안을 갖고 경쟁했으면 합니다.” ▲ 이명박 권력 집중 막을 견제 필요 -이명박 당선자 측은 공천권 행사로 당내 물갈이를 하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여의도 정치를 탈피하겠다, 정치꾼은 안된다는 이 당선자의 정치철학의 반영이 아닐까 합니다. “노무현 정부 5년은 당정분리, 대연정으로 점철됐습니다. 정당의 정책적 차이를 무시하고, 사회경제적 기반을 달리하는 정당과 연정을 하겠다며 민주주의 원리를 벗어나는 초당적 행정부 중심의 발상을 했습니다. 당정분리와 대연정의 발상은 비슷합니다. 대통령은 사회의 파당적 이익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전국가적인 대표라는 발상인데,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우리는 잘 보았습니다. 그 정당의 지지자로부터 분리되고, 사회적 투입(시민들의 의사와 욕구)의 통로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여당의 의사가 청와대에 반영되는 대신 청와대 중심의 위원회 정부가 돼 버렸습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다양한 세력들이 참여의 평등을 통해 자기 소리를 대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권위주의라고 해서 좋은 정책을 못할 것은 없겠지만 정치 지도자와 권력자가 전체 국가를 위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민주주의의 원칙과 거리가 멉니다. 이명박 당선자는 말로만 보면 노무현 정부의 실천과는 반대 입장을 취하는 듯합니다. 청와대가 정당과 정치 과정을 관장해 효율적으로 좋은 정책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표현 방식만 다를 뿐, 대통령과 청와대를 중심으로 정부를 운영하겠다는 측면에서는 노무현 정부와 완전히 일치합니다. 또 다른 형태의 행정부 중심의 정치로 시민적 참여의 통로를 막아버릴 수 있는 것이죠. 민주주의란, 선출된 정부가 민주적으로 잘해주면 좋지만, 잘해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견제와 균형이 필요한 제도입니다. 사회세력과 야당에 의해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가 권력을 집중해 몰고 가면 제왕적 대통령이 될 우려가 있습니다.” ▷ 최장집 교수는 최장집 고려대 교수(65)는 6·3 세대로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학자이다. 정치학은 어차피 현실과 접목될 수밖에 없는 학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특히 현실로부더 그 학적 주제를 찾아내고, 진보적 대안을 고민해왔다는 점에서 흔치 않은 지식인이다. 그는 이런 이론적 실천으로 인해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의 반열에 올랐다. 민주화 이후 오히려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그의 도발적 고발은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바 있다. 그는 정년을 앞두고 있지만, 최근 ‘어떤 민주주의인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등의 저술을 내며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 손제민·사진 서성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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