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창 (영남대 독문과 교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내가 김소월의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어렸을 적에 강변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가처럼 “차령산맥 비단 장막 둘러친” 사이로 금강 상류인 보청천의 맑은 물줄기가 구불구불 휘돌아 나가는 곳, 흔히 ‘어부동’으로 불리는 곳이 나의 고향이다.
강변에 살다보니 어려서부터 개헤엄과 자맥질을 익혔고, 강변의 모래사장과 나루터가 놀이터였다. 행인을 건네주는 작은 나룻배 대신 평평하고 널찍한 차량용 나룻배에 버스를 싣고 서너 명의 사공이 노를 젓고 줄을 당겨 강을 건너는 광경은 언제나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강변의 ‘진사래밭’(긴 사래 밭)에서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어른들이 큰소리로 부를 때까지 아이들은 하루 종일 소를 뜯기거나 다슬기를 잡거나 물수제비를 뜨며 놀았다.
6·25전쟁 중에는 입대하는 장정들이나 휴가 나왔다 귀대하는 병사들이 눈물로 가족들과 작별하는 곳이 강변 나루터였다. 휴전 후에는 강변에서 무모한 청년들이 누가 더 오래 버티다 ‘깡’(뇌관)을 던져 물고기를 잡는지 ‘깡’(담력)을 겨루다가 손목을 날리기도 했다.
동네 아이들은 수심 깊은 나루터에 미군이 상자째 버리고 간 기관총탄을 주우러 자맥질을 하곤 했는데 한번은 수영이 서툰 내가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을 동네 청년이 구해준 적도 있다. 그는 내 생명의 은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피라미 낚시와 새집 뒤지기, 두꺼운 얼음장을 떡메로 쳐서 고기 잡는 법 등을 가르쳐준 인생의 스승이었다.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후 나이가 들어 고향을 떠나 살면서도 나는 어부가 한 명도 없는데 어째서 동네 이름이 어부동일까 의아해 했는데, 대청댐 공사로 마을이 물에 잠기면서 그 의문은 저절로 풀렸다. 평생 농사만 짓던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으나 (친척 한 분은 멀리 남미로 이민을 갔다), 몇 사람은 고향 마을에 남아 농사 대신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려가게 된 것이다. 상전벽해라더니 궁벽한 강변의 농촌마을이 어느날 갑자기 바다처럼 드넓은 호숫가의 어촌마을이 된 것이다.
평생 바다 구경을 하지 못한 시골 노인들이 충주 댐으로 생긴 거대한 호수를 보고는 “아마 바다도 이렇게 크지는 않을겨!”라고 감탄을 하더라는, 천진난만한 어린애처럼 깔깔대기를 잘 하는 원로시인 신경림 선생의 우스개소리를 나는 곧이곧대로 믿는다. 내가 바로 대청호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한 촌놈이니까.
강변의 반짝이는 금모래는 사라지고
그러나 거대한 댐에 막혀 고여 있는 물은 이미 살아 있는 물이 아니다. 강변의 반짝이는 금모래는 사라지고 여울물을 헤엄치던 피라미는 보이지 않는다. 덩치 큰 잉어나 가물치, 외래종 베스와 부르길 같은 포식성 어종들만이 활개를 치고 여름철이면 녹조가 끼어 물이 썩는다. 굉음을 울리며 호수를 달리는 모터 보트나 유람선을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타 본 적이 없다. 그건 내 기억 속의 맑은 강물에 대한 모독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낙동강 하구댐이 생긴 다음에는, 자주 찾던 을숙도에 발길을 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흐르지 않는 강은 더 이상 살아 있는 강이 아니다. 강줄기를 막고, 모래를 퍼내고, 둑을 쌓고, 시멘트벽을 치고, 구불구불한 강줄기를 일직선으로 만드는 것은 강을 토막내고 우리에 가두어 죽이는 일이다. 독일이나 스위스, 미국 같은 나라에서 이런 식의 직강화사업을 했다가 홍수와 지하수 고갈 등 각종 생태계 파괴의 부작용 때문에 뒤늦게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여 구불구불하고 모래가 쌓이는 강으로 원상복구를 하고 있는 터에 몇 십조의 국민세금을 퍼부어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강을 죽이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계속 건설업자 이익만?
나는 얼마 전부터 “4대강 사업 즉각 중단”이라는 펼침막을 내 차에 붙이고 다닌다. 그것은 4대강 사업의 현장을 보고 “그 일을 추진하는 측은 말할 것도 없고, 방관하고 있는 사람들도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신경림 시인의 추상같은 꾸지람 때문만은 아니다. 4대강 사업에 항의하여 선방의 스님이 소신공양을 하고, 70 넘은 골재채취업자가 자살을 하고, 신부님들이 삭발을 하고, 국민의 80%가 반대를 하는데도, 군대까지 동원하여 금년말까지 공정의 60%를 끝내겠다는 오만방자한 정부에게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뜻을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생명의 강을 거대한 시멘트 우리 속에 가두어 죽이는 현재의 4대강사업과 먼 훗날의 4대강복원사업으로 계속 돈벌이를 하게 될 건설업자들의 이익이 국민 다수의 이익에 우선한다는 말인가. 사진발 잘 받는 강변자전거도로와 유람선을 임기중의 업적으로 내세우려는 정치인들의 얄팍한 속셈이, 제발 강을 흐르게 내버려두라는 국민 대다수의 소망보다 그렇게도 중요하단 말인가. 민심은 천심이니, 하늘의 뜻을 따르는 자는 흥하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