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골 뿌리기 직전 돈이 입금됐다”
한겨레21 | 입력 2010.07.12 14:45 | 수정 2010.07.12 15:15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전라
[한겨레21] [이슈추적] 4억원 받고 산재 인정 소송 취하한 뒤 죄책감에 시달리는 고 박지연씨 어머니
"돈 다 가져가고 우리 지연이 돌려달라"
"삼성전자가 4억여원의 돈을 줘 산재 소송을 취하했다. 삼성이 지연이의 죽음을 묻어버리려고 우리 가족을 매수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2007년 백혈병을 얻어 지난 3월 숨진 고 박지연씨의 어머니 황아무개씨는 딸의 영정 사진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지난 7월5일 취재진을 만나, 큰돈을 받고 '산재인정 행정소송'을 취하한 사실을 털어놓은 뒤였다.
황씨는 "(치료비로 생긴) 빚을 다 갚고 나니 허망하기도 하고, 지연이의 죽음을 돈으로 바꿔버린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며 "삼성전자는 가난한 피해자 가족을 돈으로 매수해 진실을 은폐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충남 논산시 집 근처에서 나눈 황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삼성전자에서 돈을 받은 과정을 설명해달라.
=삼성전자 관계자가 지연이가 죽기 하루 전인 3월30일 산재 인정 행정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거액의 돈을 제시해왔다. 총 4억원을 받았다. 처음 우리는 10억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최종적으로 3억8천만원을 보상비로 주고 2천만원의 장례비를 지원했다. 삼성전자가 5천만원짜리 관련 보험을 들어놓은 것 같더라.
돈으로 산업재해 덮는 삼성?
-통장에 돈이 입금된 날은.
=4월2일이었다. 지연이를 화장하고 강원도 속초 앞바다에 유골을 뿌리기 직전 돈이 입금됐다.
-삼성전자와 합의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연이가 너무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렇게 계속 붙들고 있을 수 없었다. 지연이가 어차피 죽을 것 같은 마당에 편히 보내주고 싶었다. 산재를 인정받으려고 싸움을 하면서 지연이를 많이 지치게 했다. 지연이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병원비를 대느라 빚을 많이 진 상태여서 경제적으로도 힘들었다. 그 빚을 어떻게 다 갚을지 막막하기도 해서 돈을 받았다. 삼성전자 쪽에서 '산재를 인정받아 받는 돈보다 더 많이 준다'고 약속했었다.
-소송을 취하하는 것 말고 삼성전자가 요구한 것은 없었나.
=골치 아플 수 있으니 민주노총과 언론 등과 접촉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 가족에게 멀리 이사를 하라고 권유했다.
-돈을 받았다는 고백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빚을 다 갚고 나니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삼성에 이용당했다. 삼성은 우리 아이의 죽음을 묻어버리려 했다.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쉽게 합의한 것이 후회스럽다. 삼성으로부터 합의금이 아닌 위로금을 받아야 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삼성전자가 왜 이런 거래를 했다고 생각하나. 삼성전자 쪽의 주장대로 지연씨가 개인 질병으로 숨졌다면 이럴 이유가 있겠나.
=나도 그게 궁금하다. 일말의 양심이 있었던 것일까. 지연이가 직업병을 얻어 죽었다는 걸 그들 스스로는 인정한 것 아닌가 한다. 그런데 사실을 은폐해야 하니 유족들을 회유하려 한 것 같다. 누구라도 가족이 병원에 있으면 가장 급한 것은 돈이다. 어떻게든 치료비라도 구해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합의 이후 변화한 심경을 삼성전자 쪽에 털어놓은 적이 있나.
=(삼성전자) 부장들에게 여러 차례 전화했다. '내가 당시에는 빚진 게 많아 돈이 필요해 합의를 했지만 사실상 지연이를 돈과 바꾼 것이었다. 천천히 벌어서 내가 갚으면 되는데 괜히 합의를 했다. 나 억울하다'고 하면서 '돈 다 가져가고 우리 지연이 돌려달라'고 여러 차례 전화해서 울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산재 인정 행정소송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 그런데 삼성에 맞서 싸울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너무 큰 기업이다. 근로복지공단도 이러면 안 된다. 왜 우리나라는 사람이 죽어나가도 큰 회사에는 말 한마디 못하는가. 언제까지 이걸 지켜봐야 하나. 반도체 공장이 이렇게 위험한 것인지 미리 알았으면 지연이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또 지금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애들은 어떡하나. 내 딸이 겪은 과정을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겪고 있을 텐데…. 하루빨리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지금 심정이 어떤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죽지 못해 산다. (지연이가 보고 싶어) 하루 종일 식물인간처럼 멍청하게 앉아서 시간만 보낸다. '나도 지연이를 따라가야 하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든다. 지연이를 꿈에서 한번 보는 게 소원이다.
-삼성전자에 바라는 게 있다면.
=산업재해 신청을 취하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건 유족들이나 피해자 본인에게 맡겨야 한다. 돈으로 매수하면 안 된다. 삼성은 가난한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하고 있다.
[관련기사]
▷ 돈으로 죽음을 덮으려는 삼성
▷ 외국 투자자들 '삼성반도체 백혈병' 진상 규명 요구
▷ "공장 전체에 화학약품 냄새가 났다"
▷ 삼성반도체 '발암성 물질' 6종 사용 확인
허재현 기자 한겨레 보도영상팀 catalunia@hani.co.kr
"돈 다 가져가고 우리 지연이 돌려달라"
"삼성전자가 4억여원의 돈을 줘 산재 소송을 취하했다. 삼성이 지연이의 죽음을 묻어버리려고 우리 가족을 매수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2007년 백혈병을 얻어 지난 3월 숨진 고 박지연씨의 어머니 황아무개씨는 딸의 영정 사진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지난 7월5일 취재진을 만나, 큰돈을 받고 '산재인정 행정소송'을 취하한 사실을 털어놓은 뒤였다.
-삼성전자에서 돈을 받은 과정을 설명해달라.
=삼성전자 관계자가 지연이가 죽기 하루 전인 3월30일 산재 인정 행정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거액의 돈을 제시해왔다. 총 4억원을 받았다. 처음 우리는 10억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최종적으로 3억8천만원을 보상비로 주고 2천만원의 장례비를 지원했다. 삼성전자가 5천만원짜리 관련 보험을 들어놓은 것 같더라.
-통장에 돈이 입금된 날은.
=4월2일이었다. 지연이를 화장하고 강원도 속초 앞바다에 유골을 뿌리기 직전 돈이 입금됐다.
-삼성전자와 합의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연이가 너무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렇게 계속 붙들고 있을 수 없었다. 지연이가 어차피 죽을 것 같은 마당에 편히 보내주고 싶었다. 산재를 인정받으려고 싸움을 하면서 지연이를 많이 지치게 했다. 지연이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병원비를 대느라 빚을 많이 진 상태여서 경제적으로도 힘들었다. 그 빚을 어떻게 다 갚을지 막막하기도 해서 돈을 받았다. 삼성전자 쪽에서 '산재를 인정받아 받는 돈보다 더 많이 준다'고 약속했었다.
-소송을 취하하는 것 말고 삼성전자가 요구한 것은 없었나.
=골치 아플 수 있으니 민주노총과 언론 등과 접촉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 가족에게 멀리 이사를 하라고 권유했다.
-돈을 받았다는 고백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빚을 다 갚고 나니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삼성에 이용당했다. 삼성은 우리 아이의 죽음을 묻어버리려 했다.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쉽게 합의한 것이 후회스럽다. 삼성으로부터 합의금이 아닌 위로금을 받아야 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삼성전자가 왜 이런 거래를 했다고 생각하나. 삼성전자 쪽의 주장대로 지연씨가 개인 질병으로 숨졌다면 이럴 이유가 있겠나.
=나도 그게 궁금하다. 일말의 양심이 있었던 것일까. 지연이가 직업병을 얻어 죽었다는 걸 그들 스스로는 인정한 것 아닌가 한다. 그런데 사실을 은폐해야 하니 유족들을 회유하려 한 것 같다. 누구라도 가족이 병원에 있으면 가장 급한 것은 돈이다. 어떻게든 치료비라도 구해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합의 이후 변화한 심경을 삼성전자 쪽에 털어놓은 적이 있나.
=(삼성전자) 부장들에게 여러 차례 전화했다. '내가 당시에는 빚진 게 많아 돈이 필요해 합의를 했지만 사실상 지연이를 돈과 바꾼 것이었다. 천천히 벌어서 내가 갚으면 되는데 괜히 합의를 했다. 나 억울하다'고 하면서 '돈 다 가져가고 우리 지연이 돌려달라'고 여러 차례 전화해서 울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산재 인정 행정소송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 그런데 삼성에 맞서 싸울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너무 큰 기업이다. 근로복지공단도 이러면 안 된다. 왜 우리나라는 사람이 죽어나가도 큰 회사에는 말 한마디 못하는가. 언제까지 이걸 지켜봐야 하나. 반도체 공장이 이렇게 위험한 것인지 미리 알았으면 지연이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또 지금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애들은 어떡하나. 내 딸이 겪은 과정을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겪고 있을 텐데…. 하루빨리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지금 심정이 어떤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죽지 못해 산다. (지연이가 보고 싶어) 하루 종일 식물인간처럼 멍청하게 앉아서 시간만 보낸다. '나도 지연이를 따라가야 하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든다. 지연이를 꿈에서 한번 보는 게 소원이다.
-삼성전자에 바라는 게 있다면.
=산업재해 신청을 취하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건 유족들이나 피해자 본인에게 맡겨야 한다. 돈으로 매수하면 안 된다. 삼성은 가난한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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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현 기자 한겨레 보도영상팀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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