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풍경

진보라는 말이 사라진다..'보수' 말할수록 지지율 낮아지는 역설

소한마리-화절령- 2017. 12. 15. 07:53

진보라는 말이 사라진다..'보수' 말할수록 지지율 낮아지는 역설

박소연 김태은 기자 입력 2017.12.15. 04:31

[the300][보수의 몰락-⑤멋없는 보수下]이념 정당 벗어나 플랫폼 정당 시대

보수 진영 내 '보수의 몰락'이란 자조가 팽배한 가운데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문재인정부는 오히려 ‘진보’ 색채를 뺀다. 거대 이념보다 유권자 개인이 느끼는 가치를 중시하는 흐름 때문이다. 정치가 개인화, 스타일화되는데 보수는 이런 트렌트를 간과한 채 이념을 부여잡고 '보수 재건'을 시도한다.


◇이념에 집착하는 '보수' vs 스타일 신경쓰는 '진보'=문재인 정부는 탄핵과 촛불혁명이란 토대로 탄생했다. 직접 민주주의, 적폐 청산을 강조할 뿐 '진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이념에 기대기보다 지지층과 팬덤, 여론 등을 국정 동력으로 삼았다. '명분'과 '소통'의 정치로 가능했다.

문 대통령은 정책 추진에 있어 명분과 정당성을 최우선으로 내세웠다. 신고리 원전 5,6호기와 관련, '숙의 민주주의' 과정을 통한 결론을 도출해낸 게 좋은 예다. 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자 이튿날 사드(THAAD) 발사대 추가배치를 강행했다. 초강경 대북 타격훈련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대북정책으로 진보진영 일각에서 "박근혜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한반도 현 상황의 엄중함을 근거로 압박정책을 추진한다.

탈이념 정치는 보수 진영의 '안도감'을 불러와 보수의 결집을 느슨하게 하는 효과를 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지지율로도 나타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되고나니 생각만큼 진보적 정책을 펴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수 지지자들이 안심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갑자기 세상이 진보로 바뀌고 그런 게 아니니 당분간 관망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특히 정책 못지않게 친근한 이미지와 민주적 소통 방식을 부각해 지지를 얻고 결집력을 높인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잔상이 남은 대중들에게 탈권위화는 가장 강력한 전략이자 정책이다.

반면 야권은 여전히 계파 주도권 싸움에 머문다. 자유한국당은 눈에 띄는 개혁보다 계파청산과 보수대통합, 대여투쟁 논의에 매몰돼 있다. '개혁보수'를 표방하는 바른정당 역시 유승민 대표 체제 이후에도 '독자 브랜드'를 구축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통 행보를 '쇼통'이라고 비난하는 것 외 별다른 대응책도 없다.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는 "지금 정당정치를 고집하는 것은 과거형이며 시대착오적이다. 이미 개인, 스타쉽(starship)에 기초한 팬덤정치의 시대"라며 "2017년 한국 사회라는 동시대성 하에서 현실적 적합성을 근거로 진보를 찾을 수밖에 없다. 진영 논리의 보수와 진보는 사라졌고 각각의 진보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플랫폼 정당' 등 21세기적 해법 필요=더불어민주당은 당 혁신 방향으로 21세기형 '플랫폼 정당' 시스템을 제안했다. 앞서 국민의당 역시 창당 당시부터 '플랫폼 정당'을 지향점으로 제시해왔다.

정치권에서 미래형 정당 시스템으로 거론되는 플랫폼 정당은 개방과 참여, 협력, 공유 등 새로운 소통구조를 지닌 플랫폼 서비스를 기반으로 정당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합의제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의 형태다. 흐르는 의사결정구조, 즉 '리퀴드(liquid) 민주주의'의 구현이다.

플랫폼 정당은 참여자들이 의제에 따라 합의와 설득에 직접 나서고 이를 통해 결론을 도출해나가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정당이 보수나 진보, 어느 한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맞춰 이념이나 노선을 노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상 기존 이념 정당의 몰락을 전제한 새로운 개념의 정당 시스템이다.

옛 새누리당도 플랫폼 정당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적이 있다. 19대 국회 당시 시도된 새누리당 모바일정당 '크레이지 파티'다. '크레이지 파티'는 투표 연령을 만 19세에서 18세로 낮추는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참여자들의 의견을 모아 직접 법안 발의에 나서는 등 기존 보수정당의 틀을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는 지속되지 못하고 정당의 '전통적' 주제인 공천권 등에 묻혔다.

이병수 뉴딜정치연구소 소장은 "플랫폼 정당은 보다 대중적 시스템, 보다 대중적 의제, 보다 대중적 인물, 보다 대중적 풀뿌리 하부조직 구성 등의 조건이 적절하게 조합이 돼야 새로운 혁신 정당의 모델로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정당혁신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도 변죽만 울리는 결과에 봉착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플랫폼 정당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특정 정당에 국한되는 이념적 정체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된다. 현대 사회의 갈등 구조는 보수와 진보, 두 가지 이념으로 재단하기 이미 불가능해졌다. 오히려 각 사안별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플랫폼 정당에 폭넓게 참여해 공통의 합의사항과 지향점을 도출하는 것이 플랫폼 정당의 목표가 된다.

유민영 대표는 "결과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구현해 나가는 것이 플랫폼 정치"라며 "진영과 이념이 아닌 개인들의 다양한 생각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21세기 새로운 정치가 지향해 나가야 할 바"라고 말했다.

박소연 김태은 기자 soyunp@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