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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으로부터 미행 여러 번 당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소한마리-화절령- 2011. 4. 16. 16:00

 

"삼성으로부터 미행 여러 번 당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12일 밤 삼성 해고 노동자 추격전의 재구성

기사입력 2011-04-15 오후 4:11:05

삼성SDI 해고 노동자 김갑수 씨(47)가 범죄영화의 추격전을 방불케 하는 다툼 끝에, 자신을 미행하던 회사측 직원을 붙잡았다. 김 씨는 이미 이골이 날 대로 회사에 미행당해 왔지만, 이번처럼 지독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삼성SDI에 노동조합만들기 위한 모임을 추진하다 해고됐다. 김 씨는 삼성그룹 해고노동자 원직복직투쟁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는 등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과 함께 대표적인 삼성 노조관련 운동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휴대폰 GPS를 이용한 노동자 감시, 노조 설립 의도자에 대한 납치 및 감금 등 삼성의 노조 탄압과 관련한 여러 사건에서 언론에 종종 소개됐다.

김 씨는 15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으로부터 미행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미행자들이 유난히 필사적으로 도망가려 해 이상하다"며 "이 친구들(미행자들)이 어려서 당황한 건지 모르겠다"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김 씨에게 옛 회사의 미행과 감시는 일상적인 일이다.

첩보영화 방불케 한 추격전

김 씨의 말을 종합하면, 그는 지난 12일 밤 11시 15분경 전 직장 동료들과 천안 두정동의 한 식당에서 만나 노조설립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좀 있다 들어오는 손님 두 명의 낌새가 이상했다. 이에 동료들에게 자리를 옮기자고 해, 자신의 차에서 한 시간 가량 더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13일 새벽 0시 45분경 주차장에서 헤어졌다.

김 씨는 차를 끌고 집이 있는 경기화성으로 향하는 대로로 나왔다. 승용차 한 대가 자신의 차량을 쫓아왔다. 미행인지 확인하기 위해 속도를 시속 50~60㎞로 줄였다. 한밤 중이라 차도 없었다. 그런데 그 차도 속도를 줄였다. 신호를 두 번 무시해보았다. 역시 자신을 따라 신호를 무시했다.

김 씨는 순간 '오늘은 어떤 애들이 미행하나'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이에 인근 ㅅ아파트로 차를 몰았다. 전조등을 끄고 가만히 있었다. 뒤따르던 차는 그를 따라 들어오진 않았다. 대신 김 씨의 차가 보이는 대로변에 섰다. 미행 차량의 차번호를 알아낸 후, 그들의 신원을 확인하기로 했다. 미등도 켜지 않은 채, 옆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댔다. 그리고 시동을 껐다.

미행 차량이 순간 그를 놓친 것 같았다. 황급히 대로변으로 차를 몰아 나갔다. 마침 진행방향에 신호등이 걸려, 차들이 서너대씩 줄 지어 있었다. 미행자들은 이 행렬에 김 씨의 차가 없는 걸 확인한 후, 그제서야 지하주차장으로 김 씨를 찾아 들어왔다. 김 씨는 의자를 뒤로 눕힌 채 밖을 살폈다. 조수석에서 한 젊은 남자가 내려 김 씨의 차 1m 정도 앞에서 안을 살폈다. 김 씨와 눈이 마주친 그는 곧바로 달아났다. 김 씨는 벌떡 일어나 그를 뒤쫓았다.

김 씨는 차량을 가로막고 "문을 내려라. 소속이 어디냐. 누가 시켰냐"고 물었다. 조수석으로 들어간 남자는 황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차량은 후진 중이었다. 그러나 이미 길은 막혀 있었다.

그들은 앞을 가로 막은 김 씨를 차로 밀고 나왔다. 김 씨는 순간적으로 보닛 위로 올라갔다. 그들은 김 씨를 떨어뜨리기 위해 급제동과 급발진을 반복하며 대로변으로 나왔다. 곧 내리막길이었다. 그들은 큰 폭으로 차량을 유턴했다. 김 씨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차에 더 바짝 매달렸다. 두 손으로 보닛을 잡고, 회전하는 방향으로 뻗은 발에 힘을 줘 버텼다.

마침 어디선가 "뭐하는 중이에요? 경찰에 신고할까요?"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향을 확인도 못한 채 김 씨는 그래달라고 외쳤다. 곧 미행자들은 갓길에 차량을 세웠다. 김 씨를 구한 택시기사가 차량 앞을 가로막고 섰다. 5분가량이 지난 후 경찰이 도착했다.

적과의 동행(?)

▲ ⓒ프레시안
김 씨는 1987년 삼성SDI 제조·설비부문 노동자로 입사했다. 주로 전지를 만들었다. 1996년 천안 사업장이 생긴 해 김 씨는 천안으로 내려갔다. 이후 노사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다, 2000년 11월 18일 회사에서 해고됐다. 업무태만이 주요 사유였다.

해고당하기 전부터 그는 24시간 내내 감시에 시달렸다. 해고 전에는 그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도, 시골 고향 집 인근 동네 회관에도 미행자들이 있었다. 오죽하면 미행팀의 간부가 그를 찾아와 "우리 애들이 지쳤으니, 좀 쉬게 해 달라. 나랑 있어주면 애들이 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기 아내를 옆에 태우고 그를 미행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 씨는 "삼성 사람들이면 누구나 미행, 감시가 이뤄진다는 걸 안다"고 말한다.

미행을 오래 당하다보니, 김 씨는 천안 인근 지리를 훤히 꿰게 됐다. 미행자를 잡기 위해서다. 그는 미행차량을 확인하면 언제나 막다른 골목으로 차를 몰고 가곤 했다. 김 씨가 화난 표정으로 문을 열라고 하면, 대부분은 차에서 내려 "죄송하다" "나도 먹고 살기 위해 이런다"고 사과를 했다. 사건 당일에도 경찰은 감탄한 목소리로 김 씨에게 "지리를 정말 잘 아시네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들은 달랐다. 순순히 차에서 내리지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도, 부끄러운 표정을 짓지도 않았다. 왜 그날따라 유난히 그들이 민감하게 반응해 일이 이토록 커졌는지 김 씨도 의문이다.

기밀문서 내용은 뭔가

마침 삼성SDI 측은 김 씨 미행의 이유로 기밀문서 유출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삼성SDI 관계자는 "기밀문서를 출력한 이력이 남았다. 의혹이 가는 직원을 불러다 조사했는데도 계속 범행 사실을 부인했다. 이 때문에 그를 미행한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문서와 관계도 없는, 이제는 회사 관계자도 아닌 김 씨를 미행했을까.

이 관계자는 "미행하던 중 정황을 보니, 그 직원이 김 씨와 만났다. 공범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기존에 알던 직원 대신 김 씨를 미행하게 된 것 같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고다. 우리는 김 씨의 얼굴도 모르고, 그를 예전에 미행한 적도 없다"고 설명했다.

김 씨에게 우선 유출된 기밀문서와 관련된 내용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관련 소문을 들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복수노조 시대에 대비한 기밀문서가 유출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998년에도 비슷한 문서가 유출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실명이 거론된 관련 단체, 언론사 명단까지 유출됐다고들 하더라"고 김 씨는 조심스레 운을 뗐다.

그 문서를 김 씨가 확보한 건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했다. 김 씨는 "사람들 얘길 들어보니, 직원들 주머니 검사, 소지품 검사가 다 행해졌다고 한다. 문서가 밖으로 나오기는 굉장히 힘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삼성SDI에 따르면 출력된 기밀문서는 13일 새벽 회사 내에서 회수됐다. 김 씨의 사건을 맡게 된 김칠준 변호사는 "김 씨를 미행한 이들이 신조직문화사업국 소속이며, 이 부서는 노조 관련 감시업무를 맡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삼성SDI의 해명과 달리, 삼성SDI의 그날 미행 타깃에는 처음부터 김 씨가 놓여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 씨는 지금도 회사 내 노조설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직 동료들을 만나고 다닌다. 김 변호사는 "삼성SDI에서 김갑수를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거기 직원이면 김갑수를 모를 수 없다"고 확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