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의 레즈비언 서울광장에서 '자유'를 외치다
한국일보 이현주 입력 2016.06.12. 17:12
파란색 최신 힙합 모자를 벗자 백발 성성한 짧은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젊은이가 대부분인 성소수자들의 잔치, 퀴어축제에서 그는 단연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위화감이 전혀 없는 건 누구보다 축제를 사랑하고 응원하기 때문이다.
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17회 퀴어문화축제에서 만난 윤김명우(60)씨는 스스로를 ‘환갑의 레즈비언’이라 칭한다. 요즘 젊은 동성애자들이 그렇듯 윤김씨 역시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거쳤다. 1970~80년대는 동성애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기. 그는 좋아하는 소녀에게 마음을 고백했다는 이유로 인민재판을 당해야 했다. 20대 초까지 수 차례 ‘아웃팅(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적 지향이 밝혀지는 것)’을 겪으면서 심신은 만신창이가 됐다. 생계를 꾸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윤김씨는 “단순히 남장 여자로만 보는 주변 시선이 따가워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방황하던 윤김씨는 96년 스스로 레즈비언 문화의 터전을 만들고 싶어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레즈비언바 ‘레스보스’를 개업했다. 레스보스는 자연스레 레즈비언들의 사랑방이자 상담소가 됐다. 그는 “레스보스가 레즈비언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공간이 된 것은 물론, 동성애 자녀를 둔 부모들까지 찾아와 상담을 청했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이 마음을 터 놓을 곳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윤김씨가 퀴어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후배 레즈비언들이 좀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는 올해도 광장 한편에 압구정동에서 운영 중인 레즈비언바 ‘명우형’의 이름을 빌린 부스를 마련했다. 음지가 아닌 광장에 마련된 명우형은 윤김씨를 따르는 후배들로 행사 내내 문전성시를 이뤘다.
서울 한복판에서 성소주자 축제를 열만큼 달라진 세태는 그래도 희망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윤김씨는 “2000년대 초 처음 퀴어축제에 나섰을 때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라며 감격했던 기억이 난다”며 “퀴어축제는 동성애자가 외계인이 아니라 저들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걸 알리는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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