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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은 변했지만"..딸 잃은 아비의 싸움은 현재 진행형

소한마리-화절령- 2017. 3. 5. 20:32

"강산은 변했지만"..딸 잃은 아비의 싸움은 현재 진행형

김보영 입력 2017.03.05 20:00 댓글 8

오는 6일 삼성 반도체 피해자 고(故)황유미씨 10주기
아버지 황상기씨 "직업병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 우선"
이재용 부회장 청문회서 "책임 느낀다" 발언에 실낱 희망
고(故)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62)씨가 딸의 10주기를 앞둔 지난 4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 ‘반올림’ 농성장에서 환자복 차림의 소녀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이 소녀상은 한 미대 졸업생이 유미씨의 모습을 재현해 만들었다. (사진=김보영 기자)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3남매의 가장이자 평범한 택시기사였던 속초 남성은 어느덧 ‘거리의 투사’가 됐다. 지난 2007년 3월 6일 23세 꽃다운 나이에 급성골수백혈병으로 목숨을 잃은 고(故)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62)씨다.

둘째 딸 유미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 반도체 생산라인에 입사한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05년 5월 급성골수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유미씨는 2차 골수이익 수술을 앞두고 피검사를 받기 위해 경기 수원 대학병원에 갔다 속초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황씨가 운전하는 택시 뒷좌석에서 끝내 눈을 감았다. “아빠, 너무 더워.” 원주를 지날 무렵 온 몸이 땀에 젖은 딸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딸의 마지막 유언이 됐다. 아내는 울면서 딸의 눈을 감겼다.

그로부터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비의 싸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유미씨의 10주기 추모제를 이틀 앞둔 지난 4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농성장에서 황씨를 만났다. 택시기사인 그는 지난 10년간 온전한 밥벌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속초와 서울을 오가며 일주일 중 2~3일을 이곳에서 보내니 택시 영업은 길어야 사흘 정도밖에 못한다”고 했다.

2015년 10월 15일 삼성전자가 피해자와의 중재기구인 조정위원회를 사실상 무산시킨 데 대한 항의와 대화 재개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여온 지 어느덧 514일째. 황씨는 “(유미가 숨진 지)10년이 흘렀지만 제 시간은 여전히 2007년에 멈춰 있다”고 했다.

허망하게 딸을 보낸 뒤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손녀의 죽음에 분통을 터뜨리다 화병으로 숨진 노모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내 등 가정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7년여에 걸친 힘겨운 소송 끝에 지난 2014년 8월, 딸의 죽음은 산재로 인정받았지만 비슷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반올림’에 따르면 현재까지 접수된 삼성 반도체·LCD 공장 피해 사례 300여 건 중 법원에서 산재 판정을 받은 것은 유미씨를 보함해 14명. 항소·상고심에서도 산재가 인정돼 산재보험을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를 판정한 피해자는 6명에 불과하다.

황씨는 “한 생명의 죽음은 500만원으로 덮으려 해놓고 어떻게 최순실(61·구속기소) 모녀에게는 수백억원을 안겨줄 수 있냐”고 따져물었다.

사경을 헤매는 딸이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삼성 측은 사표를 쓰라는 요구와 함께 위로금 명목으로 100만원짜리 수표 5장을 내밀었다고 했다. 그는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말 대기업 총수 청문회에서 ‘황유미씨를 아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두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가슴이 아프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답한 것을 지켜보았다”며 “진정 내 딸의 죽음에 참담한 심정을 느낀다면 진정한 자세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 소식에 황씨는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떡을 돌리기도 했다.

그는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부를 쌓은 죄를 벌하려는 사법부와 이 모든 과정을 이룰 수 있게 도와 준 국민들에게 고맙고 기뻐서 돌렸다”고 했다.

특검 수사 등을 지켜보며 조금이나마 희망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그는 “빠른 시일 안에 국회에서 ‘삼성 직업병 청문회’가 실시돼 삼성전자의 진정성 있는 답변을 듣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보영 (kby5848@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