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풍경

신경숙 표절 논란의 오해와 진실

소한마리-화절령- 2015. 9. 8. 09:09

신경숙 표절 논란의 오해와 진실
윤 지 관 (덕성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작가 이응준이 「전설」의 일부 구절의 표절혐의를 빌미로 신경숙을 ‘상습 표절작가’로 고발한 후, 문단 일각과 언론의 비난이 여론재판으로 비화되면서 한바탕 광풍이 일었다. 한국을 대표하던 작가는 순식간에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절도범인 양 매도되고, 한국문학에 지대한 기여를 한 출판사들은 ‘돈만 밝히는’, 한 일간신문 사설의 표현으로는 ‘무한상업주의’의 죄목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아직도 그 여파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러나 20년 전 작품의 일부 구절에 표절혐의가 있다 해서 작가를 마치 『주홍글자』의 주인공처럼 낙인찍고 짓밟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어려운 환경에서 문학이념의 지향과 실천의식을 견지해온 창비 같은 출판사를 두고 ‘무한상업주의’로 몰아붙이는 비난은 부당할뿐더러 출판사에는 명예훼손에 가깝다. 문학출판사도 자본주의사회의 생존경쟁을 외면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한국 출판계에는 상업주의에 함몰되지 않는 문화의 영역이 살아 있고 창비는 그 대표적인 경우다.

셰익스피어, 괴테, 브레히트도 표절 작가인가?

  마녀사냥식의 과잉비난이 이처럼 난무하게 된 가장 큰 책임은 언론의 선정주의가 져야 할 것이다. 이응준의 고발이 나오자마자 언론들은 별 검토도 없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서 여론재판을 주도하고 나섰다. 조금만 살펴보았다면 비록 문제된 구절이 표절이더라도 ‘상습적’이라는 비난은 추정에 불과함을 알았을 터이고, 더 신중했다면 일부 문장의 차용만으로 전체 작품을 표절작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했을 법하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목소리에는 귀를 닫다시피 하고, 한사코 작가의 이실직고와 출판사의 사과만 요구하였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신경숙의 「전설」의 일부 구절이 미시마의 「우국」을 차용했다고 그 작품 전체가 표절작이라면, 셰익스피어의 『폭풍』도, 괴테의 『파우스트』도,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도 다 표절작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들에도 모두 「전설」 못지않은 부분표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이 작품들은 표절작으로 매도되지 않는가? 당시 문제 제기가 없지 않았음에도 표절의 대상인 원작과는 전혀 다른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이룩한 까닭이다. 신경숙의 「전설」도 마찬가지다. 막상 읽어보면 「전설」과 「우국」만큼 상반된 성격의 작품도 드물다는 것은 웬만한 독자라면 다 알 일이다.

  더구나 필자가 한국작가회의 게시판에 올린 「신경숙을 위한 변론」에서 소상히 밝힌 대로, 「전설」 이외의 작품들에 제기된 표절의혹은 하나같이 근거가 희박하다. 적어도 신경숙은 ‘상습적’ 표절의 혐의에서는 완전한 무죄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동안 작가를 상습범으로 비난해온 언론들은 이 해명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반박은커녕 언급조차 없지만, 속으로 이럴지는 모르겠다. “뭐, 상습이 아니라고? 그건 난 모르겠고, 하여간 표절했으니 사과해!” “그런 식으로 보자면 셰익스피어도 괴테도 브레히트도 다 표절작가라고? 그건 난 모르겠고, 하여간 표절이니 절필시켜!” 개그콘서트의 아파트경비원이 따로 없다.

선대 작가들이 조성한 표현의 바다를 벗어날 수 없어

  물론 애초 작가나 출판사의 미숙한 대응 탓에 증폭된 면도 있겠지만, 그것이 이 사태의 본질은 아니다. 문학에서 흔히 쓰이는 정당한 차용조차 표절로 단죄하는 좁은 시각이 문단과 언론을 지배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이 엄연한데 남의 표현을 허락 없이 사용하면 도적질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식이다. 그러나 언어표현의 소유권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작가마다 자기의 표현에 특허를 걸어두면 어떻게 되겠는가? 문학은 그 순간 죽을 것이다. 언어란 만인공유의 것이고 어떤 작가든 선대작가들이 조성한 광대한 표현의 바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기만의 표현도 추구해야겠지만 기존의 표현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활달함도 필요한 것이 창작이다. 문학에서 표절이란 무엇인지 다시 물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상처 입은 한국문학을 위해 문단 전체가 뼈아픈 자성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고, ‘문학권력’들도 주어진 ‘힘’을 바르게 행사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학 나름의 정리과정은 도외시하고 여론재판의 광란으로 사태를 몰아간 언론의 자기반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없고는 언제라도 이런 혼란은 되풀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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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윤지관
· 덕성여대 영문학과 교수
· 문학평론가
· 한국대학학회 회장

· 저서
〈민족현실과 문학비평〉 (실천문학사)
〈놋쇠하늘 아래서-지구시대의 비평〉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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