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못박힌채 남겨진 자… 지워지지 않는 충격에 연쇄 비극도
한국일보 | 입력 2010.10.20 02:33
[추적, 극단의 선택 자살] < 2 > 고통에 신음하는 유가족
자살자 유가족 1년에 9만여명… 대부분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고통
상담기관 전국에 3곳뿐… 심리 상담등 아픔 나누기 필요
아버지(58)가 3년 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딸 이수진(29ㆍ가명)씨는 소식을 듣자마자 "아니다"고 현실을 부정했다. 경찰조사 장례 채무청산 등은 모두 이씨 몫이었다. 어머니는 허공만 응시했다. 이씨는 "모든 걸 떠맡기고 떠난 아버지가 밉다"고 절규하다 이내 "내가 나빴다"고 후회하길 반복했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모녀는 점차 "네 탓"이라고 서로를 원망했다.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소문은 빨랐다. 마을사람들도 괴롭긴 마찬가지였다. 사망 당일 20만원을 빌려달라는 고인의 부탁을 거절했던 이웃들은 자책감에 밤마다 잠들지 못했다. 이웃의 괴로움은 원망으로 변해갔다. "저 집안 때문에"라는 손가락질 탓에 모녀는 결국 도망치듯 마을을 떠나 연락을 끊었다.
자살로 피붙이를 잃은 이들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통으로 신음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1만5,413명이 자살했다. 미국에서 자살 1명당 평균 6명의 '자살자유가족'이 발생한다는 연구결과를 대입하면, 1년간 국내에 9만2,478명의 자살자유가족이 생긴 셈이다. 자살자유가족이란 한 사람의 자살로 인해 정신적으로 직접적 영향을 받는 가족을 말한다.
실제 2000년부터 10년간 무려 64만4,706명의 국민이 자살자유가족이 됐다. 약 8분에 1명꼴로 발생하는 셈이다. 미국보다 가족주의 전통이 강해 친인척의 범위가 넓은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실제 유가족은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자살자유가족이 겪는 충격은 여타 사별(死別)보다 상처가 깊고 오래간다. 자살은 고의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라 가족이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갖기 쉽다. 아울러 죄책감을 느끼는 등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다. 최상미 인천정신보건센터 정신보건사회복지사는 "자살자유가족 대부분이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에 시달리고 일부는 수십 년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심한 경우 유가족이 자살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자살하면 보통 사람보다 자살충동이 80~300배 늘어난다"며 "상처로 마음이 나약해져 충동조절이 안되고 나도 힘들면 비슷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학습효과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아버지와 형이 모두 자살한 김준호(23ㆍ가명)씨의 사연이 그렇다. 아버지는 김씨가 유치원생 때 목을 매 숨졌다.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의 선택은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일이자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남았다.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던 두 살 터울의 형도 20세가 되던 해에 스스로 생을 등졌다.
이후 김씨 역시 자살충동에 시달렸고, 결국 지난해 맹독성 제초제를 들이켰다. 이웃의 신고로 응급실에 실려간 김씨는 다행히 해독제를 마시고 목숨을 건졌지만 해독제 부작용으로 관절퇴행이 진행됐다. 우울증도 앓게 됐다.
자살자유가족에 대한 치유는 심리상담과 비슷한 처지의 유가족끼리 모여 마음을 털어놓는 자조모임만 마련해줘도 어느 정도 치유가 가능하다. 그러나 국내 유가족들은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 자살자유가족 상담을 해주는 기관은 서울 인천 경기 세 곳의 정신보건센터뿐이다.
인력도 부족하다. 인천정신보건센터는 최장 1년간 자살자유가족을 방문하고 전화상담도 하지만 80여명의 등록 유가족을 돌보는 복지사는 고작 5명이다. 한 복지사는 "초기에 직접 찾아가 위로하고 회복을 독려해야 세상 밖으로 나와 상담도 받으러 올 수 있는데 인력이 부족해 다 챙기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민간단체 중에는 한국생명의전화가 올해 5월 자살자유가족지원센터를 서울 대전 경남 지역에 마련해 유가족 자조모임을 운영하고 있지만, 역시 정부차원의 지원이나 관심은 없다.
넓은 의미에서 자살자유가족인 친구나 동료에 대한 상처치료도 무방비다. 특히 같은 반 친구가 자살을 한 경우 청소년들은 가족만큼 큰 상처를 입고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들에 대한 교육당국의 대응매뉴얼은 없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자살 사후교육을 지원하겠다고 해도 학교에서 덮어놓고 반대하고 학부모는 '심장마비' '실족사'라고 하며 자살을 숨겨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군부대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하 원장은 "국가가 자살과 관련한 의식개선 캠페인과 유가족 심리상담 지원에 나서야 자살을 쉬쉬하려는 문화도 개선되고 유가족들도 정상적인 삶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살자 유가족 1년에 9만여명… 대부분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고통
상담기관 전국에 3곳뿐… 심리 상담등 아픔 나누기 필요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소문은 빨랐다. 마을사람들도 괴롭긴 마찬가지였다. 사망 당일 20만원을 빌려달라는 고인의 부탁을 거절했던 이웃들은 자책감에 밤마다 잠들지 못했다. 이웃의 괴로움은 원망으로 변해갔다. "저 집안 때문에"라는 손가락질 탓에 모녀는 결국 도망치듯 마을을 떠나 연락을 끊었다.
자살로 피붙이를 잃은 이들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통으로 신음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1만5,413명이 자살했다. 미국에서 자살 1명당 평균 6명의 '자살자유가족'이 발생한다는 연구결과를 대입하면, 1년간 국내에 9만2,478명의 자살자유가족이 생긴 셈이다. 자살자유가족이란 한 사람의 자살로 인해 정신적으로 직접적 영향을 받는 가족을 말한다.
실제 2000년부터 10년간 무려 64만4,706명의 국민이 자살자유가족이 됐다. 약 8분에 1명꼴로 발생하는 셈이다. 미국보다 가족주의 전통이 강해 친인척의 범위가 넓은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실제 유가족은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자살자유가족이 겪는 충격은 여타 사별(死別)보다 상처가 깊고 오래간다. 자살은 고의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라 가족이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갖기 쉽다. 아울러 죄책감을 느끼는 등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다. 최상미 인천정신보건센터 정신보건사회복지사는 "자살자유가족 대부분이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에 시달리고 일부는 수십 년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심한 경우 유가족이 자살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자살하면 보통 사람보다 자살충동이 80~300배 늘어난다"며 "상처로 마음이 나약해져 충동조절이 안되고 나도 힘들면 비슷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학습효과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아버지와 형이 모두 자살한 김준호(23ㆍ가명)씨의 사연이 그렇다. 아버지는 김씨가 유치원생 때 목을 매 숨졌다.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의 선택은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일이자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남았다.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던 두 살 터울의 형도 20세가 되던 해에 스스로 생을 등졌다.
이후 김씨 역시 자살충동에 시달렸고, 결국 지난해 맹독성 제초제를 들이켰다. 이웃의 신고로 응급실에 실려간 김씨는 다행히 해독제를 마시고 목숨을 건졌지만 해독제 부작용으로 관절퇴행이 진행됐다. 우울증도 앓게 됐다.
자살자유가족에 대한 치유는 심리상담과 비슷한 처지의 유가족끼리 모여 마음을 털어놓는 자조모임만 마련해줘도 어느 정도 치유가 가능하다. 그러나 국내 유가족들은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 자살자유가족 상담을 해주는 기관은 서울 인천 경기 세 곳의 정신보건센터뿐이다.
인력도 부족하다. 인천정신보건센터는 최장 1년간 자살자유가족을 방문하고 전화상담도 하지만 80여명의 등록 유가족을 돌보는 복지사는 고작 5명이다. 한 복지사는 "초기에 직접 찾아가 위로하고 회복을 독려해야 세상 밖으로 나와 상담도 받으러 올 수 있는데 인력이 부족해 다 챙기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민간단체 중에는 한국생명의전화가 올해 5월 자살자유가족지원센터를 서울 대전 경남 지역에 마련해 유가족 자조모임을 운영하고 있지만, 역시 정부차원의 지원이나 관심은 없다.
넓은 의미에서 자살자유가족인 친구나 동료에 대한 상처치료도 무방비다. 특히 같은 반 친구가 자살을 한 경우 청소년들은 가족만큼 큰 상처를 입고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들에 대한 교육당국의 대응매뉴얼은 없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자살 사후교육을 지원하겠다고 해도 학교에서 덮어놓고 반대하고 학부모는 '심장마비' '실족사'라고 하며 자살을 숨겨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군부대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하 원장은 "국가가 자살과 관련한 의식개선 캠페인과 유가족 심리상담 지원에 나서야 자살을 쉬쉬하려는 문화도 개선되고 유가족들도 정상적인 삶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상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0억짜리 태백체험공원, 연 수입은 250만원 … (0) | 2011.02.07 |
---|---|
용산구 '남이장군 사당제' (0) | 2010.10.31 |
개신교 목회자 양심선언 "기성교단 신천지교에서 말씀과 빛된 행실 배워야" (0) | 2010.10.20 |
유통업자 “4대강 공사와 채소값 폭등 99% 관련 있다” (0) | 2010.10.12 |
[스크랩] 세계 직장인들의 이직 사유 1위는? (0) | 2010.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