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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 높으신 줄로만 알던 교수님들이 여의도 국회 앞에 여행용 텐트와 간이 테이블을 의지 삼아 350일 째 거리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는 믿기 어려운 현장이 있어 찾아가 보았다. 흔히 ‘시간 강사’ 혹은 ‘강사’라고 불리는 비정규직 교수들의 교원법적지위 쟁취를 위한 농성이 진행 중인 그곳에서 김동애씨(비정규교수노조 교원법적지위 쟁취 특별위원회 위원장, 이하 김동애), 김영곤 씨(비정규교수노조 고려대학교 분회장, 이하 김영곤)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부부농성단, 만남부터 심상치않은 그들로부터 빛 좋은 개살구도 되기 힘든 비정규교수의 현실로부터 우리 지식인 사회의 허울, 대학교육의 현실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350일, 며칠 후면 일 년이 된다. 이렇게 장기간에 걸친 농성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김동애: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한 비정규 교수의 교원 지위 쟁취를 위해 지난 06년부터 1인 시위를 해왔다. 그러던 중 작년 대선과 총선을 앞 둔 시점에서 17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농성에 돌입하게 되었다.
당시, 민주노동당의 최순영의원은 04년에, 민주당의 이상민 의원은 06년에 법안 발의를 이미 해놓은 상황이었고, 07년 5월에는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서 세 당의 법안이 공통적으로 교원 지위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왜 안 된 것인가? 더군다나 이주호 의원은 이명박 정부 초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까지 지내지 않았나.
김동애: 완전히 당한 것이다. 작년 법안 발의 당시, 이주호 의원은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자신의 양심을 걸고, 더 이상 이 문제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며 의원직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얘기했다. 때문에 상당히 희망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나 몰라라’ 시치미다. 정치권은 다 마찬가지였다. 표와 돈만 좇으며, 자신의 이익에 따라 합종연횡만 일삼고 진정으로 이 나라의 교육을 위한 핵심 사안인 이 문제를 도외시 하거나 후순위로 밀어놓는 처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교수’라고 하면, 사회적으로 상당한 신망과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면서 기득권의 최측근에 있는 존재 아닌가? 이런 사회적 시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대학 강사는 한 학기 단위로 근로 계약도 없이 전화나 구두로 강의 개설이 결정된다. 과거에는 위촉장이라도 줬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노무관리 하는 학교의 입장에서는 임금이 아닌 시급강사료를 해야 연속적으로 계약하면 발생하는 퇴직금을 피해가면서 마음대로 강의를 없애고 개설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4대 보험도 없다. 하지만 강사들이 하는 일은 전임교수와 다를 바가 없다. 김영곤: 현재 서울지역 대학 강사들의 강사료는 전임교수의 5% 정도 밖에 안된다. 최근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연세대의 평균 연봉이 전임강사가 1억 4천 만 원, 강사가 768만원이다.(그나마 연세대는 높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강사들의 연봉은 500~600만 원 정도라고 보면 된다.) 연세대의 연간 예산이 2조 원 정도 되는데, 강사에게 배정된 예산이 90여억 원 정도이다. 계산해보면, 0.45% 정도 된다. 현재 대학 당 강사비율이 40%에서 많게는 70%까지 된다. 예술계통의 경우는 강의의 80~90%를 강사가 담당한다. 대학 교육의 대다수를 담당하는 강사들에게 배당된 예산이 0.45%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일류대학이라고 하는 곳의 현실이다. 다른 곳은 따져볼 필요도 없다.
말씀하신대로, 대학교육을 전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강사들에게 이런 대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좀 더 설명해 달라.
김동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교육법 제정당시부터 1977년까지는 교육법 상 강사도 교원지위를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77년 10월 24일 ‘정부안’으로 교육법 개정이 발의되고, 강사를 교원에서 제외시켰다. 이유인즉, 1975년 박정희가 독제체제 강화를 위해서 전시입법을 만드는데 그 중 한 가지 조처가 바로 ‘교수재임용제도’를 만든 것이다. 젊은 지식인들을 제도권 내에서 순응하도록 하거나 제외시켜버리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바로 이때부터 전임강사와 강사를 분리시키고 법적 지위를 박탈한다. 이어서 전두환 정권에서는 대학 당 전임교수 임용 조건을 완화시켜서 강사 3명을 전임교수 1명으로 인정하면서 강사가 난립하도록 조장한다. 이런 독재체제 하의 지식인과 대학 통제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 문민정부 이후 대학자율화와 더불어 강사가 대폭적으로 확대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정당성 없는 정부는 정치적 반대 세력의 모체가 될 수 있는 지식인 사회와 대학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대학의 입장에서는 비용을 대폭적으로 줄이면서 수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최신의 방안을 얻게 된 것이다.
김영곤: 결국, 비정규교수들의 지위가 불안정하면서 자유로운 학문 연구도 불가능하고, 소신 있는 교육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전임교수 눈치 살피랴, 학교 입맛 맞추랴, 강사들이 자신의 사상적, 학문적 소신을 학생들에게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결과적으로 대학 교육이 망가진 이유로 직결된다. 대학생들이 촛불시위에 참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대학에서 주입식 교육만 받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고백한다. 비판과 대안으로서의 사고체계를 배우고 키울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독재의 잔재가 아직도 현실을 억압하고 있다.
이 농성은 몇 분이 이어가고 있나?
김동애: 6명이 돌아가면서 진행하고 있다. 좀 적은 듯한데... 이 사안은 대학개혁, 나아가 사회개혁의 핵심적인 사안임이 분명한데도 자신의 처지와 연관된 교수, 강사들이 잘 나서질 않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 강사들은 ‘원조 비정규직’이다. 이 문제를 외면한 채, 심한 경우는 대학의 ‘마름’역할까지 마다하지 않는 분들이 ‘비정규직’을 해결하자는 사회적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자신에게 해가 될 것 같은 일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대학정책은 그야말로 신자유주의의 결정판이다. 하지만 교수 사회에서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이미 자리 잡고 있는 교수들의 지위에 한해서는 보장받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은 상황인 듯하다. 앞으로 전망과 계획은 어떠한가?
김영곤: 상황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들, 옆에서 싸우고 있는 코스콤, 알리안츠 노동자들, KTX, 이랜드 노동자들, 이들이 싸우지 않는다면 어떻겠는가? 이렇게 곳곳에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작지만 크게 싸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하고 쟁취할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4000명에게 소식지를 보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함께 하고 있다. 또 농성장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가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 남은 것이 있다면,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나서야 한다. 함께 일인시위를 하고 함께 싸운다면, 머지않아 승리할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고, 될 것이라 확신한다.
김동애씨 부부는 ‘교수출신’인 탓에 말씀과 말씀 사이를 넘기는 여운이 맛깔스러웠고, ‘거리의 투사’인 탓에 눈빛을 주고받는 호소력이 남달랐다. 요즘 철없이 ‘몹쓸 후렌들리’에 신이 난 이명박 정부가 지긋지긋하다면, 잦아 든 촛불에 밤잠을 설치는 누군가가 있다면, 꼭 한번 국회 앞 비정규교수노조 농성장을 찾아보길 권하고 싶다. 마피아 ‘대학’에 맞서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생한 목소리에 감명 받고, 그 확신에 찬 눈빛에 자극받고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거기에 더해 ‘교수’라는 신화를 확 깨고 더불어 노동운동사에 대한 해박한 경험과 지식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으니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노동자에게 이보다 더 설레는 만남이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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