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자 “4대강 공사와 채소값 폭등 99% 관련 있다” | |
농민단체 “사라진 채소밭 4.7% 정도지만 생산량은 10~20% 줄어” “기상이변이 1차적, 4대강 공사로 채소밭 사라진 것이 2차적 원인” | |
허재현 기자 조소영 피디 김도성 피디 | |
“채소값 폭등이 4대강 공사와 관련 없다고예? 현장에 와보지도 않고 하는 소리지예. 채소 심을 데가 없는데 값이 안 오르고 배깁니꺼?”
지난 7일 오후 부산시 사상구 낙동강 하류 삼락 둔치. 부추 농사를 짓고 있는 김상구(57)씨는 ‘채소값 폭등은 4대강 공사와는 관련 없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일갈했다. 김씨는 이곳 삼락 둔치에서 4천 5백여평 규모로 채소 농사를 짓던 농민이다. 낙동강을 끼고 있는 삼락 둔치는 퇴적층이 잘 발달해 유기질이 풍부할 뿐 아니라 모래밭이라 물 빠짐도 좋아 채소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 둔치가 4대강 공사 구간으로 묶이면서 그는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됐다. 김씨가 채소를 심었던 땅 중 2천여평에는 3일 전 강제로 준설토가 쌓이고 말았다. 푸르렀던 시금치밭은 금세 시커먼 황무지로 변해버렸다. 푸르던 채소밭이 시커먼 황무지로
삼락 둔치에서는 올해 초까지 100여명 농민들이 25만평 규모의 채소밭을 일구며 부산· 경남 일대에 배추, 상추, 열무 등을 공급해왔다. 하지만 4대강 사업으로 이 채소밭은 모두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그동안 정부에서 땅을 빌려 밭을 일구어 왔던 농민들은 하나 둘씩 농사를 포기하고 이 일대를 떠났다. 부산지역 최대 규모 채소밭은 지금 ‘낙동강 살리기 제3지구’ 공사구간에 포함돼 밤낮없이 파헤쳐지고 있다. 넓고 푸르렀던 채소밭 곳곳에 ‘출입금지’ 팻말이 걸렸고, 흙을 퍼내는 굴착기 소리가 요란했다.
“4대강 때문에 채소값 폭등” 끊이지 않는 논란
삼락 둔치 채소밭이 파헤쳐지는 사이 시장에서는 단군 이래 최고로 오른 배추값과 채소값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제기된 채소값 폭등은 크게 세 가지 원인으로 압축된다. 기상이변, 유통업자의 사재기, 4대강 공사. 정부는 논란 초기부터 “채소값 폭등이 4대강 공사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치권과 농민단체, 일부 학자들은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며 “4대강 공사가 채소값이 오르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맞서고 있다. 또 채소값이 폭등한 원인을 분명히 밝혀야 채소 수요가 본격화하는 김장철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상이변… 일사량 평년보다 20~30% 줄어
채소값이 치솟은 1차적 원인이 기상이변이라는 것에 이의를 다는 이는 거의 없다. 강원도 고랭지에서 출하하는 배추와 무 등은 여름철 이상 고온으로 병들거나 상품성이 떨어져 생산량이 40% 정도 줄었다는 것이 정부 쪽 설명이다. 기상청 통계를 보아도 지난 8월 전국에 걸쳐 잦은 비가 내려 일사량이 평년보다 20~30%가량 낮았다. 지역 농협과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쉽게 수긍이 간다. 농민들은 올해 기상이변으로 채소 생산량이 뚝 떨어졌다고 하소연한다. 지난 6일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송계1리에서 만난 농민 조갑연(52)씨가 대표적이다. 조씨는 지난 7월 배추 2천 포기를 심었다가 절반가량 수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조씨는 “이전에도 날씨 탓에 밭농사를 망친 경우가 있지만 올해 같은 날씨는 처음”이라며 혀를 찼다. 정부가 발표한 ‘사라진 채소밭 1.4%’ 곧바로 반박에 직면
이처럼 기상이변이 직접적인 원인임에도 ‘4대강 공사로 채소값이 폭등했다’는 주장은 끊이질 않았다. 급기야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달 29일 보도자료를 내어 “4대강 공사로 사라진 채소밭 면적은 3,662ha로 전국 채소밭 면적 262,995ha의 1.4%에 불과해 채소값 폭등에 영향이 미미하다”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의 해명은 곧바로 반박에 직면했다. 야권과 농민단체는 정부가 ‘4대강 논란’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원인을 축소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사라질 채소밭 3,662ha와 12,295ha, 진실은? 첫째. 정부가 4대강 공사로 사라진 채소밭 면적을 의도적으로 축소해 발표했다는 것. 전국 채소밭 면적인 분모는 키우고, 4대강 주변 채소밭 면적인 분자는 줄였다는 것이다. 실제 취재 결과, 정부가 발표한 ‘4대강 공사로 사라진 채소밭’ 비율인 1.4%는 사실상 ‘사라진 전체 채소밭 면적’이 아니라 지금까지 ‘보상이 완료된 채소밭 면적’만 집계해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국토해양부가 지난해 9월 발간한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 보고서를 살펴보니, 정부는 ‘4대강 공사로 사라질 전체 영농지 규모를 17,750ha 정도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토해양부는 돌연 지난 9월 이 규모를 축소해 9,487ha로 고쳐 발표했다. 무려 8,263ha의 오차다. 여의도 면적 10배 크기다. 전체 영농지 규모가 축소 발표된 만큼 채소 경작지도 줄여 발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는 대목이다. 국토해양부는 이에 대해 뚜렷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토해양부의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 사업지원팀의 관계자는 전화 통화에서 “당시 ‘4대강 마스터 플랜’을 세운 용역업체에서 수치를 그렇게(17,750ha) 잡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며 “하천의 특성상 오차가 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책 기관의 보고서에서 이렇게 큰 오차가 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야당의 시선이다. 또 실제 줄어든 채소 경작지가 정부 발표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보상을 받지 못한 4대강 유역의 채소밭과 준설토가 쌓이는 면적, 수몰될 농지 규모까지 합하면 실제 사라진 채소밭 면적은 최소 12,295ha로 전체 채소밭 면적의 4.7%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정부가 채소값 폭등이 4대강 공사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고백하기 싫어서 의도적으로 통계를 왜곡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농산물값 영향은 면적보다 생산량…“생산량 감소 최대 20%” 추정도
둘째. 정부는 채소값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생산량 문제를 애써 언급하지 않고 있다. 농산물은 재배 면적보다는 생산량(공급량)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농민단체는 4대강 공사로 사라진 채소밭 면적은 4.7% 정도이지만 줄어든 채소 생산량은 10~20%까지 추산하고 있다. 곽길자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국장은 “면적보다는 생산량이 중요하다. 4대강 하천에 조성돼 있던 채소밭은 비옥하기 때문에 일반 밭보다 면적대비 생산량이 월등히 높았다”고 말했다. 4대강 유역 채소밭들이 비닐하우스를 활용한 시설재배를 주로 해왔던 것도 생산량의 급격한 감소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보통 시설재배는 일반재배보다 면적 대비 생산량이 2~3배 높다. 이모작, 삼모작 중복 경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범구 민주당 의원실은 농협이 제출한 ‘시설재배 관계 품목 감소량 자료’를 근거로, 4대강 유역에서 사라진 비닐하우스 면적이 최대 2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농산물의 가격 탄력성 간과하지 말아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농산물의 ‘가격 탄력성’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농산물은 수요가 일정하기 때문에 공급량에 작은 변화만 있어도 가격이 크게 오르내리는 특징을 갖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공급량에 3% 정도의 변화만 있으면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과일과채관측팀 관계자는 “품목에 따라 다르지만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놓고 봤을 때 3~5%의 공급량이 바뀌면 농산물 가격이 요동칠 수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자 “4대강 공사로 채소값 폭등 99%” 그렇다면, 채소 유통을 담당하는 상인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유통업계에서도 ‘4대강 변수’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부산·경남 지역에서 채소 유통을 하는 이석일(유통업계 10년 종사)씨는 “낙동강 주변에서 부산·경남 지역 채소가 많이 들어왔는데, 4대강 공사 뒤 채소밭이 모두 사라져 물량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며 “이 지역 상인들의 대체적인 견해다”고 전했다. 이씨보다 오래 채소를 유통한 30년 경력의 한화종씨는 전국적인 채소값 폭등에 대해 더 분석적인 설명을 내놨다. 한씨는 “중부 지방의 작황이 안 좋으면 경남 지방의 채소가 중부 지방으로 올라가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경남 지방에도 채소를 대기 힘들어지면서 ‘유통 순환 고리’가 일시적으로 끊어졌다”며 “4대강 공사와 채소값 폭등은 99%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한씨는 “기상이변 때문에 생산량이 감소한 게 1차적 원인, 4대강 공사로 채소밭이 사라진 것이 2차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곽길자 전농 정책국장은 “4대강 사업으로 채소값이 오를 것으로 보이자 상인들이 사재기에 나섰고, 결국 채소값이 더 폭등하는 빌미를 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얼마나 더 당해야 정신 차릴지?” 그렇다면 대책은 있을까? 정범구 민주당 의원은 “정부는 ‘4대강 알레르기’에 걸린 것처럼 4대강 얘기만 나오면 펄쩍 뛰는데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면 철저히 분석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4대강 사업과 채소값 폭등’과의 연관성을 꾸준히 지적해 온 장상환 경상대(경제학과) 교수는 생산과 유통 측면에서 대책을 분류해 제안했다. 장 교수는 “4대강 하천 둔치에서 채소 재배를 계속 하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고, 유통명령제를 일반 채소류에도 확대 도입해 정부와 농협의 역할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성철 부산 농민회 사무처장은 지난 7일 낙동강 하류 삼락 둔치에서 흙더미에 덮여 망가져 버린 그의 채소밭을 바라보며 “얼마나 더 당해봐야 사람들이 정신을 차릴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그의 수천평 채소밭은 정부 통계인 ‘1.4%’에도 들지 못한 채 채 며칠 전 사라져 버렸다. 부산시로부터 임대해 농사를 지어 보상받은 농지에 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산·이천·진주/ 글 허재현 기자 영상 조소영, 김도성 피디 catalunia@hani.co.kr |
'세상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슴에 못박힌채 남겨진 자… 지워지지 않는 충격에 연쇄 비극도 (0) | 2010.10.20 |
---|---|
개신교 목회자 양심선언 "기성교단 신천지교에서 말씀과 빛된 행실 배워야" (0) | 2010.10.20 |
[스크랩] 세계 직장인들의 이직 사유 1위는? (0) | 2010.09.01 |
[스크랩] "대형마트 왜 가죠? 집 옆에 생협이 있는데" (0) | 2010.08.26 |
[슬로 워킹] 대한민국서 가장 걷기 편한 1천리 `삼남길` (0) | 2010.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