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풍경

“천황폐하 만세” 전하던 부끄러운 친일잡지들

소한마리-화절령- 2012. 4. 22. 12:58

“천황폐하 만세” 전하던 부끄러운 친일잡지들

등록 : 2012.04.18 20:35 수정 : 2012.04.18 20:36

 

(※클릭하면 이미지가 확대됩니다.)

일제말 미공개 총서 출간

`신세기’ `태양’ 등 엮어 9권
매호 전쟁 미화·참전 독려
노골적 친일 행각 적나라
이광수 등 친일문인 글 실려

 

이름은 알려졌으나 실물을 보기 힘들었던 일제강점기 말기의 잡지들이 무더기로 공개됐다.

재단법인 아단문고는 1939~1945년 서울에서 간행된 <신세기> <경성로컬> <총동원> <태양> <월간 소국민> 등 친일 잡지들을 영인한 <아단문고 미공개 자료총서>(소명출판) 9권을 최근 펴냈다. 1940년 8월 <동아일보> <조선일보> 강제 폐간의 앞뒤 시기에 걸쳐 나온 것들로, 당시 잡지들의 친일행각이 노골화되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잡지는 <신세기>. 1939년 창간돼 1941년 6월 폐간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1939년치 10권, 1940년치 2권, 1941년치 1권이 공개됐다. 당대 일류 삽화가였던 정현웅이 표지화·삽화를 맡고 표지를 도쿄에서 인쇄해오는 등 장정이 호화롭다.

창간호부터 ‘지나사변’(중일전쟁) 특집이다. 첫 쪽에 일왕 부부 사진을 실었으며 권두언은 조선군사령부 신문반 소속 정훈 소좌(소령)의 ‘황군의 성전에 대하여’이다. “황국신민은 모두 국방의무가 있다…만일 황군의 고생을 생각해서 감격이 안 난다면 황국 신민이 아니다”라는 요지다.

 

정훈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재학 중 국비로 일본에 유학해 일본군 장교로 변신한 뒤 1937년부터 조선군사령부 참모부 신문반에서 활동했다. <조선일보> 주필과 경제부장을 지낸 서춘은 ‘지나사변의 장래’란 논설에서 “중국의 자원과 일본의 기술·자본을 결합하면 양국에 모두 이익이다”라는 요지로 중국 침략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다.

 

또 이 잡지는 호마다 전쟁을 미화하고 젊은이들의 참전을 독려하는 특집을 실었다. 창간호에는 해군항공병 조장 히라노 도라지로의 중국 쿤밍 공습기를, 39년 11월호에는 당시 일본군과 소련군이 충돌한 동몽골 노몬한 전투의 공중전 도중 추락사한 조선인 지린태 대위의 무용담을 소개했다.

 

41년 1월호에는 전장에서 죽어가던 조선인 병사가 “진짜 일본인이 되어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일본 이름으로 개명한 사실을 전하며, 최후에 “천황 폐하 만세”를 외쳤다는 이야기를 실었다.

 

<신세기>는 이광수, 정비석, 이기영, 박태원 등 조선문인들의 작품도 실었는데, 이광수의 작품은 매호마다 실렸다. 39년 11월호에 게재된 서정주의 친일시 ‘행진곡’이 눈에 띈다. 특히 창간 2주년 기념호인 41년 1월호에는 5쪽에 달하는 지원병훈련소 일일입영기를 실었다.

모윤숙, 이광수, 김동환, 유진오 등 문인들이 서울 근교 훈련소 방문 행사에 동행해 막사, 식당, 침실을 둘러보며 현황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 입영기는 소장의 말을 빌려 조선인 병사 1천명이 “전조선 13도에서 각각 도지사 추천장을 가지고 제발 나를 넣어 주십시오 하고 애원해서 들어온 사람들”이라고 기술했다.

 

당시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이선희가 쓴 기사 말미엔 이런 덧글도 달렸다. “아무리 부유하고 상류계급의 자제일지라도 여기에 와서 이 훈련을 받고나면 후일 국가를 위하여 훌륭한 병사가 될 뿐 아니라 그 사람 인격을 높이는 데도 가장 유효한 약이 될 것이다. 조선의 어머니, 당신들의 아드님을 한번 이 훈련소에서 훈련시킬 의사는 없으십니까.”

 

이밖에 서춘이 직접 만들고 창간사까지 쓴 친일잡지 <태양>에서는 조선총독부의 미나미 총독, 오노 로쿠이치로 정무총감의 글을 볼 수 있고, 어린이용 잡지 <월간 소국민>은 전쟁을 미화한 정현웅의 삽화가 눈길을 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