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공부법 단상(斷想)

소한마리-화절령- 2015. 2. 8. 08:01

공부법 단상(斷想)

김 태 희 (다산연구소 기획실장)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공부법에 그토록 관심이 많다니. 다산연구소 인문학강좌(8강좌)의 한 강좌를 맡았는데, 제목이 ‘다산의 공부법과 지식경영’이다. 기획자가 정한 것이다. 신문에 보도를 부탁했더니, 그 주제가 제일 눈에 띄었는지 무슨 내용이냐고 기자가 물어왔다. 또 그 신문 기사를 보고 출판사 기획자가 찾아왔다.

별스런 공부법이란 게 따로 있을까? 조선 중기의 인물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 조선후기 화가 김득신과 동명이인)의 공부가 종종 이야기된다. 그는 그다지 총명하지 않았으나 부지런히 공부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격려도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오로지 책을 여러 번 읽고 외우는 것을 방책으로 삼았다. 결국 그의 시는 당대 문사들의 인정을 받았고, 59세 늦은 나이지만 문과에 합격했다.

특별한 공부 비법이 있을까?

백곡이 만 번 이상 읽은 책들을 <독수기(讀數記)>에 기록해 놓았다. 후손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기>의 ‘백이전(伯夷傳)’은 특히 좋아하여 11만 3천 번을 읽었다. 그의 거처 이름은 억만재(億萬齋)였는데, 억만 번 읽겠다는 뜻이다. 그가 어찌나 열심히 반복해 읽었던지 옆에서 시중들던 하인도 암송하게 될 정도였다고 한다. 길을 가던 김득신이 글을 외다 머뭇거리는 대목에서 그 하인이 되레 말해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김득신을 근면하고 뛰어난 독서의 일인자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다산답게 <독수기> 내용이 가능한 것인지 따져보았다(‘김백곡독서변(金柏谷讀書辨)’). 다산은 <독수기>가 백곡(柏谷)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그가 작고한 뒤에 누군가가 들은 말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그리고 어떤 책은 전부가 아니라 선본(選本)이었으리라고 추측했다. 그래도 결론은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성호 이익은 입으로 외고 귀로 듣기만 하는 공부를 경계했다. “경서를 공부하는 것이 장차 세상에 쓸모가 있기 위함이다. 경서를 말하면서도 천하만사에 아무런 조처가 없다면 이것은 헛되이 읽기에만 능한 것이다.” (<성호사설>, ‘송시(誦詩)’)

공부! 하면 우선 시험공부를 떠올리지만, 공부는 여러 가지다. 시험공부는 그야말로 시험만을 위한 한때의 공부로 그칠 공산이 크다. 공부란 평생 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지식은 매우 세분화되어 있고 그 수명이 매우 짧다. 이런 지식은 필요한 그때그때 챙기면 된다. 이와 달리 인문학적 주제나 고전에서 다루는 주제는 인간의 문제로서 항상적이다.

요즘 인문학 열기가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 뜨겁다. 대학 밖 인문학 공동체를 추구하는 단체로는 수유너머 계열의 여러 모임과 대안연구공동체(대표 김종락), 길담서원(대표 박성준)이 있다. 또 신문사와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여러 인문학 프로그램이 있다. 예컨대 경향신문의 후마니타스연구소(소장 조운찬)와 푸른역사아카데미(대표 박혜숙) 등에서 운영하는 공부 프로그램이 활발하다.

묻기를 좋아하고, 좋은 질문을 한다면

그뿐인가. 지역 주민을 위해 공공기관에서 마련한 인문학 프로그램도 볼 만하다. 지역 공공도서관에 가면 여러 인문학 프로그램이 주민을 기다리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인근 대학과 연합하여 주민을 위한 시민강좌를 운영하기도 한다. 예컨대 강북구청, 성신여대 평생교육원, 다산연구소가 협력하여 추진하는 다산아카데미는 매기(12주)마다 정원이 꽉 차, 어느덧 4년 동안 8기를 시행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서로 비슷한 듯 다른 듯한데, 각자 사정에 따라 선택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할 만하다. 깨우치고 체득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몫이라 해도, 공부 과정은 함께하는 것이 매우 유용하다. 확실한 스승이 있어 일대일로 배운다면 더 말할 나위 없겠지만, 엇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서 공부한다 해도 반드시 그 안에는 내 스승이 있기 마련이다. 배우는 사람답게 겸허하고 개방된 자세로 임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무엇(What)을 남들이 하니까 그냥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 공부하는 사람은 ‘왜(Why)’냐고 묻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그 무엇을 하는 의지도 분명해지고 ‘어떻게(How)’ 할지 방법도 달라진다. 성호 이익은 ‘호문(好問, 묻기 좋아함)’을 강조했다. “나날이 새롭게 되는 공부는, 오늘 묻기 좋아하고 내일도 묻기 좋아하여, 평생 부지런하며 자만하지 않는 데 있다” 좋은 질문은 공부의 질을 높인다. 공부법 강좌도 좋은 질문으로 시작해야 할 텐데.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 김태희

· 다산연구소 기획실장
· 정치학 박사
·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편집이사

· 논저
〈정조의 통합정치에 관한 연구〉 (2012)
〈다산, 조선의 새 길을 열다〉 (공저, 2011)
〈왜 광해군은 억울해했을까?〉 (2011) )


컬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다산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이 글에 대한 의견을 주실 분은 dasanforum@naver.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다산연구소 홈 리뷰보내기
* 오늘 현재 이 글을 받아 보시는 회원은 [ 368,326 ] 분 입니다.
* 소중한 분께 [추천] 하시면 이 글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후원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