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미 이슈마엘 - 최명애의 고래 탐험기](1) 돌고래가 인간을 길들이는 기묘한 해변
ㆍ서호주 몽키마이어
“다음 안내까지 270㎞ 직진입니다.”
제랄드턴(Geraldton)을 빠져나오자 내비게이션은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를 남기고 조용해졌다. 우리는 서호주 북부의 아웃백 지대를 달리고 있었다. 목적지는 몽키마이어(Monkey Mia). 아침마다 돌고래가 해변으로 찾아오는 곳. 창 너머로 들려오는 돌고래의 끽끽 소리에 아침잠을 깬다는 거짓말 같은 곳이다(진짜였다). 서호주의 주도 퍼스에서 자를 대고 줄을 그은 것 같은 직선 도로를 1박2일 900㎞ 달리면 나온다.
고래 보려고 거기까지 가셨어요? 고래가 도대체 왜 좋아요? 아, 이런 질문은 참 대답하기 어렵다. 물론 입사 면접이라면 사력을 다해 고래의 생태적 문화적 중요성과, 고래 관광을 통한 생태 교육과 동물 보호에 대해 어떻게든 설명해 보겠지만, 사실은,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고래가 안개처럼 내 생활에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다.
여행을 하다 고래라는 대형 야생동물의 존재를 알게 됐고, 보고 싶어졌다. 겨우 고래를 만났는데, 그 이름을 불러주지 못해서는 아니 될 것 같아서 고래 도감도 구해 읽었다. 도감을 들여다보다, 과자 ‘고래밥’ 포장지의 고래가 머리가 뭉툭한 향고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고, 우리 동네 놀이터의 정글짐도 향고래 모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래를 좀 더 가깝게 보고 싶어서 탐조용 쌍안경도 구비했다. 장비를 몸에 익히겠다며, 쌍안경으로 아파트 건너편 중국집 창문에 적힌 전화번호를 알아내 자장면을 시켜 먹기도 했다. 그러다 영국에 건너가 고래 관광을 공부하게 됐고, 생태관광으로 박사가 됐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나오는 이슈마엘처럼 고래에 홀려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에이허브 선장의 선원이 된 것이다. 18세기에는 포경선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우리 시대의 고래는 도처에 있어, 나는 고래 관광선을 타고, 수족관을 가고, 돌고래쇼를 구경하고, 고래 고기 식당도 다니게 됐다.
■인간이 길들인 돌고래
지역 이름은 상어(샤크베이), 동네 이름은 원숭이(몽키마이어). 그러나 이곳의 슈퍼스타는 돌고래다. 돌고래쇼에 흔히 이용되는 큰돌고래와 사촌 격인 ‘남방큰돌고래’(Indo-Pacific Bottlenose Dolphin) 3000여 마리가 서식한다. (‘제돌이’가 바로 남방큰돌고래다) 몽키마이어 해변으로 찾아오는 몇 마리에게 먹이를 주는 게 고래 관광의 하이라이트다. 황무지에 가까운 호주 서북부. 몽키마이어는 진주 양식과 어업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어부들이 이따금 들르는 곳이었다. 어부들은 배를 따라오는 돌고래들을 눈치챘고, 1960년대 중반 닌 왓츠(Nynn Watts)라는 어부가 돌고래에게 생선을 던져주기 시작했다. 생선 맛을 들인 돌고래들이 하나 둘씩 짝을 지어 몽키마이어 해변으로 찾아왔고,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캠핑카를 몰고 몽키마이어로 찾아왔다.
호주 캠핑 사업가 메이슨 헤이즐이 눈치 빠르게 몽키마이어에 캠핑장을 차린 것이 1974년. 1982년부터는 호주와 미국의 동물행동학자들이 이 붙임성 좋은 돌고래들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돌고래에 대한 관심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호주 정부는 1990년 몽키마이어 연안 일대를 해양공원으로 지정한다. 이듬해 몽키마이어가 포함된 샤크베이 2만2000㎢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다. 허름한 캠핑장이 리조트로 ‘업그레이드’된 것도 이때다. 돌고래 관광 수요가 증가하고, 늘어난 관심이 학자들을 부르고, 정부의 야생동물 보호정책이 한데 맞물려 지금의 세계적 돌고래 생태관광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먹이’를 미끼로 한 인간의 돌고래 길들이기는 참혹한 결과를 불렀다. 1983년부터 1994년까지 태어난 새끼 돌고래 15마리 가운데 11마리가 죽고 만 것이다. 해양공원 관계자들은 그 이유를 ‘무절제한 먹이 공급’ 때문으로 설명했다. 관광객들이 손에 손에 버킷을 들고 생선을 던져주면서, 돌고래들은 1일 섭취량(8~10㎏)을 넘는 13㎏ 정도를 관광객으로부터 얻어먹게 됐다. 먹이가 풍부하니 사냥을 하지 않게 됐고, ‘구걸’ 돌고래로부터 태어난 새끼들도 사냥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다. 게다가 어미 돌고래가 생선을 얻어먹으려고 대부분의 시간을 얕은 해변에서 보내면서, 새끼들이 젖을 먹을 수 있는 시간도 크게 줄었다.
화들짝 놀란 공원 측은 1995년부터 돌고래 먹이 주기를 엄격하게 제한하기 시작했다. 얻어먹는 데 익숙해진 기존 돌고래에게는 계속해서 먹이를 주되, 주는 양을 하루 섭취량의 4분의 1 이하(약 2㎏)로 줄였다. 또 1995년 이후 태어난 돌고래에게는 생선을 주지 못하도록 했다. 2015년 11월 현재 몽키마이어를 찾는 돌고래 가운데 4마리만 생선을 얻어먹는다.
돌고래의 사회적 학습을 연구하는 샤크베이의 과학자들은 돌고래 먹이 주기에 부정적이다. 환경저널리스트 버지니아 모렐이 쓴 <동물을 깨닫는다>를 보면 몽키마이어의 돌고래들을 ‘상거지’라고 부르는 샤크베이의 과학자들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몽키마이어를 찾았을 때에도, 미국, 스위스, 호주 연합팀 과학자들이 인근 유슬리스 루프(Useless Loop)에서 현장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연구팀의 사이먼 알렌은 “동물원에서 관광객 보여주기 용으로 먹이 주는 것과 차이가 없다”며 “야생에서 돌고래들이 헤엄치고 활발히 움직이는 모습을 봐야 샤크베이 돌고래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몽키마이어의 돌고래들은 정말로 인간이 ‘생선’을 미끼로 길들인, 그래서 야생을 잃어버린, ‘오염된’ 돌고래들일까.
■돌고래가 길들인 인간
오전 7시45분. 해변은 한 줄로 늘어선 150여명의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관광객들은 옆 사람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다. 리조트 건물을 나눠 쓰는 공원 직원들이 매일 아침 3차례 돌고래 먹이 주기를 실시한다. 오전 8시가 첫 회. 무릎까지 차오른 바다에서 공원 직원이 손을 펼쳐 관광객들을 부른다. “자, 이제 들어오셔도 됩니다. 딱 발목 깊이까지만요. 해변 따라 한 줄 그대로 유지해 주시고요.”
물결의 그림자가 발등 위에서 하늘거리는 투명한 몽키마이어 바다. 공원 직원이 마이크 소리를 높였다. 먹이를 주는 돌고래는 퍽(76년생), 서프라이즈(79년생), 피콜로(92년생), 쇼크(94년생) 모두 4마리다. 먹이 규제를 시작한 95년 이후 새끼 돌고래 생존율은 크게 높아졌다. 2010년까지 태어난 17마리 가운데 15마리가 살아남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수평선 너머로 검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돌고래였다. 정말 오전 8시다. 알람 시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매일 같은 시간에 찾아오는 것일까. 성큼 다가온 돌고래들은 공원 직원들의 주변을 맴돌았다. “서프라이즈예요. 3미터쯤 되겠죠? 남방큰돌고래와 큰돌고래 잡종이고요….”
먹이 주기는 돌고래가 해변에서 5분 이상 머물러야 시작된다. 관광객이 모두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면 먹이 주기가 시작된다는 신호다. 돌고래 한 마리당 생선은 3~4마리. 공원 직원들이 생선이 든 버킷을 들고, 관광객 중 한 사람을 지목해, 돌고래 입 위로 생선을 한 마리 떨어뜨리게 한다. 제법 큼직한 대구(whiting)나 도미(snapper)를 준다. 관광객 수가 많아 선택된 소수의 관광객만 이 체험을 할 수 있다. 사흘 동안 도합 9번의 먹이 주기에서 눈에 띄려고 나는 고래가 그려진 티셔츠까지 차려입고 갔지만, 허망하게도 한 번도 선택받지 못했다. 생선을 다 주고 나면 버킷을 물에 흔들어 씻고, 관광객들이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난다. 그러면 돌고래들도 먹이 주기가 끝났다는 것을 알고 천천히 퇴장한다. .
매일 일정한 시간에 만나고, 먹이를 나누고, 헤어지는 인간과 돌고래. 길드는 것은 돌고래만이 아니었다. 몽키마이어에서는 하지 말라는 게 많았다. 리조트 입구에는 ‘손과 무릎 아래로 선크림을 바르지 말라’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선크림의 화학 성분이 돌고래의 눈에 해로울 수 있다는 거다. 전 세계 여행 산업계가 ‘죽기 전 해 봐야 할 여행’으로 꼽는 ‘돌고래와의 수영’도 금지돼 있다. 이종간 접촉으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전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돌고래가 내게 다가올 수는 있지만, 내가 돌고래에게 60m 이내로 접근하는 것은 불법이다. 돌고래가 가까이 오면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춰서야 한다. 몽키마이어에서 사람의 행동은 돌고래의 안녕을 위해 길들여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언제부터 그렇게 돌고래를 좋아했다고, 사람들은 돌고래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하고 열광했다. 서프라이즈가 생선을 먹다 말고 똥을 싼 날 아침은 해변이 흥분으로 들떴다. 공원 직원 케이트 타일러가 말했다. “돌고래들이 우리를 길들이는 것이지, 그 반대의 경우는 좀처럼 없어요.”
어쩌면 그 이상일 것이다. 사람이 돌고래를 길들이고, 돌고래가 사람을 길들이고, 이 독특한 관계가 돌고래와 사람을 새롭게 길들이는 것은 아닐까. 얻어먹을 것이 없는데도 찾아오는 돌고래들도 생겼다. 지난해부터 나타나는 ‘엑스터시’는 ‘구걸’ 계보에 없는 새 돌고래다. 등지느러미의 절반 이상이 상어에게 물어 뜯겨 쉽게 눈에 띈다. 피콜로는 ‘얻어먹는’ 고래지만, 먹는 것보다 장난치는 데 더 관심이 많단다. 피콜로는 이날도 생선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모로 누운 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쳐다보는 자세다. 고래는 눈이 옆에 달려 있다. 인간만 돌고래를 지켜보는 게 아니다. 불편한 자세를 감수하면서, 돌고래도 인간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몽키마이어의 돌고래 관광이 ‘최선’은 아니다. 야생의 돌고래를 인간의 욕구에 맞게 길들여 이윤을 추구하는 명백한 자연의 상업화다. 그러나 40여년에 걸친 길들이기는 인간도 길들여, 돌고래를 위해 보호구역을 설정하고, 우리의 행동에 제약을 가하고, 돌고래를 ‘호기심 많고 사랑스러운 동물’로 새롭게 보도록 했다.
인간은 자연을 간섭하지 않고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자연을 통제할 수도 없다. 몽키마이어에서는 적어도 인간이 유일한 행위자거나, 돌고래가 일방적인 착취의 대상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 기묘한 인간과 돌고래의 이종간 교류(Interspecies interaction)의 주체는 인간과 돌고래, 둘 다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가 서로를 길들인다.
‘콜 미 이슈마엘(Call me Ishumael)’은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나오는 유명한 첫 문장. 이슈마엘(이스마엘)은 방랑자를 상징하는 구약성서 인물로, 포경선의 하급선원인 소설 속 주인공이 빌려 쓴 이름.
인간과 동물·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쓰는 환경지리학자다. 2016년 영국 옥스퍼드대 지리학과에서 한국 생태관광의 통치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앞서 경향신문에서 9년간 기자로 일하면서 여행·환경 분야를 취재,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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