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계는 어떻게 가능한가?

전문가의 함정

소한마리-화절령- 2023. 3. 12. 21:55
전문성의 함정인가?
기본적으로 의료인들을 사회적으로 우대하는 것은 대단히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의 신체나 정신의 가장 험한 상채기를 직접 대면하여 원인을 찾아내고 이를 치유하는 작업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엄청난 중노동이다. 의사나 간호사 등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사회적 경제적으로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은 다른 이가 아닌 바로 나 자신과 내 가족을 기초로 구성된 공동체를 지키고 육성하는 강력한 버팀목이다.
건강보험의 조성과 지출 구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바 없기 때문에 기금화 논의가 얼마나 적실한 것인지는 함부로 코멘트 할 수는 없다. 다만 하나의 일반론으로 이러한 사회적으로 중요한 영역을 단지 전문가들이 논의와 결정의 주된 역할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언급할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군사적 안보(안전보장)와 관련하여 전문가들인 군인들에게 주된 결정권을 주는 것이 정상이라고 여긴 시대가 있었다. 양차 대전, 특히 1차대전 당시에는 그런 경향이 두드러져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군주제 국가들로 구성된 동맹국측은 물론 영국과 프랑스 등 상대적으로 공화제 국가들이 주요 구성국이었던 협상국 진영의 경우도 당시에는 전쟁의 개시 여부와 주된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는 등에 관해 총참모부 등 군인들의 전문영역을 폭넓게 인정하고 위임하였다. 1차대전이 남긴 참상과 비극의 책임을 전적으로 당시 전쟁을 수행하고 주도했던 군인들에게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1차대전 이후 각 나라에서 군정권(軍政權)과 군령권(軍令權)을 구분하는 등으로 전쟁의 개시 여부나 주요 전략 수립의 영역을 선출된 민간 관료들에게 넘기는 이른바 문민통제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제도화하는 추세가 잇달았다. 2차대전의 경우 특히 일본은 군정권(軍政權)과 군령권(軍令權)을 전적으로 군인들이 독점하는 군국주의 체제의 특성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중일전쟁과 진주만 기습으로 치달았다는 것은 대게 알려진 사실이다.
군대에 관한 문민통제의 원칙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하나의 상식이 되고 있다(아직 국방장관의 문민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거기에 더하여 검찰에 대한 문민통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지난 정권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여기서 검찰에 대한 문민통제의 필요성에 대한 상론(詳論)을 다 쓸 수는 없지만 내가 보기엔 지난 정권의 서투른 정략적 접근(혹은 정략적 접근으로 보이는)으로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한 가운데 이를 강행하다가 오늘날의 정치적 참패와 멸문지화에 가까운 사태를 겪고 있다. 요컨대 무능한 접근으로 인해 필요하고 정당한 검찰에 대한 문민통제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건강보험의 기금화도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의료행위 자체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건강보험은 의료행위 자체가 아니라 의료행위가 어떻게 국민 모두에게 적절하게 배분될 것인지를 다루고 결정하는 의정(醫政)영역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인 의료인도 포함된, 그러나 선출된 주권자들의 대리인이 주도하여 다루고 결정되어야 할 영역이라고 본다.
안보는 군인들의 영역이라는 허구에서 벗어나는 데 30년 이상 걸린 민주화 투쟁을 생각하면 검찰에 대한 문민통제의 필요성을 사회적 상식으로 확립하는 데는 좀더 짧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루빨리 성급하고 서투른 정략적 접근에서 벗어나 국민 전체의 행복추구권을 실현할 것을 요구하는 헌법정신과 민주주의 원칙을 상기시킨다면.
내가 존경하고 존중하는 의료인 벗들 개개인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의료영역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의 권익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건강보험을 비롯한 '의정(醫政)의 문민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어 기금화든 뭐든 너무 늦지 않게 정상화되기를 기대한다.


[단독] "韓 건강보험, 매우 특이하다"…OECD, 정부에 공식전달 - https://v.daum.net/v/20230312163102341