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문제는 분배다]7년째 월급 300만원.. "임금 올려야 경제 정체 돌파"
(6) 통상임금 인상이 해법가계·기업소득 격차 갈수록 커져 ‘경제 활력’ 둔화
돈 쌓아둔 기업, 임금은 줄어…노조 조직률 높여야 경향신문 홍재원 기자 입력 2014.06.25 21:44 수정 2014.06.25 23:12
중견기업에 다니는 ㄱ씨(45)의 이달 급여는 세전 370만원 수준이다. 1995년 ㄱ씨의 첫 월급(200만원)과 비교하면 19년간 85% 증가했다. 재직 기간 호봉 승급과 그동안의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마이너스나 다름없다.
임금은 가계소득의 72.8%를 차지할 정도로 가계의 핵심 소득원이다. 그런데 ㄱ씨 경우처럼 지난 20년간 월급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했다. 특히 2008년 이후 실질임금은 300만원에 정체돼 있다.
25일 고용노동부의 상용근로자(농림분야 제외) 실질임금 추이를 보면 국내 회사원들의 실질임금은 2007년 290만원대로 진입한 뒤 7년 이상 변화가 없다. 1970년대 실질임금 50만원가량에서 1980년대 100만원대를 돌파한 뒤 1990년대 후반 200만원대로 급속도로 증가한 것과 대조된다.
소득 양극화의 핵심 원인으로 '오르지 않는 월급'이 꼽힌다. 부(富)의 효율적 분배와 경제성장의 새로운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이 쌓아두고 있는 이익금을 임금 인상 형태로 가계 쪽으로 옮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 경제에서 분배는 단순한 '정의' 문제가 아니다. 수출과 내수의 단절, 양극화 및 소득격차 확대, 낙수효과 실종 등 복잡한 한국적 경제 정체를 돌파하기 위한 해법으로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
임금 정체는 가계부채 급증과 민간소비 위축, 가계저축률 급감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다. 2012년 가계부채는 처분가능소득 대비 136%로 이미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소비 비율은 2002년에 비해 2012년엔 6.47%포인트 하락했다. 1999년까지만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20%대 가계저축률을 기록했지만 2012년 현재 2.9%까지 떨어져 OECD 최하위 수준으로 급락했다.
반대로 기업의 현금보유량인 기업저축률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 자료를 보면 2004년 이후 기업들이 순이익을 현금으로 쌓아두기 시작하면서 기업저축률이 빠르게 상승했다. 순이익 대비 차기이월이익잉여금 비율은 이미 300%를 넘어섰다. 실질임금이 정체돼 있는 동안 기업들이 그 이익을 내부에 누적만 시키고 있는 것이다. 개인은 쓸 돈이 없고, 기업은 돈을 쌓아두기만 해 결과적으로 아무도 돈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기업들은 인건비 지출도 줄었다. 채용 인원을 줄이고, 기존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돌렸다. 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는 2007년 11.94%에서 2010년 10.26%로 줄었다. 하락폭인 1.68%포인트는 2000~2002년 금리 하락에 따른 매출액 대비 금융비용 감소폭 1.79%포인트와 맞먹는다.
그 결과 기업은 부자가 되고 가계는 쪼그라들었다. 2005~2010년 5년 동안 기업소득이 연평균 19.1% 증가했지만 가계소득 증가율은 연 1.6%에 불과했다. 1990년대까지는 가계와 기업의 소득증가율이 8%대로 비슷했다.
전문가들은 소비의 주요 주체인 직장인들의 월급을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질임금이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정체된 건 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2007년 4분기 이후 2012년까지 실질임금 상승률은 마이너스 2.3%로, 물가상승률이 15% 안팎으로 유지되는 점을 감안하면 '임금 증가 없는 성장'이 최대 극복 과제로 떠올랐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의 과도한 현금 보유를 임금 인상으로 풀어야 경제의 활력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 강화를 통해 근로자들의 임금교섭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노조 조직률은 10% 수준으로 유럽 선진국이 대부분 60~70%에 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조 조직률을 높이는 등 직원들의 임금교섭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와 함께 프랑스 등 일부 선진국처럼 산별노조의 협상 내용을 기업별로 준용토록 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기업이 현금을 쌓아두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정부 정책도 필요하다. 대기업의 횡포를 철저히 감시하고 일감 몰아주기 등을 방지함으로써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확대하면 전체 노동자의 80%가 근무하는 중소기업을 통한 임금 상승 여지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비금융 기업의 금융소득에 과세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방안도 있다. 박종규 연구위원은 "법인세 세율을 낮추면 투자가 늘어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란 가설에 대한 실험을 종료할 때"라며 "2009년부터 시행된 법인세 감세를 철회하고 증대되는 세수를 가계소득을 증가시키는 데 사용해야 기업에서 가계로 소득을 재배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결정하는 최저임금은 가계소득을 즉각적으로 높일 수 있다. 현재 최저임금은 시간당 5210원, 월급으로 치면 108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3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132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집계로는 지난 3월 기준 이마저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232만명으로 전체의 12.6%나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최저임금 지불 의무를 상습적으로 어기는 고용주에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부 공공부문에 적용되고 있는 '생활임금' 확대도 거론된다. 서울 노원구와 성북구는 자체 산정방식을 도입해 최저임금보다 30%가량 높은 시간당 6850원을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지급해 호평받고 있다.
< 홍재원 기자 jwhong@kyunghyang.com >
임금은 가계소득의 72.8%를 차지할 정도로 가계의 핵심 소득원이다. 그런데 ㄱ씨 경우처럼 지난 20년간 월급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했다. 특히 2008년 이후 실질임금은 300만원에 정체돼 있다.
25일 고용노동부의 상용근로자(농림분야 제외) 실질임금 추이를 보면 국내 회사원들의 실질임금은 2007년 290만원대로 진입한 뒤 7년 이상 변화가 없다. 1970년대 실질임금 50만원가량에서 1980년대 100만원대를 돌파한 뒤 1990년대 후반 200만원대로 급속도로 증가한 것과 대조된다.
임금 정체는 가계부채 급증과 민간소비 위축, 가계저축률 급감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다. 2012년 가계부채는 처분가능소득 대비 136%로 이미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소비 비율은 2002년에 비해 2012년엔 6.47%포인트 하락했다. 1999년까지만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20%대 가계저축률을 기록했지만 2012년 현재 2.9%까지 떨어져 OECD 최하위 수준으로 급락했다.
반대로 기업의 현금보유량인 기업저축률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 자료를 보면 2004년 이후 기업들이 순이익을 현금으로 쌓아두기 시작하면서 기업저축률이 빠르게 상승했다. 순이익 대비 차기이월이익잉여금 비율은 이미 300%를 넘어섰다. 실질임금이 정체돼 있는 동안 기업들이 그 이익을 내부에 누적만 시키고 있는 것이다. 개인은 쓸 돈이 없고, 기업은 돈을 쌓아두기만 해 결과적으로 아무도 돈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기업들은 인건비 지출도 줄었다. 채용 인원을 줄이고, 기존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돌렸다. 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는 2007년 11.94%에서 2010년 10.26%로 줄었다. 하락폭인 1.68%포인트는 2000~2002년 금리 하락에 따른 매출액 대비 금융비용 감소폭 1.79%포인트와 맞먹는다.
그 결과 기업은 부자가 되고 가계는 쪼그라들었다. 2005~2010년 5년 동안 기업소득이 연평균 19.1% 증가했지만 가계소득 증가율은 연 1.6%에 불과했다. 1990년대까지는 가계와 기업의 소득증가율이 8%대로 비슷했다.
전문가들은 소비의 주요 주체인 직장인들의 월급을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질임금이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정체된 건 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2007년 4분기 이후 2012년까지 실질임금 상승률은 마이너스 2.3%로, 물가상승률이 15% 안팎으로 유지되는 점을 감안하면 '임금 증가 없는 성장'이 최대 극복 과제로 떠올랐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의 과도한 현금 보유를 임금 인상으로 풀어야 경제의 활력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 강화를 통해 근로자들의 임금교섭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노조 조직률은 10% 수준으로 유럽 선진국이 대부분 60~70%에 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조 조직률을 높이는 등 직원들의 임금교섭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와 함께 프랑스 등 일부 선진국처럼 산별노조의 협상 내용을 기업별로 준용토록 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기업이 현금을 쌓아두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정부 정책도 필요하다. 대기업의 횡포를 철저히 감시하고 일감 몰아주기 등을 방지함으로써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확대하면 전체 노동자의 80%가 근무하는 중소기업을 통한 임금 상승 여지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비금융 기업의 금융소득에 과세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방안도 있다. 박종규 연구위원은 "법인세 세율을 낮추면 투자가 늘어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란 가설에 대한 실험을 종료할 때"라며 "2009년부터 시행된 법인세 감세를 철회하고 증대되는 세수를 가계소득을 증가시키는 데 사용해야 기업에서 가계로 소득을 재배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결정하는 최저임금은 가계소득을 즉각적으로 높일 수 있다. 현재 최저임금은 시간당 5210원, 월급으로 치면 108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3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132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집계로는 지난 3월 기준 이마저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232만명으로 전체의 12.6%나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최저임금 지불 의무를 상습적으로 어기는 고용주에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부 공공부문에 적용되고 있는 '생활임금' 확대도 거론된다. 서울 노원구와 성북구는 자체 산정방식을 도입해 최저임금보다 30%가량 높은 시간당 6850원을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지급해 호평받고 있다.
< 홍재원 기자 jwhong@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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