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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화장실서 살아요" 노숙인·가출자들 몰려

소한마리-화절령- 2014. 4. 4. 16:58

"공원 화장실서 살아요" 노숙인·가출자들 몰려

안전하고 편리해 ‘거주’문화일보|이후연기자|입력2014.04.04 14:11|수정2014.04.04 14:41

지난 3월 31일 오후 9시 서울 중구 지하철 충무로역 인근의 한 거리. 도로 한편에서 잠잘 준비를 하고 있던 노숙인 A(여) 씨는 사람이 다가서자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A 씨는 이름과 나이를 묻는 질문에 "그런 것은 잊어버리고 산 지 오래됐다"고 답했다.

그는 낮에는 공원 화장실에서 생활하고 화장실이 문을 닫는 밤에는 낮에 모은 폐지를 이불 삼아 거리에서 노숙하며 인근 노숙인 지원센터에서 제공하는 밥을 먹거나 행인에게 구걸해 연명하고 있다.

A 씨는 "10년 이상 화장실과 길거리에서 먹고 자며 살아왔다"며 "사는 게 힘들고, 남편의 폭력을 버티지 못해 집을 나왔는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다"고 말했다.

당초 A 씨는 경기 지역의 원룸에서 생활해왔지만 취직이 잘 되지 않고 월세를 못내 번번이 쫓겨나다보니 선택지는 길거리밖에 없었다. A 씨는 "처음에 남자 노숙자들을 피해 여자 화장실에서 생활하다보니 내 집처럼 살게 됐다"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돈도 없고 자식도 없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4일 관련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지난 2월 서울 송파구에서 발생한 '세 모녀 자살사건' 이후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복지 사각지대'를 찾겠다고 나섰지만 실효성 있게 정책을 추진할 만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곳이 많아 일회성 행사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5월 공중 화장실에서 사는 남매의 사연이 알려진 이후 복지 사각지대 전국 일제조사를 실시하고 지자체에 관련 팀을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따라 106조에 달하는 올해 복지예산이 적재적소에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일례로 주거가 없는 노숙인 등을 지원하는 긴급복지지원법의 경우 올해 예산이 499억 원으로 지난해(588억 원)에 비해 크게 줄었고 노숙인 밀집지역인 서울 중구의 경우 지난해 이후 긴급복지지원을 통한 노숙인 지원이 1건에 그쳤다.

서울의 한 쪽방촌상담센터 관계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벤트성 행사처럼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나서기보다 관련 제도를 제대로 정비하고 보완해 꾸준히 실행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