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한 대형교회에서 예배를 벌이는 모습. 종교성이 충만한 미국 출신의 사회학자 필 주커먼은 종교성이 약한 북유럽 사회가 종교성이 강한 미국 사회보다 도덕적·윤리적·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운 삶을 꾸려가는 이유를 들여다봤다. <한겨레> 자료사진 |
<신 없는 사회> 필 주커먼 지음, 김승욱 옮김/마음산책·1만6000원 |
세속성 깃든 덴마크·스웨덴
미국보다 청렴지수 등 높아
내재된 삶으로서 종교 강조
미국 대선에서 민주·공화 양당 주자들의 발목을 잡는 건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 의외로 낙태와 동성애 등 종교적 이슈다. 미국인들에게 종교, 특히 기독교는 그네들의 삶을 규정하는 실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단의 사회학자들은 “강한 종교적 믿음이 없는 사회는 기본적으로 부도덕하고 자유롭지 못하고 비이성적”이라고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종교가 “긴장, 폭력, 빈곤, 압제, 불평등, 무질서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며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나 강력한 종교적 감정이 널리 퍼진 나라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적 건강이 확보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나라 또한 미국이다.
미국과 덴마크·스웨덴의 종교적 상황과 사회적 맥락을 비교연구한 필 주커먼은 <신 없는 사회>에서 “신 없는 사회가 단순히 가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점잖고 쾌적한 곳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몇몇 통계만으로도 이런 사실은 명백하다. 정치가와 공무원의 청렴도에서 덴마크는 세계 4위, 스웨덴은 6위다. 세계 최빈국을 가장 많이 원조하는 나라 20개국 가운데 덴마크는 2위, 스웨덴은 3위다. 환경보호를 위해 가장 많은 힘을 쏟고 있는 나라가 스웨덴이고, 3위에 덴마크가 있다. 미국은 대개의 통계에서 이름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지은이는 덴마크와 스웨덴이 “상대적으로 세속적인 나라들인데도 타락과 무정부 상태가 판치지 않는다”며 “오히려 건강한 사회의 인상적 본보기”라고 말한다.
물론 덴마크와 스웨덴 사회에서 종교적 열심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갓 태어난 아이들 대부분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사춘기 초입에 이르면 견진성사를 받는다. 결혼식의 대부분은 교회에서 치러지고, 장례도 교회가 주관한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교회에 교회세를 낸다. 루터교의 전통과 흔적이 여전히 사회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현상을 일러 “문화적 종교”라고 명명한다. 종교적 전통에 분명한 소속감을 유지하고 다양한 관습과 축제에 참여하지만, 종교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믿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딱히 종교라고 할 수는 없는 유교에 대한 소속감을 가지며, 유교적 제례에 참여하는 것도 이른바 문화적 종교인 셈이다.
지은이는 스칸디나비아 지역 세속주의의 원인으로 ‘꺼림/삼감’ ‘온화한 무관심’ ‘철저한 무관심’을 제시한다. 종교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토론이나 분석의 대상이 아닐 뿐 아니라 비난하고 헐뜯을 대상도, 저항하거나 두려워할 대상도 아니다.” 온화한 무관심은 “살짝 긍정적인 편”이지만, 종교에 대해 그다지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철저한 무관심은 종교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들, 즉 삶의 의미나 죽음 등에 대해 애초부터 무관심하다.
지은이는 루터교의 오랜, 그래서 “게으른 독점”이 종교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렸다는 가설을 내세운다. 사회적 안정망이 잘 정비된 사회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또한 일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종교에 대한 관심도 낮아졌다고 주장한다. 대개 남편과 자녀들이 종교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여성들이 일터로 나가면서 종교에서 벗어나자 남편과 자녀들도 뒤를 이은 것이다. 지은이는 이를 “여성성의 탈경건화”라고 표현한다.
미국인인 지은이는 14개월 동안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살면서 150건 이상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며 종교의 의미와 새로운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소개하지만 지은이가 <신 없는 사회>를 통해 종교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 그는 오히려 “종교를 믿지 않아도 내 가치관이 종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면서 내재된 삶으로서의 종교를 강조한다.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들이 만드는 현실 속 유토피아”라는 부제는 그래서 더더욱 인상적이다. <예수는 없다>의 저자 오강남 교수가 “표층적인 근본주의적 신앙이 창궐하고 있는 한국 사회도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쓴 추천의 말처럼 여러모로 큰 시사점을 전해주는 책이다.
장동석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