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풍경

mb 촛불백서, 아직도 나오지 않는 까닭

소한마리-화절령- 2011. 11. 26. 23:01

 

‘MB촛불백서’ 아직도 나오지 않는 까닭
경향신문|
주간경향 정용인 기자|
입력 2011.11.26 21:57
|수정 2011.11.26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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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과 SNS에서 떠도는 한·미 FTA와 관련해 허무맹랑하고 어처구니없는 괴담들이 많다. 2008년 광우병 촛불사태 때에도 얼마나 많은 허무맹랑한 괴담들이 유포되었느냐." 11월 8일,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라디오연설에서 내놓은 주장이다.

'FTA 괴담'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이른바 '광우병 괴담'의 교훈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초기인 2008년에 벌어진 촛불시위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유언비어인 이른바 '광우병 괴담'에 의한 선동에서 시작되었으며 현재 'FTA 괴담'도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큰 파동은 우리 역사에 기록으로 남겨져야 한다는 점에서 총리실과 농림수산식품부, 그리고 외교부와 지식경제부 등 관련부처가 보고서를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역사적 변환기에 정부가 무심코 넘기기보다 지난 1~2년을 돌아보고 우리 사회 발전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촛불시위는 법적 책임보다 사회적 책임의 문제다." 지난해 5월 11일, 국무회의에서 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다. 이른바 'MB 촛불백서'의 시작점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이 지난해 10월 28일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제출한 '한·미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재협상에 따른 사회적 갈등 관리에 관한 종합연구' 최종 보고서. < 주간경향 > 은 당시 MB의 '지시'에 따라 총리실 정책홍보기획관실이 농촌경제연구원과 같은 국책연구기관에 의뢰해 백서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났다. 지난해 8월, 이 보고서 제작팀이 '각계 여론주도층'에 보낸 의견조사 메일이 잠깐 논란을 빚었을 뿐,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 나온 이야기가 없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성수의원 원장)은 당시 메일을 받은 사람들과 의견교환을 하면서 "답변하지 말자"고 문제제기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전후맥락을 다 잘라서, 너 이거 반성하냐 안하냐 묻는 식이었다. 나 같은 경우 곰탕, 설렁탕, 피자, 햄버거 이런 부분 전체가 다 위험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기고였는데, 앞은 다 자르고 '미국에서 햄버거를 먹으려면 죽을 각오를 하고 먹어야 한다'는 식으로 조선일보에서 문제 삼은 부분만 딱 잘라 보낸 것이었다."

그는 광우병 쇠고기 논란을 '괴담' 취급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국민들이 열심히 싸워서 30개월 이상은 안들어오고 있고 내장도 소장 부위는 못 들어오고 있다. 검역을 까다롭게 해서 미국에서 수출을 포기하게 한 것이다. 최소한의 요구가 관철된 셈인데, 그런 부분은 모두 생략하고 있다."

'MB 촛불백서'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결국 짜맞춰진 틀에 따라 참가자들의 의견을 재단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했다. < 주간경향 > 이 취재할 당시 총리실은 "보고서 목차만 정해졌을 뿐"이라면서 목차나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거부했다.

2008년 5월 31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마친 시위대가 서울 종로구 안국로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출처표기 없는 광우병 괴담 보고서

"'MB 촛불백서'는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나왔다. 오히려 내용이 너무 부실해 아무 소리를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한 정치권 인사의 귀띔이다. 추적해봤다. '보고서'가 발간된 것은 사실이었다. 농촌경제연구원 등이 제출한 '한·미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재협상에 따른 사회적 갈등 관리에 관한 종합연구'라는 이름의 보고서다. < 주간경향 > 은 민주당 우제창 의원실을 통해 해당 보고서를 입수했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서론 ▲광우병과 한·미 쇠고기 수입협상 ▲한·미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재협상 관련 주요 쟁점 ▲현시점에서 바라본 한·미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재협상 관련 갈등 ▲결론.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이상한 대목이 눈에 띈다.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관련 쟁점'이라는 장의 2.2.1 절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논쟁'이다. 첫 번째로 들고 있는 것은 '광우병 쇠고기를 다룬 칼과 도마에 의한 수돗물 오염'이다. 그런데 "…라는 의혹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었다"고 언급되어 있을 뿐, 그러한 '의혹'의 출처 표기가 없다.

나머지 쟁점도 근거 제시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온라인 문서라고 하더라도 URL과 연구자가 확인한 일시 등을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 이런 절차를 지키지 않은 걸까. 연구를 총괄한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에게 문의했다. "우리가 쓴 부분이 아니라서…." 이 관계자의 첫 마디다. 4개 기관이 공동으로 연구를 했는데, 다른 국책기관이 맡은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과제에 참여한 연구기관은 농촌경제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보건사회연구원, 형사정책연구원이다.

부실한 부분은 또 있다. '각계 여론주도층 조사'. 총리실 등이 선정한 대상자는 총 64명의 개인과 단체다. 이 중 답변을 한 인사는 15명. 나머지는 응답 유보 또는 거절, 소재파악 불가 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촛불시위 참가 쪽의 응답 거절은 차치하더라도 '소재파악 불가'로 분류되어 있는 인사들(직함은 2008년 기준)은 한진희 서울지방경찰청장,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최진학 뉴라이트전국연합 정책실장, 이강택 KBS PD 등이었다.

조사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이 '소재파악 불가'로 분류 처리되어 있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민동석 2008년 당시 농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이나 정모 사무관, 이모 사무관과 같은 공무원들의 상당수가 '응답 거부'를 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한 결과다. 장상윤 당시 총리실 정책기획홍보기획관실 과장은 "조사 당시가 여름 휴가철이기도 했지만, 다시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일반인 대상의 설문도 문제가 눈에 띈다. 설문조사 설계와 관련해 통계학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포괄성과 상호배타성 원칙이다. 쉽게 말해 포괄성은 모든 응답이 포함될 수 있는 선택지여야 하며, 그 분류된 항목이 서로 배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 촛불시위의 주도계층에 대한 의견을 묻는 답의 선택지는 다음과 같다. "1) 시민단체 2) 특정한 주도계층 없음 3) 10대와 대학생 등 학생들 4) 정치계 5) 가정주부 6) 종교계" 결론은 시민단체라는 '계층'을 언급한 비율이 55.5%라는 것이다. 포괄적이지도 않고, 상호배타적이지도 않다. 예컨대 종교시민단체가 주도했다고 보는 사람은 어디에 체크를 해야 할까.

MB 촛불백서, 다른 예산에 밀어넣기?

이 보고서의 결론마저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등이 집필한 별도의 원고 요약문이다. 집필팀의 의견이 없다. 현재 기획총괄팀으로 부서를 옮긴 장 과장은 "그때 나온 보고서는 기초연구용역일 뿐이며 백서를 만들기 위한 참고자료용"이라며 "홍보기획관실에서 지금도 백서는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예산도 논란 대상이다. 이 보고서 작성 예산은 1억2000만원. 앞의 4개 기관이 각각 나눠 썼다. 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따르면 이 예산은 지난해 '휴먼뉴딜 종합연구' 과목으로 지출되었다. 지난해 '휴먼뉴딜 종합연구'의 총예산은 5억원.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휴먼뉴딜종합연구'는 중산층 살리기, 청년실업, 자살예방, 지방분권 등을 연구하는 예산이다. 2008년 촛불시위 또는 광우병 논란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걸까.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관계자는 "협동연구사업 내용에 대해 연구회가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면서도 "외부에서 보기에 그런 지적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MB정부 국정지표에 따라 설정된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다른 연구과제 항목에는 더더욱 맞지 않기 때문에 휴먼뉴딜 항목에 배당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리하자. 전체적인 상황을 종합하면 'MB 촛불백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현재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국무총리실 정원상 과장은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떤 일정과 프로세스로 진행되느냐는 질문에 "다른 업무가 많아 심도있게 들여다보지 못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MB 촛불백서'가 이 대통령의 잔여임기 중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 참가자는 "솔직히 이 연구용역을 수행하는 데 부담을 안 느꼈다면 거짓말"이라며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백서를 낸다는 발상에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당 우제창 의원은 지난 6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이 보고서를 따져물었다. 우 의원은 "당시 참가자를 대상으로 입장 변화를 묻는 것 자체가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총리실이 나서서 여론의 장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공론장에 대한 위협이라고 지적했다"며 "정무위에서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여·야의 동의 아래 앞으론 예산 사용과 관련해 결과보고를 하도록 했기 때문에 내년에도 'MB 촛불백서' 추진은 사실상 불가능할 걸로 본다"고 말했다. 한 연구 참가자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시작은 창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끝은 이렇게 미약하게 매듭지어지는 거고요. 하지만 이렇게 끝나는 것이 옳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 주간경향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