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평화로 가는 좁은 회랑, 두 번째 질문(2)
— 신 한일 관계, 왜 대타협이 아닌 관리되는 협력인가?
황인오(동아시아 거주민: i-fire@hanmail.net)
구성주의 관점에서 본 신 한일 관계
구성주의(Constructivism)는 합리주의(Rationalism)와 함께 국제정치의 패러다임을 양분하는 이론이다. 과거에는 구성주의가 비판이론(Critical Theory)의 여러 갈래 중 하나, 또는 주류 이론의 빈틈을 메우는 틈새 이론으로 간주 되었으나 점차 커다란 이론적 비중이 커졌다. 구성주의적 국제정치 이론의 관점에서는 국가는 고정된 이해관계를 가진 행위자가 아니라, 다른 행위자인 다른 국가와 상호작용 속에서 정체성과 이해관계가 재구성되는 것으로 본다.
한·일 관계를 바라보는 기존의 현실주의적 설명만으로는 왜 갈등이 반복되는지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여기서 도움이 되는 것이 구성주의적 관점이다. 이에 따르면 한일 관계가 ‘적대적 경쟁자’로 규정될 때 갈등은 합리적 선택으로 인식된다. 한쪽 상대에 대해 ‘군국주의를 부활시키고 대동아 공영권을 재현’하려는 침략자의 후계자들이라고 비난하며 영토/역사 문제의 일괄타결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거나, 다른 한쪽은 상대에 대해 끊임없는 사과를 요구하며 수시로 골대를 옮기는 무책임한 집단으로 매도할 때 이러한 갈등은 순식간에 수직 상승하여 대치 상태를 만들 수 있다.
『국제정치의 사회적 이론: 구성주의, Social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Constructivism. 1999』의 저자로서 구성주의 국제정치학의 대표적인 학자인 알렉산더 웬트의 핵심 명제인 ‘무정부 상태는 국가가 만드는 것이다(Anarchy is what states make of it)’라는 말은 국제체제는 고정된 운명이 아니며, 위협, 적대, 협력은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따라서 정체성과 이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이를테면 국가의 행위를 제약하는 국제정치의 무정부적 구조는 하나의 일관된 구조가 아니라 상대방을 적의 이미지로 보는 홉스적인(Hobbesian) 상태, 경쟁자의 이미지로 보는 로크적인(Lockean) 상태, 그리고 친구로 보는 칸트적인(Kantian) 상태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본다.
웬트에 따르면 한일 관계의 갈등은 ‘객관 조건’이 아니라 ‘관계 유형’의 하나일 뿐이다. 이를 웬트식 질문으로 정식화하면, 일본은 한국에게 객관적으로 위협인가? 아니면 반복된 상호작용이 그렇게 만들었는가? 이에 대한 웬트식 답변은 한일 관계가 ‘공동 질서의 구성원’으로 재정의될 때, 갈등 격화는 비합리적 · 비정상적 행위‘로 될 것이다. 따라서 신 한일 관계의 핵심은 조약이나 협정 체결이 아니라 경제 · 문화 · 기술 · 환경 등의 영역에서의 반복적 협력 경험과 이를 통한 상호 인식의 전환과 규범의 축적에서 동아시아의 안정을 견인하는 장치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평화가 안정되는 구도는 단번에 설계되고 구축되는 것이 아니다. 양자 또는 다자간의 다방면적 교류와 협력이라는 성공한 경험 축적을 통해 점진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
‘좁은 회랑’ 개념은 원래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제시한 국가 - 사회 관계 이론으로, 강한 국가와 조직된 사회의 상호 견제와 균형이 공존하는 제한된 공간을 의미한다. 이를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속해 있는 신 한일 관계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확장이 가능하다. 21세기 현재 이 지역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권력의 공백이었던 시기와 달리 권력의 과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현상변경을 목적으로 한반도나 대륙으로 군사적인 진출을 기도한다는 것은 중국의 국력과 한반도 두 국가의 무장력, 미국과 러시아의 존재 등을 살펴보면 공상에 가깝다. 여기서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좁은 회랑’이란 다음과 같은 상황이다.
1) 강대국(미·중) 간 팽팽한 힘의 균형
2) 중견국(한국·일본)의 제도적 협력
3) 군사력과 규범(관리되는 갈등)이 동시에 작동하는 질서
이 회랑에 진입하지 못할 경우, 한반도 국가들은 강대국의 압력에 종속되거나 민족주의적 동원에 의해 불안정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여기서 신 한일 관계의 위치는 국가 대 국가의 ‘전통적 동맹’도 아니고 느슨한 외교 협의체도 아니지만 질서를 공동으로 관리하는 중추적 메커니즘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는 한반도 국가가 미·중 대립이라는 구조적 압력 속에서도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 즉 동아시아적 ‘좁은 회랑’의 입구에 해당한다.
따라서 신 한일 관계는 과거사 청산의 ‘보상’이 아니라, 동아시아가 적대적 갈등과 무력분쟁의 문턱을 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좁은 회랑’이다.
이는 다음 네 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한·일 갈등 격화의 가능성은 이를 관리해야 할 구조적 과제를 제기한다.
둘째, 협력의 축적은 갈등 요인을 무력화한다.
셋째, 이 과정은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인식과 규범의 재구성을 동반한다.
넷째, 이 모든 선택은 각 국가가 진입해야 할 ‘좁은 회랑’으로서, 자율적이고 안정적인 질서의 제도화를 요구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출발점을 재확인해보자. 동아시아의 불안정성은 ‘양자 갈등’이 아니라 ‘구조 문제’이며, 한일 갈등 격화 가능성, 남북 대치, 미·중 경쟁, 북·중·러의 연계는 각각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적 불안정 체계를 이룬다.
이 체계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1) 갈등 관리 장치의 부재
2) 협력보다 대결이 정치적으로 보상되는 구조
3) 중견국의 전략적 자율성 부족
따라서 해법 역시 양자 문제 해결의 총합이 아니라, 질서 재구성의 차원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 한일 관계의 위상은 ‘동맹’이 아니라 ‘질서 형성의 축’이다. 앞서 논의했듯, 신 한일 관계는 역사 문제 해결의 ‘보상’이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전쟁 가능성을 낮추는 구조적 장치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 협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한일 간 갈등 격화는 정치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선택이 된다. 따라서 갈등은 ‘관리 대상’이지 ‘결단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한 전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관리되는 갈등, ‘성 금요일 협정(GFA-Good Friday Agreement)’의 경우
1993년 10월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의 신교도 지역인 샨킬 가(街)에서 아일랜드공화군 소속 요원들에 의한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10여 명이 죽었다. 곧바로 신교도인 얼스터 자유전사 소속 대원들이 보복으로 구교도 지역인 그레이스틸 거리의 술집을 공격하여 8명이 죽는 등 100년 가까운 북아일랜드 분쟁이 격화하고 있었다.
1994년 10월 샨킬 테러 1주년이 되자 벨파스트를 비롯한 북아일랜드 전역에서 긴장이 감돌았다. 양측이 서로 보복 테러를 감행할 것은 그간의 예로 보아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분쟁이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라고 비관하고 있을 때 반전이 일어났다. 샨킬과 그레이스틸 사건 1주기에 IRA(북아일랜드공화군)와 신교도민병대가 휴전을 선언한 것이다.
양측의 휴전 선언으로 영국 정부와 아일랜드 정부, 그리고 유럽연합과 케네디 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아일랜드계가 여론의 다수를 차지하는 미국 정부 등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참가하여 기나긴 협상을 이어간 끝에 부활절을 앞둔 1998년 4월 10일, 마침내 역사적인 ‘성금요일협정(聖金曜日協定: 벨파스트 협정-The Belfast Agreement-이라고도 함)’을 맺고 항구적인 평화와 공존의 길에 들어섰다. 이 협정으로 북아일랜드 사회의 모든 문제가 해소되어 대립과 갈등이 사라진 건 아니다. 총소리와 피비린내는 사라졌다. 빈부격차와 각종 차별 등 여타의 갈등은 선거와 정치를 통해 사회적 비용을 치르며 진전과 후퇴가 진행되고 있다.
성금요일 협정은 갈등의 일괄타결이 아니라, 갈등을 ‘묶어두는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 협정의 본질은 결코 화해의 선언이 아니다. 핵심 구조는 다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1) 정체성 문제의 ‘미결 상태’ 인정
(1) 북아일랜드의 주권 귀속(영국 vs 아일랜드)을 해결하지 않았으나 어느 쪽도 최종 승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봉인하였다. 이 협정의 핵심 원칙으로 상호 동의(consent) 없이는 지위 변경이 불가능한 구조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갈등의 근원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도, 폭력을 중단시키는 구조로 작동한 것이다.
2) 다층적 제도화 (Three Strands)
(1) 북아일랜드 내부 권력 공유
(2) 아일랜드–북아일랜드 협력 기구
(3) 영국–아일랜드 간 제도적 보증
- 어느 한 층이 무너지면 전체가 흔들리도록 설계
- 단일 합의가 아니라 상호 잠금 구조(lock-in)
3) 폭력의 비정당화 + 정치의 강제
무장 투쟁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보다 정치 참여라는 유일한 경로를 제도 안으로 강제하여 무장 해제는 선결 조건이 아니라 정치 과정 속에서 병행한 것이다. 여기서 협정은 상호 적대 세력에게 ‘먼저 내려놓아라’가 아니라 ‘정치 안에 들어오면 내려놓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한 것이다.
신 한일 관계와 다음 질문
이 협정의 성과와 한계는 분명하다. 이에 대한 과대평가는 물론 과소평가도 금물이며 이를 신 한일 관계에 대비하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경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역사·영토 문제를 ‘미해결 상태로 존치’하기
성금요일 협정에서는 주권 문제는 해결하지 않되 폭력적 해결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를 신 한일 관계 적용하면 영토 · 역사 문제를 ‘완전 해결’을 목적으로 하지 않음. 그 대신 보복 · 일방 조치의 금지 규범을 확립하여 관리·중재의 메커니즘을 제도화하여 ‘덮자’가 아니라 ‘폭발하지 않게 묶자’가 될 것이다.
* 권력 공유 - 역할 공유로의 전환
북아일랜드는 권력 공유였지만, 한국과 일본은 역할 공유가 핵심이다.
경제: 공급망·기술 표준의 분업
환경·재난: 공동 대응 체계
교류: 여행 학업 취업의 자유화(청년층부터 단계적일 수 있음)
협력에 불참할 경우 비용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설계하여 협력이 돌이킬 수 없도록 하는 것.
* 외부 보증자의 존재 → 성금요일 협정에는 처음부터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 등 외부 보증자가 있으나 현 시점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상황으로 진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이 협정과 한일 관계의 결정적 차이가 있다. 한일 간에는 이러한 ‘성금요일협정’과 유사한 어떤 형태로든 문서로 된 협정을 맺으려 시도하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이 글에서 말하는 대타협, 일괄타결로 간주 되어 새로운 다툼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한일 간에는 새로운 조약이나 협정은 불필요하다. 정부와 민간의 각 분야 영역의 부문별 양해각서와 협약 등이 촘촘히 얽히는 유연한 경로를 거치면 되는 것이어서 따로 외부의 보증자가 필요하지는 않다. 이 신 한일 관계가 성숙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야 할 때 그때 가서는 논의될 수도 있는 일이라고 본다. 신 한일 관계는 성금요일 협정의 핵심 교훈인 ‘갈등 당사자를 설득하지 말고, 폭력(갈등)을 선택하는 쪽이 항상 손해 보게 만들어라’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즉, 신 한일 관계에서는
갈등 유발 - 경제·외교·제도적 비용 자동 발생
협력 유지 - 안정 프리미엄 축적
동아시아의 평화는 대부분 합의의 부족이 아니라, 관리의 부재에서 무너졌다. 대타협을 기다리는 동안 갈등은 누적되었고, 그 틈은 언제나 힘의 논리가 채워왔다. 신 한일 관계가 요구하는 것은 과거의 완결이 아니라, 미래의 폭발을 막는 제도적 상상력이다. 회랑형 평화구상은 화해와 협력을 포기하자는 제안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이 가능해질 조건을 먼저 만들자는 선택이다. 지금 이 회랑을 설계하지 못한다면, 다음 질문은 다시 ‘왜 늦었는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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