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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낙수효과는 역시 거짓이었다

소한마리-화절령- 2014. 5. 7. 13:29

[사회]낙수효과는 역시 거짓이었다

주간경향|입력2014.05.07 10:53

ㆍ2008년 이후 실질임금 상승률 마이너스… 노동자들이 높은 노동생산성으로 기업에 돈 벌어줬지만 돌아오는 몫은 되레 줄어

"낙수효과 이론이란 자유시장을 바탕으로 경제가 성장하면 세상에 더 큰 정의와 통합을 가져다준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은 사실로 확인된 적이 없다."

경제학자의 말이 아니다. 경제에 관한 한 '비전문가'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다. '낙수효과'는 교황의 눈에 확인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했다. 그 통찰이 틀리지 않았다는 근거는 연이어 나오고 있다.

특히 낙수효과를 거의 신앙처럼 숭상하는 한국에서 그렇다. 낙수효과는커녕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단체 회원들이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 건물 앞에서 공단노동자 임금인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김영민 기자

대기업의 곳간은 갈수록 그득해졌다. 낙수효과에 따르면 저소득층으로 소득이 넘쳐흘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하락한 것이다.

낙수효과는 대기업 위주 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동원한 포장지에 불과했다.

식음료 분야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매장 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김미현씨(29)의 월급은 해마다 조금씩 올랐다. 3년차인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3.5%가량 인상된 액수로 계약했다. 하지만 김씨는 월급이 올랐다는 것을 전혀 실감하지 못한다. 오히려 더 가벼워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김씨가 일하는 매장의 가장 싼 파스타 가격은 입사 첫해 1만원이었다. 그게 지금은 1만3000원으로 30% 올랐다.

물가는 날아가는데 월급은 기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김씨는 "이러다가 내 일당으로 내가 일하는 가게의 밥 한 끼 못 사먹는 건 아닌가 하는 농담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김씨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흘렀다 사라졌다.

기는 월급은 김씨만 그런 게 아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한국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2.3% 하락했다. 명목임금은 12.4% 올랐지만 이 기간 동안 물가가 14.5%나 뛰었다. 임금인상폭이 물가상승률에도 못미쳐 해가 갈수록 임금이 줄어든 셈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의 박종규 선임연구위원이 쓴 '임금 없는 성장의 국제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1997~2002년 19.4%, 2002~2007년 17.6%를 기록하던 한국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며 마이너스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급 3.5% 오를 때 밥값 30% 올라


주목할 만한 점은 실질노동생산성은 경제위기에도 꺾이지 않고 지속적인 증가율을 보여왔다는 사실이다. 실질노동생산성은 1997~2002년 21%, 2002~2007년 17.4% 상승하며 실질임금 상승률과 동반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실질임금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2007~2012년에도 실질노동생산성은 여전히 9.8% 증가율을 나타냈다. 요컨대 노동자들은 높은 노동생산성으로 기업에 더 많이 벌어줬지만 그만큼의 몫이 돌아오기는커녕 오히려 임금이 깎인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한국의 실질임금은 2008년 1분기 이후 계속 정체 중인데 이 기간 중 한국의 실질노동생산성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빠르게 증가했다"면서 "한국의 '임금 없는 성장' 추세는 국제적으로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이 말한 '임금 없는 성장'은 낙수효과가 허구임을 보여준다. 낙수효과는 흔히 가장 위에 놓인 그릇부터 물을 채우면 넘쳐난 물이 아래에 놓인 그릇으로 자연히 흘러내려간다는 식으로 비유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기업에서 가계로, 소득 상위층에서 중·하위층으로 소득이 이전된다는 주장이다.

수출이 잘 돼야 한국 경제도 산다며 수출기업 위주의 정책을 편 것 역시 낙수효과에 기반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책결정자들이나 대기업은 끊임없이 낙수효과를 앞세우고 있지만 정작 낙수효과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기업소득 증가율과 가계소득 증가율 간의 격차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도 낙수효과의 허구성을 입증한다.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율 감축 등 '친기업'을 표방한 정책의 결과는 기업과 가계 간 소득 양극화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8∼2013년 기업의 처분가능소득은 80.4% 늘었지만, 가계와 개인사업자가 속한 개인 부문의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은 26.5%에 그쳤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노동분배율이 하락하고 자영업 부문이 침체한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산업연구원 강두용 동향분석실장은 "기업소득이 호조를 보이면 가계소득은 부진해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라며 "기업 유인의 확대를 통해 성장 촉진을 도모한다는 논리에 기초해 기업에 유리한 조세정책을 펼친 끝에 가계·노동·자영 부문이 상대적으로 소외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경제의 양극화 정도는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의 실질임금 상승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경제규모와 상황을 고려해 비교가 가능한 18개국 가운데 끝에서 4위를 기록했다. 반면 실질노동생산성 상승속도는 가장 높아서 실질임금과 실질노동생산성 사이의 격차는 비교 대상국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가계소득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도도 한국이 OECD 국가 중 가장 심했다. 연평균 3.8%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동안 가계소득 증가율은 1.9%에 머물러 가장 격차가 극심했다.

한국 '임금 없는 성장' 심각한 수준


나는 물가, 기는 월급은 더 오랜 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르는 물가에 소득수준을 맞추려면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자동차 부품업계 생산직으로 일하는 심상용씨(37)는 잔업 근무시간을 한 시간이라도 더 채우려는 공장 분위기를 보며 달라진 모습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특히 임금·단체협상이 끝나고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임금인상 소식을 듣는 봄철이면 관리직 직원이 채근할 필요도 없게 너나 없이 야근에 매달리는 모습이 어느 해부턴가 반복되고 있다.

"급여명세서를 보면 임협 지나고 오른 월급 액수가 찍혀 있지만 그만큼 세금 오르지, 보험료 오르지, 이것저것 공제액수도 늘지, 결국 작년이랑 매한가지다." 일하는 시간을 늘려도 고정적인 지출항목의 액수가 커지면 손쓸 길이 없다. 게다가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교육비 부담도 커진다. 심씨는 "점점 커지는 씀씀이를 감당하려면 결국 금융기관의 대출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교육비와 공적연금·사회보험, 의료·보건비 등 가계가 꼭 지출해야 하는 경직성 지출의 비중은 2003년 26.3%에서 지난해 29.0%로 커졌다. 이 가운데 특히 교육비 관련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28조4000억원에 달해 1년 전보다 12.3% 늘어났다. 전체 가계부채 증가율(6%)의 두 배를 넘는다. 2012년 말 기준 한국 가계의 순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20.2%로 미국 16.1%, 영국 16.9%, 일본 14.5% 등에 비해 훨씬 높다. 빚을 내서라도 교육을 시키는 한국 가계의 특성이 임금과 소득수준의 저하에도 불구하고 반영된 것이다.

"낙수효과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상위 계층에게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한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의 말이다.

<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