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하루 12시간 일해도 근로자가 아니라고요?"
대한민국에서 '근로자'로 인정받는 것의 의미SBS박아름 기자입력2014.10.06 09:21
인천아시안게임 선수촌 식당에서 대학 조리학과 학생들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하루 12시간씩 일했다는 보도가 나간 뒤, 산학협력 현장실습 전반의 문제를 점검하는 후속보도를 하게 됐습니다. '현장실습'이란 그럴듯한 명목으로 사실상 아르바이트와 다름없는 일을 하면서 노동착취 당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얘기를 다뤘는데요. 방송 기사에서 못 다한 얘기를 취재파일로 풀어볼까 합니다.
"그들은 근로자가 아니다"
현장실습생들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기업들의 주장에는 명확한 논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근로자'가 아니란 겁니다. 애초에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는 사람이 아닌데 최저임금을 비롯한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줄 이유가 없다는 거죠. 오히려 기업들은 교육을 제공하는 입장이라고 말합니다.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교육부의 입장도 같습니다. 현장실습은 대학이 학과 관련성 있는 기업과 산학협력을 맺어 학생들로 하여금 실제 업무현장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수업과목이라는 설명입니다. 제도가 만들어진 취지에 따라, 실제로 현장실습 대학생들은 제대로 된 '임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학기 중 '등록금'을 내고 있습니다.
< 대학생A / 호텔경영학과 / 서울 ○○호텔 근무 >
Q. 현장실습에서 주로 어떤 일을 했나요?
A. 라운지에서 음료 같은 거 비워져있으면 채워 넣거나, 그릇 닦는 거? 손님 응대하고 뷔페 타임에는 그릇 치우는 것까지 다 했고요. 약간 패밀리레스토랑 아르바이트 같은데...
Q. 조리실습 하거나 노하우 배우러 가는 학생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A. (오리엔테이션에서) 너희 여기서 이런 거 한다고 레시피 알 수 있는 거 아니니까 아무데나 가도 상관없다고 그러셨어요. 자기가 가고 싶은 양식장, 레스토랑, 일식집, 지망을 해서 가기는 하는데, 메뉴는 손 못 댄다고, 그런 식이었던 거 같아요.
< 대학생B / 경영학과 / ○○교육업체 등 근무 >
Q. 현장실습이라고 하는데 업무 관련 교육을 해주던가요?
A. 교육은 거의 없었어요. 직원처럼 일한 곳도 있고, 야근도 하고 주말에도 일하기도 해요. 시장조사하고 자료검색이랑 정리 위주로. 포토샵 작업을 시키기도 하고. 출장을 가기도 했고요. 아르바이트도 아니고 거의 직원처럼 일한 곳이 많았어요.
< 대학생C / 실용음악과 / ○○음악학원 근무 >
Q. 일한 곳은 어디였나요?
A. 명목상은 무슨 오케스트라였는데 가보니까 그냥 학원에서 일했어요.
Q. 주로 어떤 일을 했나요?
A. 악보 그리는 거, 편곡하는 거 하고... 가끔 거기서 행사할 때 쓸 곡들 간단하게 써주고 했죠. 원래대로라면 현장에서 일을 하는 편곡자나 작곡자한테 일을 맡겨야할 거를 제가 가서 도와준 셈이죠.
Q. 취업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한가요?
A. 전혀 관계가 없죠.
당사자들의 증언을 살펴보면 산학협력 현장실습이 이미 본래 취지와 멀어졌단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거나, 직업 체험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싼값에 대학생들의 노동력을 사용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겁니다.
현장실습생들에게 아르바이트와 다름없는 일을 시킨다면 문제가 있는 거라고 교육부도 인정합니다. 만약 교육부가 인지했다면 조치했을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실제 그런 조치는 뒤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을'의 입장에 있는 학생들이 기업이나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학 교수가 주선해준 현장실습이라면, 부당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혹여 학사에서 피해를 보지 않을까 입을 다무는 학생들이 대다수입니다. 정부가 그저 기업과 학교에만 학생들을 맡겨두고 있으니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겁니다.
기업은 현장실습생들에 대해 근로자가 아니라는 논리로 일관합니다. '근로자성'에 대한 보수적인 접근입니다. 하지만 근로자성을 판단할 때 중요한 건 계약의 형식이 아닙니다. 현장실습 계약을 맺었을지라도, 실제 돈을 받고 일하는 직원과 다름없는 형태의 노동을 하고 있다면, 그 순간 현장실습생은 근로자로 성격이 바뀌게 됩니다. 사용자와 실질적인 사용·종속 관계에 있다면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에 따른 법적 판단입니다. 명목상 계약보단 실질적인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현장실습생도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현장실습이 아니더라도, 많은 학생들이 '근로장학생', '인턴', '홍보대사' 등 그럴듯한 이름에 가려 근로자의 지위를 마땅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취업을 앞둔 학생들 입장에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저항하기 어려운 현실이기에, 개개인에게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라는 말은 가혹하고 무책임합니다. 일하는 청년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사회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함께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 청년노동조합 청년유니온과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실이 공동주최한 <대학 산학협력 현장실습생 증언대회> 자료를 인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AG 선수촌 식당, 실습 명목 '학생 노동착취' 논란
박아름 기자arm@sbs.co.kr
"그들은 근로자가 아니다"
현장실습생들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기업들의 주장에는 명확한 논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근로자'가 아니란 겁니다. 애초에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는 사람이 아닌데 최저임금을 비롯한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줄 이유가 없다는 거죠. 오히려 기업들은 교육을 제공하는 입장이라고 말합니다.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교육부의 입장도 같습니다. 현장실습은 대학이 학과 관련성 있는 기업과 산학협력을 맺어 학생들로 하여금 실제 업무현장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수업과목이라는 설명입니다. 제도가 만들어진 취지에 따라, 실제로 현장실습 대학생들은 제대로 된 '임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학기 중 '등록금'을 내고 있습니다.
현장실습생들은 노동을 하는 게 아니라 교육을 받고 있다는 건데, 현실은 어떨까요.
< 대학생A / 호텔경영학과 / 서울 ○○호텔 근무 >
Q. 현장실습에서 주로 어떤 일을 했나요?
A. 라운지에서 음료 같은 거 비워져있으면 채워 넣거나, 그릇 닦는 거? 손님 응대하고 뷔페 타임에는 그릇 치우는 것까지 다 했고요. 약간 패밀리레스토랑 아르바이트 같은데...
Q. 조리실습 하거나 노하우 배우러 가는 학생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A. (오리엔테이션에서) 너희 여기서 이런 거 한다고 레시피 알 수 있는 거 아니니까 아무데나 가도 상관없다고 그러셨어요. 자기가 가고 싶은 양식장, 레스토랑, 일식집, 지망을 해서 가기는 하는데, 메뉴는 손 못 댄다고, 그런 식이었던 거 같아요.
< 대학생B / 경영학과 / ○○교육업체 등 근무 >
Q. 현장실습이라고 하는데 업무 관련 교육을 해주던가요?
A. 교육은 거의 없었어요. 직원처럼 일한 곳도 있고, 야근도 하고 주말에도 일하기도 해요. 시장조사하고 자료검색이랑 정리 위주로. 포토샵 작업을 시키기도 하고. 출장을 가기도 했고요. 아르바이트도 아니고 거의 직원처럼 일한 곳이 많았어요.
< 대학생C / 실용음악과 / ○○음악학원 근무 >
Q. 일한 곳은 어디였나요?
A. 명목상은 무슨 오케스트라였는데 가보니까 그냥 학원에서 일했어요.
Q. 주로 어떤 일을 했나요?
A. 악보 그리는 거, 편곡하는 거 하고... 가끔 거기서 행사할 때 쓸 곡들 간단하게 써주고 했죠. 원래대로라면 현장에서 일을 하는 편곡자나 작곡자한테 일을 맡겨야할 거를 제가 가서 도와준 셈이죠.
Q. 취업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한가요?
A. 전혀 관계가 없죠.
당사자들의 증언을 살펴보면 산학협력 현장실습이 이미 본래 취지와 멀어졌단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거나, 직업 체험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싼값에 대학생들의 노동력을 사용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겁니다.
현장실습생들에게 아르바이트와 다름없는 일을 시킨다면 문제가 있는 거라고 교육부도 인정합니다. 만약 교육부가 인지했다면 조치했을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실제 그런 조치는 뒤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을'의 입장에 있는 학생들이 기업이나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학 교수가 주선해준 현장실습이라면, 부당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혹여 학사에서 피해를 보지 않을까 입을 다무는 학생들이 대다수입니다. 정부가 그저 기업과 학교에만 학생들을 맡겨두고 있으니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겁니다.
기업은 현장실습생들에 대해 근로자가 아니라는 논리로 일관합니다. '근로자성'에 대한 보수적인 접근입니다. 하지만 근로자성을 판단할 때 중요한 건 계약의 형식이 아닙니다. 현장실습 계약을 맺었을지라도, 실제 돈을 받고 일하는 직원과 다름없는 형태의 노동을 하고 있다면, 그 순간 현장실습생은 근로자로 성격이 바뀌게 됩니다. 사용자와 실질적인 사용·종속 관계에 있다면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에 따른 법적 판단입니다. 명목상 계약보단 실질적인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현장실습생도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현장실습이 아니더라도, 많은 학생들이 '근로장학생', '인턴', '홍보대사' 등 그럴듯한 이름에 가려 근로자의 지위를 마땅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취업을 앞둔 학생들 입장에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저항하기 어려운 현실이기에, 개개인에게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라는 말은 가혹하고 무책임합니다. 일하는 청년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사회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함께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 청년노동조합 청년유니온과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실이 공동주최한 <대학 산학협력 현장실습생 증언대회> 자료를 인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AG 선수촌 식당, 실습 명목 '학생 노동착취' 논란
박아름 기자ar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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