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 석유에 이어..이제 '물고기 전쟁'이 온다
최민지 기자 입력 2018.09.23. 07:01
[경향신문]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노르망디 근해. 평화로웠던 바다에 화염병과 돌덩이가 날아다니고 욕설이 난무하는 등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영국 어선 5척이 이 수역에서 가리비를 끌어올리자 프랑스 어선 수십척이 이를 에워싸고 충돌을 감행하면서다. 프랑스 정부가 해당 수역의 가리비 고갈을 막기 위해 자국 선박을 대상으로 금어기(5~10월)를 정했는데, 1년 내내 조업이 가능한 영국 선박들이 가리비를 싹쓸이해간 것이 발단이 됐다.
지난 17일 영국과 프랑스 당국이 여러 차례 협상 결렬을 겪은 끝에 타협안을 도출해내며 사태는 3주 만에 일단락됐다. 영국이 길이 15m 이상 선박을 해당 수역에서 철수시키는 대신 프랑스가 아일랜드해 등 다른 수역에서 더 많은 어업권을 내주기로 했다. 하지만 길이 15m 이하의 어선은 여전히 조업이 가능해 갈등의 불씨는 남겨졌다.
■세계는 물고기 전쟁 중
세계 곳곳에서 물고기를 둘러싼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 영토,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을 두고 벌어졌던 국가 간 분쟁은 이제 물고기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어업권을 둘러싼 다툼이 주요 무장 분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어식 대국’ 일본은 최근 물고기로 골머리를 앓았다. 일본인이 즐겨먹는 꽁치의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마리당 가격이 최고 4500엔(약 4만5000원)으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중국 어선의 공해상 꽁치 싹쓸이를 원인으로 봤다. 지난 7월 도쿄에서 열린 북태평양어업위원회(NPFC)에서 한국, 중국, 러시아 등 회원국에 공해상 꽁치 어획량 제한을 제안했다. 하지만 중국이 이에 반대하면서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중국은 물고기 전쟁의 단골 손님이다. 중국 어선들이 일본, 한국 등 이웃 국가는 물론 대륙을 넘나들며 불법 조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 지원을 받은 중국 어선들이 서아프리카 해역에서 불법으로 물고기를 싹슬이하면서 세네갈 등 이 지역 국가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16년에는 아르헨티나 해군이 아르헨티나 연안에서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저인망 어선을 침몰시키기도 했다.
극심한 물고기 분쟁에 극약처방을 하는 국가도 등장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 20일 전국 11개 해역에서 불법조업을 한 외국 선박 125척을 동시에 침몰시키는 강경책을 썼다. 세계 최대 군도국가로 어업 의존도가 높은 인도네시아는 외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연간 손실액은 40억달러(약 4조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호수라고 예외가 아니다. 아프리카 우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은 양국이 공유하는 호수 에드워드호와 앨버트호 내 불법 조업으로 갈등하고 있다. 콩고 어선들이 양국이 정한 기준선을 넘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호수는 메기, 틸라피아(열대지역 민물고기) 등 인기 어종의 서식지다. 지난 7월 양국 간 갈등은 유혈사태로 번졌다. 우간다 해군이 에드워드호에서 불법조업 중인 콩고 어선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발포를 했고, 콩고 어부 16명과 우간다군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간다 법원은 앨버트호에서 고기를 잡은 콩고 어민 35명에게 최고 3년형의 징역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왜 물고기인가
물고기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그에 따라 늘어나는 단백질 수요 때문이다. 유엔은 2017년 76억명인 세계 인구가 2050년 98억명까지 30%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전지구적 인구 성장을 견인하는 것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의 국가들이다. 빠른 경제성장률로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빈곤층이 많은 곳이다. 소득 증가시 가장 찾게 되는 영양소는 단백질로, 적게는 32%에서 많게는 78%까지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세계 어획량은 지난 수십년간 양식 기술 발달 등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증가해왔지만 남획이 차지하는 비율이 20~50%로 높다. 여기에 환경 오염에 따른 해양생물 서식지 파괴 등으로 인해 2050년까지 모든 해양 생물의 개체수가 사라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까지 나온 상태다.
공급량 감소 외에 갈등의 불씨는 또 있다. 기후변화로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알맞은 수온을 찾아 서식지를 옮기는 어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 전문 매체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지난 6월 “대부분 국가들은 연안으로부터 200해리까지를 배타적경제수역(EEZ)으로 정하고 조업을 통제하거나 이웃국가와 어업협정을 맺어 바다를 공유한다. 하지만 물고기들은 이런 ‘정치적 경계’는 신경쓰지 않는다”며 “물고기들이 이 국경을 넘을 때 열기(갈등)가 뜨거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세계적인 민족주의 바람이 물고기 전쟁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각 국가들로 하여금 물고기 확보를 위한 분쟁을 불사하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 오리건주립대 해양지리학과의 마이클 하트 교수는 지난해 2월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과학진흥협회 정기회의에서 “오늘날 목격하고 있는 민족주의는 우리가 어업 관리를 하기 위해 해야 하는 변화를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역전쟁은 물론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풍부한 물고기 자원의 확보가 중요 과제로 떠오르면서 국가간 분쟁이 터져나올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이다.
■피할 수 없는 물고기 전쟁…대비는 부족
세계 주요국들은 물고기 확보를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4년 불법 조업 대응을 위해 상무부와 국무부, 14개 연방기구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 TF는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이어졌다. 지난해 12월에는 어업 관리 강화, 유통망 투명성 제고 등을 포함한 종합대책을 내놨다. 중국은 2016년 제13차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친한경 양식 어업 발전, 원양어업 관리 방안을 담았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에 대한 국제 사회의 반발을 의식한 대응책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분쟁이 필연적인 데 반해 이에 대한 대비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제사회의 협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 환경 관련 단체인 ‘원 어스 퓨처’는 지난해 2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가 빅토리아호에서 하고 있는 공동어업자원관리를 예로 들었다. 이들 3개국은 협의를 통해 각국이 만족할만한 어획량을 정하고 자원 보호 방안을 함께 논의한다. 보고서는 “국경을 초월한 어업 협력은 자원에 대한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생산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관련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협약(UNLOS) 등 관련 규범의 지위를 강화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UNLOS은 1982년 수산자원과 해양 개발, 관련 분쟁 절차 등을 위해 채택된 국제협약이다. 166개국이 가입했지만 미국은 30년 넘게 비준을 거부하고 있다. 이밖에 지속 가능한 어업 활동을 위해 수산자원을 보존하고 관리하며, 어업 침체기를 대체할 수 있도록 소득원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포린폴리시는 “초기 분쟁은 비교적 작은 배들 사이에서 일어날 것”이라며 “시작은 작더라도 다가오는 물고기 전쟁은 자원을 고갈시키는 장기적 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빠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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