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일·김현철·빛과 소금..젊은층에 재발견된 '시티팝'
입력 2018.12.13. 15:23
[한겨레] 윤수일·김현철·빛과 소금…젊은층에 재발견된 ‘시티팝’
페어 방문객 대다수가 20~30대 상당수가 세련된 시티팝 LP 찾아 하나의 장르라기보다는 80~90년대 일본에서 성행한 용어
최근 옛 서울역사(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제8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색다른 경험을 했다. 먼저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 디지털 시대에 2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아날로그 LP를 고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또한 방문객의 대다수가 20~30대 젊은 층인 점이 놀라웠다. 사실 LP 수집가들에게는 신중현 관련 음반들과 60~70년대의 희귀 LP가 인기가 많다. 그런데 이번 페어는 공기부터가 완전 달랐다. 80년대 이전의 LP들은 저렴한 음반 위주로만 거래가 소소하게 이뤄질 뿐이었다. 대신 한국식 ‘시티팝’으로 분류되는 80~90년대 가수들의 LP를 찾는 발길이 뜨거웠다.
몇 해 전부터 원조라 할 수 있는 일본의 시티팝 LP 인기가 올라가고 있음을 감지했다. 왜 이렇게 젊은 세대에게 시티팝의 인기가 높을까? 시티팝은 하나의 장르라고는 보기 어렵고, 80년대 초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일본에서 성행한 세련된 대중음악을 가리키는 용어다. ‘시티’(city)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도시인들의 낭만을 그려낸 노래가 주종을 이룬다. 음악적으로는 신시사이저, 키보드를 바탕으로 세련된 편곡과 연주에다 청량감 넘치는 사운드가 특징이다. 풍요로웠던 80~90년대 일본의 음반사들이 아낌없이 투자해 구축한 최고급 음악 인프라는 대중음악의 수준을 한껏 끌어올렸다. 시티팝은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고도 성장기였던 80~90년대에 도시를 소재로 한 세련된 시티팝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80년대에 시티 뮤직을 표방해 국내에서 인기를 끈 대표 주자들의 음악이 독자적인 한국식 시티팝이라 생각하지만, 당시 대세를 이뤘던 일본 시티팝의 영향을 받았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80년대에 한국에서는 시티팝 대신 ‘시티 뮤직’을 쓴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과거 한국 대중음악은 일본 대중음악의 영향을 받거나 심지어 표절했던 작품도 있었다. 또한 과거는 물론이고 지금도 국내 방송에서는 일본말 노래는 공개적으로 방송할 수 없어 일본 대중음악은 금기 사항이다.
국내에서 시티팝으로 소개되는 노래를 들어보면 도시의 이미지와 도시인의 삶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는 노래가 의외로 많다. 그저 세련된 편곡과 세션을 동반한 고급스러운 음악을 시티팝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또한 시티팝이 음악 장르라기보다는 ‘도시를 떠나 노을이 환상적인 해변을 드라이브’하는 느낌을 대변하는 분위기도 강력하다. 윤수일의 ‘아름다워’는 전형이다. 이처럼 일본과는 다른 음악 환경인 한국에서 시티팝은 개개인의 느낌이 중시돼 정체성 규정이 모호한지라 생각처럼 명확하게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식 시티팝의 기원이 어떤 가수의 노래인지를 단정하는 일도 난제다. 하지만 윤수일 밴드, 도시 아이들을 비롯해 퓨젼 재즈 계열의 김현철, 빛과 소금, 봄여름가을겨울 등을 한국의 대표 시티팝 뮤지션으로 보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80~90년대 발표된 국내 뮤지션들의 대표 시티팝 LP를 소개한다. 한국식 시티팝의 주자로 널리 알려진 뮤지션들의 것과 더불어, 도시를 음악의 화두로 삼고 세련된 편곡과 수준급 세션들로 고급스러운 음악을 담은 것들이다.
1981년 윤수일 밴드의 1집은 ‘고독한 도시 남자의 음악’으로 화제를 모았다. 1집의 ‘제2의 고향’, 솔로 히트곡을 다시 녹음한 ‘유랑자’와 1982년 2집의 ‘아파트’는 그의 도시 3부작으로 손꼽힌다. 청량감 넘치는 사운드로 인기 만점이었던 ‘아파트’는 아파트가 주거 형태로 주목받던 시대 상황을 그려내며 한국식 ‘시티 뮤직’으로 주목받았다. 1986년 이재민의 뻣뻣한 로봇 춤으로 화제를 모았던 ‘골목길’과 ‘제 연인의 이름은’도 많이 회자된다. 80년대 댄스 가수 김완선은 데뷔 음반부터 참여 작곡자와 프로듀서의 면면이 화려했고 세련된 사운드를 선보인 점에서 일본식 시티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도시 아이들(고 김창남, 박일서)은 그룹 이름처럼 도시를 콘셉트로 시티팝을 지향했다. 1988년 발매한 2집은 ‘음악 도시’ ‘도시 안녕’ 등 도시와 관련된 노래로 채웠다. 기획사 뮤직시티는 재킷 앞면을 도시의 조명과 네온사인의 잔상에 비친 사람의 얼굴로 디자인했고, 뒷면에는 “이 음반은 지정된 장소에서만 사용을 허락함. 뮤직시티 시장”이라는 문구를 넣을 정도로 도시 이미지에 충실했다. 세련된 사운드를 구사했던 이들은 이후 ‘김창남과 도시로’를 결성해 시티팝을 이어갔다. 90년대엔 시티록 밴드 ‘세라’도 등장했다.
김현철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1989년 발매한 그의 1집 음반에 수록된 ‘춘천 가는 기차’ ‘오랜만에’와 1992년 2집의 ‘그런대로’는 도회적이고 실험적인 한국식 시티팝의 본질을 들려준다. 발라드와 댄스가 대세였던 80년대 후반의 가요계에서 낯선 멜로디보다 화성 중심의 퓨전 재즈였기에 김현철의 음악은 방송이나 가요 차트보다는 음반 판매에서 강세를 보였다. ‘춘천 가는 기차’는 발매 이후 경춘선 열차를 타고 당일치기 춘천 여행을 떠나는 연인이 늘어난 히트곡이다.
봄여름가을겨울도 1989년 3집을 미국에서 현지 스태프와 세션들을 기용해 고급스러운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샴푸의 요정’으로 유명한 빛과 소금의 정규 음반은 국내 시티팝 LP 수집가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여성 로커 도원경의 LP 재킷은 그 자체로 도시적이다. 빌딩 앞에서 가죽점퍼에 선글라스를 끼고 오토바이를 탄 도발적인 캐리커처로 장식된 1집 음반의 수록곡 ‘성냥갑 속 내 젊음아’는 노래방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그 밖에 조용필, 홍수철, 엄인호, 명혜원, 회색도시, 고상록, 신윤철, 강은숙, 택시 등도 한국식 시티팝을 부른 가수다.
평소 소박하고 거친 사운드를 좋아하기에 시티팝으로 분류되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사운드를 선호하지 않는다. 헌데 오랜만에 다시 들어보니 왠지 풍요로운 기분이 든다. 요즘 젊은 세대가 원하는 이런 분위기가 한국식 시티팝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글·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ㅣ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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