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인간

[콜 미 이슈마엘 - 최명애의 고래 탐험기](5) “나랑 놀아요” 먼저 사람에게 꼬리치는 ‘외톨이 돌고래’

소한마리-화절령- 2016. 6. 25. 20:35

[콜 미 이슈마엘 - 최명애의 고래 탐험기](5) “나랑 놀아요” 먼저 사람에게 꼬리치는 ‘외톨이 돌고래’

최명애 ㅣ 환경지리학자

ㆍ아일랜드 딩글 반도

큰돌고래 펑기는 30년 넘게 무리를 떠나 아일랜드의 작은 어촌마을 딩글 앞바다에 머물고 있다. 매년 4만여명이 펑기를 구경하러 딩글을 찾아온다.

큰돌고래 펑기는 30년 넘게 무리를 떠나 아일랜드의 작은 어촌마을 딩글 앞바다에 머물고 있다. 매년 4만여명이 펑기를 구경하러 딩글을 찾아온다.

1983년 겨울에는 유난히 청어가 많이 잡혔다. 아일랜드 서쪽 끝 딩글(Dingle) 반도의 어부들은 눈물을 머금고 잡은 청어를 바다에 버려야 했다. 이대로는 청어값이 형편없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어부들은 청어를 한 마리, 두 마리 바다로 던졌다. 그때 뭔가 물 위로 불쑥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갑판 위에 청어가 다시 나타났다. 다시 던졌다. 이번엔 그 ‘뭔가’가 잽싸게 청어를 낚아챘다. ‘뭔가’는 정확히 갑판 위로 청어를 다시 던졌다. 돌고래였다. 돌고래 한 마리가 배 주위를 맴돌다, 골키퍼처럼 입으로 청어를 받아서 갑판으로 ‘슛’을 쏘는 것이었다.


딩글만에 이따금 돌고래들이 보이긴 했지만, 이만큼 배와 사람에 가까이 다가오는 돌고래는 없었다. 딩글의 지역 작가 션 매니언이 1991년 쓴 <아일랜드의 돌고래 친구(Ireland’s Friendly Dolphin)>에는 이 싹싹한 돌고래에 대한 어부들의 흥분에 찬 증언이 나온다. “반쯤 취해 배를 몰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이놈이 뛰어올라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는 어부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30m쯤 앞서가다 “배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는 듯” 이따금 멈춰 서서 돌아보는 돌고래였다. 배에서 랍스터라도 손질하고 있으면, 펄쩍펄쩍 뛰어올라 생선통을 들여다보곤 했다. 뭘 하는지 궁금해 죽겠다는 자세였다. 턱밑에 보조개처럼 긁힌 자국이 있는 몸길이 4m의 큰돌고래(Bottlenose dolphin). 어부들은 이 ‘싹싹한 외톨이 돌고래’를, 수염이 무성하게 난 동료의 별명을 따라 ‘펑기(Fungie)’라고 불렀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펑기는 꾸준히 딩글에 머물고 있다.


■관광객을 구경하는 호기심 돌고래

물 위로 불쑥 솟아올라 쳐다보는 모습이 펑기의 ‘간판’ 포즈다. 펑기의 간판 포즈 사진으로 덮인 여행사 입구.

물 위로 불쑥 솟아올라 쳐다보는 모습이 펑기의 ‘간판’ 포즈다. 펑기의 간판 포즈 사진으로 덮인 여행사 입구.


딩글은 세월이 천천히 흐르기로 작정한 것 같은 조그만 어촌마을이었다. 파스텔톤의 페인트로 이름을 적어놓은 가게들이 삐뚤빼뚤 어깨를 맞대고 늘어선 곳이 시내였다. 나무로 깎은 돌고래 대여섯 마리가 간판 대신 붙어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는 돌고래 모양의 나무 액자를 팔았다. 신문에서 잘라낸 펑기 사진이 들어 있다.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기념주화가 나오는 구식 장난감도 보였다. 보트 투어가 출발하는 부두 앞에는 실물 크기의 펑기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문질렀는지, 부리와 머리가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다.


딩글 사람들은 “보트를 타기만 하면 펑기를 본다”고 가슴을 땅땅 쳤다. 1992년 어민 7명이 자신들의 어선으로 고래 관광 업체를 만들었고, 지금은 자식들이 여행사에서 전화를 받는다. “1인당 16유로예요. 돌고래 못 보면 돈 안 받아요. 아니, 탈 때 말고 내릴 때 돈 내시면 돼요.” 한 번에 20명, 많으면 40명쯤 타는 작은 배다. 1시간 정도 딩글만을 돌아다니며 펑기를 찾는다.


마을이 천천히 멀어져 갔다. 언덕 꼭대기의 안개가 생물처럼 슬금슬금 마을로 내려오는 날이었다. 우리 배 말고도 앞서 출발한 배 한 척, 개인이 빌린 것 같은 보트 한 척이 더 있었다. 성수기인 여름에는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30분 간격으로 배를 띄운다고 했다. 10분쯤 달렸을까, 갑자기 배가 멈췄다. 타이어 조각 같은 물체가 수면 위로 보이더니 뾰족한 등지느러미가 드러났다. 승객들은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한쪽 뱃전으로 몰려들었다. 배가 기우뚱 흔들렸다. 펑기는 슬금슬금 맞은편의 작은 보트로 다가갔다. 호기심이 많아서 낯선 물체는 일단 유심히 관찰한단다. 탐색을 끝내고, 펑기는 길잡이라도 하겠다는 듯 보트 앞에서 선수타기(돌고래가 보트의 앞에서 헤엄치는 것)를 시작했다. 펑기가 앞장서고, 배 세 척이 펑기를 에워싸고 달렸다. 단단히 망원렌즈로 무장하고 갔는데, 야생의 돌고래가 이렇게 쉽게, 가까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한 시간 내내 펑기는 배 주변에서 뛰어오르고, 헤엄치고, 또 뛰어올랐다. 배에 탄 꼬마들이 “원, 투, 스리, 펑기!”를 외칠 때는, “펑기!”에서 어김없이 뛰어올랐다. 이쯤 되면 펑기가 박자를 셀 줄 알거나, 자기 이름을 알아듣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나중에 여행사 사무실에서 봤더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벽에는 펑기가 ‘직립’ 자세로 날아올라 승객들을 혼비백산시키고, 비행선처럼 배 위를 가로지르는 낡은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압권은 펑기와 송아지가 나란히 뛰어오르는 사진이었다. 이 호기심 많은 돌고래의 ‘대표 사진’은 몸 절반을 물 위로 내놓고 살짝 고개를 든 모습이다. “뭔 일 없수?”라고 묻기라도 하는 듯한 자세다. 이 독특한 돌고래는 인구 1900명의 어촌마을을 세계적인 돌고래 관광지로 만들었다. 동네 사람들만 알음알음 알던 펑기는 1987년 크리스마스 날 공중파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단숨에 아일랜드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이듬해 영국 촬영팀이 펑기에 대한 다큐를 만들었고, 유럽과 미국에 알려지면서 세계적 스타가 됐다.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을 다루는 미국 ‘헬로’ 매거진에까지 실릴 정도였다. 명성이 한풀 꺾인 지금도 매년 4만여명이 펑기를 보러 딩글로 온다.

부둣가의 펑기 조형물

부둣가의 펑기 조형물


■싹싹한 외톨이 돌고래

고래 연구자들은 펑기 같은 돌고래를 ‘싹싹한 외톨이 돌고래(Solitary Sociable Dolphin)’라고 부른다. 무리를 떠나 사람과 가까운 거리에서 생활하는 돌고래 개체다. 영국 해양보호단체 마린 커넥션은 2008년 기준 전 세계에 91마리의 싹싹한 외톨이 돌고래가 나타났다고 집계했다. 펑기 같은 큰돌고래가 63마리로 가장 많고, 다른 돌고래류와 범고래, 흰고래, 일각고래 등도 기록에 남아 있다. 대부분은 고래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1980년대 이후 목격된 고래들이다.


평생 무리 생활을 하는 돌고래가 왜 무리를 떠나 인간 가까이 오는지는 미스터리다. 생물학자들도 “먹이 경쟁, 포식자의 위협, 번식 등 이유로 무리로부터 떠나는 돌고래들이 있다”고만 할 뿐, 이들 중 일부가 인간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이유는 설명하지 못한다. 먹이 때문은 아니다. 야생의 돌고래는 죽은 생선을 먹지 않는다. 펑기도 어부들이 던지는 생선을 갖고 놀 뿐 먹지는 않는다. 물고기가 밀려오는 밀물 때 직접 사냥을 한다. 인간이 이들의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도 아니다. 싹싹한 외톨이 돌고래들은 자발적으로 인간 가까이 왔다가, 어느 순간 떠난다. 대부분 같은 지역에 한두 해 머무르다 떠나는데, 펑기처럼 수십년 한 지역에서 인간과 어울리는 고래도 있다. 펑기가 언제 떠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딩글 관광 산업엔 유감이겠지만, 펑기를 붙잡아둘 방법은 없다.


싹싹한 외톨이 돌고래들과 인간은 서로에게 ‘길들여’진다. 이 길들이기는 먹이와 신체 자유를 매개로 한 수족관의 ‘길들이기(taming)’와 다르다.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익숙해지는 ‘습관화(habituation)’다. 싹싹한 외톨이 돌고래를 연구하는 해양생물학자 모니카 윌키는 이들의 습관화 과정을 4단계로 정리했다. 처음엔 돌고래가 쭈뼛거리며 보트나 어구를 따라다니다가, 수영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고, 사람과 나란히 수영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사람의 직접 신체 접촉도 허용하게 된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돌고래가 사람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거다. 싹싹한 외톨이의 ‘습관화’가 동물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1960년 영국 여성 제인 구달은 탄자니아 곰베의 침팬지들에게 스스로를 ‘습관화’했다. 쭈뼛거리며 침팬지들을 따라다니다, 그들 옆에서 과일을 먹고 하품을 하고, 마침내 서로를 만질 수도 있게 됐다. 제인 구달은 그렇게 침팬지 사회로 걸어 들어갔고, 우리는 그를 통해 침팬지의 놀라운 지능과 사회적 행동을 알게 됐다. ‘싹싹한 외톨이 인간’이 인간 세계와 침팬지 세계를 연결하는 작은 통로를 만든 것이다. 싹싹한 외톨이 돌고래들의 역할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을 보살피게 하소서

서로 다른 두 종 간의 습관화가 언제나 평화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2006년 봄 영국 남부 켄트에 나타난 큰돌고래 ‘데이브’가 그랬다. 휴양지 바닷가에 나타난 돌고래에 사람들은 흥분했고, 데이브와 나란히 수영하고, 데이브 위에 올라타기도 했다. 짧은 시간에 급속히 ‘습관화’를 겪은 데이브는 흥분 상태를 보였다. 너무 활기가 넘쳐 수영하는 사람을 막아서거나 카약을 빙빙 돌리기도 했다. 데이브의 활동 반경이 지역 주민의 어업, 레저 공간과 겹치는 것도 문제였다. 결국 이듬해 10월 데이브는 꼬리 절반이 잘려나간 채 발견됐다. 지느러미에는 낚싯줄과 낚싯바늘이 붙어 있었다. 정성스레 치료해 바다로 돌려보냈지만 데이브의 흔적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대 이후 최근까지 영국에서 유명해진 싹싹한 외톨이 돌고래 중 4마리가 죽거나 크게 다치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인간의 과도한 신체 접촉, 선박의 프로펠러나 어구, 기름 유출 등 해양오염은 인간 가까이 찾아온 이들에게 큰 위협 요인이 된다.


마을을 찾아온 돌고래에게 인간이 따뜻한 애정을 보여준 경우도 있다. 1955년 뉴질랜드 최북단의 호키앙가 주민들은 큰돌고래 오포를 보호하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하고 입법 청원을 내 오포 보호법을 통과시켰다. 20여년 뒤 스페인에 나타난 큰돌고래 니나도 그랬다. 니나의 활동 영역과 어업 영역이 겹치자 니나를 보호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어업 규제가 내려졌다. 펑기도 마찬가지다. 고래보호단체 ‘고래와 돌고래 보전(WDC)’은 싹싹한 외톨이 돌고래와 인간의 접촉이 빚기 마련인 부적절한 결과를 우려하면서도 펑기는 ‘예외’라고 한다. 펑기의 활동 영역이 유난히 넓은 데다, 지역 공동체가 살뜰하게 보살펴서 펑기에게 가해진 교란은 “거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펑기는 곧잘 풀쩍풀쩍 뛰어오르지만, 관광객과 나란히 수영하지 않는다. 관광객이 수영하러 다가오면 도망가버린다. 그러나 ‘오랜 친구’인 지역 주민들에게는 먼저 다가가고 가까이서 맴돈단다. 지역 주민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둣가의 펑기 조형물 아래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펑기의 발랄하고 관대한 영혼은 우리에게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창조의 그물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이들을 보살피게 하소서.”


■필자 최명애


인간과 동물·자연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쓰는 환경지리학자다. 2016년 영국 옥스퍼드대 지리학과에서 한국 생태관광의 통치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앞서 경향신문에서 9년간 기자로 일하면서 여행·환경 분야를 취재,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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