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7월 17일은 제헌절이다. 1948년 제헌국회의 헌법기초위원회는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문장을 넣었다. 그들은 왜 헌법 제1조에 이러한 문장을 넣었을까. 역사 속에서 보면 공화국에는 귀족공화국, 민주공화국, 인민공화국이 있었다. 헌법기초에 참여한 이들의 증언이나 다른 기록들을 참고하면, 그들은 대한민국이 귀족공화국이나 인민공화국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을 천명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공화국이란 민주주의를 채택한 공화국이라는 말이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충분히 이해하고 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공화국이 되어야 한다고 할 때, 그 공화국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공화국이란 무엇일까. 오늘날 공화국을 의미하는 영어 republic은 라틴어 res publicus에서 나왔다. publicus는 populus라는 말에서 나온 형용사이다. populus는 오늘날 영어 people의 어원이 되는 말로서, ‘사람들’ 혹은 ‘공중(公衆)’으로 번역된다. 또 publicus는 ‘대중을 위한’ 혹은 ‘공공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res는 오늘날 영어로 thing을 의미한다. 따라서 res publicus는 ‘사람들(공중)의 것’, ‘공공의 것’, ‘공중을 위한 것’ 등의 뜻을 갖는다. 즉 공화국이란 군주 1인의 것이 아닌, 다수 국민의, 다수 국민을 위한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공공(公共)의 나라, 공공을 위한 나라
중국에도 일찍부터 ‘공화(共和)’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군왕이 없는 상태에서 신하들이 ‘함께 화합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따라서 일본인 미스쿠리 쇼고라는 사람은 1845년 서양어 republic을 번역할 때 ‘공화’라는 단어를 선택하였다. 그런데 앞서 본 것처럼 서양어 republic은 ‘군주국이 아닌 나라’이면서 동시에 ‘공공을 위한 나라’를 의미하였다.
국가가 ‘공공을 위한 것’이라 한다면, 그것은 곧 국가가 공공복리를 위한 공동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제헌헌법을 만든 의원들은 이를 상당히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헌법 제5조에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고 써넣었다. 자유, 평등, 창의의 보장을 강조하면서도,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해서는 이를 조정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국가가 공공의 선을 위하여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고 한 것은 국가의 공공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또 헌법 84조에서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고 하여, 역시 경제활동의 공공성을 강조하였다.
‘공공성(Öffentlichkeit)’이란 단어는 독일의 하버마스가 언급하여 유명해졌는데, 그 형용사 형태인 ‘공공의(öffentlich)’라는 말은 본래 ‘공동의’라는 의미와 ‘공개된’이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때문에 공공성이란 ‘공공을 위한 것’, ‘공공의 복리’라는 의미 외에도 ‘공개성’, ‘여론’, ‘공론장’ 등의 의미를 갖는다.
공화국의 공공지론을 다시 세워야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조선왕조실록에도 ‘공공(公共)’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조선 초기에는 “법은 만세의 공공의 기(公共之器)”라든가, “관작(官爵)은 조정의 공공의 기”라는 글귀들이 자주 보인다. 그리고 선조(宣祖)대 이후에는 ‘공공지론(公共之論)’ 혹은 ‘공공지의(公共之議)’라는 말이 숱하게 나온다. 물론 그때의 ‘공공지론’는 주로 조정 대신들의 의견을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향촌 유생들의 의견도 ‘공공지론’으로 표현되었다. 여기서 ‘공공’이란 표현은 사적인 것이 아닌 공적인 것, 그리고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 시대의 ‘공공’은 영어의 public과 비슷한 의미를 가졌으며, ‘공공지론’은 하버마스가 말하는 ‘공론장’과 비슷한 의미를 가졌다.
대한민국의 제헌헌법에 담긴 ‘공공복리’를 강조한 조항들은 조선 시대의 ‘공공’을 중시한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위정자들은 헌법의 이와 같은 조항들을 대부분 삭제해버렸다. 그 결과 헌법에서 ‘공화국’의 의미는 퇴색해버렸다. 오늘날 권력을 가진 이들은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관직을 나누어주거나, 사기업의 이익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여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공공의 것’ 국민의 나라이며, ‘공공복리’의 증진을 목표로 하는 공화국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려 한다면, 우리가 목표로 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에 대해 먼저 공공지론을 세워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