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계는 어떻게 가능한가?

'명절은 남의 일' 38년째 '나홀로 명절' 보낸 독거노인

소한마리-화절령- 2010. 9. 23. 09:48

'명절은 남의 일' 38년째 '나홀로 명절' 보낸 독거노인

노컷뉴스 | 입력 2010.09.23 08:21 | 수정 2010.09.23 08:21

 




[CBS사회부 이대희 기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할 정도로 한가위는 풍요로운 한민족의 명절이다.

고향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과 가족의 정을 나누고 휴식을 취하는 게 추석하면 떠오르는 풍경이다.

하지만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에게 이런 명절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 월남해 결혼으로 찾은 짧은 안정과 파탄, 그 기구한 인생

유금덕(79) 할머니는 올해로 38년째 홀로 명절을 보냈다.

함경도가 고향인 유 할머니는 6·25전쟁 통에 오빠와 단 둘이서 부산으로 피난왔다 분단을 맞아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향살이의 고생은 결혼과 동시에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긋지긋했던 외로움과 가난과는 가정을 꾸리면 영원히 이별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유 할머니였다.

하지만 의처증이 생긴 남편의 폭력에 짧은 안정은 파멸로 끝나고 말았다.

"남편이 의처증이 생겨서 때리는 바람에 견딜 수가 없었어요. 너무 많이 맞고 일어서지도 못할정도로 매맞아서 뛰쳐 나왔어요."

아무 것도 없이 집에서 나온 할머니는 안 해본 일 없이 고생하며 살았다.

그렇게 전국을 떠돌며 38년 동안 혼자 살아 온 할머니에게 남은 건 반지하 월세방 하나였다.

◈ "돈도 건강도 문제지만 외로움이 가장 힘들어"

고령의 나이에 딱히 일을 할 수 없는 유 할머니에게 정부로부터 지급받는 월 9만 원의 기초노령연금은 수입의 전부였다.

이 돈으로는 월세 7만 원을 내면 남는 게 없기에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하려 했지만, 그 마저도 아직 남편과는 법적으로 부부 사이라 수급 대상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최근에는 소화기, 신장, 무릎 등 건강도 악화돼 하루에 먹는 약만해도 세 종류나 된다.

이런 어려움은 인근 노인복지관과 이웃에서 보내는 지원금과 음식 등 따뜻한 온정의 손길로 작게나마 위안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유 할머니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건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이다.

40여년 동안 혼자 살아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추석 같은 명절만 되면 외로움이 배가 된다.

5년 전 수소문 끝에 큰 아들을 찾았지만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형편이라 차마 기댈 수 없었다.

"제가 (아들을)버리고 나왔는데 어렵게 살아왔다는 걸 알고 죄책감 때문에 먼저 연락하기도 어려워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냥 이렇게 살죠. 외롭고 마음도 아프고. 하지만 아들에게 손을 벌릴 순 없어요. 몸이 더 나빠지면 고향 친구 딸이 하는 요양원으로 가려고요."

◈ 100만 독거 노인 시대, 이웃의 독거 노인에게 관심을

유 할머니처럼 명절을 혼자 보내야 하는 독거노인은 올해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7월 통계청의 장래가구 추계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의 독거노인 가구는 102만1천8가구로 지난해 97만5천937가구보다 4만5천71가구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통계청은 독거노인 가구가 2012년엔 111만가구를 넘어선 뒤 2013년엔 115만가구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풍성한 중추절 만큼이라도 넉넉하게 마음의 여유를 갖고 홀로 지내는 이웃 노인들에게도 넉넉한 마음을 나눠야할 시점이다.
2vs2@cbs.co.kr

[관련기사]

폭우에 빠진 화곡동 "추석은커녕 먹을 쌀도 없어요"

60년 망향의 한…올해도 올리는 북녘을 향한 차례상

"죽은 사람에게 왜 절을?"…첫 추석 맞는 외국인 며느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