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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은 불신을 낳는다

소한마리-화절령- 2011. 7. 26. 04:26

확신은 불신을 낳는다
김민환(고려대 명예교수)

고전경제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같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 세상을 떠나자 그를 애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나약한 인간의 본성이 허용하는 한, 이 완전무결하게 현명하고 고결한 사람의 사상에 가깝게 접근하고자 애써왔다"

확신이란 하나의 주관일 뿐

흄은 회의론자였다. 그는 인간의 관념은 인상(impressions)으로부터 출발하며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이라 할지라도 확실히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흄에 따르면, 확신이란 그에게 강하게 다가오는 하나의 주관일 따름이었다.

그의 이런 회의론은 사회적 인과관계나 절대자의 존재에 대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래서 그는 유물론자는 물론 종교철학자로부터도 끊임없이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시대의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가 지적했듯이,근대사회가 독선의 늪에서 헤어나오게 되는 과정에서 흄의 공적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흄의 회의론은 미국 신문이 오랜 정파주의(政派主義)에서 빠져 나와,사실(事實)을 추구하도록 하는데 그 이론적 바탕을 제공했다. 기자가 직접 사건을 보고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주관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건을 기사로 작성할 때 주관성이 개입하는 것을 막기는 정말로 어렵다. 주관성으로 각색된 사실은 이미 사실이 아니다. 그럼 언론은 어떻게 독자에게 사실만을 전달할 것인가? 이 고민에 대한 미국 언론의 답이 객관주의 보도원칙이었다.

이 원칙에 따르면, 기자는 책임 있는 관계자가 발표한 내용을 가감 없이 보도해야 한다. 만약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상대가 있을 경우에는 양자의 이야기를 제3자의 위치에서 공정하게 보도해야 한다. 보도 내용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게 좋다. 궁극적으로 사건에 대한 판단은 기자가 아니라 독자가 내리게 해야 한다.

회의하는 기자가 언론의 신뢰도를 높인다

회의는 믿음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믿음을 가져다준다. 사실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자제하고 사실에 객관적으로 접근할 때, 사실에 더 가까이 도달한다. 그 이치를 실증한 신문이 미국의 <뉴욕 타임스>다. 객관주의 보도원칙을 고집스럽게 추구한 이 신문은 한 세기 안에 가장 믿을 만한 세계의 신문으로 우뚝 섰다. 이 신문이야말로 회의가 회의를 낳는 것이 아니라 회의를 통해 믿음을 얻는, 회의의 변증법을 몸소 보여준 언론인 셈이다.

우리 언론에 회의는 없다. 확고한 신념만이 가득하다. 이 확신이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일까? 언론의 신뢰도 하락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확신에 찬 언론은 생각을 달리하는 독자에게는 그 매체에 대한 불신을 야기한다.

확신에 찬 오늘의 언론인들에게 한 걸음 물러나 조용히 흄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확신에 찬 기자가 아니라 회의하고 또 회의하는 기자가 언론의 신뢰도를 높일 것이다. 회의하는 기자가 많은 언론이 결국 내일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영향력 있는 신문보다는,믿을만한 신문을 갈구하는 독자가 부쩍부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 언론인 뿐이겠는가. 우리는 친구끼리도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10분이 못가 서로 얼굴을 붉힌다. 확신과 확신이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조용히 자신의 확신에 대해 회의해 볼 필요가 있다. 그 회의를 통해 상대와 공존할 수 있는 영역, 협상 가능한 영역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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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민환
· 다산연구소 대표
· 고려대 명예교수
· 한국언론학회 회장 역임
· 저서: <개화기 민족지의 사회사상>
         <일제하 문화적 민족주의(역)>
         <미군정기 신문의 사회사상>
         <한국언론사>
         <민주주의와 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