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는 믿음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믿음을 가져다준다. 사실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자제하고 사실에 객관적으로 접근할 때, 사실에 더 가까이 도달한다. 그 이치를 실증한 신문이 미국의 <뉴욕 타임스>다. 객관주의 보도원칙을 고집스럽게 추구한 이 신문은 한 세기 안에 가장 믿을 만한 세계의 신문으로 우뚝 섰다. 이 신문이야말로 회의가 회의를 낳는 것이 아니라 회의를 통해 믿음을 얻는, 회의의 변증법을 몸소 보여준 언론인 셈이다.
우리 언론에 회의는 없다. 확고한 신념만이 가득하다. 이 확신이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일까? 언론의 신뢰도 하락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확신에 찬 언론은 생각을 달리하는 독자에게는 그 매체에 대한 불신을 야기한다.
확신에 찬 오늘의 언론인들에게 한 걸음 물러나 조용히 흄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확신에 찬 기자가 아니라 회의하고 또 회의하는 기자가 언론의 신뢰도를 높일 것이다. 회의하는 기자가 많은 언론이 결국 내일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영향력 있는 신문보다는,믿을만한 신문을 갈구하는 독자가 부쩍부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 언론인 뿐이겠는가. 우리는 친구끼리도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10분이 못가 서로 얼굴을 붉힌다. 확신과 확신이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조용히 자신의 확신에 대해 회의해 볼 필요가 있다. 그 회의를 통해 상대와 공존할 수 있는 영역, 협상 가능한 영역을 찾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