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PM 재범의 조국, 미창과부 장관의 조국 (이재성)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하기 얼마 전, 그에 대한 제보가 신문사로 접수됐다. 주로 밤 생활이 문란하다는 내용이었다. 특파원을 통해 미국에 사는 제보자와 접촉했다. 그런데 제보자의 태도가 좀 이상했다. 취재는 하더라도 자신의 허락 없이는 기사를 싣지 못한다는 둥 자신이 참전용사 출신인 점을 강조하며, 자기 말을 안 들으면 보복하겠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했다.
제보자를 통한 취재를 포기하고 다른 루트를 찾아보려고 노력하던 중 김 후보자가 사퇴했다. 알고 보니 우리에게 접수된 제보와 비슷한 내용이 한 재미교포의 블로그에 떠 있었고, 트위터를 통해 이 글이 퍼지고 있었다. 김 후보자가 사퇴한 진짜 이유가 이중국적이나 미 중앙정보국(CIA)과의 깊은 관계 때문이 아니며, 부동산 때문도 아닌, 바로 이 글 때문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글을 올린 재미교포는 자신을 박근혜 지지자라고 소개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은 장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용기를 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김종훈이 자신을 고소해서 미국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지길 바란다고도 썼다. 그런데 김종훈 씨는 장관 후보자직을 사퇴하면서 야당을 비난하고 한국을 저주했을 뿐, 이 사람을 제소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1998년 미 일간지 <볼티모어 선>과의 인터뷰에서는 한국을 비하하는 듯 한 발언을 했다. 한국에 대해 “닳아버린(frayed-신경을 소모시키는 이라는 뜻도 있다) 국가, 온통 가난만 지배하던 국가라는 기억만 갖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가난했지만 나를 낳아준 고마운 나라다, 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1998년은 마침 한국이 외환위기라는 초 의 사태를 맞아 부동산과 주식 값이 5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하고 실업자가 쏟아지던 준전시 상황이었다. 미국 시민권자 김종훈은 이때 강남 부동산을 집중적으로 사들인다. 한국을 자랑스러워하지는 않았지만, 투자하면 돈이 될만한 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에 대한 여론은 그닥 나쁘지 않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그는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룡 부처 장관이 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이 상황이 참으로 괴이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이돌그룹 2PM의 멤버였던 박재범이 한국을 비하했을 때 한국인들이 보였던 히스테리컬한 반응과 김종훈에 대한 반응의 격차가 너무 커서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한국 비하 발언 당시 18살에 불과했던 교포 3세 박재범과 38살의 교포 1.5세 김종훈 가운데 누가 더 비난받아야 할까, 라고 물을 생각은 없다. 대신 이렇게 물을 수는 있겠다. 둘 중에 애국심이 더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더구나 김종훈은 CIA와의 특수 관계가 의심되는 사람이었다. 정보통신과 과학기술 등 우리나라의 미래가 걸린 첨단산업을 총괄하는 부처의 장관이 국가관이 불분명한 사람이라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될까. 미국과 한국의 국익이 엇갈리는 미묘한 상황에서 김종훈은 어느 조국을 선택할 것인가. 김씨가 사퇴해버리면서 이런 질문들이 충분히 제기되지 않았고, 토론되지 않은 채 묻혀버렸다.
이런 사람을 무슨 대단한 인재인양 삼고초려를 했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탈세범과 부동산 투기꾼, 공금 횡령범 등 온갖 잡범들을 고위 공직자로 추천한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다만, 대한민국 보수의 뿌리가 친일파인 점을 고려하면 박 대통령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본이 조국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일제 강점기 친일파들 아닌가. 대한민국의 보수는 지금 그들을 변호하기에 급급하다. 먹고 살려다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티브이 토론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에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고 애국가도 부르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대통령으로 출마할 자격이 있는지 물었다. 너희 조국은 어디냐를 물은 것이다. 내가 알기로,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엔엘 진영 운동가들은 누구보다 태극기를 사랑하고 애국가를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1980년대 후반 태극기를 온몸에 휘감고 휴전선을 넘으려 했던 게 바로 이들이다. 이들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에 기반하고 있어 국수주의적이라는 비난까지 들어야 했다.
국가관에 관한 질문은 오히려 박 대통령을 비롯한 이 땅의 보수라는 사람들에게 돌려야 한다. 당신들의 조국은 미국인가, 일본인가, 한국인가. 주한미군 범죄에 대해선 쉬쉬하면서 미국의 이익이 곧 한국의 이익이라고 주장하는 당신들의 조국은 어디인가. 일본이 극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고립화를 재촉하는 한일군사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덕분에 경제가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당신들의 조국은 어디인가.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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