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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사건에 언론은 늘 여성의 이름을 붙인다

소한마리-화절령- 2016. 6. 4. 14:51

성폭행사건에 언론은 늘 여성의 이름을 붙인다

미디어오늘 | 이하늬 기자 | 입력 2016.06.04. 12:33

남성시각 보도, 2차 가해 확산… 조두순 성폭행을 나영이 사건으로, 몰카를 ‘은밀하게 위대하게’

[미디어오늘이하늬 기자]
1997년 9월10일 택시기사에게 성폭행당한 이아무개씨가 경남 김해시 외동의 한 아파트 14층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만 19세였던 이씨는 택시기사를 반드시 잡아달라는 유서를 남겼다. 이에 대해 당시 MBC 뉴스데스크는 이렇게 보도했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수치심이 꽃다운 나이의 여대생을 죽음으로 내몬 것입니다. 짤막한 유서에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던 답답한 심정이 배어 있습니다. 수치스러운 삶 대신 죽음을 택한 이양의 선택은 정조 관념이 희박해진 요즘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PC통신 이용자 400여명은 “성폭행을 당해서 죽었는데 이게 웬 클로징 멘트입니까”라며 항의했고 15개 대학 학생회는 “사과방송이 나오지 않을 경우 우리는 가능한 물리력을 총동원할 생각”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9월19일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 1997년 9월11일 MBC 뉴스데스크 방송 화면. 사진=방송화면 캡쳐
자살한 성폭행 피해자에게 ‘정조 관념’ 운운

강남역 살인사건을 두고 ‘여성혐오’ 논란이 뜨겁다. 언론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성평등 관련 규제를 강화해달라는 서명에는 1000여명이 참여했다. “언론이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집착해 2차 가해를 서슴지 않는 한편 잘못된 성관념을 지속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의 성관념에 기반한 보도와 2차 가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게 최근일 뿐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여성혐오는 공기와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화됐을 때만 우리는 공기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가령 여성이 피해자임에도 여성의 이름으로 불린 사건들을 보자. 1986년 부천경찰서 조사계 문귀동 경장은 대학생 권인숙씨에게 성고문을 자행했다. 이 사건은 오래도록  ‘권인숙 성고문 사건’ ‘권양 성고문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으로 불렸다. 문귀동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988년 성폭력 가해자 남성의 혀가 절단되는 일이 일어났다. 성폭력 가해자 부모는 피해자를 ‘화냥년’이라고 비난했고 1심 재판부는 ‘과잉방어’라며 오히려 피해자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이는 여전히 피해자 이름을 딴 ‘변월수 사건’으로 불린다. 

1998년 최초의 성희롱 관련 소송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으로 보도된 이 사건의 가해자는 신정휴 당시 서울대 교수다. 6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신 교수는 우 조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최종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희롱도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생겼다. 

▲ 1997년 9월19일 MBC 뉴스데스크 방송 화면.사진=방송화면 캡쳐
부천 성고문 사건, 문귀동을 아시나요?

이런 보도행태는 언론이 조두순이 저지른 성폭행 사건을 ‘나영이 사건’으로, 김일곤이 여성을 살해하고 트렁크에 가둔 뒤 불을 지른 사건을 ‘트렁크녀 사건’으로 이름 짓는 것으로 이어진다. 올해 3월 의사가 대장내시경 검진 도중 마취 상태의 여성을 성추행한 사건에는 ‘대장대시경녀’라는 단어가 사용됐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범죄와 관계없는 여성에 대해서도 ‘OO녀’로 이름짓는 행태가 나타났다. 주차를 잘하지 못하는 중년 여성을 일컫는 ‘김여사’, 생각 없이 고가의 제품을 소비하는 ‘된장녀’, 한국인 남성보다 외국인 남성을 좋아하는 여성을 의미하는 ‘김치녀’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이종임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올해 1월 ‘혐오문화의 확산’ 토론회에서 “여성의 일거수일투족, 일상생활의 미시적인 영역 모두 감시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언론 역시 여성혐오 문화를 적극적으로 생산해 온 주체”라고 꼬집었다.

아이러니한 건 범죄 보도에 있어 여성이 가해자인 경우에도 여성의 이름으로 사건이 불린다는 점이다. 1991년 30세의 김부남씨는 어린 시절(9세) 자신을 성폭행한 송백권씨를 살해했다. 여성단체들의 도움으로 김씨는 징역2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는 김부남 사건으로 기억된다.

▲ 1995년 '서울대 우 조교 사건'을 보도한 당시 한겨레 기사
범죄 아닌 일상생활에 등장한 OO녀 

나아가 이 같은 보도는 ‘이름 짓기’에서 끝나지 않고 ‘피해자 비난’으로 이어진다. 성범죄의 경우 더욱 그런 경향을 보인다. 조선일보는 2000년 12월18일 원조교제에 대해 “A양은 명문대생을 선별해 원조교제를 했으며 (중략) 원조교제를 한 뒤 이어 같은날 밤 돈을 받고 S대 박사과정 김씨와 성관계를 갖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훈순 이화여대 언론홍보학부 교수는 2004년 발표한 ‘한국 언론의 젠더 프레임’ 연구에서 “원조교제에서 비난받아야 할 대상은 청소년이 아닌 어린 여성의 성을 매매의 대상으로 삼는 남성들이지만 많은 원조교제 기사들은 여학생들을 비난의 대상으로 초점을 맞췄다”고 비판했다. 

최근 들어서야 ‘영남제분 살인사건’으로 보도 된 ‘하남 여대생 살인사건’ 보도는 관음증과 피해자 비난이 어우러진 행태를 보여줬다. 이는 2002년 3월 한 20대 여성이 공기총 6발을 맞고 숨진 사건으로 범죄의 잔인성, 부유한 피해자, 사회적 지위를 가진 주변 인물 등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당시 조선일보는 첫 보도부터 E여대, 강남 삼성동 등을 언급하며 피해자를 ‘강남 명문 여대생’으로 규정했다. 이후 보도에서는 “뛰어난 외모” “성격이 밝고 남자친구가 많았다” “명문대 법대생과의 교제” “현직 변호사와의 맞선” 등을 언급했다. 피해자 주변 남성들과의 관계를 도표로 그려 기사 옆에 첨부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조선일보는 이 사건을 시종 일관 ‘상류층 미혼여성의 남자관계’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총 10건의 후속기사 중 5건에서 불륜을 언급했다”며 “반면 한겨레 보도에서 ‘불륜’이라는 단어는 14건 중 1건의 기사에만 등장했다. 가해자가 불륜을 의심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 2002년 3월20일 조선일보 기사
살해된 여성에 “뛰어난 외모” “남자친구가 많았다”

2004년 보도방과 출장마사지 여성 11명을 살해한 유영철은 “여성들이 몸을 함부로 굴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는 그대로 기사 제목 등에 중점적으로 반영됐다. 이 발언은 피해자의 직업과 더불어 마치 ‘몸을 함부로 굴려’ 살해당한 듯한 인상을 준다. “바람 피운 여친 살해” 등의 제목도 마찬가지다. 

연예매체 디스패치는 강남역 살인사건 발생 다음날, 술 취한 여성이 길거리에 쓰러진 사진과 함께 “다신 안 마셔!... 남자가 꼽은 여자의 술 진상 6”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에 대해 트위터에서는 “꼭 이런 시기에 저런 글을 올렸어야 했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성범죄가 결합될 경우 피해자 여성은 원인을 제공한 ‘꽃뱀’ 혹은 ‘몸을 함부로 굴린’ 여성인 동시에 ‘더렵혀진’ 존재로 묘사된다. ‘욕 보여’ ‘몸 뺏겨’ ‘잃어’ 등의 단어가 대표적이다.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함과 동시에 중요한 것을 잃었다는 뉘앙스를 준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결’이다.

이 과정에서 결국 남는 건 가해자의 목소리다. “여성들이 몸을 함부러 굴려서” 죽였다는 유영철이나 “아가씨가 드라이브 하자고 해서 갔다”고 말한 성폭행 가해자 택시기사의 말이 대표적이다. 성폭행 피해자는 범죄 직후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는 지난달 26일 ‘강남 여성 살해 사건 관련 긴급 집담회’에서 “언론은 피해자에 대해 불쌍하다, 안됐다의 뉘앙스를 보이지만 그 외에는 모두 가해자의 언어로 사건이 재구성된다”며 “피해자가 말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어떻게 만들것인가”라고 지적했다. 

▲ 나영이사건으로 불린 조두순 사건. 사진=포털사이트 다음 검색 결과 캡쳐
‘꽃뱀’인 동시에 ‘더렵혀진’ 여성

실제 최근에는 범죄 가해자에 ‘빙의’한 듯한 기사가 논란이 됐다. 연합뉴스의 4월8일 ‘소라넷은 어떻게 17년을 살아남았나’라는 제목의 기사가 대표적이다. 몰래 카메라(몰카)와 강간 조장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음란 사이트 소라넷 운영자 1인칭 시점에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풀어썼다. 

“리벤지 포르노, 강간 모의, 집단 성행위. 이 단어를 느꼈을 때 움찔했는가 아니면 친근함이 느껴졌나. 그렇다면 당신은 우리 고객임이 분명하다. 소라넷 운영자 A다. 아 부끄러워마라.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다. (중략) 관음증, 일탈, 폭력 등 익명성 뒤에서 우리 회원들은 쌓아둔 것을 마음껏 발산하지.”

헤럴드경제는 성추행을 시도하던 남성이 피해자 여성의 무릎에 찍혀 기절한 사건을 “섹시백에 반한 성추행남 ‘에잇 못참겠다’”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남성의 성욕은 주체할 수 없는 것이어서 성범죄가 발생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몰카를 두고 “은밀하게 위대하게(?) 찰칵찰칵” 등 장난스럽게 보도한 제목도 있다. 

▲ 논란이 된 헤럴드경제 기사소개 트위터.
성추행 가해자에 빙의 “에잇 못참겠다”고? 

전문가들은 언론이 좀 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언론은 현실을 반영하는 객관적인 창이 아니라 현실을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김훈순 교수는 “따라서 한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체계의 틀에 의해 뉴스는 선택되고 강조돼 생산된다”고 지적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언어가 성별을 만든다”고 말한 바 있다. 

김수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는 “한국 언론은 주어진 권력이 동등하지 않음에도 기사에 둘 다 반영하는 ‘형식적 객관주의’를 취한다. 이럴 경우 독자는 둘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며 “언론은 공공선과 공동체를 위해 어떤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지금의 보도는 여성혐오 세력을 키워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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