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풍경

사회지도층 인사가 된다는 것 (강국진) -인권연대에서 펌글-

소한마리-화절령- 2013. 8. 20. 23:15

사회지도층 인사가 된다는 것 (강국진)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보건복지부 사무관에 특채된 한 변호사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보건의료정책과 관련해 민간기관이 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소송이 진행 중인데 갑자기 사표를 냈다. 곧바로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로도 그 변호사는 자신이 담당하던 소송에 계속 관여했다. 다만 이제는 복지부를 방어하던 자리에서 공격하는 자리로 바뀌었을 뿐이다. 알고 보니 그를 스카웃한 로펌이 바로 복지부를 상대로 한 소송 대리인이었다.

 

 ‘서울에 사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변호사 얘길 듣고 대뜸 ‘개새끼’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변호사가 했던 행동 가운데 법을 어긴 부분은 십중팔구 없다. 이런 부류는 법의 경계선을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거기다 사실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미국에선 '회전문 인사'라는 이름으로 심지어 국방부 장군들 사이에서도 흔해빠진 사례가 된 지 오래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전직 판검사 전관예우야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언제부턴가 모피아를 시작으로 이제는 공무원이나 준공무원 가리지 않는다. 로펌이든 컨설팅회사든 가리지 않고 고문이니 뭐니 하는 감투를 쓰고 말을 갈아탄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충돌'이라 부른다. 이해충돌이란 공직자가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실제적이거나 외견상 혹은 잠재적으로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시하는 갈등상황을 일컫는다. 현대사회 공직자윤리 문제에서 가장 첨예한 현안이라는 지적까지 받을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

 

 이해충돌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하나만 거론한다면, 신속한 일처리를 '졸속행정'이라 하고 신중한 일처리를 '뒷북행정'이라고 부르며 공공부문 불신하기가 국민스포츠가 된 사회에선 필연적으로 공무원에게 평생직장을 대가로 국민의 충복이 될 것을 요구하는 '제도 틀'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조선시대처럼 고위공직자가 곧 정치인이고 행정가이자 동시에 학자여서, 존경을 대가로 책임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해충돌이란, 어떤 면에서는 불신의 댓가로, 다른 측면에서는 '공공성 약화'의 부작용으로,  또 어떤 관점에선 '사유화와 규제완화'의 후폭풍이 만나서 만들어낸 괴물이 아닐까.

 

 1981년부터 2011년까지 공직에 있었고 복지부 차관까지 했던 분이 있다. 대체로 “원만하고 합리적이다”거나 “일을 무리 없이 추진한다”는 평가를 듣는 분이다. 이 분은 2011년 10월 갑작스레 퇴직을 결정했다. 새로 취임한 장관이 행정고시 동기라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스스로 물러난다는 우호적인 해석이 많았다. 그런데 그 해 12월 법무법인 태평양이라는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로펌에 고문으로 들어가면서 논란이 일었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는 2011년 5월15일 자기공명영상촬영(MRI),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영상장비 수가(건강보험 진료비) 인하를 결정했다. 건정심 위원장은 복지부 차관이 맡는다. 병원협회는 건정심 결정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아 서울행정법원에 복지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복지부는 2011년 10월과 2012년 4월 잇달아 패소했다. 그 소송을 대리하던 로펌이 바로 법무법인 태평양이었다.

 

 결국 복지부는 절차상 하자로 지적된 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를 두 차례 열고 영상장비 수가 재평가를 거쳐 2012년 7월 영상장비 수가를 다시 인하했다. 건정심은 당시 “향후 건정심 의결사항을 소송 등을 통하여 번복하는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이러한 경우 불이익을 감수한다”는 부대결의를 했다. 병원협회 대표가 건정심 위원으로 참여하면서도 결정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하는 행태를 겨냥한 것이었다.

 

 자신이 책임자로서 정책결정을 주도한 뒤, 그 정책을 반대하는 소송을 담당하는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고, 자신이 주도했던 정책결정을 1년 가량 늦추면서, 자신이 몸담은 로펌 수익만 올려준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가 차관에서 물러난 시점도 두고두고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가 퇴직한 2011년 10월19일은 ‘4급 이상 퇴직공무원은 퇴직 후 2년 동안 대형 로펌이나 회계법인 으로 전직을 제한한다’는 개정 공직자윤리법 시행 열흘 전이었다. 말도많고 탈도 많은 전관예우, 고위공직자 로펌행 논란의 한복판에 들어가면서 “원만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스스로 빈말로 만들어버렸다.

 

 이 분은 전화 통화에서 이런 취지로 해명했다. “차관에서 물러날 당시엔 복지부에 중요한 현안이 많았다. 1심 패소 사실은 알았지만 소송 대리인이 법무법인 태평양이란 건 몰랐다. 고문이 된 뒤 태평양에선 나에게 그 소송에 대해 물어본 적도 없고 내가 관여한 적도 없다. 우연히 인터넷 뉴스검색을 하다가 2심 판결 기사를 봤고 소송 대리인이 태평양이란 것도 알았다. 더 찾아보니 복지부가 절차상 하자를 치유했더라.”

 

 솔직히 가장 놀랐던 건 (아무리 전현직 대통령의 선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책결정자였던 분이 남 얘기 하듯 하는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했다는 점이었다. 절차상 하자가 있다면 당시 건정심 위원장으로서 자신에게 중대한 책임이 있다. 그 하자 때문에 자신이 몸담았던 곳이 연달아 소송에서 패소하며 영상장비 수가인하라는 좋은 정책이 1년 이상 늦어졌다. 거기다 이른바 ‘기획소송’으로 막대한 수임료를 챙겼을 법무법인 역시 자신이 고문으로 몸담았던 곳인데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한다.

 

 이 분은 그럼 태평양에서 2011년 12월부터 2013년 8월 초까지 20개월 가량 도대체 무슨 일을 했을까. “헬스케어 쪽 자문을 하기로 했는데 그 쪽이 아직 국내기반이 취약해 자문해줄 게 별로 없었다. 헬스케어를 주제로 젊은 변호사들이 공부하는 모임에 ‘가끔’ 참여해 자문해준게 전부다.” 언론보도나 각종 인사청문회를 바탕으로 추정해 보면 대형 로펌에 간 전직 고위공직자들은 최소 억대 고문료를 받는다. 태평양이 사회적 기업이거나, 이 분이 아주 무능력해 밥값을 못하는 고문이었던 모양이다.


최원영 고용복지수석
사진 출처 - 서울신문

 

 그냥 로펌에서 고문으로 계속 있었다면 굳이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분은 전직 고위공직자에 머물 생각이 없다. 8월5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 분을 새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으로 임명했다. 공직자윤리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쟁점인 이해충돌 논란의 한 복판에 서 있는 분이 고용복지수석이 되었다.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딱 한 가지만 부탁하고 싶다. 청와대에서 물러난 뒤 또 어느 곳 고문으로 갔다는 소식으로 국민들 고문하지는 말아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