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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한마음의 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소한마리-화절령- 2011. 8. 26. 22:45

 

헤겔의 '한마음의 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철학자의 서재] 헤겔의 <역사 속의 이성>

기사입력 2011-08-26 오후 6: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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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가 자유로워야 진정으로 열린 사회

1980년대 말 동유럽과 구소련의 몰락을 보면서 1990년대 초반 역사가 종말에 도달했다고 대담하게 주장한, 미국 펜타곤에 근무했던,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2008년 미국의 탐욕스런 금융 산업에서 시작된 세계 금융 위기를 지나면서 괴롭게도 자신의 말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2011년 미국 정부의 부채 문제로 불거진 세계 경제 불안정이라는 현상 앞에서 그는 아마도 자신의 대담했던 말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의 종말'이란 역사가 자본주의적 자유주의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 이후의 사회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가장 고도로 발전한 사회가 자유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후쿠야마의 오판은 세계사를 '자유 의식의 진보'라고 한 헤겔의 역사 철학을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헤겔이 의도한 세계사의 목표는 만인이 자유롭고 인간은 곧 인간인 한에서 자유로운 국가의 실현이다. 한 사람이나 소수만이 자유롭고 대부분의 사람은 빈곤과 실업으로 억압된 삶을 살고 있는 국가는 헤겔 식의 자유의 실현이 아니다. 헤겔의 국가관은 그런 점에서 통상 알려진 것처럼 자유주의 국가관이 아니다. 자유주의가 시장주도의 신자유주의를 의미한다면 헤겔은 더더욱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구소련의 스탈린 독재나 북한의 정치적 세습은 미국 금융 자본의 독과점이나 남한의 경제적 세습 못지않게 헤겔적인 역사의 발전을 거스르는 반(反) 자유적인 사태이다. 헤겔이 말하는 자유는 단순히 생각 속의 자유만이 아니라 객관적인 현실에서 자유가 실현되는 삶의 자유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하이에크의 친구인 칼 포퍼의 말대로 헤겔이 열린 사회의 적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정치적 독재가 열린 사회의 적이다.

열린 사회는 포퍼가 의도하듯이 자본의 독과점으로 전락한 시장 주도의 사회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를 의도했다면 통상 포퍼를 비난하는 말처럼 그의 열린 사회는 가장 닫힌 사회가 된다. 헤겔이 의도한 것은 북한 식과 미국 식의 사회가 아니라 모든 이의 자유가 실현된 사회이다. 그의 말처럼 "국가는 인간의 의지와 자유가 외적으로 실현된 정신적인 이념"이기 때문이다.

노동 해방과 민족 해방처럼 거대한 담론이 불신 받는 포스트모던적인 회의주의 시대에 그리고 존재자의 존재 근거인 도(道)나 신과 같은 존재의 개념이 전혀 의미가 없는 탈(脫) 형이상학의 허무주의 시대에 세계정신이나 시대정신을 외치는 헤겔의 역사 철학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철이 지난 유행처럼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헤겔의 역사 철학은 과거의 사실을 단순히 보고하는 수준의 실증주의 역사학과는 다르다. 실증주의 역사학은 역사의 과학화를 표방하지만 실은 기계론적이고 원자론적인 자신의 형이상학을 감추고 있다. 헤겔의 역사 철학은 이와는 반대로 오히려 자신의 형이상학적 입장을 명확히 밝히면서 세계사의 철학적 의미를 밝혀보려는 점에서 해석주의 역사학의 출발점이 된다.

오리엔탈리즘 속에 담겨 있는 동양 비판의 의미

▲ 헤겔 ⓒhttp://www.kevinrdshepherd.net
헤겔의 역사 철학은 그의 난해한 철학과 변증법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에 해당한다. 그의 역사 철학은 베를린 대학에서 세 번이나 강의했던 자료를 편집해 만든 <역사 철학 강의>의 서론인 <역사 속의 이성>(임석진 옮김, 지식산업사 펴냄)에 요약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이 짧은 단행본이야말로 헤겔 철학으로 가장 쉽게 입문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이 역사 철학에서 그 당시 서구인이 가졌던 오리엔탈리즘적인 요소가 나타나는 문제점도 있지만 역으로 동양에는 자유 의식인 철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동양 비판에 우리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북한의 정치적 세습과 남한의 경제적 세습처럼, 또 중국의 인권 문제나 일본의 정치적 후진성 또는 인도남아 있는 불평등한 카스트 제도의 유산이나 아랍의 권위주의 정부들에서 볼 수 있듯이 과연 동양에 진정으로 만인의 자유가 존재했던 적이 있었던가? 아니면 이러한 자유 의식이 철학적으로 명료하게 표현된 적이 있었던가? 적어도 불교나 동학처럼 이러한 생각이 철학적으로 표현된 적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객관적으로 실현한 정치적 제도나 헌법이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

이러한 물음 방식은 전형적인 막스 베버 식의 오리엔탈리즘적인 발상법에 해당한다. 이러한 물음방식에는 좋은 어떤 것이 서양에는 있고 동양에는 없다는 서양 우월적인 사고방식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헤겔의 동양과 동양 철학에 대한 비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비판해보는 계기를 갖는 것이 더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타인의 생각을 가지고 우리 자신에 대해 철저하게 비판한다고 해서 우리가 타인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니다. 열등감을 지닌 자는 타인의 자기비판에 대해 분노하기 마련이지만 진정으로 강인한 사람은 타인의 자기비판을 자신의 성찰의 계기로 삼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헤겔에 의하면 사상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는 서로 연관적으로 발생한다. 역사상 자유로운 의식의 철학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현실 속에서 객관적으로 자유로운 국헌(國憲) 체제가 형성되어 있어야만 한다. 결국 철학은 동양에서가 아니라 그리스 세계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중국과 몽고 제국의 신정(神政) 일치의 전제주의 국가나, 인도의 신정 일치의 귀족주의 국가가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입증해 준다. 이를 헤겔은 <역사 속의 이성>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동양인은 정신이나 인간 그 자체가 즉자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바로 이 사실을 모르는 까닭에 그들은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 따라서 이러한 한 사람은 전제자일 수는 있어도 하나의 자유인이거나 인간일 수는 없다."

그러나 자유 의식이 대두된 그리스인도 로마인과 마찬가지로 노예제가 보여주듯이 소수인인 시민만 자유로울 뿐이다. 인간 그 자체가 자유로우며, 또한 정신의 자유야말로 이 정신의 가장 고유한 본성을 이룬다는 사실은 기독교를 통하여 역사상 처음 의식된다. 헤겔에게 자유를 향한 자기의식은 기독교적 원리이다. 이 기독교적 원리인 자유 의식의 진보라는 관점에서 그는 세계사의 시대 구분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동양은 세계사의 유아기에 해당할 뿐이다. 그래서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반에 유행하던 '중국풍'이나 '인도 열광'의 분위기 속에서도 헤겔은 동양과 동양 철학에 결별을 선언한다.

정신없는 시대에 정신의 귀환

시대의 유행에 민감하고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헤겔의 절대정신에 관한 생각을 현대의 탈(脫) 형이상학적 분위기 속에서 유령의 이야기처럼 여기곤 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는 정신을 "지각·기억·고려·평가·결정 등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사전적 정의는 현대의 '시대정신' 속에서 정신(精神)은 개인적인 차원의 심리학적인 의식이나 생물학적인 신경계로 환원되어 버렸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한마디로 지칭하면 현대는 '정신'이 사라진 시대라 할 수 있다. 이를 우리말의 속어 중의 하나인 '정신없는 놈'을 빗대어 말하면 '정신없는 시대'라 할 수 있다.

현대는 기술로 인한 사회 변화의 속도가 빨라 정신없고, 자본주의의 상업화와 경쟁의 물결 속에서 넋 놓지 않기 위해 정신없고, 가치 상대주의와 허무주의의 흐름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해 정신없는 시대라 할 수 있다. 이 정신없는 시대에서 정신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선 헤겔의 대표적 저작인 <정신현상학>(임석진 옮김, 한길사 펴냄)의 6장은 '정신'이라고 제목이 달려 있다. 우선 헤겔이 정신을 정의하는 대목을 인용해 보면, "보편적이고 자기동일적인 불변의 실체로서의 정신은 만인의 행위를 받쳐주는 확고부동한 토대이자 출발점이며 동시에 모든 자기의식의 사유 속에 본원적으로 깃들어 있는 목적이자 목표이다."

여기서 헤겔이 말하는 마음(정신)은 단순히 한 개인의 심리적 상태나 중추신경계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헤겔이 마음을 정신이라고 표현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정신으로서의 마음은 일단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즉, 헤겔이 의도한 정신은 개별적 마음이 아니라 원효 스님이 말씀하신 한마음(一心)과 비슷하게 개인 중심주의적이고 인간 중심주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다.

헤겔은 개인이 자기동일성을 지닌 인격의 소유자인 것처럼 그런 보편적인 정신을 자기동일적인 불변의 것(실체)이라고 부른다. 다중 인격이나 정신 분열이 심각한 병리적 현상이기 때문에 개별적 인격이 스스로 자신의 동일성을 유지하는 일은 중차대한 일이다. 자기동일성의 상실이란 곧 인격의 함몰(陷沒)을 의미한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헤겔은 현실의 실체로서의 보편적인 정신도 자기동일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인격이 개인적 행위의 토대이자 기초인 것처럼 정신도 만인의 행위의 토대이자 기초로 규정된다. 예를 들어 비록 개인적인 인격은 아니지만 일종의 인간 모임체인 회사라는 법인(법적인 인격)은 모든 회사원이 행동하는 토대이자 기초이면서 그 자체가 스스로 하나의 행위 주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회사원들의 행위의 목표와 목적은 회사라는 법인체를 향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모든 개별적 자기의식의 목적이나 목표는 보편적인 정신을 향한다고 할 수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와 정의와 자유를 추구하는 보편적인 절대정신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현대의 어느 누구도 회사를 유령으로 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헤겔은 자신의 시대정신 속에서 절대정신을 회사처럼 단단한 실체로 보았다. 그는 이 말을 통해 자신의 열정비전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시대가 비록 안온했던 기존의 공동체적 사회가 자본주의적 개인들의 경쟁으로 분열되고 해체된 시대이지만 이 속에서 그는 이 개인들의 분열된 각각의 행위와 의식의 공통된 기초가 되고 목표가 되는 그 무엇을 복원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무엇을 그는 정신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에서도 마음 모으기가 필요한 것처럼 현대 사회도 분열된 개인들을 통일하기 위해서라도 마음 모으기가 필요하지 않았겠는가? 이러한 마음 모으기를 할 수 있는 토대를 그는 한마음 즉 절대정신이라고 부른 것이다.

정신이 자신을 깨닫고 실현하는 과정으로서의 세계사

헤겔은 자신의 시대를 분열되고 해체된 시대라고 부른다. 이 경향은 그의 시대보다 훨씬 오늘날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 인식 속에서 그는 정신이 스스로 해체되어 따로 존재하는 듯이 보이는 정신의 요소들의 공통된 지반을 근거 짓고자 하다. 그는 이 찰나적인 요소들이 운동하면서 해체되는 가운데서 정신의 본질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는 각각의 요소들이 스스로 전진해 나가면서 분열하고 해체하는 운동을 정신이 자기 자신으로 귀환하는 과정으로 본다.

정신의 발전이 자기의식적 자기 복귀 과정의 총체성의 진전이라고 한다면 이 발전의 활동도 구체적이며, 활동 주체와 결과도 구체적이다. 이런 식으로 행위나 활동으로 채워진 발전의 도정이 그 내용으로서의 이념 자체이다. 이러한 발전 개념에 따라 헤겔이 제시하는 세계사의 발전의 과정을 바탕으로 해서 헤겔은 <역사 속의 이성>에서 정신의 세계사적인 전개 과정을 다음과 같이 4단계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가) 정신의 규정. 헤겔은 정신의 규정을 자유라고 한다. 세계사는 이러한 정신이 자신과 자기의 진리를 깨달으면서, 오직 이를 실현시키는 단계적 과정(노력)에 대한 서술이다. 철학은 이러한 정신의 깨달음 속에서 화해를 가져오고 잘못된 것으로 드러난 현실적인 것을 이성적인 것으로 정화함으로써 이 현실적인 것을 이념 자체 안에 근거 짓는 세계사적인 노동이다.

나) 실현의 수단. 목적, 원칙, 가능성이 현실성을 띠기 위해서는 두 번째 계기인 실행, 즉 현실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실행이나 실현의 원리가 구체적인 인간의 의지(세계 전반에 걸친 인간의 활동성=노동)이다. 이러한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 이념과 정열이다. 따라서 이념과 정열은 세계사라는 직물의 날줄과 씨줄이다. 이념 그 자체는 현실이고 열정은 이 현실이 어깨를 펼치게 하는 팔이다. 이 둘이 극단적으로 경합하는데 이 둘을 묶는 중심은 인륜적 자유이다. 세계사의 전 작업에서 이념은 현존재성이나 무상함에서 오는 부담을 그 스스로 지불함이 없이 개인의 열정으로 하여금 그 짐을 지게 한다. 이것이 '이성의 간교한 계책'이다.

다) 실현의 재료. 인륜의 모든 법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것 그 자체이다. 국가란 원래 시민으로 인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즉, 국가란 시민과 대립하는 추상체가 아니라 시민은 국가라고 하는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의 모든 계기이다. 국가의 본질은 인륜적인 생동성에 있다. 이는 (대자적, 배타적, 유한적) 주관 의지와 보편 의지의 융합을 뜻한다. 그래서 보편적 이념은 국가 안에서 현상한다. 이처럼 정신의 구체적 개념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현상 그 자체가 본질적인 것이 된다.

라) 정신의 현실성.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체 안에서의 이성적인 것의 실현, 즉 정치적인 상태의 완성에 있고 개념의 모든 계기들의 자유로운 발현에 있다. 국가는 이성적이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대자적인(자각적이며 주체적인) 자유이다. 그렇지만 세계사 속의 어떤 국가도 바로 이 절대정신의 권리(정의, 법)를 자처하고 나설 수 없다. 모든 개개의 국가는 자립적인 개체로서 서로가 서로를 전제하는 가운데 한 나라의 독립은 오직 또 다른 나라의 독립이 전제되는 한에서만 존중될 수 있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헤겔은 세계사가 정신의 발전이라는 사상에 이르게 된다. 정신의 발전이란 자기 자신에게 대립하는 달갑지 않은 노동이며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특정한 내용을 지닌 목적의 구현일 수 있다. 헤겔이 보기에 자연계에서는 종이 아무런 진보도 이루지 않지만 정신 속에서 일체의 변화가 진보이다. 결국 세계사란 자연으로서의 이념이 공간 안에서 스스로를 개진하듯이 시간 속에서 정신이 개진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여기서 진보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의식의 순차적인 단계적 진행으로 규정될 수가 있다. 몽롱한 의식, 감각적 느낌, 표상의 단계, 개념적 이해의 단계, 사물의 본성(정수) 인식, 자기 인식, 대상 인식과 자기 인식의 통일된 인식이 그 단계들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진보란 의식의 도야라는 점에서 결코 양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에 대한 여러 관계의 단계적 진행을 뜻한다. 진보한다는 것은 무한을 향한 불확정적인 것이 아니며, 진보한다는 것은 하나의 목적, 즉 자기 자신으로의 복귀이다. 이러한 순환 속에서 정신은 오직 자기 자신을 추구한 것이다.

헤겔에게 있어서 역사의 완성과 (이성)국가의 실현은 학적 인식의 형태를 빌린 예언이자 바람이다. 누구도 자기 시대에 뒤져 있을 수 없거니와 그의 시대를 뛰어넘을 수도 없다.

"여기가 로두스 섬(현실을 상징)이다. 여기서 뛰어라."

헤겔이 의도한 세계사의 목표는 만인이 자유롭고 인간은 곧 인간인 한에서 자유롭다는 세계(게르만적인 세계)이다.

에필로그

헤겔이 세계사를 통해 말하는 자유는 개인의 자유만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자유이다. 바로 세계사는 정신이 이를 실현해나가는 과정에 대한 서술인 것이다. 여전히 세계의 80퍼센트의 인류가 빈곤과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역사를 이런 식으로 자유 의식의 진보와 실현 과정으로 보는 헤겔의 철학은 시사해주는 의미가 분명히 있다. 그의 한마음의 실현으로서의 세계사는 이러한 빈곤과 질곡에서 벗어나 인류 공동의 자유를 실현하라는 원칙을 제시해주고 있다.

헤겔의 한마음(절대정신)에 관한 담론을 유령으로 보고 있는 현대의 과학적 시대정신 속에서 우리는 공동 윤리적 한마음의 귀환을 목도하고 있다. 현실 공산주의의 몰락은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이러한 한마음의 귀환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징표에 불과하다. 여전히 한마음의 역사는 신자유주의로 인한 세계 경제의 혼란과 세계 민주주의 위기의 순간에도 진행 중에 있다.
 

/김성우 상지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